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개인적으로 2003년부터 여태까지, 거의 매년 참여정부를 평가하는 글들을 써왔다. 그 때마다 '참여정부의 핵심 문제는 이것이었구나!'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짧으면 몇 개월 길면 1~2년이 지나면 '어 그게 아니네!'하는 느낌을 받았다.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새로운 시각이 생기면서, 내가 여전히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자신 있게 내 놓았던 직관과 통찰이 실사구시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깨지고 재구성되면서 참여정부의 다양한 면모를 비교적 균형 있게, 꼼꼼히 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하는 평가는 그렇게 몇 차례나 진화, 발전한 내 총론적 평가(통찰)의 종착역이다. 물론 이제는 이것이 참여정부의 성과, 한계, 오류라는 거대한 코끼리의 전체상이라고 자신하지는 않을 것이다. 종착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또 헛짚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내용은 이번에 발간하는 책 <노무현 이후(가제)>에 들어가는 내용이기에 심하게 헛짚었다면, 책이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내 무딘 통찰의 기념비가 될 것이다. 

문제는 2002년의 계약 100% 완수 의지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깊은 사람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참여정부가 자신을 출범시킨 다수 국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성과적으로 부응했음에도 불구하고, 집권 중후반기 이후의 평가가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열린우리당에 과반 의석을 몰아 준 표심이 요구한 것은 경제성장, 양극화 해소, 총체적 구조개혁과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의 구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 반칙과 특권이 통하지 않는 세상, 힘센 자가 힘 약한 자를 마구 짓밟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노무현도 자기를 지지한 표심을 그렇게 이해했다.

(대선 ) 공정한 경쟁을 무력화하는 반칙의 시대, 특혜의 시대, 그걸 청산하자고 했지 않았나, 지금 얼추 되어 가지 않느냐.…… 정부서는 검찰이 편이고 정부 바깥에서는 아무래도 제일 것이 재계고 다음이 언론 아니냐.…… 특권구조, 유착의 구조를 저는 거부하고 그것을 해체해 나가자는 민주주의 발전전략을 갖고 있기 때문에 특권을 갖고 있는 집단과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 2006.12.27 ‘부산 북항 재개발 종합계획 보고회’ 가진 오찬. 균형발전 추진, 작전통제권 환수합의, 특권구조 해체를 들면서) 

 

역사의 진보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권리가 확산되고 권력이 보통사람들에게 나누어지는 것이며, 이러한 진보의 동력은 민주주의에서 나오는 것이다.…… 4.19 역류했으나 87 6 항쟁은 문민정부 시기의 하나회 척결을 통해 군사독재로 되돌아갈 없게 되었다.……그 다음 과제는 특권과 유착을 통한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지역주의와 권위주의를 해소하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과제는 참여정부 들어 상당히 진전되었다.……민주주의의 다음 과제는 자율적이고 창조적이며 상호 헌신과 관용에 기초한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로 가야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축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권력이 소수에 집중되지 않고 소비자인 일반국민이 시장과 정치를 지배하는 소비자주권의 시대가 것이다.(2006.12.28.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신규 위원들과 오찬)  

사실 노무현의 인생 역정으로 보나, 선거과정으로 보나, 그가 숱하게 한 발언으로 보나 노무현이 국민(역사)과 한 계약의 핵심은 ‘원칙과 상식의 회복’ 혹은 ‘무원칙과 몰상식’의 세상을 확 바꾸는 것이었다. 이는 반칙과 특권의 타파, 정경유착. 권언유착 폐절, 법 앞의 평등, 기회주의. 지역주의/학벌주의/권위주의 타파, 사정기관의 정치적 중립화, 당내 민주주의 정착, 국가기관에 대한 도덕적 신뢰 회복과 억울하게 빼앗기고 짓밟히고 죽어간 자들의 명예 회복(伸寃)(의문사, 과거사 진상 규명) 등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본적으로 준법, 존법, 정상화라고 할 수 있다. 원칙과 상식 혹은 준법, 존법, 정상화가 한 발짝 더 나간다면 국가보안법 등 냉전의 잔재 청산, 남북 화해. 협력 체제 정착을 바탕으로 한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대등한 한미관계와 협력적 자주국방까지도 포괄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노무현은 참여정부를 만들어 준 표심에 충실히 부응했다. 정말 사심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이 표심을 받들었다. 뿐만 아니라 역대 정부들이 전통적으로 중시하는 성과 지표(수출, 경상수지, 성장률, 주가지수 등)도 탁월하다. 참여정부의 양지와 음지가 뚜렷하기에 성과에 관한 한 이견이 좀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서 자신과 국민이 맺은 계약을 충실히 이행한 대통령은 전무후무 하지 않을까 한다. 이것이 바로 참여정부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의 원천이다.

그런데 문제는 참여정부 집권 중반쯤에 국민들이 2002년의 만족하거나, 계약 자체를 잊거나, 경시하고 새로운 계약서, 아니 요구서를 들이밀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2002년의 계약서를 결코 가벼이 하지 않고, 100% 이행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노력을 기본으로 하고 양극화 해소, 민생 문제 해결, 동반성장이라는 새로운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려고 하였다. 노무현과 참여정부의 비극은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2002년의 계약은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70~80%가 이행된 것이 다름없다.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있는 한, 힘센 자가 힘 약한 자를 마구 짓밟을 수가 없다. 그 누구도 법을 함부로 어길 수가 없다. 정경유착, 권언유착, 반칙과 특권 등의 고질병들도 깊이 잠수(潛水)를 하거나, 후미진 뒷골목 밤거리를 경관(노무현) 눈치를 보면서 배회하는 불량배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기회주의, 지역주의, 학벌주의 역시 이들과 정면으로 싸워왔던 노무현의 당선과 더불어 무색해 질 수 밖에 없다. 제왕적 대통령의 패악은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범위에서 권력을 행사하면 사라지게 되어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존법, 준법, 정상화 사안인 것이다. 물론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점에서 준법, 존법=원칙, 상식을 앞세운 노무현의 당선 자체가 노무현이 정치 인생을 걸고 추구해 온 많은 가치의 승리이자 완성이라고 볼 근거가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조기극복(김대중)’ 이나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박정희)’ 이나 ‘7%성장, 1인당 소득 4만 불, 7대 강국(일명 747)’ 같은 계약(비전)이라면 권력을 장기간 행사하여 이행해야 하지만, 노무현의 계약(비전)은 그가 최고 권력자로 앉아 있기만 해도 상당부분 달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노무현이 가진 비전의 특수성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사회운동가의 비전이다.

권위주의 청산, 국민참여 활성화, 사정기관의 정치적 중립화, 냉전의 유산 청산(국가보안법 철폐), 과거사 진상규명 등은 2002년에 맺은 계약의 남은 20~30%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남은 20~30%는 기본적으로 정신과 문화 개혁 사안이라고 보아야 한다. ‘자율적이고 창조적이며 상호 헌신과 관용에 기초한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 정착’과 이를 위한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축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은 과제는 상당한 시간, 어쩌면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리는 것들이라고 보아야 한다.  
 
참여정부 시기에 무원칙과 몰상식의 선봉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과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는 일부 보수 세력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국정의 발목을 잡아 온 한나라당은 이 ‘반칙 왕’ 내지 ‘몰상식 왕’의 후견자였다. 노무현은 한국 사회에 무원칙과 몰상식(편파, 왜곡, 거짓, 야비, 기회주의)이라는 오물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보수 언론에 대해, 그냥 무시해도 될 것도 같은데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많은 정치적 자원을 동원하여 오랫동안 전쟁을 벌였다. 그것은 아마도 무원칙과 몰상식의 본산을 고립시키거나 정상화시켜야 2002년의 계약을 완전히 이행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상호 헌신과 관용에 기초한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 정착’과 ‘사회적 자본축적’을 위해서는 이 전쟁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참여정부가 엄청난 정치적 자원을 투입한 곳은 공무원 마인드 혁신을 포함한 정신, 문화 개혁이었다. 이는 대를 이어가면서 추진해야 할 장기적 과제이다. 따라서 건강한 정신, 문화를 체현한 매체, 정치세력, 경제사회세력이 필수불가결하다. 바로 그래서 언론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구태여 임기 말에 기자실 폐쇄를 강행한 것은 ‘언론이 변해야 한다’ 메시지를 언론과 국민들에게 보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참여정부는 그런 정론지나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를 계승한 정치세력이나 사회세력을 만들지 못하였다. 또한 그런 맹아들이 커 올라 올 수 있는 생태계도 만들지 못하였다.

어쨌든 ‘빠’소리를 듣는 열성 지지층은 ‘무원칙과 몰상식 섬멸 전쟁’에 엄청난 화력을 동원하는 노무현의 전략적 판단에 동의했을지 모르지만, 다수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2002년의 계약에 관한 한 ‘그만하면 됐다’고 생각하고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 해결을 내심 바란 사람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국민들의 노무현에 대한 짜증은 바로 여기 시작되었다. 동시에 사상 유례없는 추모 열기도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국민들은 노무현이 치열하게 추구하던 가치(2002년의 계약)를 기본 중의 기본으로 생각했지, 불필요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2007년 이후 근 2년여에 걸쳐서 이명박 정부와 보수 세력은 이런 민심을 망각하고 ‘잃어버린 10년’ 운운 하면서 2002년의 시대정신과 그 상징이 무참히 짓밟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참여정부 기간 동안 후미진 뒷골목 밤거리를 배회하던 무원칙, 몰상식, 기회주의, 위선, 부적절한 유착, 야비함, 치졸함 등 온갖 깡패, 양아치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와 대한민국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여기던 2002년의 시대정신을 벌떼처럼 달려들어 때려 죽였다. 당연히 깡패, 양아치들이 설칠수록, 세상이 혼탁하고 위선적일수록 그들과 가장 대비되는, 소탈하고, 서민적이고, 상식적이고, 원칙적인 노무현이 미치도록 그리워질 수밖에 없었다. 또 그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도 폭풍처럼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임기 말의 왕 짜증과 저조한 지지율, 그리고 사상 유례없는 애틋한 추모 열기의 뿌리는 바로 진보와 보수 이전에, 성장과 복지이전에, 또 총체적인 국가구조 개혁 이전에 대한민국에 절실히 필요한 상식과 원칙을 세우기 위해서 노무현이 모든 것을 걸었다는데 있다.   

시대정신의 대전환: 총체적 구조 개혁
참여정부의 비극의 뿌리는 참여정부 기간에 급격하게 바뀐 시대정신이다. 시대정신의 대전환이 일어났다는 것은, 2002년 당시 자타가 공인하던 시대정신이 불과 몇 년 뒤인 2007년~8년의 대선과 총선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이런 일은 현대 정치사에서 그리 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정치사회적 대격변이나 환경적 대재앙이 휩쓸고 간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현상이다.

분명한 것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국민들이 참여정부와 범 진보세력을 싸잡아 외면한 것은 범 진보의 대표 격인 참여정부가 2002년의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당초 공언한 성과가 적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당선과 더불어 계약의 70~80%가 이행되어 버리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참여정부가 계약의 100% 완수에 너무 치열하게 매달렸기 때문에 외면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의 불운은 집권 중반기에 시대정신의 대전환이 일어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급격한 전환이 일어났을까? 이유는 네 가지다.

첫째, 노무현과 국민이 맺은 2002년의 계약-사실상 준법, 존법, 정상화- 자체가 노무현 당선으로 인해 70~80%가 이행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과거의 계약이 이행되면 새로운 계약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둘째, 불법, 탈법, 무원칙, 몰상식 같은 후진국형(전근대적) 문제가 해결되면 합법적, 제도적 불의와 새로운 원칙과 상식의 문제 같은 중진국형(근대적) 문제가 급부상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국의 법, 제도, 원칙, 상식이 선진국 수준으로 잘 완비되어있지 않는 한…….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어떤 법, 제도, 정책은 한 때는 유효했지만 급변한 환경과 맞지 않았다. 또 어떤 것은 애초부터 힘 있는 집단의 농간이 짙게 배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법적, 제도적 불의가 심각한 정치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르지 않았던 것은, 이것이 오랫동안 (대통령을 포함한) 힘센 자들의 불법, 탈법, 편법, 변칙 관행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불법, 탈법 관행이 참여정부 출범으로 인해 급속히 퇴조하자, 합법적, 제도적 불의가 수면 위로 급 부상했다. 탄핵 사태를 초래한 공직 선거법 9조의 문제, 관습헌법을 제정하는 괴력을 발휘한 헌법재판소의 문제,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문제, 검찰의 비대한 권력 문제, 사학재단의 전횡이 가능한 허술한 규제. 감독 문제, 부동산 관련 규제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가치 측면에서 보면 공정성(기회, 조건, 출발선의 평등) 문제에 가려있던 공평성(경쟁 결과의 합리적 불평등, 특권. 특혜의 적정화)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했다. 토건 분야에 대한 지나친 재정 할당 문제, 민자 유치 사업 등을 통한 재정 약탈 문제, 거대한 부동산 불로소득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 원청대기업과 하청중소기업 문제, 전임교수와 시간강사 문제, 조직된 손노동에 의한 지식노동에 대한 약탈 문제, 국민연금 사각지대 문제와 공무원 연금 적자 문제, 사교육 문제 등이 그런 것들이다.

어떻게 보면 17 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상정된 4대 개혁 입법(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은 민주주의의 제도적 문화적 완성(준법, 존법, 정상화)의 범주에 속하는 과제(국가보안법, 과거사진상규명법)와 새로이 부각된 합법적 제도적 불의 혁파 범주에 속하는 과제(사립학교법, 언론관계법)가 혼재되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 4대 개혁 입법 투쟁은 시대정신의 전환점 근처에서 일어난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보수 세력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국가보안법과 과거사법이었다.  보수 세력의 물질적 기득권에 실질적으로 타격을 가하는 법안은 사립학교법과 언론관계법 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과 과거사법이 범 보수 세력의 공포심을 자극하여, 싸우기 좋았기 때문이다. 한편 국가보안법과 과거사법은 내 식으로 표현하면 2002년에 맺은 계약 중에서 미 이행한 20~30%이자, 중장기 과제(정신, 문화 개혁)이기에 국민적 지지가 그리 튼실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범 보수의 전술적 판단은 옳았고, 범 진보의 그것은 틀렸다. 4대 개혁 입법의 지지부진으로 인해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타격은 컸다. 그래서 4대 개혁 입법 추진 과정에서의 혼선, 분열, 좌절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4대 개혁입법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혼선이 일어난 것도 근원적으로는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과 범 진보가 시대정신의 대전환을 눈치 채지 못 한데서 일어난 필연적인 오류와 실패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원내 전술의 오류가 아니라 커다란 역사적 통찰력(감각)의 오류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범 진보 진영에 속한 정치인 중에서는 그래도 시대정신의 대전환을 가장 빨리 눈치 챈 사람의 하나이다. 유효성을 다한 법, 제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원포인트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을 전제로 한 대연정을 시도했다. 또한 검찰 권력에 대한 견제 장치 마련을 위해 공수처 설립과 검찰. 경찰의 수사권 조정을 시도했다. 국가의 중장기적 비전, 전략(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비전2030’을 만들었다. 낡은 진보의 문제를 절감하고 유연한 진보, 새로운 진보주의를 역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의 대전환에 늑장 대응하고, 관료적 감각과 상상력으로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는 어떤 철학적 문제(정의관, 인간관)와 역사. 현실에 대한 통찰력의 문제가 참여정부를 포함한 범진보 세력에게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참여정부 집권 기간에 잠복하던 각종 모순. 부조리들이 국내외 여러 요인들이 중첩되어 화산처럼 폭발했기 때문이다. 위에서 열거한 공평성 문제 외에 신용카드 대란, 자살률 급증, 출산율 급감, 영세자영업의 피폐, 양극화 심화, 청년인재의 국제 비경쟁 영역으로의 쏠림(고시. 공시족 폭증), 청년실업 문제, 벤처 창업율 감소 문제, 수도권 집중 문제 등 수많은 모순들이 그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1948년, 1961년, 1987년, 1997년을 기점으로 형성된 제반 질서(시스템)의 모순의 폭발이다.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이 문제들은 기본적으로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과 굼뜬 시스템(법, 제도, 재정 등)과 무능하고 사익추구적 공공 리더십과 전 세계에서 위기 및 기회에 가장 역동적으로 대응하는 경제사회 주체간의 대충돌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외 환경의 충격이 큰 것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대외의존도가 높고, 세계 경제의 지각변동의 진앙인 중국에 인접해 있고, 미국과 긴밀히 연계되어있기 때문에 세계 경제의 변화에 심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사회 주체들이 역동적인 것은 학력 수준도 높고, 세속적 욕망도 강하고, 정보도 많고, (웹 공간에서) 결사도 쉽고, 국가 및 사회지도층에 대한 불신도 높고, 4.19, 광주항쟁, 유월항쟁, 촛불시위 등으로 주체적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틀어 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넷째, 이 모든 문제들이 참여정부에 와서 뚜렷하게 부각된 것은 객관적으로도 심각하긴 했지만, 주류 보수 언론도, 진보 언론도, 진보 지식사회도 공히 참여정부에 적의를 가지고-보수 언론은 친북좌파라고, 진보 언론은 신자유주의자라고, 진보 지식사회는 얼치기 운동권이라고- 모든 문제를 정도 이상으로 침소봉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무현의 약간 튀는 말은 입방아 찧기에는 너무 좋은 소재였다. 단적으로 ‘반미면 어떠냐?’라는 말, ‘좌파신자유주의’라는 농담, ‘시장으로 권력이 넘어갔다’는 말 등 대수롭지 않는 말 가지고 얼마나 입방아를 찧었던지!!!  또 하나 국민들이 참여정부에게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화산처럼 폭발한 민생 문제들은 노무현의 말대로 참여정부가 만든 것이 아니라, 이전에 만들어져서 참여정부에 와서 터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성은 당시 정부와 집권 세력으로 날아올 수밖에 없다. 이는 기본적으로 참여정부의 불운이긴 하지만 그 못지않게 경제사회적 재난 경보 체계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집중 호우나 태풍은 불운이지만 그 피해의 수준은 재난 경보, 대처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합법적, 제도적 불의의 문제든, 자연 재해처럼 밀어닥친 민생 문제든 이것을 해결하는 데는 4대 국정원리도, 참여, 균형, 민주주의 같은 핵심 가치도 별 쓸모가 없었다. 참여정부를 좌파신자유주의로 비아냥대던 진보 좌파 세력의 핵심 가치, 즉 고용안정,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대폭 인상, 부자 증세와 복지 재정 대폭 확대 등도 역시 쓸모없긴 마찬가지였다.

너무 빠른 변화에 당하다
참여정부는 과거 패러다임의 대성공자들이 그랬듯이 너무 빠른 패러다임의 변화에 당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패러다임에서의 주적(무원칙, 몰상식, 반칙, 특권, 기회주의)의 잔존(?) 부대(조중동, 사학재단, 불건전한 문화 풍조)를 소탕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어느덧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새롭고 강력한 적들이 뒤에서 덮친 것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들은 잔존 부대라기보다는 빙산의 일각이었던 것이다.

참여정부,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진보 언론 등 범진보의 동반좌절은 비유적으로 말하면 화산이 폭발하고 지진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예민하게 감지하지 못하고 이전처럼 행동했다는데 있다. 지진과 화산 활동을 조기에 포착하지 못한 것은 단지 둔감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철학적, 역사적 통찰력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본래 지진과 화산은 지각 깊숙한 곳에서 일어난 어떤 균열이나 충돌로 인해 엄청난 에너지가 장기간 축적되면서 생겨난다. 화산과 지진은 대개 일어나기 전에는 잘 모른다. 막상 지진과 화산이 일어나면 그 이전의 모든 문제들이 뒷전으로 밀리는 법이다. 시대정신의 대전환이 일어나 버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민심이라는 화산은 진짜 화산 보다는 터지는 시기나 양상을 비교적 쉽게 예측할 수가 있다. 민생 현실을 알려주는 각종 계기판을 잘 들여다보고,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실물 현장을 많이 누비고, 서로 다른 분야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조직하고, 좋은 인식 틀(프레임)로 세상을 관찰하면 지각 깊숙한 곳에 엄청난 에너지가 축적되는 양상을 조기에 감지할 수 있다. 잘만 하면 제도, 정책을 통해 고통, 불만 에너지를 사전에 해소하여 지진과 화산을 예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참여정부나 범진보는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 낡았고, 민생 현실을 알려주는 계기판도 시원치 않았고, 주요 인사들은 실물과 다소 유리되어 있어서 문제인식은 대체로 둔하고 흐릿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프레임 문제, 계기판 문제, 실물과 유리 문제, 소통 부족 문제 등과 관련하여 범진보는 참여정부에 비해 얼마나 나아졌을까? 참여정부를 돌아볼 때 진짜 걱정스러운 것은 바로 이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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