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차별의 기원을 탐사하는 글 중에 정여립의 난을 거론하는 포스팅들이 꽤 있다. 그런데 사실은?



서인 출신이며 율곡 이이의 제자였던 정여립은 이율곡을 비판하고 동인으로 당을 옮긴다. 그리고 그 이후에 서인 출신인 정철의 '정치적 공격'으로 멸문지화에 가까운 비극을 당하며 그는 운좋게 아들과 탈출하여 진안 죽도까지 갔다고 관군에 쫓긴 나머지 아들을 베어 죽이고 자신도 칼을 목에 꽂아 자결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정여립에 대한 역사의 기록들이야 어지럽게 추측으로 점철되어 있고 또한 호남차별에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쯤은 탐독하였을 정여립의 난에 대하여 다시 기술하는 것은 의미도 없어서 생략하겠지만 정여립의 난에서 가장 큰 반사이익을 얻은 사람은 바로 시인으로 유명한 정철이다. 정철은 정여립의 난 이후에 좌의정까지 올라갔으니 말이다. 그런데 정여립은 전주 출신이고 정철은 전남 창평 출신이다.



물론, 정철의 경우에는 이미 관직에 진출한 그의 아버지 정유침과 누이가 인종의 후궁인 동래정씨여서 한양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당시 혈연이 중요시하던 시절에 그가 호남사람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율곡이나 정철을 '한심한 정치인'으로 평가한다. 십만양병설.......은 왜구의 침공으로 탁월한 대비책으로 평가받고 있기는 하지만 당시 조선의 상황을 볼 때 십만양병설은 '죽어가는 백성 또 한번 죽이기'에 불과한 정말 한심하기 이를데 없는 정책이다. (고 정비석이 쓴 소설 토정 이지함에서는 율곡 이이의 십만양별설과 이순신의 군사적 대비가 이지함의 충고를 받았다는 '야사'를 기록하고 있다)



더우기 사미인곡의 정철. 속미인곡과 관동별곡과 함께 김만중에 의하여 조선의 유일한 3개의 문장이라는 극찬을 받은 그 작품들이 임진왜란을 앞둔 10여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욕지기가 나오는 것과 함께 정여립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정여립의 정치적 실패가 안타깝게 다가온다.




불사이군을 거부하며 공화주의를 주창했던 정여립. 물론, 그에 대한 세세는 '승자의 기록'일 수 밖에 없는 역사 속에서 대단히 편협한 인물로 기록되지만 이는 마치 DJ가 지금도 '빨갱이라면 환장한다'는 마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과 같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불사이군을 부정한다는 것은 기독교에서 '예수를 부정하고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즉, 정여립에 대한 기록들은 그의 언행에 대한 기록보다는 불사이군을 거부한 그의 사상에 대한 난도질과 다름이 없다. 물론, 정여립의 공화주의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읽을 수는 없다. 내가 게을러서 자료를 못찾았거나 아니면 자료가 희귀해서 내 눈에 띄지 않았거나.



만일, 물론 역사에서 가정만큼 싱거운 것은 없다지만 만일 정여립이 살아남아 그의 사상이 널리 퍼졌다면? 어떤 집단이 망해과정 중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바로 '동종교배'에 의한 열등종자들이 집단을 지배하는 것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정여립이 '자연사했다'면 조선은 저렇게 허무하게 패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정여립의 공화주의자 속성이 위기로 향해 치달렸던 중기 조선 이후를 구해냈을 것이라는 가정은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한 비약이지만 동종교배로 인한 조선의 패망을 재촉한 사건들을 완화시켰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정여립의 실패가 안타깝다. 예를 들어, 숙종을 둘러싼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대립은 삼각관계에 의한 치정의 역사가 아니라 당시 인현왕후를 옹립하던 기득권 농경세력과 장희빈을 옹립하던 중농주의자들이 주축인 보부상들이었다는 점에서 만일 장희빈이 역사의 승자가 되었다면?



공부를 좀더 해야하는 부분이지만 숙종 때 '상평통보'가 다시 주조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장희빈이 역사의 승자가 되었을 때 그 이후의 조선의 역사 전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조선 최초의 철새정치인이며 비극의 공화주의자 정여립.



그로 인한 호남차별의 실체는 DJ가 받았던 것처럼, 하나의 사상이 이 땅에 정착되면 다른 사상들이 같이 호흡하면서 사는 것을 죽어도 용납 못하는 참 섬나라 인간들만큼이나 졸렬한 반도인의 특성에서 연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 지나친 것일까?




정여립이 호남사람이어서 그래서 그게 호남차별의 이유라는 주장들 속에는 동종교배에 너무도 길들여진 이 땅의 기득권들에게 면죄부를 발행하는 졸렬한 사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기득권은 절대 다른 사상을 용납하지 않으니까.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