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 윌라드의 리노바레 강연 참관기

레노바레 리더십 트랙 두번째 강연입니다. (2009년 6월 22일 월요일)

강사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 교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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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은 지난번 포스팅(링크) 에서 다룬 토드 헌터이고 가운데 노신사가 달라스 윌라드입니다. 간단히 달라스 윌라드를 소개하자면, USC 철학과 교수이자 국내에 번역된 다수의 기독교 서적 저자이기도 하죠. 대충 알라딘으로 찾아보니 국내에 그의 유명 저작들은 거의 다 번역 출판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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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유명한 책들만 몇 개 골라보면 The Divine Conspiracy (하나님의 모략), Renovation of the Heart (마음의 혁신), Hearing God (하나님의 음성) 정도가 되겠네요.

이날 강연은 이중에서 '마음의 혁신'을 중심으로 목사님을 비롯한 교회 리더들에게 리더십의 본질에 대해 소개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그날 강연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서 한가지 강조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 레노바레 자체가 일반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기 보다는 교회 목사님이나 각종 대소 그룹 리더들이 주 대상입니다. 특히나 필자가 참가한 트랙은 그중에서도 리더십을 중심으로 한 트랙이라 전체 강연 내용들이 대부분 목사님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져있죠. 달라스 윌라드 교수님은 목사님들이 놓치기 쉬운 좀 더 근본적인 문제들을 많이 다루었습니다. 이 포스팅을 읽는 평신도 예수쟁이들이나 비기독교인들은 그 점을 충분히 감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교회 리더십의 문제는 과연 무엇인가?

달라스 교수님은 현재 미국사회, 특히나 교회의 리더십의 문제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즉 제도화(institution)를 거치면서 어젠다의 촛점이 '사람'에게서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걸 지적하며 강연을 듣고 있는 다수의 목사들에게 오히려 성공이 현대 미국 교회의 큰 문제라고 합니다.

성공이 문제라고? 속으로 이게 무슨 말일까 생각하는 순간....

달라스는 청중들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당신들이 정의하고 있는 성공이란 무엇이냐고... (How do you define success in your work?) 당신의 성공은 누가 그리고 누구의 관점으로 정의한 것이냐고...

그러면서 대담한 지적을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역이나 직업보다는 당신의 인생에 관심이 있다. (God is more interested in your life rather than your ministry and job)"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라는 주문을 합니다.


(2) 예배의 본질을 통해 본 리더십

달라스는 이런 범상치않은 성공에대한 정의를 내린 후 바로 다시 리더십에대해 화두를 던집니다. 예배를 예로 들면서....

예배에서 누가 performer(실행자)이고 prompter(격려자)이며 critic(비평가)냐고 묻는데.... 많은 일반인들은 목사님이 실행자이고 성령님이 격려자이며 성도들이 비평가라고 생각할 거라고 하니 다들 웃으며 동감합니다. 하지만 예배의 본질을 아는 독자라면 이 시점에서 누가 진정한 예배의 performer이고 prompter이며 critic인지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달라스는 예배의 실행자성도들 자신이며, 성도들의 예배에 추임새를 넣어주는 격려자목사들이고 이들 성도들의 예배에 비평가 역할은 하나님(God) 몫이라는 걸 지적합니다. 아마 정말이지 많은 예수쟁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예배의 본질일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예배의 본질을 건드리면서 대다수가 목사인 청중들에게 이런 부탁을 합니다.

' 우리는 사고체계를 뒤집어 엎어야 한다. (예배의) 실행자 역할을 당장 때려치워라. 우리는 실행자가 아니다.' (We really need to rethink the structure. Stay out of the role of performer. We are not the performer)

목사님들이 예배의 실행자가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하면서 자연스럽게 리더십의 본질을 언급합니다.


(3) 리더십이란? (Art of Leadership)

달라스는 리더십 전문가인 맥스 듀프레이(Max DuPree)의 다음 문구를 소개하며 리더십의 본질로 접근해 들어갑니다.

" 리더십의 핵심은 가장 효과적이고 인도적인 방법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요구되어지는 일을 하도록 사람들을 자유케 하는 것이다 (The art of leadership is liberating people to do what is required of them in the most effective and humane way possible)"

쉽게 얘기해서 리더십은 실행하는 역할이 아니란 말이죠 (leadership =/ performing).

그러면서 자신 버전의 크리스챤 리더십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리더십이란 사람들이 속한 조직이나 그룹에서 각자가 맡고 있는 역할을 스스로 사랑하고 존중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 (The leadership enables people to love and honor the role they play in the organization or group they concern)"

즉 우리가 생각하기에 리더십이란 우리쪽에서 뭔가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할테지만 실제로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고백이 전제로 깔려야 된다는 걸 암시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번 리노발레 전체의 주제인 영성 확립(spiritual formation)으로 옮겨 갑니다.


(4) 영성 확립(Spiritual Formation)의 정의

일단 달라스의 강연이 단순한 리더십 강연이 아니니 방금 정의한 크리스챤 리더십이 어떤 기초를 가져야할지를 영성 확립(Spiritual Formation)을 설명하며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달라스가 정의한 영성 확립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물질적 측면과 함께 영적인 측면이 있는데 우리의 영적인 면이 예수를 닮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영성 확립이다. (Shaping spiritual side of you in such a way that it is like Christ)"

그러면서 몇가지 부연설명을 덧붙이더군요.

" 이는 성령님이 관여하시는 일이며 우리는 우리가 해야할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특별한 경험, 즉 벼락이 내려치는 것 같은 경험을 통해 한번에 바뀌기를 희망하지만, 실제로 영성 확립이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과정 역시 사람이 initiate 한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Grace에 의존해야 한다" 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방식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걸 성취할 수 있도록 우리 삶에 역사하시고 계시다 (God is acting in our lives to accomplish what we cannot accomplish on our way)"

라는 강조를 합니다.


(5)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리더십 (Leadership lead by God)

자신을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self initiation=leadership 이라고 착각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기술, 논리, 조직학등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노하우에 기대어 업적 평가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 근처에도 갈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죠.

달라스 교수님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리더십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저는 하나님 당신의 품에 있습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하지만 저희의 최선이 완벽하지 않죠. 저희의 손길이 아닌 당신의 손길만을 바라며 당신의 나라안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더해질 것을 믿습니다. (I am under Him. We do our best but do not trust our best. Stay in God's kingdom looking for His hand not mine. Everything will be added.)

하나님의 나라가 최우선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왕국에 머문다면 우리의 영혼은 고갈되어 갈 거라고 주장합니다.


(6) 영적변신의 핵심 (Spiritual Transformation)

이 제 영성 확립(Spiritual Formation)과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리더십(Leadership lead by God)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으니..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뭘 어떻게 해야 영적변신(Spiritual Transformation)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실제적인 궁금증이 몰려오기 시작하더군요.

그런데 정작 달라스 교수님은 조금 다른 접근법을 제시합니다. 영적변신(spiritual transformation)은 행동교정(behavior modification)이 아니라고 합니다. 가령....

누가복음 22:32에서 베드로가 자기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을거라고 하기 직전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죠.

"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But I have prayed for you, Simon, that your faith may not fail. And when you have turned back, strengthen your brothers.)"

저도 이 부분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던데.. 이유인즉은..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가 나를 부인하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I have prayed for you that your will not fail....)

또는 작은 천사를 보내서 그의 행동을 막는 초자연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관심을 가지고 보신 것은 겉으로 드러난 베드로의 행동이기 보다는 그 행동의 근원이 된 곳, 즉 베드로가 떠벌이기 좋아하고 마음속 가득히 야망이 차 있는 걸 다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런 베드로의 내면을 위한 기도를 하셨다는 거죠. 마찬가지 원칙이 우리의 영적변신에도 그대로 적용이 될 겁니다.

따라서 영적변신의 핵심은 내가 무슨 무슨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겠다는 표피적인 접근법이 아닌 다음과 같은 좀 더 근본적인 결단을 촉구하게 됩니다.

나는 내 의지의 모든 측면에 변화를 시작할 것이다. (I am going to change the set of my wills)


(7) 어떻게? (How I can train my will?)

그럼... 어떻게 나의 의지를 훈련 시킬 수 있을 것인가?

우선 나의 의지에는 나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세상도 포함이 되어 있고, 감정과 생각들 역시 모두 포함되며 더 나아가 내 육체가 몸 담고 있는 사회적 세팅(social setting)까지가 다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니 이들 전체 사회적 세팅에 대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즈음에서 이야기는 다시 순환됩니다. 이 모든 결단이나 훈련들 역시 내 자신의 방법으로 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I don't have to have my way)

이렇게 내 방법을 포기하면 목회자들이 가지고 있던 커다란 멍에를 벗어 던질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나의 방법이 나의 무거운 짐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라고 지적하죠.


(8) 영적변신 이후의 시각

이렇게 자신의 방법을 던져버리고 주변의 모든 사회적 세팅(social setting)을 뒤바꾸고 나면 목회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것이 따라 온다고 합니다.

1. 성도들에 대한 진정어린 자각 (Genuine awareness of people)

2. 엄청난 자유함 (Great freedom)

더 이상 성도들이 객체가 아닌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시는 소중한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고 목회자 자신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성도들을 변화시키는 일에 작은 격려자이라는 사실에 크나 큰 자유함을 맛보게 된다고 합니다.

더불어 더 이상 주일 예배 참석자 머리수를 카운트하는 것이 자신의 성취도를 측정하는 근거가 되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오히려 목회자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치중하게 되며 성도들이 더욱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더 많은 가르침이 쏠리도록 노력을 경주하게 되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교회의 모든 일들을 평가하게 된다고 합니다.


결론

평신도 입장에서 목회자분들의 고충을 이해한다고 하면 참 우스운 노릇일 겁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번 컨퍼런스 기간중에 만난 미국 전국방방곡곡에서 천불이 넘는 돈을 들여 날라온 나이가 지긋한 목사님들로부터 들은 이런 저런 고민과 염려들을 보며 달라스 교수님의 해법이 과연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도 했고요.

앞으로 크게 3번 정도 더 이번 레노바레 포스팅을 할텐데...

첫날(링크) 연사였던 토드 헌터의 다양한 시각자료와 논리 정연한 현대식 접근법에 비해 이날 있었던 달라스 교수님의 접근법은 일견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후 이틀간 더 진행된 컨퍼런스에서 샌안토니오 시내에서 3천명의 성도를 거느린(?) 대형교회의 젊은 목사님과 미국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는 또 다른 성공한(?) 목사님의 현실적인 접근법들을 지속해서 들으며... 그리고 이제 몇주가 지난 오늘까지... 계속 뇌리에 남고 결국 궁극적인 해법이 될 수 밖에 없는 건 오늘 포스팅의 주인공인 달라스 목사님의 저 뜬 구름잡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라'는 결론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제가 목회자라고 한다면 저는 달라스 교수님의 그날 강연에 어떻게 반응을 할테고... 제 자신의 목회에 어떻게 적용을 할지 참 많은 고민이 되겠다 싶기는 합니다.


매일 아침 이메일로 서로 QT에서 얻은 감동들과 메시지를 공유하는 그룹이 있습니다. 오늘 저의 고백은 사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믿음은 아닌지..."라는 제목이었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모습을 보고 Lystra 사람들은 바나바와 바울을 각각 제우스와 헤르메스라고 생각하고 이들에게 제물을 가져다 바칩니다. 사도들이 살아계신 하나님(the living God)을 보라고 아무리 외쳐도 그들의 행동을 막을 수는 없었죠.

저 역시 Lystra 사람들처럼 하나님께서 제게 주시고자하는 메시지중에서 제가 보고 싶어하는 부분만을 저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제 나름대로의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것이 아닌가 반성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심지어 가끔은 QT에서 얻는 하루의 메시지조차 제 주장을 내려 놓지 못할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밑에 모든 걸 내려놓고 하나님의 멍에를 맬때  참 자유과 안식을 누린다고 하시는데... 저는 여전히 저의 self-centeredness에 대한 진한 향수를 잊지 못하나 봅니다.

오늘 하루는 좀 더 제 자신을 비우고 만나는 이들과 나누는 대화속에서, 또 행하는 일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여과없이 귀 기울이는 하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그게 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달라스 교수님이 던져준 저 화두가 레노바레 컨퍼런스가 끝난지 몇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제 마음속에 크게 숙제처럼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리더십 트랙 3번째 이야기를 조만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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