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흥미로운 글 하나를 발견했다.

노동자연대에서 작성한 글로 '국정원과 박근혜 정부의 매카시즘' 제하의 글인데 내가 흥미를 느낀 부분은 '역사 속에서 자유주의자들의 배신'을 서술한 부분이다. 그 '자유주의자들의 배신의 역사 중' 상당 부분이 생소한 것이어서 열독을 하다가 내 특유의 '브레이크 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언론이건 연구보고서건 통계건 '뻥카'가 설치는 세상.... 아니 '뻥카의 역사'를 착실히 완성해가는 대한민국이기에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희한한 병에 걸린지 오래라 '브레이크 회로'가 작동하는 것은 내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가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면서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이 글을 쓰게된 동기가 되는 글 노동자 연대의 '국정원과 박근혜 정부의 매카시즘'에서 내 브레이크 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한 부분은 바로 이 글 제목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사실, 일찍이 마르크스는 1843년 <라인 신문>에 대한 프러시아 당국의 검열에 대해 친구인 자유주의자 아르놀트 루게가 보인 비굴한 굴종에 환멸을 느껴 항의의 뜻으로 편집자를 사임했다.
출처는 상기 '국정원과 박근혜 정부의 매카시즘' 이하 별도의 출처가 명기되지 않은 인용문은 동 글이 출처


상기 글 중 마르크스가 편집자를 사임한 것이 결별이라면 그 결별은 '팩트'이다.

이 해(1843년-인용자 주)에 맑스는 예니와 함께 파리로 갔다. 거기서 그는 아르놀트 루게와 함께 ‘독불연감’을 발간한다. 그러나 잡지에 대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독불연감은 1집을 끝으로 단명하고 만다. 루게와 맑스의 정치적 입장 차이 때문이었다. 루게는 노동자 계급에 동조하지도 않았고, 맑스의 공산주의적 입장에 동조하지 않았다.
(전문은 여기를 클릭)


상기 두 인용문에서 사실은 무엇이며 진실은 무엇일까?

두 인용문에서 읽을 수 있는 '사항들'은 

첫번째, 맑스와 루게가 사상적으로 알력이 있었다는 것

두번째, 그런 루게에게 환멸을 느낀 맑스가 '라인 신문'의 편집장을 사임했다는 것

세번째, 파리로 망명간 맑스가 루게와 함께 '독불연감'을 발간했다

네번째, 맑스와 루게의 제 2차 사상적 알력을 보였다는 점


상기 거론된 사항들 중에 맑스가 라인 신문의 편집장을 사임한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기술이다.

박사학위 과정을 마친 후 고향으로 돌아온 마르크스는 청년좌파들과 반체제적 언론인 라인신문을 창간하고 편집장을 맡아 언론활동에 투신했다. 이 시기에 사고의 전환점, 특히 철학에서 변화를 맞이한다. 당시 독일 철학은 대단히 관념적이며 추상적이었는데, 철학적 이슈에서 사회경제적, 좀 더 나아가자면 '정치경제적인' 이슈로 방향을 전환한다. 라인 지방 농부들을 취재하던 도중 경제와 관련된 주제의 기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1843년에 《라인신문》은 폐간되었는데, 당시 마르크스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프로이센에 '프로이센 정부에 의해 편집장직을 사임합니다.'라는 광고문구와 프로메테우스(마르크스)가 독수리(프로이센)에게 괴롭힘당하는 그림으로 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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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의 사실과 한가지의 '거짓'과 한가지의 '확인되지 않은 사항'이 조립된다.

한가지의 사실은 편집장을 사임한 것,


한가지의 거짓은 맑스가 편집장을 사임한 이유이다.

1843년에 《라인신문》은 폐간되었는데, 당시 마르크스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프로이센에 '프로이센 정부에 의해 편집장직을 사임합니다.'라는 광고문구와 프로메테우스(마르크스)가 독수리(프로이센)에게 괴롭힘당하는 그림으로 저항

이 글은 마치 라인신문이 폐간되는 것에 항의한 맑스가 편집장을 사임한 것처럼 읽혀진다. 그러나 '당시'라는 표현은 폐간되기 전의 '시점'을 의미하기 때문에 '편집장을 사임한 것'의 이유이며 또한 그 광고문구가 라인신문에 실렸다는 가정 하에서라면 맑스의 편집장 사임 후에도 라인신문은 일정 기간 발간이 되었다는 것이며 반대로 폐간호에 저 광고를 실었을 수도 있다.


아마... 진실은 그 광고가 폐간호에 실렸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더구나 마르크스는 1943년 자신이 발행하던 <라인신문>이 프로이센 정부에 의해 강제로 폐간되자 신문에 자신을 고문 받는 프로메테우스로 표현한 그림을 싣고 저항한 바 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프랑켄슈타인>의 부제가 바로 '현대의 프로메테우스(The Modern Prometheus)'이다. 비록 프로메테우스라는 신화 속 인물을 바라보는 메리 셸리와 마르크스의 시선은 반대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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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든 편집장을 사임한 '알려진 동기'는 언론탄압 때문이었기 때문에 루게와의 알력으로 인한 환멸... 때문에 편집장을 사임했다는 것은 거짓이다.


마지막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항은 (우리나라 일제강점기에 친일파들이 보였던 속성과 마찬가지로) 그 폐간 과정에서 루게의 '굴종'이 실제 있었느냐 하는 부분이다. 이 확인되지 않은 사항은 의문들을 일으키기게 충분하다. 그 것은 바로 파리로 망명간 맑스가 루게와 함께 '독불연감'을 창간했다는 것이다. '굴종을 보인 루게에게 환멸을 느낀 맑스'가? 과연 그 것이 가능할까? 경제적 이익 문제 때문에 알력이 생겼다면 모르겠지만 사상적으로 알력을 넘어 환멸까지 느낀 상대와 함께?


그 논점 중 하나는 다른 사실에서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법규범의 한계 내에서 점진적인 변혁을 추진하는 실천적 자유주의자들을 가까이했던 마르크스는 〈라인 신문〉의 발행부수를 3배로 늘리고 프로이센의 주요일간지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논조를 문제삼은 정부당국은 신문을 정간시켰고, 마르크스는 〈독일-프랑스 연보 Deutsch-französische Jahrbücher〉를 발간하자는 자유 헤겔파 아르놀트 루게의 제의를 받아들인 뒤 파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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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공산당 선언'을 출간한 맑스가 '나는 맑스주의자가 아니다'라는 발언에서 보듯 그가 대단한 사상가이면서도 '주의주의'를 경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따라서 라인신문을 두고 루게와의 알력은 훗날 결별하게 된 이유에 대한 '불씨'를 제공하였을 망정 맑스에게는 결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약술하자면, 칼 맑스에 대한 중대한 모독으로 해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도는 마치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기독교 교리를 설파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처연히 신성모독을 자행하는 행위와 흡사하다. 즉, 내가 인용한 노동자 연대의 글은 '맑시즘 근본주의'에 함몰되어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팩트'를 조립하는 과정에서 칼 맑스를 모독하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정말 지겨운 '주의주의자들' 같으니라고....


어떻게 사상적으로 환멸을 느낀 상대에게 설사 당시 맑스가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지언정 상대방의 제안을 받아 망명을 하고 또한 망명지에서 잡지를 출간할 수 있었을까? 설사, 그 것이 사실이라도 내가 언급한 '루게와의 알력은 훗날 결별하게 된 이유에 대한 '불씨'를 제공하였을 망정 맑스에게는 결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쓰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분명히, 사실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노동자의 연대'는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맑스를 모독하는 행위를 자행했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자유주의자'는 언제든지 보수주의자들에게 투항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하여는 동의한다.


어디, 한국의 자유주의자들 중에 제대로 된 자유주의자들이 있던가?


졸지에 진중권의 시다바리로 오명을 쓴 몸이지만 내가 '진중권은 좌파가 아니라 자유주의자이다'라는 주장에 쏟아졌던 마타들.... 그리고 복거일과 공병호 등 자유주의자들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창피한 파쇼들이 득실득실한 현실이 암담할 뿐이다. 뭐, 굳이 박근혜 정권만 탓할 필요 있을까? 어디 하나 제대로 작동하는 정치적 집단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 현실.


그 중대한 책임은 '언제든지 보수주의자-사실, 한국의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창피하지만-에게 투항할 준비가 되어 있는' '강력한 반공주의와 결탁하여 출발부터 '배냇O신'으로 출발한 사상작 변태자들인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에게 있다. 그들이 완충 역할을 하기는 커녕 오히려 편가르고 편들기에 앞장 서고 있는게 현실이니까.


그리고 감히 첨언하자면, 그 현실의 끝에 호남차별이라는 암담한 그러나 이제는 만성질환 쯤으로 치부되어 버린 우리들의 치부가 버려져 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