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복지를 다르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복지는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서 마련된 돈을 보편적/선별적으로 분배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이에 대응해서 사용되는 공정이라는 개념은 '자원의 재분배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복지의 전 단계의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공정은 복지 이전의 더 기초적인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이죠.

'공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재원조달'에 관하여 살펴보면, 공정이란 자산경제와 생산경제에 부과되는 세금의 역진성을 조정함으로서 '조세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그 핵심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즉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경제 규모는 7500조 원, GDP로 대표되는 생산경제 규모는 1064조 원으로, 자산경제 규모가 생산경제보다 7배 크지만, 부과되는 세금은 생산경제 쪽이 5배 이상 많은 모순된 조세시스템을 개선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하고, 이는 복지의 선결문제라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의 원인은 신자유주의, 낮은 복지수준 등에 있다기 보다는 '공정하지 않은' 사회 시스템, 재분배 시스템이라는 주장이 예전부터 많이 제기되었고, 이 설명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공정'과 '복지'의 논의가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재분배 시스템의 문제, 조세정의의 문제...다 맞는 말이고, 이걸 개선한 후, 그 다음에 새로운 세목을 신설한다거나, 증세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순서 맞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현재의 불공정한 시스템하에서 이익을 보고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공정성 강화나 복지강화나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세목을 신설하거나, 누진비율을 높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증세를 하는 것이나, 불공정한 시스템을 교정해서 공정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나, 자기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돈이 많아지는 것은 같습니다. 돈이 나가는 이유가 세목신설, 누진강화인지, 아니면 불공정 시스템 정비의 효과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즉 '복지'든 '공정'이든간에 무엇이 되었든 현재 '불합리하게'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손해보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공정이냐 복지냐의 논의는 큰 의미를 가지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진짜 중요한 것은, 일단 걷어놓은 재원을 어떻게 '공정'하게 재분배할 것인가, 그 재분배를 통한 확실하고 직접적인 효과를 서민층이 느끼게할만한 정책은 무엇인가, 이런 것을 두고 논의하고, 이런 것에 대한 아젠다를 제시하는 것인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