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전근대 사회일수록 승자 독식의 경향이 강합니다. 서구 선진사회에서 루저, 즉 사회적 패배자가 감내해야 할것은 기껏해야 열패감인 반면 전근대 사회의 사회적 패배는 대를 이어서 가난과 질병, 심지어는 죽음으로 나타나죠. 사회가 발달할수록 승자와 패자간의 실질적 격차는 줄어듭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전근대성을 많이 벗지 못했다고 봅니다. 사회 곳곳에서 조선시대에나 보암직할만 승자 독식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죠. 조선시대와의 차이점이라면 불평등을 조제하는 시스템이 한층 복잡하고 교묘해졌다는 겁니다.

우선, 근본적인 신분 상승의 기회가 차단되어 있는건 아닙니다. 표면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상승의 문호가 개방되어 있죠. 이런 사회적 이동성이 체제 정당화의 근거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신분간의 격차가 너무 심하고, 신분 이동 과정에서 너무 많은 비용과 부조리가 개입한다는 겁니다.

전근대 사회의 신분 이동은 대개 사회적으로 무가치한, 상호 괴멸적인 경쟁이나 투쟁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런 투쟁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아니죠. 제가 경쟁 좋아하는 한국 우파들을 경멸하는 이유도 이때문입니다. 공동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교환에서의 "생산 경쟁"과 너죽고 나죽는 식의 홉스적 투쟁은 다릅니다.

홉스적 투쟁의 결과 나타나는 신분 체제는 폭력과 굴종, 속임수로 굴러가게 되며, 그 이동성은 매우 낮습니다.  반면 생산 경쟁이 빚는 차이는 자발적인 교환에 의해 추동되며 상대적으로 유동적이죠. 경쟁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 할때의 경쟁은 후자를 의미합니다. 한국 우파들이 칭송해 마지 않는 경쟁은 대부분 전자인 경우가 많죠. 입시 지옥이 대표적입니다. 한국 바깥으로 나가면 아무 의미도 없는 "더 높은 대학 서열"이라는 위치재를 얻기 위한 피터지는 경쟁은 국가 발전의 걸림돌일 뿐이죠.

더 높은 대학 서열, "양반"이라는 지위... 모두다 한번의 파괴적 경쟁을 통해 얻고 나면 죽을때까지, 혹은 대를 이어서 누릴수 있는 일종의 지대입니다. 한국의 불평등 시스템의 본질은 무가치하고 자폭적인 경쟁 과정을 통해 구축되는 지대/특권 체계입니다. 조선시대와의 차이점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원칙적으로는 신분 상승의 기회가 열려있다는 거겠죠. 하지만 그게 좋은걸까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입시지옥, 대학때까지는 스펙 지옥에 살다가, 사회에 나오면 무자비한 완전 경쟁 시장(자영업) 혹은 비생산적인 인간관계나 정치의 세계에 노출(조직생활)되는 일련의 과정은, 비생산적인 홉스적 경쟁이 사회의 여러 장면에서 형태를 달리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좋은 물건 혹은 재화를 생산한다'는, 상호 이익 증진의 교환적 경쟁이 발생하는 영역보다는 무가치한 지대 경쟁이 발생하는 영역이 많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지대 경쟁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게 한국인들의 정치적 성감대 혹은 역린이라고 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국사회에서 중요한것은 좋은 물건이나 재화의 생산자가 되는게 아니라, 지대를 확보하는 것이라는걸 몸으로 체감하고 있죠. 지대를 확보하지 못한 한국인은 무자비한 완전 경쟁 시장에 노출되어 노예 혹은 부랑자처럼 살수 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복지 아젠다는 이렇게 극단화된 투쟁 시스템을 안정화 시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권 시스템 아래서 불안에 떠는 한국인들에게, 그런 말도 안되는 시스템을 이제 끝장내겠다는 선언을 해야죠. 아니 선언은 못하더래도 고치겠다는 다짐이라도 해야 합니다.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내장된 근본적 불안을 건드리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