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이차대전 당시 전황이 기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일본군의 패전 사례 여섯 개를 분석, 일본군이 패배한 이유를 일본군의 조직문화에서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의(1984년 당시) 일본 상황을 참고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다. 여섯 명의 공동 저자 가운데 군사 전문가는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은 밀리터리 매니아적인 관점이 아니라, 황당한 패배를 자초한 일본군의 조직문화를 반성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본이 미국에게 진 이유는 명백하다. 초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국력의 차이가 현저했던 일본이 미국을 이긴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자들의 관심도 '왜 패배하였는가'라기 보다는 '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쟁을 일으켰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이 책에 소개된 여섯 개의 전투(노몬한 사건, 미드웨이 작전, 과달카날 작전, 임팔 작전, 레이테 해전, 오키나와 전투) 사례를 읽다보면,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다라는 말이 실감나며, 그런 무능한 지휘관들 덕에 온갖 고초를 겪다 죽어간 일본군 사병들이 측은하게 여겨질 지경이다.

이 책에서 중요한 부분은 3, 4장 실패의 본질과 실패의 교훈이다. 그런데 이 대목을 읽다보면 이것이 일본군의 이야기인지 한국군의 이야기인지, 일본 사회 보고 교훈을 얻으라고 쓴 글인지 한국 사회 보고 교훈을 얻으라고 쓴 글인지가 불분명할 정도로 우리의 현실과 똑같다. 일제의 식민지 경험을 겪으며 일본 조직 문화에 익숙한 친일파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일본군 장교가 대통령이 되어 18년을 나라를 이끌었던 탓에 일본군의 낙후된 조직문화가 그대로 우리 한국에 직수입된 탓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직장이나 조직에서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이다.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유능하고 실력 있는 사람은 아웃사이더로 내몰리고 감당할 수 없는 뻥 잘 치는 사람들이 요직을 차지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았다. 나이가 더 적었을 때는 그런 문화를 견디기 힘들어서 사표 한 장 던지고 뛰쳐나가기를 반복했지만 지금은 그냥 정착해서 살고 있다. 지금의 직장이 그런 문화가 없는 탓도 아니고 내가 그런 문화에 익숙해진 탓도 아니다. 어차피 어딜 가나 똑같다면 그냥 표 안 나게 그런 문화에서 벗어나 내 할일만 하는 방식을 터득한 탓이다.

저자들이 꼽는 일본군 조직문화의 문제점은 여러가지이지만 요약하자면 우선 전략적으로는 큰 그림을 그릴 줄 모르고, 눈 앞의 것만을 염두에 둔다. 작전이 실패할 가능성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누군가가 지적하면 오히려 겁쟁이로 치부해버리는 탓에 강경파만 득실거린다. 그러다보니 상황이 변해도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의 실패를 답습한다.

이런 전략상의 문제점이 발생하는 이유는 일본군 특유의 조직문화 때문이다. 상부는 현장 지휘관에게 명백한 지시를 내리지 않고, 현장도 상부에 명확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명확한 의사소통이 없이 서로 눈치만 보다 보니 분위기에 휩쓸려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이런 조직문화가 발생하게 된 계기는 조직의 구조가 특정 인맥에 편중되어 바깥과 정보공유를 하지 않는 폐쇄된 엘리트 그룹이 형성된 탓이다. 그리고 서로 인맥으로 얽히다 보니 신상필벌이 명확하지 못하고 작전에 실패한 장교에게 '복수의 기회'를 주겠다며 다시 지휘권을 넘기는 삼국지 시대에나 통할 법한 코메디가 도처에서 반복된다.

노몬한 사건(관동군과 소련군이 충돌한 사건, 상대는 훗날 스탈린그라드 방어전을 성공시켜 이름을 떨친 명장 주코프였다.) 당시 관동군 최고의 정예부대는 7사단이었다. 그러나 사령부는 진격작전을 펼칠 때 소련군의 화력이 오히려 우세했음에도 불구하고 7사단 대신 23사단을 주력으로 삼는다. 참고로 23사단은 노몬한 사건 1년 전에 신설된 부대로 병력 대부분이 1~2년 차의 초년병들로 구성된 부대였고 화력도 불충분한 사단이었다. 정예부대 대신 이런 허접한 부대를 주력으로 삼은 이유는 우에다 관동군 사령관이 '해당 지역의 담당자(23사단장)를 놔두고 다른 사단장에게 사건 처리를 맡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며, 만일 내가 담당 지역 사령관이었다면 아마 할복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눈물까지 흘리면서 주력을 7사단에서 23사단으로 교체하라는 지시를 내린 탓이다.

전쟁의 승패보다 장군의 체면을 우선시하는 이런 사례는 계속해서 반복한다.
 
미드웨이 전투에서 패배한 나구모 사령관과 직속 부하였던 구사카 참모장은 처벌은 커녕 오히려 '복수하라'는 의미에서 차기 작전 책임자로 발탁되었다.

1944년 3월 31일 후쿠토메 시게루 참모장이 고가 미네이치 연합함대 사령관을 수행, 해군 2호기에 탑승해 다바오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비행기가 조난을 당하게 되어 소지하고 있는 최고의 기밀 문서가 끝내 미군 손에 넘어갔다.... 결국 기밀 문서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것으로 처리되었고, 그 이후 작전 계획도 변경하지 않았다. 게다가 당사자였던 후쿠도메 중장은 징계는커녕 제2항공함대 사령관으로 영전하였다.

군 분위기가 이렇게 인정과 체면으로 얽히다 보니 계속해서 코메디의 연속이다. 작전은 성공 가능성 여부를 따지기 보다는 입안한 장군의 단호한 결의 정도에 의해 채택된다. 임팔 작전은 영국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평균 강우량 8~9000밀리미터에 달하는 버마의 열대숲에 군대를 몰아넣은 인류 전쟁사에 길이 남을 무대뽀 작전이었다. '필승의 신념'으로 이기겠다는 무타구치 렌야 중장의 입안에 따라 이런 말도 안 되는 작전이 시행되었고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일본군은 적과 싸우기도 전에 굶주림과 싸워야 했다. 이 작전의 무모함을 완곡하게 암시했던 참모 하나는 도조 히데키에게 '허약한 생각'이라며 질책을 당하기도 했다. 작전이 꼬이자 상부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막상 방면군 사령관은 철수 명령을 내리기 보다는 '거기까지 결정해 버리면 무타구치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또 대군을 통수하는 사람으로서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라며 직접 개입을 꺼려했다. 게다가 무타구치 역시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체면 때문에 퇴각 명령을 내리지 못했고, 작전 중지가 불가피한 상황에 그를 찾아온 가와베 방면군 사령관과 만난 자리에서 두 사람 모두 서로 작전중지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무타구치는 나중에 '내 안색을 보고 눈치채주길 바랐다'고 말한 바 있으나, 가와베 역시 무타구치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중지 명령을 내리기 힘들었다....6월말 무타구치는 마침내 작전 중지를 결정하고, 그 뜻을 방면군에 올렸다. 그러나 방면군은 '이런 소극적인 의견을 접할 줄은 몰랐다'면서 오히려 제15군에 계속 공격하라고 명령한다. 가와베 방면군 사령관은 무타구치가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공격명령을 내려 그의 기분을 맞추어 주려고 했던 것이다....7월 2일 남방군은 마침내 임팔 작전의 중지를 방면군에게 명령하게 된다. 가와베에 따르면 작전 중지를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2개월이 지난 후였다고 한다.

이런 사례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저자들은 명확한 목표를 세운 뒤 조직원들과 목표를 공유하고, 인정보다는 효율성을 따지고 결과에 엄격한 미군이 일본군을 이긴 것은 당연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말미에는 제대 후 실업자가 된 일본군 장교들이 기업으로 들어가 일본군 문화를 답습한 기업 문화를 세운 점을 주목하며, 만약 이차대전 말미의 일본군 문화가 현재(1984년도)의 일본 기업문화로 이어졌다면 평화 시에는 힘을 발휘할지 몰라도 위기상황이 닥치면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그 예언은 적중했다. 90년대 이후 일본은 장기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시계바늘을 정확히 십 년 전으로 돌려놓은 이명박 정부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필승의 신념 하나만으로 가미가제를 연상케하는 도시락 폭탄 던지기에 몰두하던 강만수의 행동이 경제 문외한에게조차 명백히 삽질의 연속으로 비쳐지던 때에도 이명박은 강만수를 감싸안았다. 성과 보다 장수의 체면에 더 집착했던 일본군의 행태 그대로이다. 그밖에 명확한 목표 없이 의미없는 수사의 나열과 정신력 중시 등등, 책을 읽는 내내 한국사회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이명박과 한나라당에게만 국한되는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심지어 운동조직 역시 같은 논리로 움직인다. 얼마전 민주노총 성폭력 은폐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오랜 활동가의 잘못을 덮어주려는 체면 중시에 성폭력에 대한 무지가 겹친 최악의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과 싸우는 사람들에게마저 남아 있는 일본군 조직 문화의 잔재를 느끼며 일본이 우리에게 끼친 해악을 극복하는 작업이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걸릴 대사업인지 아득하게 느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