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대단하고 특이한 정치인입니다.

참여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보수정당의 리더로서 상당한 지지율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는 점, 그녀의 지지율이 전지역, 전연령층에서 비교적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는 점, 이명박과의 대선후보경선에서 패배했음에도 몰락하지 않았다는 점, 보수정치세력의 주류가 아님에도 '박근혜계'라는 계파의 수장으로서 그녀를 따르는 국회의원이 60명이 넘는다는 점, 그녀의 이름을 빌린, 하지만 정작 박근혜는 직접 참여하지 않은 유사정당 친박연대까지 탄생시키고 그 유사정당이 상당수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점, 차기대선레이스가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이곳저곳에서 그녀에게 줄을 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점 등 말 그대로 참 대단합니다.

그리고 박근혜는 특이합니다. 집권여당의 권력과 맞서는 '여당 속 야당'의 역할을 박근혜와 그 정치세력이 맡고 있습니다. 역대 정권을 돌아봐도 박근혜같은 케이스는 없습니다. 정동영과 친노세력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박근혜와 이명박정부와는 그 성질을 달리하죠. 정동영은 통일부장관으로 입각까지 한, 과장해서 정권의 공동운영자였으니까요. 김염상정부때의 이회창은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의 레임덕으로 인하여 미래권력 이회창에게 힘이 쏠린 케이스였고, 사실 이회창도 김영삼이 총리에 임명한 것을 기회삼아 확 뜬 케이스였죠. 노태우정부때의 김영삼은 5,6공세력의 생명연장의 꿈과 김영삼의 야망의 '연합'의 경우였습니다. 권력과 맞선 라이벌은 모두 도태됐지만, 박근혜는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경선에서 패배했고 그 경선의 승자인 이명박의 정부와 각을 세우며 독자적인 계파를 형성했지만 전혀 몰락하지 않았고, 이명박정부 들어 실시된 모든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지지율 1위를 기록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박근혜에 대해 진보세력은 지금까지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지난 대선의 경우에도 박근혜가 여자라는 점, 영남색과 보수색이 너무 강하다는 점, 아버지가 박정희라는 점, 컨텐츠가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며 박근혜의 인기는 일시적일 것이고, 설사 일시적이지 않더라도 그것은 그저 한나라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다른 곳으로 갈 곳이 없어서 머물고 있는 것일뿐, 다른 대단한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왔습니다. 실제로 컨텐츠(경제, 실용주의)와 수도권 표심을 잡은 이명박이 경선도 이기고 대통령이 되었죠.

그런데 이명박정부가 들어섰는데도 박근혜는 몰락하지 않았습니다. 친이계가 작정하고 친박정치인들을 공천학살했지만 오히려 그 덕에 박근혜의 보수세력, 영남에 대한 영향력을 확인함으로써 박근혜의 위상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세종시, 언론법 등 여야가 극심하게 대치한 사안에서도 박근혜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보여줬죠. 진보세력은 하지만 이때까지도 박근혜의 이런한 영향력에 대해 큰 주목을 하기보다는 '민주당이 야당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박근혜가 야당역할을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렸죠. 2010년이 되어도, 2011년이 되어도 박근혜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계속하는데도 야권 정치인의 지지율은 지지부진하니까 <박근혜현상>같은 책도 나오는 등, 갑자기 '박근혜대세론'이 진보세력을 휩쓸고 있습니다. 각종 시사잡지도 박근혜를 엄청나게 분석하고, 경계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박근혜는 복지담론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컨텐츠 빈약함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고 보수성을 완화하고, 전지역,전연령층에서 고른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명박정부의 꼴통짓 덕택에 박근혜의 영남색과 보수색도 옅어보이는 효과까지 덤으로 얻고 있죠. 지지율은 압도적이고요. 당연히 진보세력이 주목할만 합니다.



그런데 저는 약간 의아합니다. 사실, 박근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거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지율도 그렇고 정책도 그렇습니다. 박근혜가 '복지'를 가져갔다? 제가 보기에 '박근혜의 복지' 너도나도 복지를 말하기 때문에 박근혜도 말하는 것일뿐, 거기에 무슨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생애주기별 복지, 자립형 복지 어쩌고 하는데, 박근혜의 복지는 '문제는 경제'였던 지난 대선 때의 '줄푸세'와 그 궤를 같이합니다. 즉 지난 대선의 담론은 명백하게 이명박이 주도했고, 이명박이 주도한 그 흐름에 박근혜도 동참하면서 '줄푸세'를 내놓은 것이었을뿐 박근혜의 '줄푸세'가 대선의 담론을 주도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청계천과 버스노선개선'이라는 컨텐츠, 'CEO출신, 샐러리맨의 신화, 성공한 서울시장'으로 표현되는 이명박의 이력, '개발시대의 주역, 일꾼, 말보다는 실천'의 이미지, '서울시장, 이념(말)보다는 실천'으로 인한 중도적, 진보적 포지셔닝, 여기에 이러한 이명박과 완전히 반대된다고 여겨진 노무현정부에 대한 반감, 이것들이 주도한 선거가 바로 지난 대선입니다.

솔직히 2007년 당시에도 '민심은 이명박, 당심은 박근혜'라면서 말이 많았지만, 청계천이 완공되고 그곳에서 이명박이 청계천의 복원을 선포함으로서 대세는 이명박이었죠. 대세는 9시 뉴스 첫 장면에서 이명박이 청계천 복원을 알리는 것이 방송을 탈 때 결정된거죠.(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 청계천 복원을 축하하러 온 노무현의 모습과 대비되는 이명박의 모습을...)


지난 대선과 요즘을 비교해보면, 박근혜는 지지율만 1위일뿐 그녀가 무슨 담론을 주도하거나 언론,대중의 관심을 끄는 무언가를 하고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지율도 1위이고 이명박정부의 가장 강한 반대파의 수장인데도 언론에 노출되지 않음으로써 "신비주의 박근혜"라는 식의 관심을 역설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정도죠. 세종시문제, 미디어법사태때 박근혜의 발언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긴 했지만, 사실 이것은 어떤 사안에 대한 유력 정치인의 개별적인 발언이지, 어떤 담론이나 '시대정신'같은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물론 '원칙주의자'라는 박근혜의 이미지에는 도움이 되지만 말입니다.

미국발 금융위기, 양극화, 청년실업, 고용불안, 출산율감소문제,사회 내의 계층이동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 등 이명박정부와 보수세력이 주도한 '경제'담론(신자유주의든 시장만능주의든 트리클다운이펙트든 뭐든간에)도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었다는 생각때문에 그 반대편에 있는 '복지'가 주목받는 것이지, 박근혜가 뭘 주도하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복지가 이렇게 주목받게 된 계기는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무상급식'을 민주당이 지방선거때 가져다 쓰면서 대세가 되었지, 박근혜가 뭘 한 것은 아니죠. 거기다 민주당이 무상의료, 무상보육, 무상급식의 3종 무상세트를 내놓고, 당 내에서 증세논란 등이 일어나면서 '복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지, 박근혜가 복지를 말하네 우와...이런건 올바른 시각이 아닙니다.

거기다 지난 대선때에는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10% 초중반대의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도 엉망이었으며,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조크가 조크가 아닌 상황, 즉 모든 책임을 져야하는 입장에 민주당이 있었고, 당시 야당 정치인이던 박근혜, 이명박은 그런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껏 립서비스 날리고 장밋빛미래와 엉망인 현실만 이야기하며 노무현만 공격하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지금은 상당히 양호하죠. 민주당의 지지율은 안정적인 25%대를 기록중이고, 각종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대선주자의 지지율은 낮지만, 그건 지난 대선때나 지금이나 별로 차이가 없죠. 거기다 민주당은 야당이기 때문에, 예전 한나라당과 입장이 되어서 마음껏 이명박을 욕하고 미래를 이야기하고 현실을 욕할 수 있습니다. 지난 대선과 비교하면 정말 민주당은 좋은 상황인거죠. 그에 비하면 박근혜는, '여당 속 야당'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그녀도 여당 소속 정치인입니다. 이명박정권의 실정의 책임을 온전히 그녀가 뒤집어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 이명박정권 망가지는걸 수수방관하냐, 너의 정치적 안위만 생각하는 기회주의자 아니냐"라는 비판이 나올수밖에 없습니다. 여기다대고 공천학살이니 뭐니 맞대응해봤자 모양새만 우스워지죠. 그렇다고 박근혜가 이명박정권과 '적극적'으로 차별화하기도 힘듭니다. 왜냐면 그러기에는 박근혜는 한나라당 소속이고, 지지율이 너무 높죠. 차별화한다고 나서면 이명박지지층과 한바탕 전투를 벌여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박근혜의 지지율이 너무 높아서 위험부담이 크죠. 너무 잃을 것이 많다는겁니다. 따라서 박근혜는 예전에도 그래왔듯이 여전히 신비주의전략을 유지하면서, 가끔씩 나타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는 것이죠.


이처럼 현재의 상황은, 박근혜에게는 지난 대선, 이명박정부 초기때와 비교하면 달라진 것도 별로 없고, 오히려 민주당 등 야당들에게 그나마 예전보다는 좋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보수세력도 아닌 진보세력에서 박근혜대세론, 박근혜현상 등등 박근혜가지고 '갑자기' 말이 이리 많아졌을까요? 별것 아니던 박근혜가 갑자기 왜 대세가 되었고, 현상이 되었을까요?


진보세력이 말하는 박근혜현상, 박근혜대세론은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제가 위에 썼던, 그녀의 지지율, 복지를 통한 중도로의 이동, 이명박정부와의 관계 등이 다입니다. 이런저런 살을 붙이지만, 결국 핵심은 이 3가지고, 그중에서도 '지지율'을 통해서 현상, 대세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박근혜의 지지율...참 높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웬 호들갑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건 어쩔수가 없습니다. 지난 대선 때에는 이명박, 박근혜의 지지율의 합이 60%를 넘었고, 한나라당의 지지율도 60%가까이 나오던 시절이었는데도, 이런식의 호들갑은 없었습니다.

진보세력이 말하는 '박근혜현상'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아니, 진보세력은 왜 박근혜를 말하고 있는걸까요. 왜 갑자기 박근혜에 대한 시각이 이렇게 180도 달라졌을까요. 정작 박근혜에 대해 고민했어야할 때에는 안그러다가 갑자기 뭐하자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