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www.taeri.org 경제이슈에 있는 글입니다. 회원가입한 사람만 읽을 수 있는 글인데, 최용식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출처를 표기하는 조건으로 퍼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퍼가실 때도 반드시 출처를 표기하시기 바랍니다.>

 

작성날짜 : 2001-03-06 오전 11:12:36    조회수(789)   

 

* 참고사항 : 다음 글은 이한구 의원 홈페이지에 세번째로 올리기 위해 작성된 것입니다. 이번에도 삭제될 것이 뻔해서, 자료로 남기기 위해 여기에도 올립니다. 다른 글들과 중복된 부분이 많아서 이곳을 자주 찾는 분들은 다소 따분하게 느껴지시겠지만, 널리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 이한구 의원님, 귀하의 홈페이지에 올린 내 글을 두 번이나 사전 통보도 없이 계속 삭제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반론이 욕설이던가요, 험담이던가요? 경제원리와 경제진단에 입각한 반박은 아니던가요? 다른 사람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을 허용치 않는 사람이 어떻게 감히 비판할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실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문이 막히더군요. 왕성했던 내 비판의욕이 이미 꺾여버렸지만, 그래도 마음을 추스려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한 가지 문제에 대해서만 더 문제삼도록 하겠습니다. 공적자금이 그것입니다. 이 문제는 국가경제의 장래에 엄청난 파괴력을 끼칠 수도 있어서 그냥 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 평소 공적자금에 대한 이한구 의원의 비판을 접해오면서 나는 항상 두려운 마음이 눈앞을 가렸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 경제를 저주하고 죽이는 것이 이 사람의 임무가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터무니없는 주장을 앞세워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우리 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심리만 가중시키며, 그에 따라 지난 4/4분기처럼 경제를 추락시킴으로써 결국은 공적자금의 회수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경제를 파국으로 이끄는 것은 아닌지, 너무 걱정되었습니다.

◈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한구 의원의 줄기찬 비난 덕분에, 공적자금과 관련한 정부정책이 철저하게 실패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고도 뿌리깊게 퍼져 있습니다. 공적자금의 투입과 관리가 방만하게 이루어졌으며, 정책 자체가 부실했음을 물론이고 부당하고 탈법적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밑 빠진 독에 물 붙기 식", "공짜자금", "국민혈세로 조달한 자금",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빚", "우리 은행을 외국에 팔아먹기 위해 투입한 자금" 등의 인식마저 횡행하고 있습니다. 정부마저도 감사원 특감을 나서고 있는 형편이기도 합니다.

◈ 그런데 문제는 이같은 국민적 인식이 공적자금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오해에서 비롯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인식이 현재의 경제난국을 풀어나가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한구 식 경제정책이 시행되기라도 한다면 환란보다 훨씬 무서운 경제파국이 닥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의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아니 그런 사태를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공적자금의 본질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그 정책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필수적입니다. 만약 이런 것마저 명확하게 밝혀두지 않는다면 환란과 같은 재앙은 언제 다시 반복될지 알 수가 없고, 그 치유도 불가능해질 것이 뻔합니다.

◈ 이 글은 이런 견지에서 쓰여지고 있으며, 그 구성은 첫째, 공적자금이란 국민혈세이고 국가부채인가 둘째, 공적자금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셋째, 부실금융기관을 환란 초기에 일찍 청산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넷째, 12조원을 투입한 제일은행을 5천억원에 판 사연은 무엇인가 다섯째,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았을 경우는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등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한구 의원님은 조금 지루하더라도 끝까지 읽고 배워서, 다시는 국가경제를 망칠 수도 있는 발언을 함부로 하시지 않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1. 공적자금이란 국민혈세이고 국가부채인가

◈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공적자금이란 예금보험기금채권과 부실채권정리기금채권을 발행해서 조달한 자금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금보험기금채권은 예금보험공사가 발행하고, 부실채권정리기금채권은 자산관리공사가 발행합니다. 공적자금은 정부가 직접 조달한 자금이 아닌 것입니다. 국민 혈세와는 직접적으로 무관한 자금으로서, 정부가 채권상환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직은 이자만 정부가 부담하고 있으며, 그 이자마저 재정융자이므로 결국은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모두 갚아야 합니다.

◈ 그런데 공적자금이라는 용어에 "공적"이라는 접두어가 붙게 된 것은 정부의 지급보증을 바탕으로 위의 채권들이 발행되기 때문입니다. 헌법 제58조 "국채를 모집하거나 예산 외에 국가의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하려 할 때는 정부는 미리 국회의 의결을 얻어야 한다"라는 규정에 의거하여, 국회가 공적자금 조성을 동의해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정부가 보증을 섬으로써 장차 국민부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국회의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 이처럼 국민 혈세와는 직접적으로 무관한 자금임에도 불구하고 "혈세가 낭비되었다"는 주장이 이한구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일각은 물론이고, 일부 몰지각한 경제전문가와 언론인에 의해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공적자금이 국민 혈세로 조성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 한편 이번 2차 공적자금 40조원의 추가조성을 위한 국회 동의안 처리과정에서는,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분할동의안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이것도 공적자금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정확한가를 증명합니다. 공적자금 국회 동의안은 예산안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정부 예산안을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누어서 국회가 동의해주는 사례가 세계적으로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 심지어 예금보험공사가 자체적으로 차입한 자금까지 국회의 사전 동의를 한나라당이 요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보증을 서주고 국회가 동의를 해주는 것은,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의 신용만으로는 채권발행이 시장에서 소화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채권이 시장에서 소화될 수만 있다면 굳이 정부가 보증할 필요도 없고 국회의 동의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의 위와 같은 주장은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의 고유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정부가 보증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들도 공적자금에 대한 국민적 오해를 불러온 원인중 하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한구 의원님이 공적자금에 대해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가를 결정적으로 입증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런 잘못된 이해에 바탕을 둔 비판이 올바를 리도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입니다. 앞으로, 한나라당과 이한구 의원님의 주장들이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국가경제에는 또 얼마나 위해를 끼치고 있는가는 여기에서 차츰차츰 밝혀질 것입니다.

◈ 논의가 잠시 옆길로 샜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공적자금으로 조성된 자금은 자산관리공사와 예금보험공사가 쓰고 있는데, 이 점은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혹시 일방적 비판만 해대는 사람들은 진상을 모르고 있을지도 몰라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공적자금에 대해 터무니없는 비난을 쏟아 부었을 리 없다는 것이 내 판단인 것입니다.

◈ 우선, 자산관리공사는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을 매입하는데 공적자금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부실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매입해줌으로써, 건전한 금융기관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매입은 장부가액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한 할인율로 매입해주며, 그 편차는 매우 심하지만 평균적으로 30-40% 정도의 가격입니다. 그리고 그 자금은 매입한 부실채권을 매각해서 회수하는데, 지금까지 약 10% 정도의 이익을 남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산관리공사가 투입한 공적자금은 전액 회수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으며, 경기만 본격적으로 회복된다면, 이자부담을 떠 안더라도 큰 수익을 남길 수가 있습니다. 그냥 낭비되고 사라지는 자금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 공적자금을 쓰고 있는 다른 한 기관인 예금보험공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용도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금융기관이 부실화되어 예금을 지급할 수 없을 경우,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예금을 대신 지급하는데 쓰고 있으며, 회생이 가능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자기자본을 확충해줄 목적으로 출연 및 출자하는 데 쓰고 있습니다.

◈ 이중 예금대지급과 출연을 위해 투입한 공적자금은 모두 손실로 처리되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회수가 활발하게 진행중입니다. 다만 경영부실로 파산한 금융기관의 재산을 매각하거나 부실책임자로부터 환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투입한 공적자금 전액을 회수하기는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회수율도 금융기관의 종류에 따라서 천차만별입니다. 대표적으로 예금대지급의 경우 종금사는 회수율이 20% 내외, 금고 37%, 신협 48%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예금보험공사가 투입한 공적자금은 결국 금융기관에 출자한 주식의 매각에 의해서 회수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예금대지급과 출연금까지도 출자주식의 매각에 의해서 보전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공적자금의 전액회수 여부는 주식시장의 향후 여건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고 주식가격도 상승하면 전액 회수가 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이한구 의원님은 공적자금의 투입규모를 작위적으로 늘리고 손실규모마저 뻥튀겨서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민부담이라는 측면에서는 이것은 철저한 숫자놀음일 뿐입니다.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최종적으로 갚아야 할 자금의 규모는 어디까지나 1차로 조성했던 채권 64조원과 2차 조성중인 채권 40조원, 그리고 그에 따른 이자부담 뿐입니다. 그러므로 국민들이 최종적으로 부담할지도 모를 총 규모는 지금 확정할 수 없는 이자를 제외하면, 104조원이 전부인 것입니다.

◈ 또한 이한구 의원님은 공적부채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서 국가부채가 1,000조원이 넘는다고 부풀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올린 바 있는 그리고 이한구 의원 홈페이지에서 삭제되었던 <이한구 식 국가부채규모 산정에 관하여>라는 글에 의해서 그 논리적 허구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위의 내 글에서 미처 언급치 못했던 내용을 조금만 더 첨언하자면, 국가부채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통합재정수지가 정부의 당초 계획보다 6년이나 앞당겨져 흑자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1999년 [중기재정계획]에 따르면, 통합재정수지가 99년 GDP의 5.1%, 2천년 4.5%, 2천1년 3.7%, 2천2년 2.6%, 2천 5년 0.6% 등의 적자를 기록하고, 2천6년부터 비로소 0.1%의 흑자를 기록하는 것으로 목표를 삼았었습니다. 그 뒤 2천년에는 재정수지흑자 목표연도를 2천3년으로 수정했으나, 이것도 3년이나 앞당겨졌습니다. 정부는 위와 같이 재정관리를 엄격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한구 의원님은 국가부채로 인해 국가경제가 곧 망할 것처럼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부추겼습니다. 그래서 소비심리와 투자심리가 냉각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지난해 4/4분기에는 경기가 본격적으로 추락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한구 의원님과 일부 몰지각한 언론인 그리고 일부 경제전문가들이 우리 경제를 그처럼 그악스럽게 저주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래서 경기가 그처럼 추락하지만 않았더라면, 2차 공적자금 40조원의 추가투입은 불필요했을지도 모르고, 기 투입된 공적자금의 회수도 훨씬 더 빠르게 그리고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이런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한나라당이 공적자금의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신뢰성이 없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경제회복에 결코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없는 공적자금의 회수여부의 논쟁이나 반복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주식시장이 다시 호전될 수 있도록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2. 공적자금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 공적자금은 우리나라만 조성한 것이 아닙니다. 금융위기를 겪은 나라들은 대부분 공적자금을 조성하고 투입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등은 이미 80년대 초반에 GDP의 30-40%에 이르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바가 있으며,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외환위기를 겪었던 인도네시아는 GDP와 거의 맞먹는 규모로, 그리고 태국은 60%에 육박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였습니다.

◈ 금융선진국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89년부터 95년까지 4천3백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습니다. 일본마저 98년부터 2천년 5월까지 70조엔을 투입했으며, 금융산업의 완전한 정상화를 위해서는 앞으로 얼마나 더 조성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또한 핀란드와 스웨덴과 같은 유럽국가도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어김없이 공적자금을 투입했습니다.

◈ 사정이 이러하므로, 경제전문가라면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사연을 신중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경제전문가는 찾아보기가 어렵고, 어이없는 주장들만 난무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지어 "사적인 금융기관의 경영 잘못에 대해서 정부가 국민 혈세를 투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냐"거나, "은행도 망해야 한다", 또는 "청산하는 것이 국민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 이런 인식을 전파하는데 이한구 의원님과 같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앞장서고 있어서,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공적자금이 어떠한 역사적 연유를 가졌는지도 모르고 함부로 떠드는 전문가조차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적자금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그 역할은 물론 탄생의 역사적 배경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공적자금이란 금융시스템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투입되는 자금입니다. 금융시스템 위기가 발생하면 경제가 붕괴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금융시스템 위기란 한 마디로 말해서, 금융공황이 발생할 위험성을 의미합니다. 금융시스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것을 방치하면 곧바로 금융공황으로 발전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금융공황이 발생하면 경제가 붕괴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공적자금의 투입은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경제는 우선 살려 놓고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 실제로도 금융시시템 위기가 금융공황으로 발전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계대공황이고, 그 외에도 대부분의 금융공황이 금융시스템 위기를 출발점으로 하였습니다.

◈ 금융시스템 위기가 왜 금융공황을 불러오는가를 좀 더 살펴보자면, 그것은 Bank-Run 또는 Bank-Rush라고 불리는 현상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금자들이 은행으로 달려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보다 직설적으로는 "예금인출사태"를 말합니다.

◈ 어떤 특정 금융기관이 부실해졌다는 것이 예금자에게 알려졌을 때는 흔히 예금인출사태가 발생하고, 이것은 부실징후가 있는 다른 금융기관으로 곧바로 전염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은 멀쩡한 금융기관까지 예금인출사태로 인해 무너지게 되는 연쇄적인 파급효과를 갖고 있는 것이 예금인출사태이며, 이것이 금융공황으로 이르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 멀쩡한 금융기관까지 무너지는 이유는 물론 갑작스런 유동성 부족 때문입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은행이란 예금을 유치해서 그 예금을 바탕으로 장사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금인출사태가 발생하면, 재무구조가 아무리 튼튼한 은행일지라도 예금을 돌려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고, 결국은 망하고 마는 불상사가 나타납니다. 예금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이미 대출해주었거나 유가증권에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 재무구조가 튼튼하다면 예금을 얼마든지 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으나, 금융기관이 투자한 자산이 아무리 수익성이 높고 안정성이 높더라도, 그것을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전액 회수할 수는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 다만, 금융기관이 항상 그런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법률적으로 지급준비율 또는 지급준비금 제도가 있어서, 일반적인 경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예금자보호법이란 제도적 장치도 완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금인출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갈 때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특히 금융기관의 경영수지가 전반적으로 나빠지고 있을 때에는 더욱 위험합니다.

◈ 우리나라의 경우 97년에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에도 그런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제도인 "공적자금"을 조성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을 금융기관들에 투입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한나라당과 일부 몰지각한 경제전문가 및 언론입니다.

◈ 차제에, 금융공황이 발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확실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돈이 돌지 않아서, 아무리 많은 상품은 쌓여 있어도 살 사람이 없고, 상품이 팔리지 않으니 생산시설은 있어도 가동할 수가 없습니다. 생산시설이 놀고 있으므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도 고용할 수가 없습니다. 일을 할 수 없으니 소득도 없고, 소득이 없으니 상품이 팔리지 않습니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경제는 결딴나게 되는 것입니다.

3. 부실 금융기관을 미리 청산하지 못한 이유는

◈ 결국은 부도가 날 수 밖에 없었던 금융기관까지 공적자금을 투입했다는 국민적 비난의 목소리가 큽니다. 특히 이한구 의원님은 이 문제를 불독처럼 물고 늘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부실한 금융기관이라고 하더라도, 살릴 수 있으면 살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회생가치가 청산가치보다 작다고 하더라도, 살려야만 하는 특수한 경우가 있습니다. 외환위기 직후와 같은 때가 그렇습니다. 이제, 그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도 정확하게 밝혀서, 국민적 오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현실적으로, "회생시켰을 때의 가치"가 "청산했을 때의 가치"보다 더 적은 금융기관에도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공적자금을 투입한 금융기관을 사후에 정리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공적자금을 낭비했다고 이한구 의원님이 비난의 표적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경제원리를 전혀 모르거나 당시의 경제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소치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 금융기관의 부실은 결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부실이 수십년간 쌓여 왔었고, 그래서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부실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만약 부실금융기관을 모두 청산하려 했다면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초토화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 그리고 국가경제에서 금융산업이 전반적으로 괴멸되면, 마치 사람 몸에서 심장을 떼어내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됩니다. 입으로는 아무리 영양분이 많은 음식을 먹더라도, 그리고 소화기관이 아무리 좋더라도, 그 영양분을 전달해줄 피가 없으면 사람 몸은 움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 경제에 있어서 돈이란 우리 몸의 피와 같습니다. 돈이 있어야 생산도 될 수 있고 소비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재화를 생산하고 배분하고 소비하는 것이 모두 돈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만약 금융산업이 무너지면 돈이 돌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경제는 무너지게 됩니다. 생산도 안 되고 소비도 안 되는 공황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 금융기관이 없더라도, 돈은 도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졌다면, 이것은 이한구 의원님의 경제인식 수준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금융기관이 괴멸되면 한국은행이 찍어낸 천원짜리 만원짜리 등의 화폐야 돌겠지만, 수표나 어음 등은 돌 수가 없게 됩니다. 화폐의 역할을 하는 각종 통화가 제 역할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 경제에 유통되는 통화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화폐, 수표, 어음, CD, 예금증서 등등이 모두 일정한 정도는 통화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통화의 종류를 화폐발행액, 본원통화, 통화, 총통화, 총유동성 등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에 있어서 화폐발행액은 약 18조원 정도 유통되고 있지만, 본원통화로는 약 27조원, 통화 약 43조원, 총통화 약 400조원, 총유동성으로는 약 900조원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 따라서 금융기관이 무너지면 한국은행이 발행한 화폐가 총유동성이 했던 역할까지를 모두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화폐발행액 18조원으로는 900조원의 총유동성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부실금융기관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살리는 방안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환란이 발생했던 당시의 우리 경제의 실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공적자금을 투입했던 금융기관을 나중에 다시 정리함으로써 공적자금의 손실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당시의 상황이 그만큼 매우 급박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는 신용수렴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세계대공황 때처럼 경제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었던 상황입니다.

◈ 여기에서 신용수렴의 문제는 전문적인 식견이 없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경제원리이지만, 이한구 의원님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해명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적자금의 투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경제원리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환란을 격발시켰던 한보사태로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한보그룹의 부도사태가 터지면서 6조원의 부실채권을 금융기관에 안겨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융기관들은 대손충당금을 새로 쌓아야 했고, 지불준비율과 자기자본 비율도 높여야 했습니다. 그러자니 추가적인 대출과 투자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대출과 투자를 회수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여파로 경제 전반에 극심한 자금경색 현상이 초래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기업들은 금융기관의 추가대출은 물론이고 회사채 발행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발행한 회사채와 어음은 만기가 돌아오고 있었고 결제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삼미, 대농, 진로, 뉴코아, 해태 등등의 재벌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사태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결정적으로는 기아그룹마저 무너지면서 우리 경제가 환란의 와중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 이런 재벌기업들에 대한 금융기관의 채권이 모두 부실채권으로 전락했으며, 금융기관들의 경영압박은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다시 대손충당금을 더 쌓아야 했고, 더욱 떨어진 지불준비율과 자기자분비율을 높여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금융기관의 대출과 투자가 더욱 급감한 것은 물론이고, 자금회수까지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악순환이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 이런 악순환을 언제까지 진행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대로 놔두다가는 금융산업 전체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국가경제까지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막아낸 것이 공적자금의 투입이었습니다.

◈ 이상과 같은 설명만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한 금융기관을 추후에 정리한 것을 일반 국민들이 이해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경제원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이한구 의원님과 같은 전문가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자 합니다.

◈ 간단하게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당시에 만약 금융기관을 최대한 살리려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경제가 지금처럼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상당한 규모의 금융기관 하나가 정리되면 경제에는 엄청난 파장을 남깁니다.

◈ 예를 들어 금융기관 하나를 청산함으로써 10조원의 금융자산이 사라지게 되었더라면, 총유동성 약 350조원 정도가 사라지는 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당시의 본원통화에 대한 총유동성 통화승수가 약 35배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정도의 총유동성이 사라지는 압력이 실제로 작용했더라면, 우리 경제가 환란보다 훨씬 무서운 금융공황에 빠져들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한구 의원님으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이것이 경제원리입니다.

◈ 결론적으로 신용수렴이 한창 진행 중이던 환란 당시에는 금융기관을 최대한 살려야 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환란이 진행중이던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이 살려야 했지만, 환란을 어느 정도 극복한 다음에는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용수렴 운동의 작동이 속도를 낮추게 되었고, 이 때에는 금융기관을 정리하더라도 경제체가 그 충격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생가치가 청산가치보다 적은 금융기관은 이 때에야 비로소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4. 12조원을 투입한 제일은행을 5천억원에 판 사연

◈ 공적자금 투입의 대표적 실패사례로 제일은행의 헐값 매각이 손꼽이고 있습니다. 5천억원에 팔릴 제일은행에 15.8조원이나 투입했다고 비난하면서, 미리 청산했더라면 향후 투입될 풋백업션 2.3조원까지 합해서 18.1조원의 공적자금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주장되어지기도 합니다.

◈ 그러나 이것은 또 하나의 숫자놀음에 불과합니다. 우선 이미 회수한 자금이 6.4조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추후 투입될 자금까지 합해도 11.7조원이 투입될 뿐입니다. 이중에서 부실채권 매입분 6천억원은 전액 회수가 가능합니다. 풋벡옵션으로 매입하게 되는 7.4조원중 상당 부분도 회수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약 9조원 내외가 추가적으로 회수되어야 하는데, 주식시장만 회복되면 전액 회수가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현 제일은행장은 국회에서 주식가격이 3만5천원 정도까지만 오르면 전액 회수가 가능하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더 오른다면 물론 수익을 남기는 것이지요.

◈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경제원리와 금융시스템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만 있더라도 제일은행을 매각했다고 감히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제일은행 정도의 금융기관 하나가 무너지면 금융산업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자칫 신용수렴작용이 빠르게 진행되기라도 하면 금융공황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금융기관의 도산은 연쇄적인 파급효과를 갖기 때문입니다.

◈ 불과 5천억원에 팔릴 제일은행에 공적자금을 11.7조원이나 꼭 투입해야 하는 것도,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금융공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으므로 다른 선택수단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우리나라보다 금융산업이 훨씬 발전한 일본의 경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습니다. 일본이 장기신용은행을 미국계 투자조합에 매각한 사례가 그것입니다.

◈ 4.3조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할 일본 장기신용은행을 미국 투자조합에 불과 1,200억엔에 매각했습니다. 우리나라 제일은행이 24배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면 일본 장기신용은행은 36배의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매각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조건들도 대체적으로 일본 장기신용은행보다는 비교적 유리합니다.

◈ 총자산대비 인수금액은 제일은행이 1.4%였고, 일본 장기신용은행은 0.5%였습니다. 그만큼 유리합니다. 풋백옵션 기간의 경우 제일은행이 일반여신에 대하여 2년이고 워크아웃은 3년이지만, 일본 장기신용은행은 무조건 3년간 보장하는 조건입니다. 다만, 일본은 4년후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우선주 비율이 총지분의 67%로서 우리나라보다는 유리합니다. 주가상승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로서 이 점에 있어서는 우리나라가 불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헐값 매각이라는 당장의 비난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 금융산업이 비교적 발달해 있는 일본에서까지 장기신용은행을 외국에 넘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매각하지 않으면 청산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에는 금융시스템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금융공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외국에 매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 11.7조원이나 투입하는 제일은행을 불과 5천억원을 받고 굳이 외국에 팔아 넘길 필요가 있었느냐는 비판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은행들처럼 외국에 국부를 유출하지 않고 살릴 수는 없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외국에 매각하면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할 수가 있으며, 국내의 기존 금융기관에 자극을 줌으로써 금융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한층 향상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 사실, 금융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국가경제의 경쟁력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경쟁력 있는 산업을 창출하는 것도, 발전시키는 것도 경쟁력 있는 금융산업이기 때문입니다. 환란과 같은 경제재앙이 다시 발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경제의 경쟁력 향상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선진금융기법의 도입도 필수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은행을 외국에 매각하는 것이 그 한 방법이 될 수 있었습니다.

5.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았을 경우는

◈ 금융기관 부실을 방치하면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 지도 모르고, 공적자금 투입을 무조선 비난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연쇄도산을 방치했다가 세계대공황을 초래했던 미국의 경우를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에,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가를 역사적 경험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 세계대공황의 출발점은 금융공황이었으며, 금융공황은 뉴욕 주식시장이 폭락사태를 맞으면서 발생했습니다. 이 때 주식시장 폭락사태가 어떻게 금융공황으로 발전하였던가를 살펴보면, 공적자금 투입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경제학적으로 무지한 것인지를 쉽게 할 수가 있습니다.

◈ 일반적으로 주식가격이 폭락하면 투자자들은 모두 손실을 봅니다. 그 손실이 개인과 일반 기업의 문제로만 그친다면 경제적으로 큰 파장이 없지만, 금융기관의 손실은 중대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금융기관이 부실해지면 예금인출사태를 불러오는 수가 있으며, 이 경우에는 금융기관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금융기관이 무너지면 다른 금융기관의 예금인출사태까지 부추기면서, 전염병처럼 번져나가는 특성을 보여주게 됩니다.

◈ 그래서 전체 금융시스템이 위기에 빠지고, 자칫 금융기관의 대규모 붕괴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태가 실제로 벌어진 것이 1929년의 미국 금융공황입니다. "검은 화요일"로 불리는 1929년 10월 29일 하루 동안에 주가지수가 무려 11.7%의 하락률을 보였었고 이것이 금융공황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입니다.

◈ 그런데 "검은 금요일"로 불리는 1987년 10월 19일에는 주식가격이 더 큰 폭으로 떨어졌으나, 금융공황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었습니다. 이 날은 개장 초부터 200포인트 이상 빠지면서 508포인트 하락으로 마감했습니다. 하락률이 무려 22.7%에 달해서 1929년 당시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었습니다.

◈ 이런 폭락사태의 세계적인 파장도 만만치 않았으며, 세계대공황이 발발했을 때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도쿄 주식시장은 15%나 폭락했고, 홍콩 주식시장은 거래가 정지됐으며, 유럽 주식시장도 10% 가까운 폭락세를 보이는 등 전 세계적으로 연쇄적인 폭락사태가 벌어졌습니다.

◈ 그러나 이 때에는 세계대공황으로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린스펀 미 FRB 의장의 신속한 대처가 그런 위기를 벗어나게 했었습니다. 여기에서 그의 신속한 대처란 다름이 아니라, "FRB는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해서 유동성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단 한 문장의 짤막한 성명이 그것입니다. 간단하고 명료할수록 그리고 강력할수록 투자자들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고도의 계산이 깔린 조치였었습니다.

◈ 그리고 그 짧은 성명 속에는 실로 엄청나게 충격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즉, 통화를 증발해서라도 금융시스템의 붕괴위기를 막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갖고 있는 선진국의 풍토 하에서는, 이런 강력한 처방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으므로, 그의 발언은 실로 놀라운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 1987년의 사태는 1929년의 그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으나, 그리고 그것이 몰고올 파장은 세계대공황 때보다 훨씬 위험했으나, 그것을 그린스펀의 단 한 마디가 예방해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린스펀은 선제적인 경제정책의 달인이라는 칭송을 받게 되기도 했으며,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요? 우리나라는 환란이 발생하고 금융기관이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을 때에도, 예금인출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금융기관의 연쇄도산도 없었습니다. 또한 통화을 증발한 적도 없이, 공적자금의 투입만으로 환란으로 야기될 금융공황을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성공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니, 칭송받아 마땅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 그렇지만 지금의 사정은 비난 일색이며, 국민들의 의식 속에는 국민의 정부가 대단한 경제실정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각인되어 있습니다. 환란을 치유하고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금융공황을 예방해낸 것이 경제실정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까? 국가경제의 장래를 생각하면 참으로 암울한 기분이 듭니다.

◈ 물론 처음 겪는 일이라 다소의 시행착오가 없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소한 시행착오를 침소붕대하여, 본질을 외면하는 일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장차 얼마나 불행한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가 걱정입니다. 만약 혹시라도 환란과 같은 경제재앙이 다시 이 땅에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진상을 외면하면서 어떻게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가능하겠는가, 그리고 진단도 정확치 않고 처방도 엉터리라면 우리 경제는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등을 생각하면 가슴만 답답해질 따름입니다.

◈ 그린스펀 FRB의장이 통화를 증발해서라도 기필고 막아내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금융공황은 그만큼 무서운 경제재앙이기 때문에 더욱 걱정입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막아야 하는 것이 금융공황이기 때문에 더더욱 걱정입니다.

◈ 역사를 뒤돌아 보면 내 걱정이 결코 기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뉴욕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금융스시템 위기가 발생한지 불과 두 달만에, 미국의 공업생산은 10%나 줄어들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금융공황이 무서운 것은, 그것이 초래할 경제공황의 결과가 너무 참혹하기 때문입니다. 세계대공황 당시의 참상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 세계대공황 때의 경기수축은 3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3년 동안에 미국의 공업생산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실업률은 5.3%에서 37.6%로 뛰어 올랐습니다. 그 뒤에도 경제가 회복되지 못한 체 경기침체가 10여년이나 지속되었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예언처럼 자본주의 경제는 몰락하는 것으로 인식될 정도였습니다. 이후 그것은 세계대전의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고, 또한 세계대전의 희생을 치른 뒤에야 경제공황도 해소될 수가 있었습니다.

◈ 세계공황기를 다룬 미국 영화에는, 쓰레기 차가 도착하면 사람들이 벌떼 같이 달려드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양복입은 사람들까지 쓰레기 더미를 뒤져서 소세지 한 조각을 소중하게 줏어먹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런 비참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 우리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금융공황은 예방되었고, 금융시스템 위기도 해소의 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 그렇다면 공적자금 투입을 문제삼는 것은 경제전문가적 견지에서 볼 때에는 중대한 문제가 닐 수 없습니다. 오히려 금융공황을 예방한 업적을 높이 평가해주어야 합니다. 공적자금을 아무리 많이 투입하더라도, 설령 통화증발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금융공황은 반드시 예방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경제공황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 사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약점은 공황다운 공황을 한번도 겪지 않았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공황은 피해가야 하는데, 국민들이 공황의 무서움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결단력 있는 정부가 아니라면, 공황을 피할 수 있는 경제정책의 입안 자체가 어렵고, 그 정책의 집행도 어렵습니다.

◈ 국민들이 모르고 있다면 이한구 의원님과 같은 경제전문가들이라도 나서서 국민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경제전문가들과 언론은 물론이고 야당의 정치지도자들까지도 공적자금 투입만을 문제삼고 있으며, 비난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장래가 걱정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각성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