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교수가 안식년 휴가를 맞아 미국으로 떠난다는 군요. 아는 선배가 언제 기회봐서 강교수와 술자리를 갖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한참 뒤를 기대해야겠네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1172110022&code=210100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60173.html

-인간적인 고통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실명비판하고 그럴 때가 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지나고 보니 오히려 그쪽이 더 쉬웠다. 그때는 내 뒤에 확실한 내 편이 있어서 아무리 극한의 대치를 해도 힘들다는 생각을 안 했다. 그런데 민주당 분당 때처럼 양쪽이 싸울 때 중간쯤에 서서 양쪽의 문제점을 지적하니 어느 쪽에서도 환영을 못 받더라. 그래서 투쟁보다 성찰이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된 거고. 그러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남은 인생은 분노, 증오, 그런 따위가 아닌 다른 세계로 가봐야겠다고. 그런데 그 길로 가려니, 글을 ‘싸납게’ 써서는 안 되는 것이더라. 그 길로 가기로 작정하면 글쓰기도 달라져야 하는 걸 알았다. 생각이 바뀌면 문체가 바뀌고, 문체가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그때 내 앞에 떠오른 주제가 이 지긋지긋한 승자독식 문화에 도전해 보는 거였다. 승패에 따라 10 대 빵으로 갈리는 이놈의 사회, 7 대 3, 6 대 4 정도라도 될 수는 없을까… 그런데 그런 심심한 주장을 정색하고 하면 누가 열광하겠는가? 상대편한테까지도 비웃음을 살 게 뻔하지. 그래서 직접적인, 직설적인 글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또 깨닫게 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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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제가 부추겼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 분노가 과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임계점, 적정수준을 넘어서는 거예요. 그때부터 분노에 동의할 수가 없게 됐어요. 예컨대 이런 겁니다. 제가 조선일보 비판을 오랫동안 하면서 ‘조선일보 때문에’ 또는 ‘조·중·동 때문에’라는 식의 주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노무현 정부 들어오니까 모든 것을 조·중·동 때문이라고 하는 거예요. 어떻게 모든 것이 조·중·동 때문이겠어요? 제가 하도 답답해 노 정부는 그 ‘때문에’ 때문에 망할 거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저보고 ‘드디어 강준만도 조중동 프레임에 빠졌다’고 합디다. 조·중·동, 문제 많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노무현 정권 들어섰잖아요. 그러면 분노보다 성찰을 해야죠. 설사 분노를 하더라도 성찰에 기반을 두고 해야 하는데, 성찰은 쏙 빠지고 보기 싫은 놈에 대한 증오만 있으니 무슨 발전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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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 운동의 변질을 직접 들은 저로선 참 읽으며 가슴이 아리네요. 부디 강교수님의 변화가 결실 맺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