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있다”는 러시아 속담을 인용하면서 무상급식을 비난하고 주민투표에 붙이겠다는 정치적 공세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참 어이가 없고 기가 찰 노릇입니다. 가진 자들이 겉으로는 선별적 복지가 서민들을 위하는 것이라 생색내면서 실제로는 자기 이익에 충실한 기만과 위선을 숨기는 데에는 역겨움을 넘어 분노마저 치밉니다. 서울시장이라는 사람은 자기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이 문제를 정치적 어젠다로 부각시켜 본질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더욱 한심한 일은 소위 진보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마저 무상급식이 포퓰리즘적이라고 매도하고 서민복지에 역행한다고 동조하는 것입니다.

과연 오세훈 시장이나 보편적 무상급식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진정성이나 타당성이 있는 것일까요?

  

1. 철학의 빈곤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을 비난하는 저변에는 복지에 대한 기본적 철학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복지가 마치 국가가 국민에게 베푸는 시혜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서울시장이 서민들의 자제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죠. 복지는 국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국민(청소년)이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입니다. 국가주의적 가치관에 찌든 사람들이야 복지가 국가적 시혜로 보일지 모르지만, 국가는 국민(인간)의 생존과 생활을 영위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상급식은 자기들이 낸 세금 중의 하나의 사용처일 뿐입니다.

복지란 빈민구제와 다릅니다. 부자나 빈자에게 공평히 혜택이 돌아가야 합니다. 독일의 사회보장법이 그 이전의 영국의 빈민구제법과 다른 점은 모든 국민이 국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로서 복지를 규정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사회보장법도 마찬가지이구요. 복지로서의 사회보장이 국민의 보편적인 권리인 이유는 가난은 사회의 구조적 산물로 개인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에 가난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또 한번의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것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오세훈 시장이 갖고 있는 복지의 개념과 정치 철학은 박근혜 전대표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도 한참 후진적입니다. (이러고도 자기가 진보적인 양 행세하더군요.)

권리적 차원에서 복지문제에 접근해야지, 복지의 대상자가 마치 공짜로 얻어 먹는(받는) 것으로 인식하는 한 보편적인 복지는 요원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무상급식”이라는 말도 “학교급식” 혹은 “교육급식”으로 용어를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세훈 시장의 “세금급식”이라는 표현보다는 낫지만 “무상”이라는 표현에는 어딘가 모르게 “공짜‘라는 뉘앙스가 풍겨 원래의 복지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 같습니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논거 중 하나가 우리의 경제 수준에서 보편적 복지(무상급식)의 확대는 시기상조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를 대는 배경에는 보편적 복지는 일정 경제수준에 도달해야 실시할 수 있다는 아무 근거 없는, 사회적 세뇌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논거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는 스웨덴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스웨덴은 1920년대, 우리의 1960~70년대 수준의 경제 여건보다 못한 상황에서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보편적 확대가 경제성장을 이끌고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지금의 상태까지 끌어올렸습니다. 경제수준이나 생활수준이 일정한 궤도에 올랐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를 확대 시행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의 확대가 경제성장과 국민의 삶의 질을 높힌 것입니다. 보편적 복지와 경제성장(생활수준의 향상)의 인과관계를 도치해서 왜곡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상대적으로 훨씬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는 유럽 국가를 보더라도 복지의 확대와 경제성장은 일정 기간 동안 동반의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물론 최근 연금정책 등 부작용이 있어 개선이 필요한 복지정책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유럽의 수준까지 이르는데는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었습니다. 우리가 보편적 복지의 수준이 유럽의 70% 수준만 되어도 추가적인 확대에 대해 재고해 보고자 한다면 이해를 하겠습니다만, 초중고의 무상급식을 단계적으로 전면 실시하는 것에 대해 이토록 반대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혹자는 또 이런 주장도 하더군요. 무상급식과 같은 보편적 복지가 확대되면 서민층들의 자립 의지를 오히려 약화시키고 사회의 역동성이 약화된다고 말이지요. 지금 한국 사회가 70~90년대보다 사회적 역동성이 떨어진 것이 마치 보편적 복지의 확대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복지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우리 복지제도가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닌 것은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복지의 확대가 저소득층의 자립의지를 약화시키고 사회의 역동성을 하락하게 한 주범이었나요? 빈부의 격차가 확대되고 저소득층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이 복지가 확대되어서 나온 결과인가요? 부와 학력이 되물림되어 계급(계층)이 고착화되고 사회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이 복지가 잘 되어서 그렇습니까? 고용의 유연성과 신자유주의 시장경제가 횡행하면서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하여 고용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조세의 정의를 외면한 세제와 학력과 부의 세습을 손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이 현재의 빈부 격차와 사회의 활력을 저하시킨 결정적인 이유가 아닙니까? 왜 아무 죄없는 복지제도에 덮어 씌우시는지 모르겠습니다.



2. 무상급식은 학생의 권리


오세훈 시장은 ‘무상급식’을 ‘공짜급식’이니 ‘세금급식’이니 하면서 마치 무상급식을 제공받는 학생들이 남의 돈으로 공짜로 얻어 먹는 것처럼 인식하게 하여 이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어린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급식을 이런 식으로 치부하는 천박함이 오세훈의 철학 빈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무상급식은 국가적 시혜가 아니라 국민(학생)들의 권리입니다. 학생들은 충분한 권리를 찾는데 웬 공짜 타령인지 모르겠습니다.

무상급식에 대해 가장 명쾌하게 설명한 사람은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입니다. 곽 교육감은 "부자 아이도 없고 빈자 아이도 없다. 부모가 부자거나 빈자일 뿐 아이들은 누구나 가능성의 부자"라며 "무상급식은 아이들의 교육복지 권리이지 부모의 권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아동복지와 학교복지는 최대한 보편적 복지여야 하며, 선별적 복지는 대상자를 낙인 찍고 시혜적 성격을 면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 적어도 아이들의 밥 한 그릇 만큼은 선택적 복지를 넘어 보편적 복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시민적 합의라고 선언합니다. 오세훈과 확연한 철학의 차이가 느껴지지요.



3. 무상급식이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실시되어야 하는 이유


위에서 원론적인 차원에서 무상급식이 선별급식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실시되어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았지만 지금부터는 구체적으로 우리 현실에서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의 접근이 왜 필요한지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고용의 불안정, 경계 설정에 따른 불합리성

IMF 이후 고용의 불안정이 극대화되고 가계의 경제적 불안정성이 높아지면서 중산층도 언제든지 차상위층이나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향후에도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여 보편적 복지의 확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어제의 중산층이 오늘에는 차상위계층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고용의 유연성과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비정규직이 확대되어 경제적 지위는 항상 불안한 상태의 연속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입니다. 즉, 지금의 중산층도 내일에는 급식비를 부담스럽게 느끼게 될지 모릅니다. 무상급식이 단지 저소득층의 문제만 아니라, 중산층에게도 장래의 잠재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회사에는 40대의 가장이 본의와 상관없이 회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자식이 둘이고, 둘 다 모두 급식비를 내고 있지만, 가장이 실직한 후의 이들은 무상급식을 신청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떠나는 후배의 등 뒤를 보면서 저는 무상급식이 왜 선별적으로 해서는 안되는지 느꼈습니다.


지금 시행하고 있는 선별급식은 그 대상자의 기준이 정해져 있습니다. 가령 그 기준이 월 가계소득 100만 이하의 가정의 자녀를 대상으로 한다고 가정해 보죠. 이럴 경우 월소득 100~120만원의 가정의 자녀는 대상에서 제외되겠지요. 그런데 월 소득 100~120만원의 가정과 월소득 80~100만의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의 차이가 얼마나 될까요? 단지 월 소득이 100만원이 넘는다는 이유로 이 가정의 자녀는 무상급식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공식적인 통계에 잡히지 않는 소득이 있는 가정의 자녀는 대상이 되고, 공식적 통계에 잡히는 소득이 전부인 가정의 자녀는 월 소득이 110만원임에도 대상에서 제외되는 불합리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선별적 복지(무상급식)은 기준의 설정이 불가피하고 그에 따른 불합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지역에 따른 역차별

무상급식을 선별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보편적 차원에서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이유는 보다 저소득층에게 혜택을 많이 주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에 역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자체의 사정에 따라 무상급식의 범위가 다를 경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현재 무상급식을 선별적으로 하지 않고 전면으로 실시하는 지자체가 있습니다. 이 중에는 과천시와 분당이 있지요. 이 지역은 대표적인 중산층 밀집지역이고 지방의 중소 도시나 군단위의 지자체의 가정들보다 경제적으로 한결 여유가 있습니다. 지방의 군 단위의 가정은 무상급식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반면 과천시와 분당의 중산층 뿐아니라 고소득층 자녀는 수혜를 받는 아이러니가 생기지요.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면 생기지 않을 문제가 선별 급식을 함으로써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합니다.

기초 자치단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경기도에 보편적 무상급식을 실시하기로 예산을 배정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지자체 중 하나이고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이 많은 수도권의 경기도는 무차별적으로 무상급식이 이루어지는데 지방의 광역 지자체는 예산 부족으로 전면 실시는 엄두도 못낼 형편입니다. 이는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나 예산의 운용능력에 따라 선별 급식이 오히려 지역간 역차별을 초래하는 경우가 될 것입니다. 

무상급식이나 학교교육 같은 보편적 복지문제는 지자체에 부담시킬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제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런 역효과와 역차별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예산을 지원하고 그 업무를 지자체에 위임하는 형태가 되어야 하지, 지자체가 비용을 부담하는 형태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3) 보편적 무상급식의 효율성

시장주의자들이나 선별급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통 효율성을 많이 강조합니다만, 막상 선별 급식과 보편 급식 간의 효율성을 따져 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들의 평소 입장이라면 효율성 면에서 보편 급식을 주장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이유인지 이 사안에서만은 입장이 바뀌어 있는 듯합니다.

그러면 두 방식간의 효율성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효율성 면에서도 전면 무상급식(보편적 복지)이 더 효율적이지요. 국가(사회)적 전체 후생차원에서 급식비는 무상급식을 하나 학부모가 부담하나 동일합니다. 다만 부담의 주체만 다를 뿐이죠. 그런데 선별적 무상급식을 실시하려면 그 대상자의 선정과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15%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선별 급식이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할 때보다 추가적인 사회 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상자들에게 자산과 소득 증명을 해 오게 해야 하고, 비대상자들을 선별하기 위해 또 관리를 해야 합니다.

선생님들(혹은 담당 공무원)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무료급식을 받을 대상자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학생(혹은 학부형)들에게 서류를 떼 오게 해야 하고, 또 그 서류가 맞는지 확인하고 상부에 보고해야 합니다. 대상자가 아닌 사람들이 무료급식을 받는지도 확인해야 하지요. 또 비대상자들에게는 급식비를 받아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구요. 급식비를 내는 중산층 이상의 학생이나 학부모들도 급식비를 날짜에 맞춰 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고, 혹 날짜를 지나쳐 선생님께 지적을 받아 학생들이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면 치르지 않을 비용과 수고이지요.

선별 급식을 주장하는 분 중에 보편적 무상급식이 사회 전체적 비용을 증가시킨다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지요. 사회 전체 비용은 오히려 보편적 무상급식이 선별 급식보다 작습니다. 다만, 그 비용의 부담 주체가 달라질 뿐이죠. 그 부담의 주체가 지금은 정부(지자체, 저소득층 급식비)+개인(중산층 이상)에서 보편적 무상급식이 되면 정부(지자체)로 바뀔 뿐이지요.


4) 대상자의 정서적 측면

무엇보다도 선별적 무상급식 대상자들이 무상급식을 받는다는 자체에 대한 곤혹, 그리고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서류를 떼와야 한다는 부담, 대상자들이 느껴야할 난처함에서 벗어날 수 있고 유년기, 청소년기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는 점을 오세훈 시장과 같은 무상급식 반대자들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EBS에서 제작한 e-채널 “공짜 급식”의 동영상을 보면 선별 무상급식 대상자인 학생들이 갖는 정신적, 정서적 고충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동영상이 방송심의위원회에 제소되어 심의를 기다린다고 하지요. 참 기가 막히는 일이지요.)


5) 보편적 복지는 저출산 대책의 하나

저출산의 가장 큰 이유는 아이의 양육과 교육비의 부담 때문입니다. 양육과 교육의 부담은 저소득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산층에게도 작지 않습니다. 번듯한 직장을 가진 맞벌이 부부들도 아이의 양육과 교육에 대한 부담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두 자녀라면 급식비에서 연간 120만원을 아낄 수 있습니다.

저출산 문제도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4. 보편적 무상급식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오세훈 시장은 보편적 무상급식을 실시하면 이에 필요한 예산이 40조에 이를 것이며, 월 소득 400만원의 월급쟁이가 세금을 월 40만원 정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오세훈 시장의 말이 사실일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2011년도 우리 나라 총 예산이 300조, 그 중 교육과학 예산은 48조 정도 됩니다. 오 시장 말대로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시행하면 우리 나라 교육과학 예산을 전부 써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말이 될까요? 우리 나라의 초,중,고교생을 모두 합치면 1천만 정도 될 것입니다. 우리 아이의 월 급식비가 62,000원 정도 됩니다. 방학을 제외하면 연간 9.5개월 정도 급식비를 내게 됩니다. 연간 1인당 급식비 부담이 59만원 정도가 되네요. 1천만 학생들의 연간 급식비는 5조 9천억이 될거구요. 이미 선별 급식으로 30%는 무상급식을 하고 있음으로 추가 필요 예산은 많아야 4조 1천억 수준이 되는군요. 오 시장이 말하는 40조의 1/10 수준 밖에 도지 않습니다.

오 시장은 또 전면 무상급식 재원 마련을 위해 중산층은 세금폭탄을 맞을 것이라고 겁박하고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전면 무상급식에 따른 추가 재원을 이들 중산층 이상이 부담한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이들이 손해보는 것이 무엇이지요? 이미 이들은 무상급식 제공으로 그만큼의 금액을 세금으로 공제받은 효과를 봤습니다. 그것을 다시 세금으로 납부한다한들 이들이 손해볼 것은 하나도 없지요. 왜 오 시장은 이들의 추가 징세만 이야기하고 이들이 무상급식으로 절감한(이익을 본) 돈은 언급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왜 월 400만원 소득의 월급쟁이에게만 부담을 시킬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종부세, 양도소득세, 상속세 등 직접세의 강화나 소득세에 누진율을 적용하면 상위 10% 이상의 고소득층에게 이 추가 재원을 부담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데 왜 유리지갑의 월급쟁이에게 부담시켜서 그들을 겁주고 있습니까? 상위 10%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오 시장처럼 선별급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더 부합하지 않습니까? 저소득층을 눈물겹도록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은 원치 않는 모양이지요? 다음 편에서 선별 급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위선을 까발리겠지만, 이런 대목에서도 그들의 이중성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또, 이 정도의 재원은 세제(세율)의 강화 없이도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고액의 세금 체납자들의 세금을 확실하게 추징하고, 고소득자들의 세원을 추적하여 추징만 해도 이 정도의 재원은 마련될 것입니다. 전시행정(사업)을 줄여도 충분할 것입니다. 국책사업인 망국적 4대강 사업에 쏟아붓는 돈이나 서울시의 경우 한강 르네쌍스사업이나 한강 운하사업에 들어가는 돈의 일부만 해도 전면 무상급식을 해도 남겼습니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현실에도 맞지 않는 자전거도로 사업에 들어간 예산과 그 부작용에 따른 비용만 해도 서울시의 무상급식에 필요한 700억은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상급식에 따른 예산 확보 방안에서도 오 시장은 그의 위장된 진보성이 드러납니다. 



5.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자들의 기만과 위선

보편적 무상급식을 반대하고 현재의 선별급식을 주장하는 분들의 주장은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에게 지급할 급식비를 저소득층에게 돌려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며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일견 서민들을 위하고 정부의 재정을 걱정하는 양심적이고 애국적인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속내까지도 그럴까요? 이런 속내를 알아보는 것은 간단합니다. 중산층이상이 전면 무상급식으로 혜택을 보았으니 그들에게 그만큼의 비용을 세금으로 징구해도 결과적으로 같은 효과이니 그렇게 해보자고 할 때, 과연 이들이 동의하느냐는 것입니다.

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현재 보편적 복지 성격으로 시행되는 제도 중에 중학교까지의 의무(무상)교육도 선별급식과 같이 선별 무상교육으로 전환하자고 한다면 찬성하겠느냐는 것이죠. 선별급식의 논리로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에게는 초,중등 교육비를 징구하고 그 재원으로 저소득층의 교육환경 개선에 쓰자고 한다면 그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또 있습니다. 의료보험도 중산층 이상은 전액 혹은 상당 부분을 자기부담으로 하고 저소득층은 전액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방법도 좋지요. 의무(무상)교육과 의료보험에서도 선별 급식 방식을 적용하면 이들이 좋아할까요? 이들이 이 방식에도 동의한다면 보편적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진정성과 일관성을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빌 게이츠처럼 상속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하면서 선별 급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무한한 존경까지 보태드리지요.

이들의 속내는 조금만 이야기해 보아도 금방 드러납니다. 서민층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철저히 자기이기를 관철시키는 것을 위장합니다. 이들은 단지 전면 무상급식 그 자체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지는 국민의 권리라는 인식의 전환과 확대, 전면 무상급식이 불러올 보편적 복지의 확대 요구가 두려운 것이죠. 신자유주의가 시장을 지배하고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고용의 불안정이 심화될수록 보편적 확대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집니다. 이들은 무상급식 논쟁을 기화로 국민들이 이것을 알아차릴까봐 노심초사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사 심화되는 것을 우려하고 부와 학력의 되물림이 사회의 역동성을 저하시켜 장기적으로 국가(사회)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무엇이 좋을까요? 저는 보편적 복지의 확대가 하나의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여러분들은 보편적 무상급식도 반대하시는데 어떤 해결방안을 갖고 계신지요?



6. 오세훈의 정책과 사업도 함께 주민투표에 붙여라


저는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문제를 주민투표에 붙이겠다는 것에 대해 굳이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왕 수십억을 들여 주민투표를 할 바에는 오 시장이 추진하는 굵직한 사업(정책)들도 함께 주민투표에 붙이자는 것입니다. 디자인서울, 한강르네쌍스, 경인운하-한강 연결사업, 자전거도로 사업 등 오세훈 시장이 추진하지만 검증받아야 할 것이 많고 서울시민들이 반대하는 사업들도 당당하게 주민투표에 붙여 보라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 안드는 무상급식은 주민투표에 붙이고 서울시민이 불만이 있는 사업은 주민들에게 묻지 않는다는 것은 정당성과 형평성을 잃은 처사입니다.



7. 쥐를 위한 치즈는 만들지 마라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있다>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을 반대하면서 인용한 러시아 속담입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서울시민으로서 상당히 불쾌했습니다. 쥐덫의 치즈를 탐하는 것은 쥐일 것이고, 무상급식을 받는 대상자인 서울시민이 결국 쥐에 비유되는 것입니다. 물론 오 시장의 진의는 아닐 것이라 고, 제가 조금 오버하여 반응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감정적으로 불쾌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도 오세훈 시장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쥐를 위한 치즈는 만들지 말라>고요.

오세훈 시장은 시장으로 많은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서울, 한강르네쌍스 사업은 제가 잘 알지 못해 무어라 할 수 없지만, 자전거도로 사업과 한강-경인운하 연결사업은 재검토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들 사업은 전시, 탁상행정의 전형이고, 경제성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무리한 사업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들 사업은 예산만 낭비하고 결국 그 본래의 목적과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고 흉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치즈는 인간이 먹고자 만드는 것입니다. 쥐를 위해 만드는 바보는 없을 것입니다. 치즈는 깨끗한 환경에서 사람이 먹기 좋게 만들어지고 보관관리를 철저히 해야 사람이 먹을 수 있겠지요. 오세훈 시장이 추진하는 사업이 시민의 안전과 편익 제고에는 도움은 안되고  도심의 흉물로 남아 방치된다면 서울시민의 혈세가 결국은 쥐를 위한 치즈만 만든 꼴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