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가 일본을 압도했던 것은 아무리 늦춰잡아도 80년대 중반까지다. 그 이후부터는 사실 실력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60~70년대에 일본 축구는 한국의 밥이었다. 지금도 한일 대결이 벌어질 때마다 거론되는, 역대전적의 압도적인 우위는 사실 모두 저 당시에 기록된 것들이다. 80년대 이후에는 아무리 한국에 유리하게 봐줘도 팽팽한 호각세라고 할 수 있다.

외형상 호각세일뿐, 내용상으로는 일본이 한국을 차츰 추월하고 압도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한일전의 경우 양국 관계의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국민들의 엄청난 관심이 쏠리고, 한국 축구의 정부 의존적인 속성 때문에 선수들은 어마어마한 부담감을 안고 경기에 임할 수밖에 없다. 실력 외 변수가 작용해 그나마 대등한 성적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 축구는 70년대부터 한국 타도를 목표로 어마어마한 투자를 해왔다. 당시부터 유소년 축구 엘리트들을 유럽과 남미로 축구 유학을 보낸 게 일본이다. 그 성과는 꾸준히 성인 축구의 결실로 이어져왔다. 기껏해야 2000년대 들어서부터 축구 유학을 시도하게 된 한국과는 우선 물량 면에서 비교가 안된다. 일본 축구 지도자들이 청소년 선수들에게 "한국 축구, 절대로 대단치 않다. 별것 없고,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강조해왔다는 것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일본 축구 정책의 제1차 타겟이 한국 타도였다는 얘기이다.


한국의 축구 관계자들도 공식적으로 이야기는 못해도 일본의 실력이 사실상 한국을 추월했다는 사실을 대부분 인정한다. 실제로 언론의 조명을 받지 않는 유소년, 청소년 시합에서는 일본이 90년대부터 한국을 압도하고 있다. 성인 축구에서 그나마 균형을 유지해온 것도 실력 외적인 요인들인 깡과 오기, 이런 것으로 버텨온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번 아시안게임 한일전을 본 사람들은 내심 대부분 인정하겠지만, 경기 결과와 무관하게, 경기 내용은 일본이 적어도 6 대 4 정도로 한국을 압도했다. 좀더 질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7 대 3 정도라고 볼 수도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다는 거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 일본이 16강에 오른 것을 비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 별 의미없는 얘기일 뿐이다. 역대 월드컵에서 거둔 성적을 정말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비교 평가할 경우,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8강에 진출한 것이 2002년 한국의 4강 진출보다 훨씬 탁월한 성적이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 한일전의 의미는, 그동안 경기 외적인 요인, 축구 외적인 요인, 실력 외적인 요인으로 아슬아슬하게 표면적인 균형을 유지해오던 한일 축구 실력의 실상이 드러났다는 점이라고 본다. 이제 균형은 깨지고 앞으로 적어도 10년 정도는 일본 축구가 한국 축구을 압도하게 될 것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박지성의 은퇴는 상징적이다. 월드컵 4강 신화로 압축되는, 한국 축구의 마지막 영광을 유지해오던 존재가 박지성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은퇴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어차피 박지성의 은퇴는 예고된 것이다. 약간 늦춰지고 빨라지는 차이가 있을 뿐, 박지성의 은퇴가 한일 축구의 표면적인 균형을 깨트리는 방아쇠 역할을 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과 일본의 피파 랭킹 차이도 크다. 이 랭킹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이제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한국 축구는 사실상 국가의 전략 종목이라고 할 수 있다. 상징성이 강한 종목인 것이다. 이런 상징성 위에서 한일전이 갖는 의미가 증폭되곤 했다. 이것은 한국 축구가 내부적인 동력에 의해 발전하지 못하고 정치적인 변수에 의해 왜곡되는 배경이 되곤 했다. 하지만 이제 70년대까지 정책 외적인 수단을 동원해 대중 여론을 조작하고 통제해야 했던 정부의 정치적 요구도 거의 사라졌다. 한국 축구의 가장 큰 제약 요인이자, 또 한국 축구를 보호해온 온실이 사라졌다는 얘기이다.


한국 축구, 이제 새로 시작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적어도 앞으로 10년은 일본에게 뒤진다고 생각하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물론 한국 축구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월드컵 본선에 연속 진출하고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두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일본의 발전 속도나 투자 대비 효과, 70년대까지 한국이 아시아 축구에서 차지하던 위상 등을 고려했을 때 특별히 발전한 것이 있는지 의문인 것도 사실이다. 단적으로 말해 월드컵 연속 진출도 본선 진출국이 32개국으로 확대된 뒤에 가능했던 성과이다. 과연 옛날처럼 본선 진출국이 16개국이었다면 한국이 그동안 단 한번이라도 진출에 성공했을지(물론 2002년은 빼고) 의문이다.


축구라는 스포츠에도 어떤 소질이 필요하다면 한국은 그다지 축구 소질이 높은 나라가 아니다. 아마 세계적으로 중하위 정도에 속할 것이다. 다만, 일본은 한구보다 그 소질이 적어도 높지는 않다. 아마 한국보다 한 단계 아래일 가능성이 많다.


그럼에도 일본과 한국은 국민적인 관심과 상대적으로 우월한 물량 투자로 현재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만일 전세계 모든 나라가 비슷한 경제력을 갖추고 축구에 비슷한 규모의 투자를 할 경우 한국과 일본은 중위권 이상으로 오르기는 힘들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과연 축구에 현재와 같은 국민적 관심을 쏟아붓는 것이 합리적인지도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축구는 매력적인 스포츠이지만, 투자 대비 효과가 나기 어려운 종목이기도 하다. 체력 등 선천적인 요소의 영향이 크다는 얘기이다. 국민적인 성원이나 관심이란 점에서 축구와 비교하기 어려운 다른 종목들이 훨씬 두드러지는 성적을 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와 같은 관심은 어떻게 보면 보답받기 어려운 짝사랑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