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페이스북 시스템을 가만히 살펴보니..괴물 같은 인맥 확장이 가능한 이유가..
결국 싸이식으로 말하면 나랑 맺은 일촌들의 정보가 내 의사랑 상관 없이 노출되어, 무조건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오픈이 되기 때문이다.그러니까 내가 맺은 일촌들은 둘이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라도 기본적인 싸이 홈피 정보가 노출이 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서 비자발적으로 알게 되는 셈이다. 덕분에 덤으로 나는 나의 페이스북 친구들이 그들 각자의 영역 안에 또 몇 명의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소상하게 알 수 있다. 

놀란 건, 김연아 같은 유명 인사는 예외로 치더라도..
나의 어떤 지인들은 백 명, 삼백 명, 심지어 육 백명이 넘는 페이스북 친구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나는 그녀와 나, 혹은 그와 나의 관계를 의심해 볼 수 밖에 없다. 

나는 결국 그(혹은 그녀)에게 삼백 분의 일? 혹은 육백 분의 일의 의미인가?
싸이월드 같은 경우에는 다이어리나 사진첩을 통해서 적게는 하루 수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페이스북은 차원이 하나 더 높아서, 평범한 사람이라도 조금만 신경을 쓰면 하루 방문객을 두 자리가 아닌, 세 자리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심리는 무엇인가? 쇼윈도우 안에서 물건을 전시하는 것과 페이스북, 혹은 싸이월드 미니홈피 안에서 자기를 전시하는 것. 이 둘은 무엇이 다른가? 

수많은 인파의 시선을 비자발성을 가장하여 채집한다는 점에서, 상품 전시와 싸이월드나 페이스북 안에서 자기 연출을 하는 인간 심리는 서로 기묘하게 닮은 점이 있다. 소설 네트워킹은 아마도 인간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의사 소통 방식에 기술적이고 상업적인 채집망을 덪씌운,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네트워킹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정신의 교류, 즉 전래적인 의미에서의 소통이 아니다. 그 안에서 실질적으로 주로 생산되는 것은 소통이라는 가면을 쓴, 자기 전시 욕구이다. 문제는 이 욕구를 통해 자기 자신이나 자기 주변의 인간들과 세계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바로 그 수많은 지인들의 관계망 (혹은 호의적인 관심) 속에서 살고 있다는 환상 아래에서, 네트워킹을 통한 자기 전시 행위와,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 자체에 대한 집착만 점점 강화된다는 것이다.
 
소설 네트워킹을 통해 구현되고 전시되는 사건들, 채집되는 시선과 관심들, 그리고 자기 전시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 주인공들은 점차 기묘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것은 흡사 수많은 알라바이들 속에서 허둥대는 범죄자의 그것과 비슷하다. 자신에 대한 알리바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의 행위에 대한 확신은 사라지는, 바로 그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