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책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구절이 있어서 옮겨 본다. 각하에 대한 이야기인데, MB가 쓴 <신화는 없다>에 대한 장정일의 평이다.  글쟁이답게 장정일은  자서전을 읽을 때 저자가 살아오면서 감명깊게 읽은 책이나 스승이 누군지를 주의깊게 본다고 한다.   MB의 <신화..>에도 책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흥미롭게 그것은  주로 이런 식이였다. 책에 대한 각하의 사연은 아래 3개 뿐이라고 한다.
   
- “나는 틈이 나면 어디서나 책을 읽었고, 사색에 잠겼다.” (63쪽)
- “전공서적이외의 책들도 읽었고 생각에 깊이 잠겼다.“ (76쪽, 6.3주동자로 옥살이 할 때)
- “보고 싶은 책을 읽었다 (105쪽, 타이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도대체 그가 평생동안 뭘 읽었는지 어떤 면을 어떻게 감동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에서 스승은 없어보인다고 하는데,
요즘 뜨고 있는 방통위원장이신  최시중(수정)은 아닌가보다. 
장정일의 <신화는 없다> 서평을 보면서 모처럼 웃었다. 그것도 한 밤, 화장실에서. 만일 요즘 대학입시 자기소개서나 입사지원에서 위와 같이 썼다면 아마 십중팔구 낙방을 할 거다. 장정일의 생각도 그러하지만 나는 직접 각하가 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데 1000원 건다. 얼마나 간결하고 확실하고, 웃기는 표현인가, "책을 읽고 사색에 잠겼다." 내가 자서전을 쓸 일도 없겠지만 책에 관하여 말을 한다면, 나에게 극적인 전환점은 만들어준 책을 꼽으라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읽은 철학개론(동국대학교 출판부)과 대학 와서 읽은 <S.D. 알린스키의 생애>가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 시절에 좀 조숙한 친구들끼리 모여 개똥철학으로 날밤을 새는데, 그 철학개론을 보니 나와 같은 고민은 이미 수백 년 전에 다른 사람이 다 해서 정리해놓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사람이란 무릇 이전 사람이 어떻게 했는지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시절에 조악한, 또는 철없는 일본식 유물론에 쉽게 경도되지 않은 것은 아마 그 철학개론 도움이 아닌가 싶다. 
      
책이란 언행일치, 지행일치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에 내가 실천할 수 없을 만큼 강고한 교리의 책은 잘 읽지 않았다. 속류 개신교인을 내가 증오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람은 실천하는 만큼 믿어야 한다. 또는 믿는 만큼 실천을 해야하고, 그 사람의 값은 그 둘 중의 최소량의 법칙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진보나 앉은뱅이 꼴보수가 욕을 들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위선이며, 심하면 자아분열의 전형이 될 수밖에 없다.
  
장정일을 통해 본 <신화는 없다>의 저자 이명박 각하께서는 그야말로 속류 개신교인의 가장 퇴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세속 개신교인이 열렬히 그를 지지하는 것은  그들 역시 MB의 성공을 자신에 저급함에 대한 죄사함으로 환치하여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검사 딸에게 망신을 당한 자신의 딸과  나눈  <정의 justice>에 대한 이야기나 공정사회.. 이런 것을 볼 때 거의 자아분열적 수준이 아닐까 한다. BBK동영상을 보면 더욱 확신이 든다. 그러니까 자신이 남에게 요구하는 것과 자신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 사람이 동일체적 정신을 가지고 하기에는 정말 힘든 수준이라고 보인다. 물론 MB정권의 수없이 실패한  인사과정에서 너무나도 극명하게 드러났지만. 이번 정권을 보면 언어의 정의에 대하여 본질적인 회의가 느껴진다. 서로 다른 사전을 가지고 대화를 하는 것 보다는 서로 말을 하지않는 것이 도움이 될 듯 하다.
   
옆 사무실에 과도하게 책을 읽는(읽어 제낀다고 표현을 해야 더 옳을 듯) 사람이 있는데, 이 양반은 대화주제에 자신이 읽은 책에서 본 단어가 하나라도 나오면 거의 필사적으로 자신의 지식을 쏟아낸다. 우리는 그를 만나면 그에게 먹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매우 주의를 한다. 그러나 먹이를 탐색하는 그의 능력또한 뛰어나서...기어코 그 밀집수비를 뚫고 먹이를 찾아 자신의 장광설을 늘어 놓는다. 이어지는 그의 변설을 중간에 자르기란 너무 힘들다. 밖에서 그를 만나면 일단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문제는 그의 박학다식함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관해서는 그가 그토록 찬양해마지않은 교양이며, 지식이며 염치와는 전혀 다른 본색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책읽기도 결국 자신에 대한 반성적 탐구라기보다는 글자나 지식에 대한 탐욕적 행위가 아닐까 싶다. 그냥 책일 머릿속을 우겨넣어서 남들에게 무기로 쓰는 것이다. 무식한 사람이 떠들면 더러 웃기기도 하지만 탐욕스런 인간의 머리에 들어있는 책은 시간이 지나면 유독해지기 까지 한다. 
       
MB를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교양과 품위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굴뚝같이 피어오른다. 그런데 그게 꼭 책으로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글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나도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그리고 대통령이 철학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본적인 교양과 양식은 좀 갖추었으면 좋겠다. 이 혹독한 5년 동안 우리는 <실용>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배우는 중이다. 강의료는 비싸지만 어찌겠는가, 환불은 안된다고 하니.  추운날,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위로 해본다. 글을 볼 때마다, 장정일은 여러모로 참 재미있는 사람같다. 그의 가장 큰 장기는 잘난 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는 그것을 느껴지지 않게 쓴다는 것이다. 이런 재주는 배워서 되지는 않을 것 같고. 타고나는 것인가 ?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