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릴없이 나이만 먹은 사람으로서 정말 안타깝기 그지 없는 사건입니다.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일 텐데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카이스트란 간판도, 연애도, 대학 학력조차 삶이란 존재 앞에 다 하릴없거든요. 물론 저도 매일 답 없는 막막함을 몇번씩 느끼곤 합니다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정말 곁에 있었다면 밤새 술 마시며 충고했을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좀 더 펼쳐보자면,

먼저 사정관제가 있겠군요. 이 제도를 옹호하시는 분도 있고 저도 그 이유에 대해선 긍정합니다만 몇가지 점에선 약간 불안감이 듭니다. 우선 이 제도가 정착된 미국과 달리 한국은 대학간 이동이 별로 자유롭지 않습니다. 가령 미국은 가정 형편상, 혹은 성적상 근교의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했다 주립대에 편입하고 이어 아이비로 진출할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어렵죠. 당장 서울대 대학원이 위기를 맞고 있는 형편이니까요. 즉, 사실상 학벌 경쟁의 절대적 포션이 학부에 걸려있기에 경쟁도 치열하거니와 이동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사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제도는 국가 시험 한방입니다. 본고사는 옵션. 왜냐면 이 제도 이상으로 공평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고 보거든요.

그렇지만 국가 시험 한방이 갖고 있는 단점- 획일화 등등-은 예외로 치더라도 당장 현실적으로 적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면 우리나라에서 대학이 뭘 배우는 곳인가에 대해 합의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전 진보도, 보수도 사회에서 대학의 역할과 성격, 특히 '뭘 배우는 곳'이며 '졸업자격'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에대해 먼저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해 어떤 합의도, 규정도 없기에 대학 입시 제도나 기타 제도에 대한 논의는 늘 헛바퀴를 돌죠.

가령, 80년대 어느 정도 이름있는 학교 나온 분들은 지금 대학의 커리큘럼에 대해 분노하곤 하죠. 어떻게 대학에서 제과 제빵이나 미용 등을 가르칠 수 있냐는 것입니다. 그런 영역은 당연히 전문학원이나 전문대 정도에서 가르쳐도 충분하며 사회적 낭비라는 것이죠.

그외에도 왜 꼭 대학에서 배워야 하는지 의문스런 영역은 많습니다. 가령 연기가 그렇습니다. 외국의 배우들 보면 '영문과' 출신이 많습니다.  제가 듣기로 서구에서 연극은 그 인식에서 한국과 다릅니다. 당장 세익스피어가 희곡 작가였죠. 서구에서 연극학과는 국문과와 비슷한 위치를 갖고 있습니다. 오히려 연기 자체는 대학보다 액터스 스쿨등을 거치는 경우가 일반적인 걸로 압니다. 또 발레가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제가 알기로 대학 무용과가 있는 나라는 매우 드뭅니다. 대개는 어릴 적부터 전문 학교인 컨서바투아에서 쭉 성장하죠.

그래서 국가 고시 한방인 나라를 보면 대학에서 가르치는 영역이 우리나라보다 좁습니다. 그랑 제콜에서 담당하거나 대학이 맡는 법학, 의학, 경영학 등을 제외하고 실용적인 분야는 사립 전문 학교에서 담당하는 경우가 많죠.

대학 평준화의 문제점등을 차치하면 어쨌든 유럽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시스템입니다. 전 시장 논리에 철저한 미국도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용 대비 수익이 크지 않을 영역(인문학등은 문화 자본 등을 획득하므로 조금 예외겠지요), 즉 연기나 미용 등은 자연스럽게 가격 대비 합리적인 교육 체계에서 흡수하니까요.

그런데 한국은 좀 독특합니다. 전 조금 냉소적으로 말해서 한국에서 대학이란 '선비 자격증 발급소'라 생각합니다. 실제 대학이 그런 정도 밖에 못가르친다는게 아니라 한국에서 대학이란 '그래도 사람대접 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하는 곳'이란 인식이 팽배하다는 뜻입니다. 조선시대와 별로 다를 것 없지 않습니까? 사실 그런 인식 덕택에 대학들이 먹고 살고 있구요.

이야기를 좀 넓혀보면 대학이란 정말 이상한 제도입니다. 소비자인 학생들이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또 실제 교육 수준이나 내용에 상관없이 졸업이나 이수에 어떠한 자격을 부여한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가령 사시의 경우 법학 과목을 이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대개의 대학은 그 과정을 충실히 하겠지만 어쨌든 일부 대학에서 그냥 이수 도장 쾅 찍어주면 그냥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 실내용과 상관없이 말입니다.

제가 극단적인 예를 들고 있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지방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가령 요즘 어떤 분야가 뜨고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갑자기 어느 대학에 돈 안되는 과가 사라지고 대신 그 분야의 과가 생깁니다. 문제는 돈 안되는 과 교수 자르기가 쉽지 않으니 다음해에 보면 없어진 과 교수들이 새로 생긴 과 교수로 자리 바꿔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교육이 되냐구요? 다 됩니다. 강사, 겸임 교수 등등이 실제로 가르치는 거죠. 또 유명연예인이나 체육 특기생등은 수업 한번 안나와도 졸업장 주는 학교 많다는 거...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아주 간단히 이야기해서, 또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대학은 이제 비용대비 효용이란 측면에서 수명을 다하고 있는 제도가 아닐까요? 물론 대학이란 제도 자체는 없어지지 않겠지요. 그렇지만 그 질적 측면이나 사회적 인식에서 대폭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 대학은 크게 두가지 방향에 치중할 것 같습니다. 하나는 학제 변화입니다. 의학, 법학 등의 전문 대학원은 물론이거니와 건축학과나 약학과 등에서 나타나듯 '과거와 달리 복잡, 전문화된 사회 변화에 맞춰' 6년제 등의 특수 대학 설립입니다. 또 하나는 자격증 강화란 명목하에 자격증 시험의 자격증으로 대학 졸업이나 이수 등을 요구하겠지요. 지금이야 로스쿨 정도지만 앞으론 미용사 자격증 시험에도 대학 미용학과 졸업자로 한정할 지 모릅니다. 물론 극단적인 상상입니다.

문제는 두가지 방향 모두 비용대비 효용을 떨어뜨린다는 점입니다.

이게 한국만의 문제 같지는 않습니다. 대졸자는 늘고 있지만 과거 대졸자가 누렸던 지위는 점점 하락하고 현상은 세계 공통으로 보이니까요.

크게 두가지 방향에서 변화가 이뤄지겠지요. 하나는 시장 논리입니다. 결국 돈 안되는 과들은 축소 조정 개편의 과정을 겪게 되겠지요. 전 이 방법도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시장 논리로부터 자유로와야 참 대학이라구요? 그런게 어딨습니까?

그 다음은 국가적으로 제도화하는 거죠. 일단 유럽 스타일이라 해둡시다.

저 개인적으로는 후자를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전 한국 현실상 결국 전자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식적으로,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확보하며 이뤄진다면 '잘' 이뤄지겠지요. 별로 그럴 전망은 안보이지만.

그런데 카이스트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대학 이야기로 붕 떠버리니... 이렇게 횡설수설하는 전 대학에서 도대체 뭘 배운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