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야흐로 복지가 이슈다
.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효과를 톡톡히 보아서일까? 민주당이 이번엔 무상의료로 복지 문제에 불을 지폈다. 일찍이 지금보다 복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 시기는 없었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이 기세를 몰아 정치적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

사실, 무상(無償)은 중도좌파 노선을 걸어온 민주당이 주장할만한 이슈는 아니다. 자칫 無常(덧없음)이나 無想(생각없음)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아마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왼쪽으로 한 걸음 더 걸으면, 드넓은 중도를 고스란히 상대에게 빼앗길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좌파에서 차용한 이슈를 당론으로 설정하는 모험을 택했다.

무상이슈의 시발점이 된 무상급식을 먼저 살펴보자.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라는 프레임으로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부자급식이 그것이다. 진보가 부자급식을 지지하고, 보수가 부자급식을 반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사회정책이란, 혜택을 보는 쪽이 찬성하고 손해를 보는 쪽이 반대하는 법이다. "너희 집 자식도 공짜로 먹여줄게."라는 제안을 왜 보수우파들이 한결같이 반대를 하는 걸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자원을 자신들이 고갈시킬 수 없다는 이타심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는 얻어먹지 않겠다는 자존심 때문일까? 불행히도 모두 답이 아니다. 인간은 그렇게 이상적이지도, 또 단순하지도 않다.

쉽게 착각하는 게 있다. 복지 = 진보(or 좌파), 성장 = 보수(or 우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 하에서 복지를 진보의 전유물로 생각하기에, 무상급식의 대립구도가 모호해지는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고등학교쯤으로. 사회 교과서였나? 아무튼,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게 있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리고 복지국가이다. , 진보도 보수도 복지를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자본주의나 민주주의를 부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복지국가를 부정한 보수우파가 있었나? 당장에 박근혜도 복지론을 들고 나왔다. 복지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라는 틀로는 둘을 구분할 수 없다. 물론 경중의 차이는 있다. 아주 단순하게 복지와 성장이라는 두 가지만으로 사회를 압축시켜보자. 보수의 목표는 확실하다. 최소한의 복지만을 제공하고 나머지를 성장으로 돌리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차치하고, 그렇다면 선별급식에서 진보와 보수는 어떻게 나뉠까? 무상급식을 하지 않았을 때 남는 재원을 어디에 쓰는가를 살펴보면 된다. 급식이 아닌 다른 영역의 복지를 위해 쓰자고 한다면 진보, 성장을 위해 쓰자고 한다면 보수다.

물론 보수가 그렇게 촌스럽게 주장할 리는 없다. 우리 집 자식 공짜로 먹이기 위해, 복지라는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순순히 질 만큼 바보도 아니다. 그냥 부자급식반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보편복지 재원으로 다른 복지를 늘리자는 중도 진보들이 대신 싸움터에 나서준다. 성장을 위해 쓰자고 주장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 복지 논의 자체를 무산시키면 된다. 목표 잃은 재원이 갈 곳은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복지는 쓸 만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복지국가를 표방한 나라에서 드러내놓고 복지를 반대할 정당은 없다. 차별화가 쉽지 않기에 재미 볼 가능성도 낮다. 그것이 무상(無償)이라는 강수까지 두어야 했던 이유이다. 지난 선거에 쏠쏠한 재미는 봤지만, 이는 주의환기라는 일회성 전략에 그쳐야 할 것임은 명백하다. 그걸 간과하고 의료, 보육, 등록금 등 무상(無償)을 당론으로 왼쪽으로 한 걸음씩 더 내디딜 때마다, 나를 포함한 중도 유권자들의 표가 하나씩 날아갈 것이다.



2.

민주당의 헛발질에는 초조함이 엿보인다. 좌파가 곧 정의를 대변하던 시대는 지났다. 오랜 지역주의의 프레임으로는 승리 가능성이 없다. 김대중이라는 불세출의 스타도, 노무현이라는 거대한 바람()도 보이지 않는다. 기업의 목표가 이윤창출이면 정당의 목표는 집권일진데, 그것이 요원하다. 무언가 수를 내야 한다는 조바심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언젠가 김대호 소장
(내가 정치에 과문하여 이분이 뭘 하는 분인지는 잘 모른다. 송구스럽다.)‘1차 분배구조 개선을 접한 적이 있다. 나는 이것이 민주당이 설정할 아젠다로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침반이 있으면 망망대해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구체적인 방법론은 차차 구색을 갖춘다고 하더라도, 이 아젠다를 민주당이 받아들인다면 꽤 유용한 나침반이 되지 않을까 싶다.

복지에 대한 정-부정(否定) 여부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기는 여간 쉽지가 않다. 말했다시피 복지국가를 표방한 이상, 드러내 놓고 복지를 부정할 보수 세력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1차 분배의 영역으로 옮겨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보수가 1차 분배구조를 개선하자는 데 동의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진보와 보수가 첨예하게 맞서 양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주제이다. 이를 당론으로 내세우면, 민주당은 진보영역에 확실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



3.

진보의 힘은 젊음, 그리고 구조적 약자에게서 나온다. 이것을 간과하고 현재의 구도에만 머무를 경우, 진보좌파의 집권은 요원해진다. 그나마 몸보신이 고작일 것이다. 그 사이 진보라는 가치마저 상대에게 넘어간다면, 향후 100년간 좌파에게 희망은 없다. 진보좌파 - 보수우파 구도가, 좌파 - 진보우파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 진보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세대갈등이 최대이슈로 전면에 등장하리라 본다. 20-30대의 결합된 힘은 만만치 않다. 촛불시위로, 6.2지방선거로 이미 미세하게나마 보인 적이 있다. 결코, 이 세대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취업경쟁은 386세대의 화염병 시위만큼이나 절박하고 격렬하다. 적어도 386세대는 하고 싶은 투쟁에 에너지를 쏟았다. 그러나 이들은 하기 싫은 투쟁마저도 묵묵히 견뎌내고 있다. 그들의 억압된 분노는 진보와 공명하기 가장 쉬운 상태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이들이 점차 사회 전면에 나설 것이다. 이 젊은 세대를 진보가 취합한다면, 진보의 미래는 단언컨대 밝다.

세대갈등의 근원(根源)은 이들에게 쓸만한 일자리가 적은 것이다. 이것이 늘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계급은 이미 고착화 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복지는 어떤가? 이들이 복지에 우선순위를 둘까? 안타깝지만 그것도 정답이 아니다. 복지는 어디까지나 후순위다. 일자리를 얻은 다음에 복지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일자리 문제는 어떡해도 좋으니 복지만 이뤄다오."라고 얘기할 젊은이는 하나도 없다.

설상가상, 노인인구 증가로 젊은 세대의 사회적 부담이 갈수록 증가한다. 단례로, 의료보험 재정은 가만있어도 머지않아 붕괴한다. 고령화 사회에서 이것은 필연이다. 분명히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다. 그 조치는 아마도 제대로 된 일자리도 얻지 못하는 젊은 세대에겐,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무상(無償)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가속화 했다간, 그 역풍은 상상만으로 끔찍하다.

이런 잠재된 진보 지지층인 2-30대가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거치며 점차 보수화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진보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대로 윗세대의 구조에 순응하게 내버려 두어선, 진보에 승산은 없다. 현 구도를 바꾸려면 세대갈등에 반드시 불을 지펴야 한다. 도대체 약자인 젊은 세대를 대변하지 않는다면 진보의 존재 이유란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들의 가치를 설명해 내지 못하는 진보가 무슨 수로 집권한다는 말인가?

1차 분배구조의 개선은 2-30대 젊은 세대에게 주목을 받을 것이다. 이것을 보수만큼이나 반대할 세력이 있을 텐데, 바로 기득권 세력이다. 진보에서도 기득권을 지닌 이들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이 1차 분배구조의 개선은 분명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기회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연이어 복지를 향한 연쇄작용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진보는 이제 세대갈등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지닌 기득권을 이들을 위해 내려놓을 준비를 해야 한다. 비록 그것이 피를 흘리며 쟁취한 것일지라도. 대의를 위한 고귀한 희생이라고 생각하자. 진보가 이 젊은 세대를 붙잡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 그리고 젊은 세대를 훌륭하게 아우르는 쪽이(좌파든 우파든) 앞으로는 진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