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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환속한 전직 카톨릭 수사와의 인터뷰입니다. 문자에서 벗어나세요, 명상을 하면 예수가 더 잘 보입니다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918944&ctg=1701
명상이 어떻게 불교적이지 않냐고 흐강님이 말씀하시던데 제 경험으론 참선이나 명상은 꼭 불교도여야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끈기와 노력이...흠흠...
제가 인상적인 구절은 이 부분입니다. -예수는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리스도교는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아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선 아버지께 갈 자가 없다’고 하셨다. ‘나를 통하지 않고선’은 ‘길과 진리와 생명을 통하지 않고선’이란 뜻이다. 그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삶을 살 때 아버지께 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스도교는 닫힌 종교가 아니다.”
처음 접한 해석입니다. 제 주변에 이렇게 이야기하는 기독교인이 많았으면 기독교에 대한 제 반감이 훨씬 덜했을 것을...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주류는 이와 전혀 상반되는 걸로 압니다.
그 다음은 백선엽 회고록입니다. http://news.joinsmsn.com/article/029/4919029.html?ctg=
... 버크는 한동안 말을 끊었다가 마침내 자신이 내게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를 이렇게 꺼냈다. 나름대로 오래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한번 입을 열더니 일사천리(一瀉千里)로 말을 이어갔다.
“백 장군, 내 말은 한국인이 이제 휴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그 점을 한국인이 받아들이고 나서 다음 단계의 대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나는 한국의 앞날이 정말 걱정입니다. 이 상태 그대로 휴전만 찾아온다면 한국의 미래는 정말 어둡습니다.”
그런데 그의 태도는 매우 집요하다고 할 정도로 끈질겼다. 내 머릿속으로는 ‘버크 제독이 왜 이러나’라는 의아심이 들 정도였다.
버크는 이어 “백 장군, 이번 미국 방문 길에 반드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고 가도록 하시오. 지금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휴전협정을 조속히 마무리하려고 서두르고 있습니다. 휴전 전에 당신네 나라가 얻을 게 있으면 얻어야지, 휴전이 끝난 뒤에는 그마저도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점이 궁금했다. “무엇을 어떻게 얻어내야 한다는 말입니까?” 내가 그렇게 물었다.
버크는 나의 그 말에 “가장 먼저 거론해야 할 사안이 한국과 미국의 상호방위조약”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가 꺼낸 ‘상호방위조약’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우선 이승만 대통령은 6·25 개전 초반의 급한 상황을 막은 뒤 여러 채널을 통해 미국에 한국의 항구적인 안전보장, 즉 상호방위조약 등에 관심이 있는지를 떠봤다. 그러나 미국은 한사코 그런 조약을 한국과 체결할 수는 없다는 대답을 한국에 보내왔다. 그럴 의향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던 것...
백선엽의 회고를 모두 믿을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공을 좀 더 크게 보이려는 욕심도 작용하겠지요. 그렇지만 일단 오늘 기사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이승만 정부는 한미 상호 방위 조약에 대해 뚜렷한 전략을 갖고 있지 못했다이고 미국은 한국이 북침을 계획하거나 휴전을 반대하는 한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해 줄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죠. 또 하나는, 제 상상입니다만, 버크가 백선엽을 만나 충고하는 과정이 미 행정부의 공작일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만...이건 곁가지이니 생략하고.
지금까지 우파 역사학자들은 리승만의 최대 업적중 하나로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꼽았습니다. 휴전 반대나 북침설 등은 바로 그 조약을 얻기 위한 일련의 작전이었다고 주장해왔지요. 그렇지만 위의 백선엽 회고를 보면 당시 한국 정부는 휴전 반대에만 몰두했을 뿐, 방위 조약 추진에 대해선 별 계획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미국 측이 한미 조약을 지렛대로 이승만의 대책없는 북침 주장을 봉쇄하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됐든 결과가 같으니 그게 그말 아니냐고 할 지 모르지만 이건 다릅니다. 즉, 미국이 방위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휴전 반대 였다면 이승만의 휴전 반대론은 당시의 국제 정세조차 파악하지 못한채 불필요한 피만 흘린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저는 이승만이 한미 상호 방위조약을 위해 북침 및 휴전 반대 주장을 활용했다는 실증적 증거를 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있다면 좀 알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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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918944&ctg=1701
명상이 어떻게 불교적이지 않냐고 흐강님이 말씀하시던데 제 경험으론 참선이나 명상은 꼭 불교도여야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끈기와 노력이...흠흠...
제가 인상적인 구절은 이 부분입니다. -예수는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리스도교는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아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선 아버지께 갈 자가 없다’고 하셨다. ‘나를 통하지 않고선’은 ‘길과 진리와 생명을 통하지 않고선’이란 뜻이다. 그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삶을 살 때 아버지께 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스도교는 닫힌 종교가 아니다.”
처음 접한 해석입니다. 제 주변에 이렇게 이야기하는 기독교인이 많았으면 기독교에 대한 제 반감이 훨씬 덜했을 것을...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주류는 이와 전혀 상반되는 걸로 압니다.
그 다음은 백선엽 회고록입니다. http://news.joinsmsn.com/article/029/4919029.html?ctg=
... 버크는 한동안 말을 끊었다가 마침내 자신이 내게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를 이렇게 꺼냈다. 나름대로 오래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한번 입을 열더니 일사천리(一瀉千里)로 말을 이어갔다.
“백 장군, 내 말은 한국인이 이제 휴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그 점을 한국인이 받아들이고 나서 다음 단계의 대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나는 한국의 앞날이 정말 걱정입니다. 이 상태 그대로 휴전만 찾아온다면 한국의 미래는 정말 어둡습니다.”
그런데 그의 태도는 매우 집요하다고 할 정도로 끈질겼다. 내 머릿속으로는 ‘버크 제독이 왜 이러나’라는 의아심이 들 정도였다.
버크는 이어 “백 장군, 이번 미국 방문 길에 반드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고 가도록 하시오. 지금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휴전협정을 조속히 마무리하려고 서두르고 있습니다. 휴전 전에 당신네 나라가 얻을 게 있으면 얻어야지, 휴전이 끝난 뒤에는 그마저도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점이 궁금했다. “무엇을 어떻게 얻어내야 한다는 말입니까?” 내가 그렇게 물었다.
버크는 나의 그 말에 “가장 먼저 거론해야 할 사안이 한국과 미국의 상호방위조약”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가 꺼낸 ‘상호방위조약’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우선 이승만 대통령은 6·25 개전 초반의 급한 상황을 막은 뒤 여러 채널을 통해 미국에 한국의 항구적인 안전보장, 즉 상호방위조약 등에 관심이 있는지를 떠봤다. 그러나 미국은 한사코 그런 조약을 한국과 체결할 수는 없다는 대답을 한국에 보내왔다. 그럴 의향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던 것...
백선엽의 회고를 모두 믿을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공을 좀 더 크게 보이려는 욕심도 작용하겠지요. 그렇지만 일단 오늘 기사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이승만 정부는 한미 상호 방위 조약에 대해 뚜렷한 전략을 갖고 있지 못했다이고 미국은 한국이 북침을 계획하거나 휴전을 반대하는 한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해 줄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죠. 또 하나는, 제 상상입니다만, 버크가 백선엽을 만나 충고하는 과정이 미 행정부의 공작일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만...이건 곁가지이니 생략하고.
지금까지 우파 역사학자들은 리승만의 최대 업적중 하나로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꼽았습니다. 휴전 반대나 북침설 등은 바로 그 조약을 얻기 위한 일련의 작전이었다고 주장해왔지요. 그렇지만 위의 백선엽 회고를 보면 당시 한국 정부는 휴전 반대에만 몰두했을 뿐, 방위 조약 추진에 대해선 별 계획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미국 측이 한미 조약을 지렛대로 이승만의 대책없는 북침 주장을 봉쇄하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됐든 결과가 같으니 그게 그말 아니냐고 할 지 모르지만 이건 다릅니다. 즉, 미국이 방위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휴전 반대 였다면 이승만의 휴전 반대론은 당시의 국제 정세조차 파악하지 못한채 불필요한 피만 흘린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저는 이승만이 한미 상호 방위조약을 위해 북침 및 휴전 반대 주장을 활용했다는 실증적 증거를 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있다면 좀 알려주시길.
2011.01.13 07:33:58
이미 지난 5일 조계종 국제선센터 내 금차선원(今此禪院)에서 '가슴을 열어 빛을 보다'라는 주제로 종교 간 대화 나눔을 가졌습니다
주로 진보적 개신교 신학자들이 참석하였는데요
저분은 전형적인 종교 다원주의자입니다
사실상 저분은 기독교인도 되고 불교인도 되고 힌두교인도 되는 사람입니다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정한 인간의 목표 평화나 행복 또는 외형적인 도덕등을 가지고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이를 추구하니
길이 어디던지 정상은 같다라는 주장을 하지요
한라산을 어리목으로 가나 성판악으로 가나 백록담을 볼수 있다는 것인데요
기독교에서는 그 산이 한라산이 아니라 백두산이면 어리목이던 성판악이던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일반 비신자들이 혼동하는건 이해가 갑니다
이웃사랑하라 효도하라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뭐 이런 윤리적인 것이 같기 때문에 종교는 하나다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교는 아니지요
종교는 긍극적 실재 더 나아가 인간의 존재와 실존을 찾는 물음입니다
따라서 그 길은 하나가 될 수 밖에 없지요
불교에서는 창조주가 없습니다
불교는 인간과 삶을 고해의 바다로 보고 그러한 삶이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봅니다
즉 윤회가 인간의 존재 방식이고 그러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고 해탈은 대표적인 정상입니다
그리고 해탈을 하려면 첫째 탐 ,진,치의 미망을 깨야하고 분별을 없애야 하며 마침내 자신을 잊어버리는 경지에 들어가면 적멸하여 완전한 무의 세계로 들어가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에 비해 기독교는 인간은 신에게 죄를 짓고 쫒겨났기 때문에 신에 의한 죄의 용서와 구원이 필요하고
신은 용서하기 위한 과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함으로 대속하였다고 봅니다
따라서 애초에 자신의 선행이나 노력 수련에 의한 구원이 불가능합니다
선행이나 수련은 구원 받은자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요 구원의 결과일 뿐입니다.
예수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한것을 그냉 추상적으로 진리나 생명 이런것으로 퉁치는 것은 기독교나 예수를 자기마음대로 가져다 해석하는 오만입니다
그리고 그게 진보적인 기독교에서는 이미 그렇게 해석하던 일인 것이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저 말 씀을 해석하려면 구약부터 신약의 예수님의 다른 말씀과 통일. 조화를 살펴서 해석해야 억지나 내 마음대로 해석이 아닌 것입니다
이미지 너머에 있는 의미를 누가 몰라서 그런것 안하는것 아닙니다
성경의 시작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됩니다
이게 그냥 첫머리를 써 놓은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며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불교와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왜 다른 것을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데 굳이 같다고 우기고 사람들은 그것이 맞다고 박수를 치는 것일까요?
사람이 공통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너와 내가 다르듯이 종교에도 공통점과 다른점이 있습니다
그걸 핵심조차도 같다고 더더욱 성경구절 하나 달랑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서 이건 말이 아니지요
그리고 기독교에는 관상기도 (침묵기도) 라는 명상방법이 있습니다
왜 기독교인이 불교적인 선이 안되느냐면 명상에 있어서 기독교인은 자신을 비우되 하나님이 그 안을 차지하는 것이지
빈자리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선은 자신을 비우고 그 빈자리를 그대로 남기는 것이지요
성경에서 예수님은 그 빈자리에 주인이 없으면 마귀가 더 센놈이 온다고 했답니다
주로 진보적 개신교 신학자들이 참석하였는데요
저분은 전형적인 종교 다원주의자입니다
사실상 저분은 기독교인도 되고 불교인도 되고 힌두교인도 되는 사람입니다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정한 인간의 목표 평화나 행복 또는 외형적인 도덕등을 가지고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이를 추구하니
길이 어디던지 정상은 같다라는 주장을 하지요
한라산을 어리목으로 가나 성판악으로 가나 백록담을 볼수 있다는 것인데요
기독교에서는 그 산이 한라산이 아니라 백두산이면 어리목이던 성판악이던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일반 비신자들이 혼동하는건 이해가 갑니다
이웃사랑하라 효도하라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뭐 이런 윤리적인 것이 같기 때문에 종교는 하나다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교는 아니지요
종교는 긍극적 실재 더 나아가 인간의 존재와 실존을 찾는 물음입니다
따라서 그 길은 하나가 될 수 밖에 없지요
불교에서는 창조주가 없습니다
불교는 인간과 삶을 고해의 바다로 보고 그러한 삶이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봅니다
즉 윤회가 인간의 존재 방식이고 그러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고 해탈은 대표적인 정상입니다
그리고 해탈을 하려면 첫째 탐 ,진,치의 미망을 깨야하고 분별을 없애야 하며 마침내 자신을 잊어버리는 경지에 들어가면 적멸하여 완전한 무의 세계로 들어가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에 비해 기독교는 인간은 신에게 죄를 짓고 쫒겨났기 때문에 신에 의한 죄의 용서와 구원이 필요하고
신은 용서하기 위한 과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함으로 대속하였다고 봅니다
따라서 애초에 자신의 선행이나 노력 수련에 의한 구원이 불가능합니다
선행이나 수련은 구원 받은자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요 구원의 결과일 뿐입니다.
예수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한것을 그냉 추상적으로 진리나 생명 이런것으로 퉁치는 것은 기독교나 예수를 자기마음대로 가져다 해석하는 오만입니다
그리고 그게 진보적인 기독교에서는 이미 그렇게 해석하던 일인 것이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저 말 씀을 해석하려면 구약부터 신약의 예수님의 다른 말씀과 통일. 조화를 살펴서 해석해야 억지나 내 마음대로 해석이 아닌 것입니다
이미지 너머에 있는 의미를 누가 몰라서 그런것 안하는것 아닙니다
성경의 시작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됩니다
이게 그냥 첫머리를 써 놓은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며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불교와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왜 다른 것을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데 굳이 같다고 우기고 사람들은 그것이 맞다고 박수를 치는 것일까요?
사람이 공통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너와 내가 다르듯이 종교에도 공통점과 다른점이 있습니다
그걸 핵심조차도 같다고 더더욱 성경구절 하나 달랑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서 이건 말이 아니지요
그리고 기독교에는 관상기도 (침묵기도) 라는 명상방법이 있습니다
왜 기독교인이 불교적인 선이 안되느냐면 명상에 있어서 기독교인은 자신을 비우되 하나님이 그 안을 차지하는 것이지
빈자리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선은 자신을 비우고 그 빈자리를 그대로 남기는 것이지요
성경에서 예수님은 그 빈자리에 주인이 없으면 마귀가 더 센놈이 온다고 했답니다
2011.01.13 14:26:16

뭐, 그럼 제가 보기에 그렇다고 하죠. 그게 큰 문제가 되는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도 죄인이니 뭐니 하면서 구원해줘야 한다고 덤벼드는 사람들을 보면 뭐하는 사람들인가 할때가 많습니다. 어쩌다 전도주간에 교회에가면 '예수를 강권'하라니 '예수의 군대'가 어쩌고 하는 목사님의 설교가 참으로 섬득하게 들리곤 합니다.
제가 지은죄가 있다면 그건 제것이고 누가 대신해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노래 하나 생각나네요. Patti Smith의 데뷰 음반에 실린 곡입니다. 곡 도입부가 이렇게 시작합니다.
Jesus died for somebody's sins but not mine
Meltin' in a pot of thieves
Wild card up my sleeve
Thick heart of stone
My sins my own
They belong to me, me
제가 지은죄가 있다면 그건 제것이고 누가 대신해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노래 하나 생각나네요. Patti Smith의 데뷰 음반에 실린 곡입니다. 곡 도입부가 이렇게 시작합니다.
Jesus died for somebody's sins but not mine
Meltin' in a pot of thieves
Wild card up my sleeve
Thick heart of stone
My sins my own
They belong to me, me
2011.01.13 09:55:19
다른 이야기지만 백선엽 회고도 말이 좀 있더군요. 이 내용과 관련된건 아니고..
자기 공치사나 과오를 덥으려는 면이 있다는..뭐 회고나 자서전같은게 다 그런거긴 하지만서도...
2011.01.13 10:23:33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오만할 수밖에 없는 종교입니다.
유일신을 믿고, 야훼 하나님이 아닌 모든 신은 미신으로 처단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게 기독교의 근본원리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본원리를 수정하지 않는 한 타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습니다.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불교나 천주교 등 다른 종교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그들의 종교관을 인정해주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고, 이 때문에 하나님을 통한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절대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독실한 기독교인들의 대다수는 모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종교인들이나 비종교인들이 기독교의 배타성을 공격해도 기독교인들이 눈하나 깜박하지 않는 것은, 종교적 배타성이 부끄럽거나 치유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기 믿음의 확실한 근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결국은 기독교가 배타적 유일신론은 버리지 않는 한, 타종교와의 융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사에 나온 교수 같은 분들이 예전보다는 많아졌지만 절대로 그들이 기독교의 주류세력은 될 수 없다는 것이죠...
2011.01.13 12:15:10
“아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선 아버지께 갈 자가 없다’고 하셨다. ‘나를 통하지
않고선’은 ‘길과 진리와 생명을 통하지 않고선’이란 뜻이다. 그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삶을 살 때 아버지께 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스도교는 닫힌 종교가 아니다.”
"뭐든지 물어보세요! 없는 것 빼고 다 있습니다."
? -_-a
2011.01.13 13:20:16

궁금해서 질문하는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마귀는 종교적으로, 신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나요? 독실한 기독인들이 검사나 판사가 되면 죄를 저지른 마귀를 소환하여 처벌하는 건가요? 안타깝게도 그런 건 하나님의 전속적 재판관할권에 속하나요?
딱딱한 법이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게 있는데, 철저한 무신론적인 관점으로 일관한다는 것입니다. '사망한 자'는 더 이상 법률행위의 주체가 아니며, 예를 들어 제소전에 피고가 사망했는데 재판을 한 경우라면 상소나 재심도 필요없는 무효인 재판으로 처리합니다.
(추가; 속세의 법률이 무신론에 철저하다고 했는데, 사자명예훼손과 같은 예외인 듯한 것이 있기는 합니다. 통설이나 판례는 '역사적 가치'로서의 사자의 명예를 보호하는 규정이라고 하여 다소 모호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일본 판례에 의하면, 사자의 인격권 침해는 ⓐ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그 친족이나 자손의 사자에 대한 경애추모의 정 등 인격적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와 ⓑ 사자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그에 의해 근친자의 명예를 훼손하게 되는 경우로 나누어 책임을 묻습니다. 일본 판례는 이 규정을 '사자의 법익'을 위한 규정이 아니라 '친족, 자손, 근친자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으로 보는 것이죠. 개인적 법익을 보호하는 규정으로 이 조항을 존속시키려면 일본 판례의 해석이 십분 타당하죠.)
그런데 만약 여기에 영혼이니 마귀니 하나님이니 하는 개념이 들어온다면, 세상은 어찌 돌아가게 될까요? 죽어도 상속도 안되고, 무당을 통해 죽은 영혼의 대리인이 법률행위를 대신하여 저당권을 행사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하거나 대통령 선거에 투표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선량한 인간을 괴롭히는 악령을 물리치는 고스트버스터는 경찰조직에 편입되는 걸까요?
종교적인 신념이 강해지면, 하나님이나 그 밖에 종교인들이 모시는 신들의 법을 속세에도 적용하게 되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그 이유는 뭔가요? 신이 직접 관여하는 법칙과 그 적용제외 영역인 속세의 법칙이 구별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논어에서, 공자께서는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하면 지혜롭다 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 구절을 보면 그는 원시적인 종교, 미신의 영향을 완전히 배척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생활의 지혜'는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딱딱한 법이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게 있는데, 철저한 무신론적인 관점으로 일관한다는 것입니다. '사망한 자'는 더 이상 법률행위의 주체가 아니며, 예를 들어 제소전에 피고가 사망했는데 재판을 한 경우라면 상소나 재심도 필요없는 무효인 재판으로 처리합니다.
(추가; 속세의 법률이 무신론에 철저하다고 했는데, 사자명예훼손과 같은 예외인 듯한 것이 있기는 합니다. 통설이나 판례는 '역사적 가치'로서의 사자의 명예를 보호하는 규정이라고 하여 다소 모호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일본 판례에 의하면, 사자의 인격권 침해는 ⓐ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그 친족이나 자손의 사자에 대한 경애추모의 정 등 인격적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와 ⓑ 사자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그에 의해 근친자의 명예를 훼손하게 되는 경우로 나누어 책임을 묻습니다. 일본 판례는 이 규정을 '사자의 법익'을 위한 규정이 아니라 '친족, 자손, 근친자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으로 보는 것이죠. 개인적 법익을 보호하는 규정으로 이 조항을 존속시키려면 일본 판례의 해석이 십분 타당하죠.)
그런데 만약 여기에 영혼이니 마귀니 하나님이니 하는 개념이 들어온다면, 세상은 어찌 돌아가게 될까요? 죽어도 상속도 안되고, 무당을 통해 죽은 영혼의 대리인이 법률행위를 대신하여 저당권을 행사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하거나 대통령 선거에 투표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선량한 인간을 괴롭히는 악령을 물리치는 고스트버스터는 경찰조직에 편입되는 걸까요?
종교적인 신념이 강해지면, 하나님이나 그 밖에 종교인들이 모시는 신들의 법을 속세에도 적용하게 되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그 이유는 뭔가요? 신이 직접 관여하는 법칙과 그 적용제외 영역인 속세의 법칙이 구별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논어에서, 공자께서는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하면 지혜롭다 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 구절을 보면 그는 원시적인 종교, 미신의 영향을 완전히 배척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생활의 지혜'는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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