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좀 가벼운 마음으로 쓰고자 합니다. 덩달아 글까지 좀 가벼워질 것 같습니다.
또한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이번 글은 전혀 논리와는 '무관'합니다. 그냥 개인적인 감상 정도로 읽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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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요 근래 계절학기가 시작되기까지 조금 시간이 비어서, 오랜만에 '행동의 자유'라는 걸 만끽해 보았습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결국에는 저같은 녀석이 할 일이란 게 별로 없다는 걸 깨닫고 반디앤루니스나 교보문고 같은 데나 다녔지만 말이죠. 그러다가 며칠 전에 <한겨레>에서 박노자 씨 신작이 나왔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나서, 기분 전환 겸 일단 한 권을 샀습니다. 책 제목은 역시 그 분답게 섹시합니다.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라니.

1. 박노자 씨 글은, 어쨌거나 묘한 외부 시선 마케팅(?)의 효과인지는 몰라도, 다른 시사평론서에 비해 왠지 흥미유발요소가 많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글을 참 읽기 쉽게 쓰는 장점도 있지요. 그런고로 이 분이 주장하는 내용은 그 골자가 너무 선명해서 읽을 내용을 '미리 알고' 읽게 된다는 점이 문제이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이 분의 다른 책을 몇 권 읽어봤다면 대략 유추가 가능한 내용이라, 추가로 논의할 바가 별로 없기 때문에 그냥저냥 흘려 읽었습니다.(원래 이 책의 리뷰를 쓰려고 했으나...-.-; 그래도 약간 적극적으로 '혁명론' 비슷한 것을 주장하긴 하더군요.) 다만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부쩍 '요즘 젊은이' 들에 대해 할애한 분량이 늘어났다는 것을 느꼈다는 점입니다. 제가 최근에는 이 분의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그런지, 혹은 제가 당사자적 자각을 토대로 읽어나가서 그런지는 몰라도요.

2. 저는 중간중간의 그 대목들을 읽으면서,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낙관적인가, 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다른 정당이나 정치인에게는 그렇게도 딱지 붙이기 좋아하시는 분이 대선에서 20대의 민노당 지지율(3.5%)과 20대의 한나라당 지지율(42.5%)을 대비시키면서 '그래도 그들을 보수로 규정하기는 어렵다'(37p)는 주장을 하는 것이 어딘가 모순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20대라는 '단일체'를 가정하는 것은 당사자인 저로서는, 혹은 그들로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확실히 '20대가 어쨌거나 대체로 보수화되었다'는 말은, 논의의 서두에 던져놓아야 할 명제입니다.

3. 저희 학교는 서울대는 아닙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명문대'라고 불리는 학교, 즉 사회적 책임의식도 그만큼 강해야 할 학교이고, 최근까지도 '운동권'이 총학생회에 남아 있는 학교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쨌건, 학생들의 대다수는 단적으로 말해 '별 생각이 없습니다'. 최근에 학생들 주도로 시국선언을 할 때, 참여한 학생 수가 50명 남짓을 헤아리더군요. 그나마 대강 반 정도는 총학 관계였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저는 멀찍이 지켜보다가 너무 처량해서 그냥 돌아왔습니다. 홍보도 별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지금은 학생 시국선언을 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이들이 대다수일 겁니다. 어쨌거나, 대부분의 학생들의 관심은 다른 데 있으니까요.

4. 최근에 김용민이란 분이 20대를 비판하는 글을 기고해서("너희에겐 희망이 없다") 꽤나 논란이 되었다는 사실은 다들 기억하시겠지요. 이 글의 가치가 어떻고, 반응이 어떻고 하는 것은 너무 전형적이고 예측 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이기 시시콜콜 토를 달 생각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박노자 씨가 이런 20대에 희망을 걸고 있는데, 그 희망이 너무 대단(?)해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라는 겁니다.

…20대들이 더 이상 절망감 이외에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사회에서 "본질적으로 다 갈아보자!"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65p); …젊은이들에게 이제는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는 결함투성이의 사회경제적 체제를 가진 대한민국에서 그리스 식 '젊은이 반란'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조직화된 노동계급이 젊은이들과 같이할 수 있다면 이 반란은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306p)

저를 포함해서 20대 전반을 규정짓는 흐름에 관해서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절망감을 느낀다는 박노자 씨의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그들의 절망이 향하는 곳에 대해서는 헛다리를 짚었습니다. 그들의 절망은 '분노'를 산출하지 않습니다. 이 '절대명제로서의 절망'은 다시 '절망들'이라는 키치 담론들만을 재생산하며 냉소를 흩뿌릴 뿐입니다.

5. 그들은 '이명박'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명박을 싫어하는 현상은, 마치 몇 년 전 네티즌들이 '문희준'을 싫어하는 것과 비슷한 층위를 형성합니다. 어쨌거나 이명박이라는 사회적 '쥐'의 대변자에게 똥오줌을 쏟아부음으로써, 그들은 식은땀 이면의 키치적 당당함이라는 자기만족을 얻을 뿐입니다. 마침내 정치현상학은 키치-학문의 세계로 편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절망을 보편자로서 인식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취업 담당관에게 내놓기 위한 '스펙'을 쌓으러 가야지요. 그런데 이 현상을 비판하고 때로는 비난하는 것마저 키치적 관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이제 의미 차원에서의 진정성을 스스로 말하지 않으며 말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이 때 이 현상 자체는 안전한 공터로 도주해 숨게 됩니다. 완전범죄.

6. 그러나 어쨌건, 그들은 절망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 생산된 절망은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치 무역수지 적자를 메꾸기 위한 자본수지 흑자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 아쉽게도, 외부로 향하지 않고 안쪽으로 고여서 차곡차곡 쌓인 절망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은 그저 정액이 쌓이면 배설구를 찾아야 하는 많은 청소년처럼 '자위'에 머물 뿐입니다. 누군가는 정말 '쎾쓰'와 관련된 곳에서 이 절망을 해소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단층적인 절망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의 절망은 좀더 복합적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지적 자위를 열심히 해서, 학기말 리포트에 '아도르노,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를 인용하고 A+ 학점을 받습니다. 그 담론이 실질적으로 저항적이든 개뿔이든 그(녀)는 관심이 없고, 어쨌든 단지 글로써 그(녀)는 키치적 지위를 얻습니다. 자네처럼 의식 있는 학생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구만. 이 '클래스'는 희귀종이기 때문에, 전직을 위해서 많은 학생들을 모을 유인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똑똑해집니다. 글을 잘 씁니다. 머리가 좋습니다. 수학 문제를 잘 풉니다. 당장 맑스의 재생산표식이나 오키시오 정리에 관해 소논문 20쪽을 쓰라고 해도 써 낼 '철학과 학생' 혹은 '수학과 학생'이 수두룩할 겁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자뻑'을 합니다. 아, 나는 정말 의식 있는 새 시대의 지식인.

7. 사실 그런 거 없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갖는 모순적인 지위는, 단지 그들이 서 있는 자리가 386세대의 피땀으로 이루어져서가 아닙니다. 대체로, 현 세대의 학생들이 공부를 못 한다거나 책을 안 읽는다는 관찰은 피상적인 데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인텔리겐치아는 언제나 소수였고, 그래서 그들은 '나로드'를 요구하기 때문이죠. 그들은 그렇게 '촛불'을 듭니다. 사회 문제를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항상 합리적으로 생각하려 합니다. 386의 패거리 문화, 권위주의, 변절은 오랜 클리셰입니다. 최근에는 우석훈 씨의 88만원 세대 담론도 여기에 한몫 하는 것 같더군요. 그러나 어쨌건, 그들은 스펙을 쌓습니다. 그것도 아주 잘 쌓습니다. 저도 잘 쌓습니다. 아, 글 쌌습니다.

8. 이런 점에서 좀 뜬금없지만, 저는 최근의 '인터넷 만화'에 관해 짤막하게 언급하고자 합니다. 요즘, 엄청난 속도의 인터넷과 초현대적 사이버 문화를 통해서 인터넷 만화가 막대한 양으로 창작되고 공유되고 자발적 비평이-주로 댓글을 통한- 생겨나는 문화는 마치 20세기 전반기의 미술사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죠. 제목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저는 '병맛' 현상에 관해 주로 언급하고자 합니다.

9. '병맛'은 디씨인사이드를 통해 주로 유통되는 인터넷 신조어의 한 종류입니다. '병신같은 맛'의 준말이지요. 말 그대로 '병맛'이라고 지칭하는 문화 컨텐츠-주로 인터넷 만화-를 접하다 보면, 정말 내가 이걸 왜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병맛의 핵심입니다. 병맛의 필수조건은, 아무런 담론 결정력이 없으며, 다만 약간의 유머와 문화 요소(이런 면에서 병맛 유행은 굉장히 아즈마 히로키적인 현상입니다)를 담고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내적인 완결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겁니다. 서사가 없는 병맛은 절대적으로 권장되지만, 정합성이 없는 병맛은 병맛이 아닙니다. 그것은 '배설'입니다.

초기의 병맛 문화를 주도했던 '잉위'의 '죤의 하루'.

믿기 힘드시겠지만, 위의 만화를 그렸던 '잉위'라는 작가는 한때 디씨인사이드 카툰 갤러리를 거의 장악하다시피 하였고, '본좌'로 추앙받았습니다. '병신같지만 멋있어', '조..좋은 병맛이다' 등의 댓글 관용구(?)가 이때 생겨났지요.

그 외의 초기 병맛 만화- '본격 행군만화'

10. 병맛 만화를 볼 때 '그림을 얼마나 잘 그리느냐'는 중요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이상한 취급을 받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현상은 공개성이 높은 커뮤니티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일반 청년들(당연하지만, 디씨를 이용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1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젊은 연령층입니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기폭제 역할을 합니다. 이와 같은 구도는 마치 미술사에서 '재현의 붕괴'와 '열린 미술'을 연상하게 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예술사조는 '기댈 구석'이 없는 근대인들에 의한 실존적 불안을 반영하는 측면이 많다는 점에서 생각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그때, 예컨대 입체파나 야수파, 표현주의가 기세를 떨쳤던 때에, 얼마나 많은 근대적 신념들이 깡그리 파괴되었고 그 토양 위에서 신미술의 개화가 진행되었는지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새로운 '병맛 현상'은 그것이 대중성을 띤다는 점에서 청년 세대를 통한 자발적 모더니즘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방황하는 개인과 그 분열이 드디어 20대의 클리셰가 되고 대중'문학'의 소재가 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11. 나아가 병맛 현상은 진화하여 숙성기를 겪습니다. 그럼에 따라서 다종다양한 '유파'가 생겨납니다. 이때 생겨나게 되는 특질들 또한 흥미롭습니다. 물론 아직 지나치게 포스트모던한 작품은 환영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거의 확실해져가는 것은, 최근의 병맛 만화에서는 그 스토리가 단지 '정합성'을 가짐을 넘어서서 거의 '내적 신세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 또한 모더니즘의 전형적 특징입니다. 고전적 구조를 전부 파괴해나가면서도, '의미'의 끈만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놓지 않으려는. 절망은 마침내 하나의 쓰레기 매립지를 파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자신의 정액들을 토해내야만 풀릴 정도로 욕구불만이 쌓인 거지요. 그것이 정말 자신의 '의미'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드디어 과열된 절망의 해소 과정은 분노가 아니라 '고도'를 불러오게 된 겁니다. 고도는 오지 않고, 분노는 그보다 더 요원합니다.

- '이말년'의 '비트박스 바이러스''굽시니스트'의 '귀두기어스'. 이 계열의 작가들은 대체로 전통적인 만화 작법과의 연결고리를 많이 유지하고, 주로 전통적인 형식으로 패러디, 해학, 때로는 사회 비판을 만화에 담아냅니다.
- '겸디갹'의 '마파두부''산낙지 잘 먹는 애기'. 이 계열의 작가들은 '자신'의 사적 이야기와 세계를 창안하는 데에 집중하며, 가급적 그 세계 속에서 극도의 리얼리즘적 가-서사를 추구합니다. 사회 비판인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정작 작가 자신은 별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 '솔스'의 '삼성 또 하나의 가족-섹스왕의 습격''마사토끼'의 '행복이론'. 이 계열의 작가들이 가장 '병맛'의 본질에 가까운데, 이들의 등장인물들은 굉장히 진지하며 또한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 감상자와의 틈새에서 소격 효과를 발생시킵니다. 당연히 이것은 의도된 것입니다.

12.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인터넷만화의 전체 판도를 놓고 볼 때 아직 '병맛' 현상은 판 전체를 뒤집을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병맛의 외부는 모두 대중예술 혹은 키치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컨대 최규석의 100˚C와 같은 만화는 20대에게 여전히 열렬한 호응을 얻습니다. 실제로 만화 자체도 6월항쟁에 대해 약간 유치하지만 강렬한 파토스를 담고 있고, 전통적인 기법에 충실하며, 따라서 흥행 조건이 완벽합니다. 이 만화를 보면서 10대와 20대는 눈물을 흘리고, 그리고, 싹 잊습니다. 결국 웰-메이드 키치이기 때문입니다.

p.s. 쓰기 전에는 약간 더 진지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쓰고 나서 보니 이 글은 자유게시판에 더 적합해 보이네요. -_-;;
일단 올렸기 때문에 놔 둡니다만.. 관리자님께서 그렇게 판단되시면 옮겨 주세요.

Sicut erat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