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등. 인류사의 오랜 이념 투쟁의 핵심 주제어다. 이 두개의 개념은 과연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서로 대립하는 개념일까? 아니면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한쪽이 제한되면 다른 측면도 달성할 수 없는 서로 상보적인 관계일까.

바둑이라는 동양의 오래된 게임이 있다. 돌의 색깔을 흑과 백으로 나누어 빈 공간에서 누가 더 많은 땅을 차지하는가 를 경쟁하고, 그 과정에 갈등 싸움 타협이 복잡하게 어우러져 흔히들 인생의 축소판이라 부르는 게임이다. 그 룰은 매우 간단해서 플레이어는 흑백의 돌을 한번씩 번갈아가며 바둑판의 빈자리 아무곳에나 올려 놓는 것이 전부이다. 그럼 자유와 평등이라는 거창한 이야기를 하면서 왜 필자는 바둑이라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을까? 

바둑에서 플레이어는 매우 자유롭다. 그는 자신의 돌을 바둑판의 빈자리 그 어느 곳이든 자신의 의지대로 놓을 수 있다. 심판과 상대 플레이어는 절대 돌의 위치를 강요하거나 간섭할 수 없다. 그 돌들이 게임의 승리에 얼마나 효율적인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책임이다.

또한 바둑에서 플레이어들은 매우 평등하다. 플레이어가 프로 기사든 갓 배운 아마추어든 오직 번갈아 한번씩 밖에 돌을 놓을 수 없다. 게임의 규칙은 이것을 어기고 두번 연속 놓거나 하는 것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바둑이라는 게임에서 이 자유와 평등은 어느 한쪽이 무시되는 순간, 게임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고 그 바둑은 파국을 맞는다. 사실 어찌보면 그 둘은 한데 엮어서 서로 구분도 잘 되지 않는 그런 개념이며, 각각을 분리한다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은 말장난일 뿐이다.

그러면 왜 인간 사회는 그 둘이 마치 대립하는 것처럼, 서로 분리해서 각각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여겨질까? 그것은 위 바둑의 모델에 비추어 본 것처럼 그저 의도를 숨긴 말장난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시 바둑으로 돌아가서, 만약 누군가 상대방이 한번 돌을 놓을때 본인은 두번 놓겠다고 주장하며 그 것을 자유라고 부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더 나아가 그런 행위를 자유 경쟁이라고 부른다면 그 말은 과연 맞는 말일까? 그러나 인간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그런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유라고 부른다.

만약 누군가 상대방이 돌을 놓는 위치를 간섭하고 강요하면서 그것을 평등이라고 부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러나 인간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그런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평등이라고 부른다. 

바둑에서 자기 차례에 두번 두거나, 상대방이 놓 곳을 강요하는 행위를 절대 자유나 평등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깽판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는 그런 깽판을 교묘하게 자유 혹은 평등이라고 바꾸어 부른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라는 괘변이 그렇고 과거 현실 사회주의 국가라고 부르던 많은 나라에서 또한 그랬다. 어느쪽이든 대다수 인간들은 그런 깽판에 그저 질식하며 고통스러워 할 뿐이었고, 그것이 근대 이후의 인류 역사였다.

현실 사회주의는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평등이라고 미화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속에 빠뜨렸다. 그들에게 공정성이란 본래적인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을 다르게 부르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망했다. 그들이 인류 역사에 기여한 것은 '인간 사회의 설계 불가능성'을 증명한 것 하나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신자유주의는, 자유 경쟁과 자생적 질서를 이야기하면서도 자본과 노동간의 자유로운 경쟁과 그에 의한 자생적 질서만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그 입으로 작은 정부를 이야기하면서도 정부가 늘 편파적인 심판이기를 바란다. 그들은 공정성이라는 이름을 교묘하게 '평등의 깽판'이라는 말로 치환하여 자신들의 책임을 현실 사회주의에 떠넘긴다.

또 다시 바둑으로 돌아가서, 결국, 문제는 공정성이다. 바둑판앞에서 자유를 자유답게 하고 평등을 평등답게 하는 것은 오로지 심판과 룰의 공정성뿐이다. 상대가 한번 놓을때 두번 놓는 행위를 심판하고, 상대가 돌을 놓을 자리를 강요하는 행위를 심판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 사회 역시 그대로 적용되는 마찬가지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럼 인간 사회에서 그 심판은 누가 되어야 할까? 아쉽게도 전능한 신이 없는 이상,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다. 정신나간 심판이 바둑을 엉망으로 만들듯이, 정신나간 민주주의는 인간 사회를 지옥으로 만든다. 지역주의, 학벌주의, 천민자본주의, 적대적 이념대립, 위선, 금권, 무관심에 찌든 한국의 민주주의는 바둑판앞의 술취한 심판과 같다.

술취한 민주주의아래 한국 사회는 성장도 분배도 번영도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는 아비규환의 바둑판과 같다. 대통령이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모르고, 국회의원이 법관이 검찰이 경찰이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나라. 양극화는 나날이 벌어지고, 민족의 평화와 통일은 점점 멀어지고, 기업가는 노동자를 쥐어 짠 수익을 주체할 수 없어 고민하고, 노동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싸우고, 자영업자는 망해가는 가게앞에서 한숨쉬고,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될까봐 걱정하고, 비정규직은 인간의 존엄을 포기해야 하며, 20대는 88만원앞에서 절망하고, 학생들은 사교육에 시들어가고, 노인들은 기생인간으로 취급받으며, 정부는 국민들에게 짜증부리고, 국민들은 정부를 증오한다. 정부는 그저 4대강 삽질의 떡고물만이 유일한 존재 이유이며, 국민들은 노동과 기술과 창의력보다 부동산값 시세에 미래를 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문제는 공정성이다. 제정신 박힌 민주주의이다. 이것을 만들지 못하면, 게임은 시작도 못하고 파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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