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게시판의 내용이 너무 딱딱하고 학회지, 아니면 대학원학회 게시판 같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따라서.... 제 블로그에서 좀 가벼운 글 가져와 봅니다. 좀 옛날에 쓴 글이라서 시기 적절하지는 않다고 보이네요. 그리고 메인게시판의 글자크기가 조금 컸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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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만화 몇편, 그리고 파시즘

제목이 좀 선정적이기는 하지만 뭐 별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일본만화, 그중에서 특히 <쿠니미츠의 정치>류의 만화 몇편를 보면서 느낀 주관적인 단상를 좀 풀어보고 싶을 뿐이다.

좀 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싶어서 부연하자면 내가 그렇게 많은 만화를 본 것은 아니므로 일본 만화 전반에 걸친 경향성을 말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다만 대중성을 얻은 작품 몇개에서 느낀 점을 술회하고 싶은데 나름대로 그만한 대중성을 얻은 작품이 표현하는 경향이 이러하다면 일본 대중에게 대략 이런 특성이 있지 않나 하는 추정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하는 이야기다.


                                                                                             <문제의 만화 쿠니미츠의 정치>

<쿠니미츠의 정치>는 일종의 정치만화다. 일본의 썩은 정치를 개혁해보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 무관심한 대중의 정치참여를 통하여 일본의 썩은 정치를 바꾸자는 이야기다. 좋다. 우선 이 만화의 논지나 전체적인 의도는 대단히 좋다고 생각한다. 소년만화에 정치를 주제로 삼는다는 발상 자체도 훌륭하다. 그런데 문제는 개혁의 방식, 그리고 그 개혁의 주체의 문제다.

쿠니미츠는 대단한 행동력과 에너지, 그래고 보통사람의 힘을 능가하는 엄청난 육체적 능력을 갖춘 캐릭터다. 반면에 지식은 박약(지능은 오히려 높은편이다)하고 감정표현은 대단히 충동적이다. 이 충동적인 감정표현때문에 항상 말썽을 일으키지만 그 말썽은 쿠니미츠가 타고난 놀라운 행운과 나이 어린 참모의 천재적인 책략으로 인해 오히려 행운으로 반전되기 일쑤다.

다시 말해 쿠미니츠는 '보통사람' 이 아니다. 그런데 가만히 이 만화의 정치인 캐릭터를 뜯어보자. 이 만화에 등장하는 정치인 중 보통사람은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사악하거나, 보통사람보다 몇배다 더 머리가 좋거나, 혹은 성인군자(쿠미니츠가 모시는 시장후보)다. 그리고 앞서말했지만 쿠미니츠는 자신의 모든 결점을 능가하는 '행운'과 '육체적인 힘' 타고난 '카리스마'를 갖춘 초인적인 캐릭터다. 지식이 좀 모라자라기는 하지만 그까이꺼 지적능력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천재적인 참모가 있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머리 좋은 인간 대부분은 나쁜 인간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물론 소수의 예외는 있다. 예컨대 쿠니미츠 측의 천재 참모라든가....

오호라.... 쿠니미츠라는 이 캐릭터, 어디서 많이 보던 인물 같지 않나? 넘치는 정의감과 애국애족의 성심을 갖추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며 작은 일에도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어떤 인물 말이다. 게다가 언제나 넘치는 힘을 주체못해서 골목대장을 도맡아 했고 전쟁 놀이만 나면 대장 노릇을 하는 인물. 전근대의 정치지도자의 전형적인 캐릭터다. 물론 근대화의 기수 박정희(혹은 다까키 마사오? 아니면 오카모도 미노루?)도 이런 캐릭터로 그려진다.

우둔하고 미련한 백성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하늘이 내린 천운을 타고난 지도자.

쿠미니츠의 정치를 가만히 뒤집어보면  일본인들이 느끼는 정치적 절망감을 읽을 수 있다. 일본의 정치는 너무나 썪어서 정상적인 정치행위를 통해서는 절대로 일본정치를 구원할 수 없다. 초인적인 정치지도자, 천운을 타고난 정치인이 있어야 이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이미지를 갖춘 정치지도자가 나타난다면 그가 좀 무식하고 감정적인고 때로는 난폭하다고 해도 대중은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줄 것이다.  그리고 파시즘은 대부분 민중의 절망감을 먹고 자라나 민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민주주의을 파괴한다.

쿠미니치류의 정서는 다른 일본만화에서도 아주 쉽게 느껴진다. 예컨대 GTO는 어떨까? 정치가 아니라 교육을 배경으로 했을 뿐 아주 유사한 캐릭터와 정서가 느껴지지 않는가? 교장의 혼잣말을 기억해 보자.

이 학원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기 위해서는 그가 아니면 안돼......


GTO, 우리나라 출시명은 <반항하지마>



왜 그가 아니면 안되지? 그는 초법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기 때문이다. 이미 썩을 대로 썩은 일본(혹은 학원)은 이미 정상적인 절차로는 자정할 수 없고 초월적인 능력을 갖춘 인물의 초법적인 행위에 의해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2차대전 전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의 언론을 한번 참고해보면 이런 논조가 얼마나 유행했는지 쉽사리 알 수 있다. 박정희때의 우리나라는 어떤가? 하늘이 내린 영도자를 기다리지 않았는가. 전두환을 칭송한 조선일보의 전두환 관련기사를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그 대머리 역시 초인이었다. 심지어 노태우 마저 어떤 신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오는 일대기를 연재한 적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태우 소년이 휘파람을 불면 어디선가 새들이 몰려와 그의 손바닥에 내려 앉아 모이를 쪼곤 했다..."

아.. 잠시 이야기가 산으로 갔다.... 워드로 치지 않고 바로 블로그에 글을 쓰면 언제나 이런 일이 발생한다....ㅋ....

아무튼 일본만화의 감상주의에서 나는 묘한 파시즘의 냄새를 맡곤한다. 물론 우리나라 만화의 감상주의, 마초주의, 학원만화의 소영웅주의등등도 유치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일본만화의 감상주의는 묘하게 그 향내가 다르다. 한국 만화의 감상주의는 유치하고 미성숙한 느낌이라면 일본만화의 그것은 어딘지 위험하고 기형적이고 병적인 구석을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다. 나의 과민반응일까?


쿠니미츠의 정치나 GTO보다 더 노골적으로 이런 성향을 드러내는 만화도 많다.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크라잉 프리맨스타일의 그림체였고 제목은 <빛과 그림자>였던 것 같다. 일본을 바꾸기 위해 두 천재 중 한명은 야쿠자가 되고 한명은 정치인이 된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최근에 나온 만화 중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는데 어릴 적 친구 몇명이 노숙자 한명을 세뇌시켜 독재자로 만들어 일본을 바꾼다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혹시 제목을 아신다면 알려주시면 감사.... 2권까지 밖에 안봐서 뒷 이야기가 궁금하군요).


일본교과서를 만드는 우익들이 앵무새처럼 말하는 이야기가 있다.

 자학의 역사관을 바꾸자!

난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일본의 문화 자체가 어딘지 매저키즘적인 경향이 있는 것만 같은데 그게 역사관에서 드러나는 것인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초인이 나타나야만 절망적인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이런 믿음이야말로 자학적인 사고 아닌가?

반대로 사실을 사실그대로 보는 것은 자학이 아니라 용기있는 행동이다. 자신이 한 과오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힘과 수용력을 갖추어야 가능한 행위다. 새교과서를 만드는 집단이야 말로 일본인을 자학적인 집단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인정할 만큼 일보인은 성숙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그런 사실을 인정한 채로 '정상국가'로 발전할 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는 것 아닌가. 그게 자학이 아니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 극우들의 외침과 일본만화의 어떤 정서가 겹치는 지점, 난 그곳이 일본문화의 가장 위험스러운 부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생각해 본다. 왜 일본인들은 저토록 자학적일까? 왜 스스로의 힘으로 정치와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 못하는 것일까? 일본 극우는 자신들이 한국을 근대화 시켰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가끔 궁금해 진다. 어쩌면 일본은 무늬만 민주주의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전근대를 사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이제서야 근대의 길로 들어서고 있지만 일본은 아직도 전근대의 뒤안길에서 스스로를 자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자학의 집단적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이 일본의 보수우경화, 극우파의 득세 아닐까.


P.S. 1 일본의 자학적인 경향은 대중소설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일본의 작가는 일본의 공산품을 무시하는 발언을 자주한다. 일본차가 세계를 석권할 때에도 일본의 첩보액션물의 작가는 일본차는 결코 독일차를 따라갈 수 없다는 말을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한다. 물론 독일차가 더 좋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일까?

P.S. 2. 또 자주 등장하는 대사인데, 세계에서 일본이 평화로운 나라라고 믿는 사람은 일본사람 뿐이다...라는 말도 자주 본 것 같다. 글쎄다... 차라리 이 말은 우리나라에서나 통용될 말이다. 일본을 일촉측발의 위험국이라고 보는 사람은 일본의 극우세력뿐 아닐까(위험국이라는 말은 자신들이 언제 전란의 피해을 입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다...아마 남들은 일본이 전란을 언제 일으킬지 전전긍긍했으면 했지 일본이 침략당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텐데....ㅋ...)?  

P.S. 3. 전의 글에서도 밝혔지만 근대화라는 것은 철학적인 테제이지 경제학의 테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철도 놓고 도로 깔고 공장 만드는 것이 근대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일전에 <근대화와 익명성>이라는 포스팅을 어느님이 올리셨는데 익명성은 또 개인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인이 탄생하지 않으면 근대는 없다. 자각하는 개인이 근대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집단주의가 강한 일본의 문화적 특성을  전근대적이 경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