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The Rhetoric of Reaction : Perversity, Futility, Jeopardy. 한국 번역판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개발경제학자인 앨버트 오 허시먼이 지었고 이근영 역,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이다.

근대 프랑스 혁명이후 진보적 변화들에 대하여 일어났던 , 그리고 현재 진행으로 벌어지고 있는 반동적인 세가지 레토릭에 대한 연구다. 보수주의(반동)의 논리가 어떻게 단순하게 구성되었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진보적 개혁들에 대해 방해공작을 펼치고, 인간 역사에 있어 진보적 개혁 정책을 무산시키며 지배계층을 욕하는듯 하면서도(무용론 테제) 실제로는 지배계층의 이익에 복무하는지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경제학자가 쓴 책이라 경제논리가 이론적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이전의 보수주의에 끊임없이 논거를 제공하는 반동적 철학자들의 담론들이 검토대상이다. 책의 전체적 수준은 평이하나 그 논리적 접근방식은 무척이나 독창적이다. 충분히 하루정도 시간을 들여 일독할만하다.




반동은 거창하게 저 멀리 명확한 논리체계를 구성하는 이론적 이데올로그들에게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 가까이 있다 너무나도 가깝게. 테르미도르의 반동은 로베스피에르 치하에서 불안한 일부 자코뱅좌파와 숙청당한 당통파 잔당들이 더 급진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상퀼로트들을 끌어들여 개혁부진의 책임을 물어 반역자로 로베스피에르를  제거한 사태인데 그 결과 로베스피에르라는 그나마 가장 적절했던 대표를 잃은 상퀼로트는 이후 권력구조에서 배제되어 몰락하고 온건파에 의한 반동이 구체화된 것을 의미한다.  그 뜨겁던 테르미도르 10일에 로베스피에르는 이전의 자기 동료들에 의해 효수된다. 

이후 프랑스 혁명은 반동시기를 거쳐 우왕좌왕하다 보나파르트에 의해 브뤼메르18일을 거쳐 다시 명목상 군주제로 복귀하지만 그렇다 해도 절대 혁명 이전과는 같을 수 없었다. 역사는 그런 것이다. 반동이 아무리 시간의 흐름을 되돌리려 하지만 결코 시간은 단 한순간 되돌려지지 않는다. 아니 인간의 의식이, 혹은 역사가 결코 되돌려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게다. 군주제로의 복귀이후 반동은 필연적으로 혁명을 다시 양산한다.48년의 2월 혁명과 71년의  파리코뮨으로.

수백년에 걸친 서구의 경험을  집약적으로 단 수십년만에 해치운 우리에게도 반동은 너무나 필수적이다. 아니 더 원초적이다.  실제적으로 식민지 시절에 등장했던  그당시로선 가장 개혁적이고 근대적이며 당대의 사조편승적이었던 이들이 자기 생전에 자기가 가장 반동적인 인물로 현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곳은 지구상에서 아마도 한국뿐이리라.결과적으로 식민지에서 식민모국에 빌붙어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던 근대적 사고를 가진 것으로 보인 이들은 결코 진정한 진보와 개혁세력이 아니었고 더구나 애국세력은 더더욱 아니었듯이 그후에 그들이 변신한   반공과 경제적 자유주의자도 이땅에서 결코 진보가 아니었다. 아니 단 한번도  진보였던 적도 없었다. 언제나 반동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포괄하는게 아니기 때문이고 경제적 자유주의를 바로 핵심적 민주주의라고 믿는 이들은 정치적 자유주의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의 언제나 경제적 자유에 도움이 된다면 정치적 독재를 용인하는 것이고 자기들의 돈벌이에 도움이 된다면 오히려 독재를 조장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자본주의 경제(자유주의경제)와 정치적 민주주의는 그다지 밀접한 관계가 없다. 경제에 있어 자유를 더욱 강조하는 자들치고 정치적 자유나 인권에 있어 반동적 사고에 경도되지 않는 자는 상당히 드물다.그들에겐 경제적 자유만이 지고지선이고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정치적 자유는 그 경제적 자유주의인  진짜 민주주의에 언제든 희생시킬 수 있는 하위 범주일뿐이다.

그래서 반동은 언제나 약삭빠르다. 소유구조와 부의 소유에 따른 경제에서 현상유지를 하려면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상 현재의 기득권 이득에 복무하는 쪽으로 논거를 구성하게 마련이다.. 그들에게 유일무이한 목표는 그들에게는 합리적인(그러나 다수에게는 불평등한) 현재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동인 것이다. 그들에겐 모든 변화는 나쁜 것이고 현재는 최선이다. 왜냐하면 현재를 유지함으로써 가장 이득을 얻는 자들이 그들이고 그게 아닌 경우는 자기가 현재를 유지함으로써 미래에 닥쳐올 환난으로부터 피하고 이득을 얻는 존재라고 정말로 착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반동이란 정말 계산이 빠른 약삭빠른 자거나 아니면 현실로부터 완전히 유리되어 망상속에 사는 자란 이야기다. 
 
말러리안은 과연 어느쪽일까? 제발 후자는 아니길 빈다. 그리고 일단 이 책을 읽기 바란다. 불쾌감을 동반한 편견으로 해서 진보에 힘을 보태는 쓰레기 같은(?) 책을 물리칠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저자는 역사의 반동들에게 그다지 경멸적인 의미를 뒤집어 씌우지 않기때문이다.그는 애초에 이념이 아니라 수사학을 연구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