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워가 한참 넷을 달구던 당시 돌아가는 상황을 매우 흥미롭게, 혹은 혼란스레 지켜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다 지난 뒤 돌아보면,

다 아시겠지만 당시 무척 혼란스러웠지요. 신화와 음모론, 평론가로 대표되는 엘리트와 대중, 충무로와 비충무로, 데우스 액스 마키나와 장르론, 평론가의 의무와 겸손함이 섞이고 충돌하고 싸웠습니다.

하나하나 짚어보죠. 논란의 시작은 무릎팍 도사에 심형래씨가 출연하며 시작했지요. (아니면 지적을) 그 프로에서 심형래씨는 어려운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까지 보입니다. 물론 결론은 고생 끝에 야심작이었고  그 내용을 채워놓은 것은 자신의 신념과 애국심 기타 등등이었죠.

사실이든 아니든 과장됐든을 떠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그는 예능 프로에 나와 재미와 감동을 통해 차기 개봉작을 홍보하려 했고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습니다. 

통상의 경우는 그냥 일부가 감동받고 끝납니다. 그 일부가 적극적인 팬으로 나서는 건 알아서 할 문제고 저같은 일부는 그러거나 말거나 취향따라 영화를 선택합니다. 예, 이렇게 끝나는게 정상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접하는 매체와 인물이란 프리즘을 거쳐 내용을 받아들이니까요. 예능프로에 홍보 목적으로 심형래가 나왔다는 전제하에 그의 발언을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인터넷 일부에서 뜻밖의 흐름이 형성됩니다. 사실은 뜻밖이 아니지요. 노무현 당선 직후부터 이어져온 일련의 흐름이 심형래와 결합해서 폭발적 양상을 보입니다. 일단 그 흐름을...음모와 기득권으로 뭉쳐 변화를 거부하는 엘리트층(실제 엘리트인지와 상관없습니다)을 타파하는 집단 지성이라고 명명해 둡시다.

그 흐름에서 바라본 심형래 건은 이렇습니다. 우선 이송희일이란 커밍 아웃 감독은 블로그에 애국심 마케팅 운운했다 분노한 네티즌의 집중 포화를 당한 끝에 블로그가 다운되는 수모를 겪습니다. 굉장히 아이러니한 사건입니다. 왜냐면 이송희일 감독은 디워파들이 공격 대상으로 삼은 충무로 주류 영화인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는 오히려 비주류 독립 영화인에 가깝고 따지면 심형래 감독보다도 충무로 주류 자본과 떨어져있습니다. 단적으로 심형래 감독의 디워는 충무로의 독점적 기업 CJ의 투자를 받았지만 이송희일 감독은 그 투자금의 1/10도 받기 어려울 겁니다.

그러면 디워 팬들의 공격은 막무가내였을까요? 예. 전 그렇다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건 제 가치관에서 그럴 뿐, 그들의 이유가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건 그들의 눈에 이송희일도 대중과 거리감이 있는 '엘리트' 영화인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커밍아웃한 소수자라는 사실조차 대중과의 거리감을 증명하는 증거였겠지요. 즉, 그들에게 '심형래를 핍박하고 무시한 충무로 주류 영화인'이란 실제의 충무로보다 그들의 감정과 판단과 거리가 있는 (그들 눈에 비친) '엘리트층'이란 허구적 이미지에 가까왔을 것이란 가정이 성립합니다. 

그러면서 디워 팬들은 - 놀랍게도 주류 충무로 자본보다 충무로에선 영화인으로 치지도 않는 평론가들을 주 타겟으로 설정합니다. 이것도 아이러니합니다.  왜냐면 실제로 영화계를 움직이는 큰손은 자본이건만 전혀 공격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영화 평론가는 90년대를 정점으로하여 인터넷이 일반화된 당시엔 거의 영향력을 상실한 계층이었습니다. 조금 과장 섞어 이야기해서 요즘 영화계에선 평론가들의 견해 따위보다 인터넷의 댓글 한줄을 더 무서워합니다.

이런 점에서 심형래를 핍박하거나 무시해온 평론가 집단이란 디워 팬들의 가설은 완전히 허구라는 결론이 충분히 성립합니다. 그들이 기득권 구세력으로 설정한 평론집단은 사실 약자에 가까왔으니 이 흐름에 대한 우려가 일어나는 것도 당연합니다. 파시즘이란 용어까지 등장해서 디워 팬들을 자극하기도 했고 잘 아시다시피 진중권은 정면에서 맞섰습니다.

개인적으로 당시 진중권의 행위를 평가해보겠습니다.

진중권이 디워 팬들의 '난동'을 단호히 비판한 것, 박수쳐주고 싶습니다. 쉽지 않지요. 매우 용기있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내린 디워라는 영화 자체에 대한 평에 대해선 박수를 유보합니다. 왜냐면 전 디워를 보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디워는 리얼리즘 영화가 아니라 아동용 판타지란 장르라는 측면에서 바라봐야한다고 생각하기에 개연성을 중시하는 데우스 액스 마키나를 적용한건 무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이 이런 측면을 지적했다가 진중권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었지요. (최근 진보신당 내부 논쟁을 보니 진중권은 당시 이야기를 꺼내며 김규항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더군요. 속으로 혀를 찼습니다.) 

다만 다시 진중권을 옹호하자면 그의 디워평이 어설펐다 할지라도 중요한 잘못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사실 디워에 대한 진지한 평은 영화 평론가나 교수, 학자들 사이에서 이뤄져야 마땅함에도 그게 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백분토론에서 디워의 영화적 수준을 놓고 '자칭' 평론가들끼리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제가 보기에 그들의 수준은 장삼이사였으니까요!

그런데, 이 정도 결론만으로 당시를 판단할 수 있을까요?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디워 당시의 어떤 이상열기는 인터넷이 일반화된 노무현 정부 초기부터 계속해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가령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한 피투성이 살생부 건을 봅시다. 가히 하드고어적인 제목이죠. 그런데 서프라이스를 비롯한 여러 사이트에서 열광한 네티즌들이 내세운 주장의 핵심은 이랬습니다.

"기득권으로 똘똘 뭉친 정치권을 네티즌의 힘으로 응징해야 한다"

그 이후 일각의 흐름을 볼까요? 서프라이스를 위시해서 그러한 흐름은 한나라당만을 향한게 아니었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노무현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가 '학벌의식으로 똘똘 뭉친 진보 꼰대'라는 댓글 사냥을 당한 끝에 이후 거의 활동을 접다시피 하셨지요. 그 댓글 사냥은 이후 강준만을 비롯해 여러 진보 인사들에게 나타납니다.

그러면 이 흐름은 반드시 친노적이었을까요? 글쎄요. 전 아리까리합니다. 다만 노무현에게 열광했던 '학벌 타파, 기득권 타파'라는 슬로건이 한동안 반복되서 나타났다는 특징은 있지요. 그렇지만 상당수 친노들은 이 흐름에 부정적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황우석과 디워 사태는 다시 흥미롭습니다.

우선 앞에 말한 슬로건은 반복됩니다. 황우석 건은 '서울대 의대 중심의 학벌 기득권 세력'으로, 디워 건은 '충무로 주류 평론가 세력'으로요. 그래서 자신들이 나서야할 이유도 명확히 설명됩니다. 황우석이나 심형래 모두 학벌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 못하기에 애국 세력들이 나서서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피투성이, 리영희 선생, 황우석, 디워까지의 흐름을 보면 묘한 변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명분은 똑같지만 공격해야할 대상은 '정치권'에서 "진보 꼰대','서울대의대', '충무로 평론가집단' 등으로 변이되고 확산됩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이 흐름을 '포퓰리즘'이라 명명하며 노무현 정부와 동일시하려 했지만 사실 제가 보기엔 꼭 그렇진 않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이러한 흐름을 포섭하려 했던 점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한미 FTA 등에서 잘 드러나듯 반드시 편승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매우 흥미로운 건 노무현 정부가 편승하기 거부했을 때 이들의 타겟이 정치권에서 다른 진영으로 변이되어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황우석도 그렇고 디워도 그렇습니다.

이 흐름은 이후 - 한나라당 진영에선 이를 갑니다만 -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서 다시 한번 나타납니다. 물론 쇠고기 파동 당시 주류를 이 흐름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이 흐름이 결합되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커졌을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입니다. 그리고 이후 이 흐름은 상당히 약화됩니다만...

정리해보죠. 이 흐름은 정치권만을 타겟으로 하지 않습니다. 보수진영은 자신들만 타겟으로 한다는 피해의식이 있지만 사실 이 들의 타겟은 진보진영, 학교, 평론가등 그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유일한 예외라면 노무현 한명이겠죠. 유시민도 타겟이 아니지만 이들의 적극적 보호 인물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이들의 눈에 비친 기득권 세력은 좋은 학벌이나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도 편입될 수 있습니다. 386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이 흐름을 대표하는 논객 혹은 이데올로그 중에는 대학 강사가 많다는 점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최근 이명박 정부에서 강사 처지 개선에 나선 배경엔 이러한 점도 깔려있지 않나 합니다만....

과연 이 흐름의 배경은 무엇일까요? 

첫번째는 본격적으로 사회 계층이 분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즉, 이들의 흐름엔 어떤 절망감이 깔려있습니다. 실제 그렇든 아니든 자신들은 이제 더 이상 이너 서클이나 그룹, 혹은 엘리트 층이나 기득권 계급에 포함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라보는 기득권 계층에 386이나 진보 인사도 포함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왜냐면 후자도 문화적으론 기득권 층이거든요!

두번째는 그럼에도 그에 걸맞는 문화는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문화 지체지요. 아예 다르다고 인식하면 그에 맞는 문화가 나타납니다. 한마디로 '명품 따위 사는 속물'이라 반응하지, 명품을 사려 열망하지 않습니다. 최근엔 달라졌다지만 과거 영국 노동자들이 자신들만의 펍에 드나들며 '이 곳은 영국 여왕 따위는 올 수 없는 곳'이라 자부했다는 게 좋은 예입니다. 또 디워같은 경우 컬트팬이 만들어지고 평론가들의 견해엔 조소를 보낼 지언정 공격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아직까지 이 흐름이 자신들만의 독자적 문화를 갖고 있다는 증거는 그리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 디시나 딴지를 보면 오히려 침체하고 퇴보하는 경향까지 나타납니다.

세번째는 앞으로도 이러한 흐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입니다. 88만원 세대라는 표현은 차치하더라도 계층 분화라는 추세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나타날 테니까요. 요즘들어 복지가 새삼 화두로 떠오르는 것도 바로 이 흐름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이겠지요. 더이상 계층 상승이 불가능하다면 지금 자신의 삶을 그나마 낫게하는 유일한 길이 복지일 테니까요.

자... 이 이상은 제 능력을 벗어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흐름이 나름의 문화를 만들어 우리 사회가 더 다양하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