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3시에 라스트 갓파더를 보고 왔습니다. 용산CGV에서 봤는데 자리는 꽉 찼더군요. 영화 시작 초기에 영구의 장기가 나오는 부분에서 관객들의 웃음이 종종 터졌는데 이후로는 잠잠했습니다.

 

심형래 영화가 스토리의 완성도, 연기의 수준에서 혹평을 받지만 (디워의 경우엔 조잡한 CG까지) 라스트 갓파더는 슬랩스틱 코메디 영화이기 때문에 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슬랩스틱 코메디는 스토리의 완성도보다는 상황설정과 캐릭터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기는 심형래의 슬랩스틱은 어느정도 수준에 올랐다고 봅니다.

 

그래서 기대를 좀 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코메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황설정입니다. 상황이 우스우면 아무리 엄숙해도 우습기 마련이고 (오히려 엄숙할수록 더 우습습니다), 상황이 우습지 않으면 아무리 웃기려고 노력해도 우습지 않습니다.

 

상황설정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가 캐릭터의 개성입니다. 캐릭터의 개성은 그가 살고 있는 시대적 권력관계의 긴장과 억압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그 긴장과 억압을 엉뚱한 방향으로 풀어내어 관객에게 쾌감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캐릭터의 개성과 능력이 의도된 상황설정 속에서 더욱 더 위력을 발휘하게끔 만들어놓으면 그것으로 코메디의 흥행은 보장된다고 봅니다. 스토리는 덤.

 

은퇴를 앞둔 마피아 두목이 숨겨놓은 외아들에게 후계를 물려주려고 하는데, 그 숨겨놓은 외아들이 바로 "영구 없다~"의 영구!

 

은퇴를 앞둔 마피아 두목의 숨겨진 외아들이라는 상황은 그야말로 살벌한 긴장과 억압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숨겨진 마피아 후계자의 정체는 '영구 없다~'의 영구가 '띠리리 리리리'라는 음악과 함께 "~!"하고 나타나면서 엄중한 권력관계가 가지는 긴장과 억압을 한순간에 무장해제 시켜버림으로서 관객에게 웃음이 터지도록 합니다. 이러한 상황 설정은 외국에서도 충분히 먹히는 상황설정이며 영구 캐릭터도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12일 이수근의 슬랩스틱과 무한도전팀의 몸개그 퍼포먼스를 통해 대중들 사이에서 최근 들어 슬랩스틱 코메디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으며 많은 수요가 생겨났다고 봅니다. 슬랩스틱의 대가인 심형래를 다시 보고싶어진 거죠. 이 때문에 적어도 평작은 기대할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기대를 하고 보러 갔습니다. 과연 마피아 대부의 숨겨진 후계자 영구는 어떤 모습일까?

 

보고 난 소감은... 심형래의 한계일까요? 완성도가 좀 떨어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디워 처럼 손이 오그라드는 부분은 없었습니다만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평작은 될 거라고 봤는데 지금은 평작 에서 졸작 사이정도로 평하겠습니다..

 

기대했던 슬랩스틱 부분에서는 심형래 감독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는데,슬랩스틱 씬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야구배트 씬에서 생각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슬랩스틱에서는 설령 살살 맞더라도 실제로 때려야, 진짜로 합을 내는 것처럼 보여야 제맛인데 야구배트로 진짜로 때릴 수는 없잖아요. 진짜로 야구배트에 맞는 장면과 진짜로 맞은 것으로 상상하고 이해해줘야 하는 장면이 섞여 나왔습니다. 이 때문에 그냥 즉흥적으로, 즉시적으로 보고 느껴야하는 슬랩스틱의 묘미가 엄청나게 감소됐습니다.

 

그리고 슬랩스틱에서는 슬랩스틱을 받쳐주는 배우의 역할이 중요한데 대체로 바보같은 슬랩스틱 주연, 똑똑하지만 바보 주연에게 당하는 능동적 조연1, 조연1과 주연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고 상황의 분위기를 잡는 역할을 하는 수동적 조연2 로 구성돼있습니다.

 

라스트 갓파더에서는 조연1이 카리니파의 보스 후보 1순위인 토니 (마이클 리스플리), 조연 2가 토니와 함께 영구에게 마피아 수업을 가르쳐주는 마초 (존 피넷)로 돼 있는데요, 조연2의 마초역의 존 피넷은 캐릭터도 괜찮고 바람잡이도 꽤 잘했다고 봅니다만, 조연1의 구성이 좀 문제였다고 봅니다.

 

영화 전체 스토리로 보면 영구의 메인 상대는 카리니파의 라이벌인 본판테가문의 보스의 외동딸 낸시를 쫓아다니면서 본판테파를 장악하려는 비니 (제이슨 미웨스)입니다. 그래서 슬랩스틱의 맞상대가 되는 데는 스토리상으로는 비니가 적격입니다. 그런데 슬랩스틱은 주로 토니와의 사이에서 이뤄지고, 전체 스토리를 풀어가는 맞상대역인 비니와는 슬랩스틱이 없고 영구와 다른 조연들 사이에서 벌어진 상황에 수동적으로 말려들어갈 뿐입니다. 비니가 그다지 매력적인 배우도 아니었습니다. 이 때문에 슬랩스틱의 구성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비니역을 차라리 마이클 리스플리에게 맡기고, 토니가 아닌 비니를 조연1로 구성해서 영구와 비니 사이에서 슬랩스틱이 벌어지도록 했으면 슬랩스티 코메디의 극적 완성도가 높아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체 스토리를 해피엔딩으로 만들면서 영구와 낸시의 로맨스는 정극적인 요소를 가지도록 기획된 것 같습니다. 이 정극적인 요소는 슬랩스틱과 대조돼서 슬랩스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영화를 보니 영구와 낸시의 로맨스에 몰입이 되지 않더군요. 우선, 서양인들 속에서 동양인을 보니 서양인의 깊고 감정 풍부한 눈매에 비해 동양인의 눈매는 죽어들어간다고나 할까요? 심형래의 연기는 너무 먼산 바라보는멍청한 시선만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긴장감이 떨어지고 정극적인 연기, 정극적인 요소가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자신감이 없는 강사가 칠판과 강의자료만 보고 수강생들과 eye contact를 회피하는 것처럼. 뭔가 자신감이 없어보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영구의 나이가 좀 더 젊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30대 중 후반쯤만 됐어도 그럭저럭 로맨스가 어울릴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맨스는 슬랩스틱이 아니잖아요. 이걸 그러려니 하고 받아 넘기기엔... 뭔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론적으로 스토리의 약점, 연기의 약점, 슬랩스틱 구성상의 치밀하지 못한 구성 때문에... 평작 과 졸작 사이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