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후를 바라보는 관점들

<문명의 충돌>은 고인이 된 새뮤얼 헌팅턴의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책이다.   post-cold war를 바라보는 몇가지 관점 가운데 후쿠아먀같은 '자유민주주의 찬가', 맑시스트, 신좌파 등 각종 레프트들의 '당혹, 그러나 언젠가 자본주의의 파멸은 분명히 찾아올 것이다'식의 자위행위와 비교하면  <문명의 충돌>  '덜' 이데올로기적이기에 현실을 읽어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눈에 띠는 저작이다.

"이념은 가고 문명이 온다"는 말로 쉽게 설명이 가능한 헌팅턴의 생각은 서구-백인 지식인들 특유의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의 발로라는 비판을, 책을 출간하자마자 (대개) 진보적인 지식인에게 받았다. 그러한 비판은 대강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헌팅턴이 말한 문명간의 충돌은 사태의 일부만 본 것이다. 국제적인 분쟁의 이면에는 자본의 논리가 숨어있다. 헌팅턴은 그것을 문명이라는 직관적인 단어로 가린다. 전형적인 서구-백인 지식인의 사고방식이다'

걸프전, 유고전쟁, 코소보사태, 9.11, 아프간전쟁, 이라크전쟁 등 냉전 후 국제사회를 뜨겁게 달군 여러 사태들이다. 이밖에도 냉전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계속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분쟁, 유럽의 각종 분리주의운동들도 있다.

이 모든 사태를 관통하는 어떤 논리가 과연 존재할까. 꼭 그러한 일반이론은 아니더라도 어떠한 공통적인 점을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러한 공통점을 발견해낸다면 앞으로 있을 국제적인 분쟁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굳이 공통점을 찾아 본다면, 1.이념갈등은 확실히 줄었다 2.종교를 달리하는 이질적인 문명권간 충돌이 많아졌다 3.문자 그대로 '돈' 을 노린 노골적인 '침략'이 여전하다, 이렇게 생각해볼수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냉전 이후 주목할만한 국제분쟁은 대개 종교, 인종에 기반한 이질적인 문명들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발생하였다. 헌팅턴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헌팅턴의 생각은 국제현실을 바라보는데에 매우 유용한 도구라는 것을 알수있다.




우리나라와 동북아시아 국제질서

학자들이 좋아하는 '일반이론'은 포기하고, 셋중에 과연 어느 것이 본질적인 것인지 분석하는 것도 포기한 후 위 3가지 중 어떤 것이 우리나라와 우리 주변의 국제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큰지를 따져보기 위해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암울해진다. 냉전의 잔재가 남아있는-쿠바를 제외하고-유일한 이념갈등으로 남과 북이 분단되어있다. 세계최대시장 중국과 이제는 세계3위의 경제대국이 된 일본, 연해주 개발에 힘쓰기 시작한  러시아, 세계10위권 경제대국인 남한, 그리고 남한과 일본을 앞세운 1극파워 미국의 이권다툼의 현실적인 장이 한반도에서 펼쳐진다. EEZ, 영해를 둘러싼 러시아-일본, 일본-중국, 일본-남한 등등 모든 주변 국가끼리 서로 영토분쟁중이고, 멀지 않은 남중국해에서의 베트남과 중국의 갈등, 대만과 중국의 문제 등까지 고려하면 동북아시아 일대는 분쟁의 전시장이다.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질서와 미국식 자본주의질서를 유독 심하게 거부하며 '천하'를 지향하며 독자적인 문명과, 그 문명권의 패자로 행세하려는 중국과 피부색은 하얗지만 영토의 크기, 역사적 관계 등 서구,미국의 질서와 애초부터 다른 길을 걸어온 러시아, 이 두 국가의 존재 역시 갈등의 씨앗이다.

1.이념, 2.문명, 3.이익 이렇게 도식적으로 단순하게만 따져봐도 국제분쟁의 발생조건으로 볼 수 있는 세가지가 복합적으로 우리나라 주변에 얽혀있고, 우리나라도 그 당사국중에 하나로서 분쟁과 변화의 촉매로 작용될(작용'할'이 아니라) 공산이 크다. 즉 우리나라도 분쟁의 당사국이지만, 미국과 중국간의 실질적인 패권다툼의 장(場)으로서, 명분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천안함사태, 연평도폭격 이후 중국,러시아,북한과 미국,일본,남한의 대결구도가 선명해지고있다. 공교롭게도 북한은 (북한식)사회주의질서체제를 고수하고 있고 러시아는 공산주의체제의 수장이었고, 중국도 아직 정치적으로 공산당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저들과 미국, 미국적 질서의 성공모델인 일본과 남한이 서로 맞서는 형국이다.




문명재편의 과정인가

이 대결구도는 기존 냉전적 대결구도를 흡사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념이 더이상 위의 대결구도의 주된 요인이라기에는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질서가 예전과 180도 달라졌다. 그리고 영토분쟁은 세계 도처에 흔한 것이고 이익,돈,자원을 둘러싼 국제적인 갈등 역시 지금의 동북아시아의 대결구도만의 독특한 모습은 아니다. 동북아시아의 대결구도의 독특한 점은 갈등의 주요 당사국들이 슈퍼파워들이고, 세계GDP 1위부터 3위까지의 국가들+러시아, 세계 군사비지출 10위권 내의 국가들이 '대결'하는 지점이라는 것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들이 각각 독자적인 문명권에 속해있으며 그 문명권의 대표국가라는 점이다.

헌팅턴은 세계문명권을 분류하면서 우리나라를 중국이 주도하는 유교문명권에 포함시켰다. 러시아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정교문명권, 일본은 독자문명권으로 분류했고, 미국은 서구문명권(유럽,북미,라틴)의 하나로 분류했다. 그리고 서구문명주도의 세계질서에 유교문명권이 그 대항마로 떠오를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미국 주도의 서구문명권에 속해있다고 보아야 하고, 일본 역시 그 독자성보다는 '탈아입구'라는 말처럼 서구문명권의 일부로서 세계질서에서 행동해왔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인듯하다. 아시아의 몇 안되는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질서가 안정화된 나라들이고, 정말 몇 안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성공사례들이며, 이 둘울 모두 성취한 아주 정말로 몇 안되는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헌팅턴이 우리나라를 유교문명권에 포함시킨 것을 처음 봤을 때 의아했다. 누가봐도 미국적 질서에 포함되어 있는 우리나라를 헌팅턴이 잘 모르고 그냥 중국 옆에 조그마한 나라에까지 신경쓸 수는 없으니 몽땅 중국중심의 질서 속으로 포함시킨게 아닌가하고 말이다. 허나 몇년사이에 정말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역내패권추구과정에서 중국이 우리나라를 대하는 방식과 태도를 보면 원래 유교문명권에 속하는 남한을 서구문명권으로부터 '되돌려'놓는 문명간의 재편과정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1.냉전적 대결구도인 중러북 대 미일남 의 구도의 복원이 저러한 문명의 재편과정중의 일시적으로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전망을 하고 외교구상을 하고 있을까.   2.아니면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상대적) 퇴조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심의 질서가 동북아시아에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 하에 그러한 질서 속에서 우리가 북한을 압박함으로서 국내정치적으로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동북아 내 질서를 어느정도 주도할만한 발언권을 얻어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3.아니면 정말로 조만간 북한은 붕괴할 것이므로 문명재편, 국제질서따위와는 상관없이 별도로 '전략적 인내'라는 대북정책을 잠시 하다보면 자연스레 북한은 붕괴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국 중심의 질서 속에서 북한을 우리에게 유리하게(적어도 중국에게는 균형추가 쏠리는 일은 없게)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만약 2나 3이 다가오는 미래라면,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를 미국 중심의 질서에서 다자간 국제질서로 점진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중장기적인 구상하에 그러한 역동적인 국제질서 속에서의 남북관계를 담아낸 민주정부의 외교안보,대북정책은 '너무 복잡하게 세상을 바라본' 꼴이 될 것이다. 과연 어떤 미래가 다가오고 있을까.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