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 급식 문제에 대해 한국 사회의 의견이 갈리고 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은 부분 무상 급식 즉 가난한 학생에게만 무상 급식을 하는 방안을 지지한다. 적어도 그런 방안을 지지한다고 떠든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전면 무상 급식 즉 모든 학생에게 무상 급식을 하는 방안을 지지한다.

 

나는 한나라당의 진짜 의도와 한나라당의 이데올로기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 그렇듯이 한나라당의 의도와 이데올로기는 무상 급식 문제에서도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내 추측으로는 한나라당의 진짜 속셈은 복지를 전반적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반면 한나라당의 이데올로기 또는 논리에 따르면 복지 예산을 진짜 시급한 곳 즉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한다. 따라서 중산층과 부유층 자식들을 위해 무상 급식을 할 돈을 다른 곳에 쓰는 것이 더 낫다.

 

나는 기본적으로 한나라당의 논리가 옳다고 생각한다. 무상 급식과 관련된 한나라당의 문제점은 논리가 틀렸다는 점이 아니라 위선적이라는 점이다. 위선이란 무엇인가? 착하고 바르게 살자고 말하면서 이기적이고 악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즉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말로는 한정된 예산을 정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에 정부와 한나라당에서 밀어붙인 예산안에서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와는 별로 상관 없는 형님 예산과 같은 것은 대폭 늘린 반면 진짜 가난한 사람을 위해 필요해 보이는 예산은 대폭 축소했다.

 

한국의 진보파는 물론 한나라당의 이런 위선을 꼬집는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한국의 진보파(모든 진보파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부르겠다)가 무상 급식과 관련된 한나라당의 논리까지 깨 부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한나라당의 논리까지 틀렸다고 주장한다.

 

 

 

진보파에 따르면 부분 무상 급식을 하면 아이들이 정신적 상처를 받는다. 학교에서 가정 형편을 조사하고 사실상 너는 가난하니까 공짜로 밥 먹어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암묵적으로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는 무상 급식 대상에는 속하지는 않지만 경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집 학생의 경우 급식비를 못 냈을 때 너는 급식비 못 냈으니까 밥 먹지마라고 말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했으며 TV에도 몇 번 나온 적이 있다.

 

나는 학생들이 당하는 그런 굴욕감이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부분 무상 급식을 하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인가? 내 생각에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부분 무상 급식을 하더라도 제도 정비만 잘 하면 거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부분 무상 급식을 하더라도 학생들이 굴욕감을 당하게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도록 할 수도 있다. 두 가지 제도를 비교해 보자.

 

굴욕감을 위한 부분 무상 급식 제도: 교사가 학생들에게 소득 증명서를 떼 오라고 한다. 교사는 조회 시간에 소득이 하위 30%에 속하는 학생들의 명단을 불러준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은 가난하니까 공짜로 밥을 먹게 될 것이라고 알려준다. 급식소는 두 곳이다. 한 곳에는 무료 급식소라고 팻말을 붙여 놓았다. 그리고 학생들이 밥을 먹기 전에 우리를 위해 밥을 제공해 준 정부에 감사드립니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외치게 한다. 다른 곳은 유료 급식소라고 팻말을 붙여 놓았다. 그리고 유료 급식소의 음식은 무료 급식소보다 더 맛있다. 교사는 유료 급식 대상인 학생 부모가 급식비를 내지 않았을 때마다 조회 시간에 너는 급식비가 밀렸다. 오늘은 급식소 가지 말고 매점 가서 빵 사먹어라라고 이야기해준다.

 

굴욕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부분 무상 급식 제도: 정부에서 세금을 걷을 때 학부모의 경우 급식비도 같이 걷는다. 소득이 하위 30%인 부모에게는 급식비를 면제해 준다. 교사와 학생은 누가 급식비를 면제 받는지 모른다. 물론 학생이 부모의 세금 관련 서류를 본다면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학교에서 급식비와 관련된 조사를 일체 하지 않는다. 급식소는 한 곳이다. 모든 학생은 그곳에서 똑 같이 밥을 먹는다. 급식비를 면제 받은 학생이든, 급식비를 밀린 학생이든, 급식비를 꼬박꼬박 낸 학생이든 전혀 차별을 하지 않는다.

 

 

 

국가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는 한나라당의 지적에 대해 자본가들의 엄청난 세금 포탈만 막아도 돈이 나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논리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그것은 공산주의자인 내가 공산주의 사회만 되어도 무상 급식은 아예 문제 거리도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공산주의 사회만 되면 그렇게 된다. 하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그냥 되나? 마찬가지로, 세금 포탈이 그냥 소원만 하면 없어지나? 북유럽식의 강력한 누진세가 그냥 소원만 하면 이루어지나?

 

설사 어떻게 해서 부자들이 조금 더 세금을 많이 내게 했다 하더라도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이전보다 복지 예산을 10조원 늘릴 수 있다 하더라도 복지 예산은 여전히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즉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를 위해 돈을 써야 한다.

 

나는 복지 문제 전문가가 아니지만 적어도 중산층과 부유층의 무상 급식보다는 극빈층의 의료비가 더 시급해 보인다. 전면 무상 급식을 할 돈으로 더 시급한 곳에 쓰자는 한나라당의 말은 옳다. 한나라당의 문제는 위에서 지적했듯이 위선적이라는 데 있다.

 

 

 

나는 이런 문제가 보편 복지 전반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되도록 보편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사회는 기본적인 의식주, 의료, 교육, 대중교통 등이 완전히 공짜인 공산주의 사회다. 하지만 그것은 먼 미래를 위한 꿈일 뿐이다. 당장은 가장 시급한 곳에 복지 예산을 써야 한다.

 

진보파가 주장하듯이 나 역시 더 강력한 누진세, 더 높은 세율, 예산 중 복지 예산의 비율을 높이기, 상속세 포탈에 대한 강력한 처벌 등을 주장한다. 하지만 일단 복지 예산이 정해졌다면 가장 시급한 곳에 써야 한다. 보편 복지는 부유층에게도 혜택이 가기 때문에 가장 시급한 곳에 돈이 가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많은 경우 선별 복지를 지지하는 이유다.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또 다른 요인이 있다. 나는 당장 전면 무상 급식을 폐지하고 부분 무상 급식으로 돌리려는 한나라당의 정책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나라당의 진짜 속셈이 더 시급한 곳에 복지 예산 쓰기가 아니라 복지 예산의 전반적 축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행태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라고 이야기하는 전래 동화 속의 호랑이와 비슷해 보인다. 호랑이는 떡을 다 줘도 잡아 먹으려고 했다. 마찬가지로 전면 무상 급식을 폐지한다고 해서 한나라당이 그 돈을 더 시급한 곳에 쓸 것이라는 보장이 별로 없다. 또 다른 형님 예산에 들어가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지금 한 편에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있고, 다른 편에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한겨레신문, 경향신문이 있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무상 급식 문제는 이런 싸움의 초점이 되었다. 나는 진보파가 상당히 잘못된 생각을 하면서 이 싸움에 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진보파가 이기기를 바란다. 일단 무상 급식 문제가 싸움의 초점이 된 이상 나는 진보파의 소원대로 전면 무상 급식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래서 진보파의 사기가 올라가길 바란다.

 

이 싸움은 또한 이데올로기 싸움이기도 하다. 단지 돈이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문제뿐 아니라 복지 제도는 빨갱이 제도인가?라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진보파가 이긴다면 복지 제도 = 빨갱이 = 지독한 독재라는 공식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생길 것이다.

 

마르크스는 파리의 진보파가 봉기를 일으키려고 할 때 무모하다고 말렸다. 하지만 일단 행동에 들어가자 어쩔 수 없이 봉기를 지지했다. 물론 나는 마르크스가 아니며 무상 급식은 봉기가 아니지만......

 

 

 

2010-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