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바보 같은 짓거리를 많이 하고 살았지만, 살면서 가장 바보 같은 인간은 나이의 굴레를 스스로 떨쳐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오늘 뉴스를 보니 조기 유학생 둘이 다투며 싸우다 살인까지 이르게 된 사건이 있었다. 정말 한심하고도 한심한 녀석들이 아닐 수 없다. 놀랍게도 요즘의 발랄한 신세대들은 우리 때보다 덜한 것 같았는데 그도 아닌 것 같다. 한번은 OO시에 있는 OO영재고에 갈 일이 있었다. 소개받은 학생들과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재미있게도 그 중 3학년은 가운데 홀 계단으로 올라가고 나머지 2학년은 다른 길로 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학교에서는 홀 가운데 계단은 3학년만 사용할 수 있으며 1,2학년생이 그 곳을 이용하면 아주 혼을 낸다는 것이다. 조숙한 영재들끼리 이런 일로 갈구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 상상을 해보았다. 처음 생각에 영재아이들은 그야말로 미국식으로 호형호제 없이 생활할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고등학교 시절 선배들에게 끌려가 신나게 얻어맞고 하는 일은 우리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참 씁쓸했다. 뭐가 신세대인지 모르겠다. 요즘 아래 위가 없어진다고 걱정하는 분이 많은 이런 최고의 영재학교, 젊은 개그맨들의 구타를 보면 아직 크게 걱정(?) 할 일은 아닌 듯..

  

부하 직원이나 하급 연구원들이 들어오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프로토콜을 결정하는 것이다. 환영회 회식자리에서 통성명을 하게하고 나이를 물어본 다음은 형, 동생 동료 관계를 내가 정해서 강제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해진 호칭대로 3-4번씩 부르게 한다. 내가 생각하는 환영회의 목적은 이것이다. 이런 과정이 없으면 그 통신과정의 비용과 부하(load)가  매우 늘어난다. 이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어려운 문제를 맞이하였을 때 서로 솔직한 대화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학원생 때 일이다. 늦게 공부해서 후배로 들어온 녀석이 나에게 딱히 선배 칭호도 안하고 항상 보면 묘하게 피하는듯한 인상을 보이기에, 나중에 붙잡아서 물어보니 내 나이와 자기 나이가 같은 줄 알고 그랬다는 것이다. 바보 같은 놈. 그러면 나이를 물어보고 말을 까자고 이야기를 하든지. 나는 좀 다른 경우인데 제수를 한 덕분에 대부분 내 나이보다 동료들은 한 살이 적다. 그런데 한 해 선배 중에 아주 일찍 학교에 들어왔고 그냥 막 달린 덕에 나보다 생물학적인 나이가 두 살 적은 선배분이 있었다. 나는 생물학적인 나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 선배에게 깍듯이 모시고, 또 그 선배는 실제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침착하고 월등한 실력이었기 때문에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모습으로도 어른스러웠고. 서로는 철저하게 형, 동생 역할을 수행하였고 지금도 그것은 나에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옆 방 연구원 중 한 녀석(X)을 미국학회에 보내서 OOO박사를 만나서 자료를 받아오라고 했다. 그런데 이 OOO박사가 워낙 어린 얼굴이고 젊게 보인 것이다. 나중에 OOO박사에게 전화가 왔는데 “그 때 온 친구는 좀 이상한 친구아니예요 ?”라고 되묻는 것이었다. 사연을 알아본 즉 그 X라는 친구는 아주 늦게 공부를 시작했는데 가서 묻고 배워 와야 할 사람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해서인지 그 만남자체가 매우 자존심이 상했든 것으로 파악이 되었다. 귀국한 X 는 나에게 무차별 혼이 났다. 이 인간 X는 그 미국에 OOO박사와 있는동안 그 호칭상의 불편함에서 한발자욱도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이었다. 세상에 이보다 멍청한 인간이 또 있을까 싶다.

   

조직에 가보면 자신의 생물학적인 나이와 같은 사람이면 꼭 맞먹어야하고 그렇지 못하면 안절부절못하는 인간들이 꼭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에서 “형님!”이라고 호칭을 받는 순간 상당한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행님이 되면 술도 사줘야 하고, 야간에 악동 “후배”들이 call을 하면 바로 끌려 나가야 한다. 크고 자잘한 부탁에 자신의 손실을 얹어서 들어줘야 하고. 반면 행님의 부탁은 동생들에게 별로 관철이 되지 못한다. “에이... 형도... 그건 말이 안 되지요. 저는 그런 것 못합니다. 그런 헛소리 말고 술이나 사주소” 이러면 대화 끝이다.
  


집 아이들의 친구 부모님들을 초대해서 식사 대접을 몇 번 한 적이 있다. 오기 전에 대략 들어서 나이 차이가 10살 이상 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인데, 식사하고 술이 한 순배 돌고나서 바로 “아이고  앞으로는 형님으로 부르겠습니다..”하면서 바로 호칭을 터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꼭 말끝마다 “OO아버님” 이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느 쪽이 좋다고 보지는 않지만 전자의 호칭으로 부르는 집안과 식사할 때 훨씬 더 유쾌했든 기억이 많다. 말끝마다 행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갈 때 “아이고 형님 오늘 포도주 진짜 맛있었어요. 하면 “예, 그렇게 좋아하시면 남은 것 한 병 가지고 가이소.” 이런 식으로 종료된다.


나도 총각 때 조금이라고 나보다 일찍 태어난 사람, 예를 들어 1개월 먼저 나온 사람을 만나면 <형님 호칭>을 팔아서  술이랑 안주랑 무지 얻어먹었다. 시도 때도 없이 형님들 신혼집에 쳐들어가 잠을 재워달라고 우기기도 하고. 뭘 해도 동생이니까 용서가 되는 것이다. 형님이 동생 신혼집에 만취된 채로 와서 재워달라고 할 수 있을까 ? 사회에서는 형님을 많이 모신 사람은 동생을 많이 만든 사람보다 훨씬 유리하다. 소위 마당발이라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동생의 수보다 형님의 수가 훨씬 많다. 그들은 세상의 진리를 알고 있는 것이다. 형님이라 불린 사람들은 형님의 역할을 하게 되고 나는 철없는 동생을 역할을 하게 된다. 적어도 한국은 그런 사회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조금만 틈이 있으면 말을 “까지”못해서 안달인 사람들이 보인다. 모든 사람들을 동생으로 두고 반말을 하면서 썰을 풀어야 성이 찰 듯 이야기하는 분들을 가끔 보는데 이런 사람을 볼 때 마다, 나는 이 분들은 “아직 사회생활의 짠 맛을 보지 못한” 사람일 것으로 짐작이 된다. 반말을 하고 싶으면 존대법이 약한 영어로 하면 좋을 것이다.


세상은 “형님” “언니” 만들기 전쟁이 아닐까 싶다. 성공하고 싶다면 생물학적 나이의 굴레에서 스스로 빠져 나와야 한다. 이전 미국에서 한국에 협상 팀을 보낼 때에는 아주 젊은 여성 공직자를 보냈다고 한다. 이 여자가 빠른 미국영어로 몰아부치면 한국의 나이 지긋한 관료들은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하는 스스로의 모멸감을 이기지 못하여 정작 자신이 책임져야할 내용을 완전히 망각한다는 것이고, 이것을 미국이 적절히 악용한다는 것이었다. 생물학적인 나이를 무시하는 것은 매우 유연한 전략이고 실리적인 전략이다. 동갑에게 동생으로 불리는 것이  억울하다면 열심히 노력해서 그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이 가장 확실한 복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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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이역만리 미국에서, 그 젊은 아이들이 형님, 동생 호칭문제로 일어난 비극을 전해 듣고 떠오르는 대로 써 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