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씨 사이트에 가보았더니 이라크 파병 복기라는 글이 있는데 그중에 김선일씨 피랍사건을 정리한 글이 있더군요
그런데 당시는 여러가지 보도로 혼란스러웠는데 지금 정리한 내용을 보니 국가나 정부에 있어서 한 사라므이 생명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또 언제나 모든 정부는 국민을 속인다는 것이지요

정부는 김선일피랍소식을 2004년 6월 18일에 처음으로 알았다고 했다. 허둥지둥 특별대책반을 파견하고 언론을 통해 호소하고 가능한 모든 외교적라인을 다 동원했지만 결국 김선일씨는 살해되었다. 내가슴을 계속 답답하게 만든것은,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도 같은데 왜 그렇게 테러범들을 자극하느냐는 것이였다. 우선 시간을 끌면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우선일텐데 피랍사건이후 몇시간만에 나온 정부의 첫 반응이 왜 하필 파병방침고수였냐는 것이다.

더구나 그게 국가역량의 총집합체인 정부의 방식이였다는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납치예상지역에 테러범을 잡겠다고 대대적 폭격을 가했고 수십명의 민간인이 죽거나 다쳤다. 납치된 사람이 살아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납치범들을 자극할 수 도 있는 짓을 대담히 저질러 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김선일씨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거지...?

이런 논의는 어차피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 상대가 국가인 이상, 진실은 언제나 너무 늦게 밝혀진다. 하지만 당시의 사실 근거들을 토대로 '인과'와 '모순'을 따져 타당한 결론을 추론하는 것은 진실추적의 의미한 방편다.

2004062351001.jpg

1. 한국정부는 피랍소식을 언제알았나?

- 이라크 현지에서 한국군 파병과 김씨 피랍사건 등을 취재하고 있는 프리랜서 피디 김영미씨는 23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이라크 한국인들 사이에 김씨가 6월17일이 아닌 5월30일 납치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MBC에서 익명을 요구한 대사관 직원이 31일 납치가 터진 날부터 알고 있었다.라고 말한 대목과도 일치한다.

- 김천호 사장이 사건 발생 이후 6월 1일, 7일 ,10일, 11일 등 네차례나 현지 대사관을 방문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는데, 모술지역을 방문하는 등 사업상으로 상당히 바쁜 모습을 보였던 김 사장이 이렇게 자주 공관을 방문한 이유가 무엇이였고 김 사장이 방문을 하면서 김선일씨 피랍사건을 전혀 거론하지 않았을 리가 있냐는 강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 일반적으로 한국은 외국 공관 직원의 30%를 국정원 직원으로 보낸다. 이라크가 한국 정부에 중요하다는 점을 봐서는 약 50%가 국정원 직원일 것이다. 가나 무역 직원 19명이 다 아는 김씨의 피랍 사실을 국정원이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 납치범들은 21일 알-자지라에 공개된 비디오에서 불과 24시간의 시간만 주었으면서 이들은 마지막 김씨를 살해하기 전에 아랍어로 읽은 성명에서 우리는 이미 경고했다, 거짓말과 사기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이들이 21일 24시간의 최후통첩을 하기 전에 납치범과 김씨 석방 협상팀 사이에 여러번 무엇인가 교섭이 오갔던 것을 의미한다.

- 결정적으로 AP의 기자가 셋이나 외교통상부에 문의했던 것, 비디오 내용엔 김선일씨의 신원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사실 등을 고려해 봤을 때, 노무현정권과 미국은 김선일씨 피랍사실을 이미 6월 초를 전후하여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5월 31일부터 김선일씨 피랍소식이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보도된 6월 21일까지 한국정부에선 무슨 일을 하고 있었나?

2. 김선일씨가 피랍된 5월 31일과 피랍소식이 알려진 6월21일 사이에는 무슨일이 있었나?

6월 16일 청와대의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과 천정배 원내 대표 등 18명의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만찬을 함께 하면서 이라크 파병에 대한 당론을 조속히 확정하여 달라고 요청하며, 그 다음 날인 17일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 그동안 당내에서 분분하던 파병 반대의원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일사천리로 처리된다.

더구나 토론공화국을 이끌겠다는 정부여당답지 않게 이번 의총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그 안에서 어떠한 말들이 오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18일, 정부는 이라크 파병에 대한 최종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말 그대로 총선눈치보며 미뤄오던 파병안을 일사천리로 추진해 버린 것이다. 김선일씨가 납치된 바로 그 기간에 아마도 피랍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으로 의심되는 정부가 한 일이 이것이다.

김선일씨를 감금하고 있던 테러집단들과 정부는 계속 협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고, 한국 정부는 일관되게 파병방침불변 만을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다 급기야 한국정부와 여당은 추가파병을 결정해 버렸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테러범들은 알-자지라를 통해 최후의 통첩으로 24시간 이내 한국군 철수를 주장한 것이다.

정부가 차근차근 추가파병을 위한 단계를 밟아가는 동안 침착하고 조금은 자유롭게 테러범들의 심문에 답하던 김선일씨(6월 4일)는 제발 살려달라고 당신(?)의 목숨이 중요한 것처럼 내 목숨도 중요하다고 오열하는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18일)

han_173226_1[216211].jpg
200406220013_00.jpg
▲ 지난 6월 초- 면도도 했고 깔끔한 모습에 제스쳐도 풍부하다.
▲ 지난 6월 21일 - 절박함만이 묻어난다.


한국정부는 마치 몰랐던 사실인양 알자지라와 인터뷰를 하고 대책반을 꾸리기도 하며 온갖채널을 동원해 김선일씨의 구조를 위해 노력하는 듯 하였지만 모두다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국내용 제스춰였음이 이미 드러났다. 대책반이 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상황은 끝났고, 하물며 그들은 특별기가 아니라 일반기를 타고 요르단으로 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이례적으로 외교통상부에 도착, 상황실 근무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노고를 치하한 뒤 반 장관과 최영진 차관으로부터 김씨 피랍 상황에 대한 보고를 들은 뒤 청와대로 돌아갔다. 시시각각 많은 정보들이 여러가지 채널을 통해 쉴새없이 들어온다던 그 시각, 김선일씨가 안전하게 돌아 올것이라는 낙관론이 팽배하던 그시각, 그땐 이미 김선일씨가 살해당한 이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외교통상부의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채널을 통해 어떤 얘기를 듣고 있었던 것일까?

3. 한국정부의 근거없는 낙관론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The kidnappers have said they are willing to negotiate as long as the Korean government stops making provocative remarks and softens its tone on troop deployment, Obeidi said.(2004년 6월 22일, 알바와바)

한국 정부가 공격적인 발언을 멈추고 병력배치와 관련된 발언의 톤을 부드럽게 하는 한에서 기꺼이 협상할 의향이 있다고 말하는 테러범들에게 강경한 자세로 파병철회불가만 얘기했던 한국정부가 뭘 믿고 계속해서 낙관론을 편 것일까? 이 부분은 제일 간단한 답이 정답일 확률이 높다.

낙관론은 전망이 아니라 언론플레이였다. 파병철회불가를 끝까지 강력하게 주장하기 위해선 낙관론이 필요했던 것이다. 21일 당시 네티즌만 보더라도 60~70% 자국민 보호가 우선이니, 당장 추가파병을 철회하라고 요구했고 광화문에도 수천명이 집회를 하고 있었다. 파병반대여론이 들불처럼 번져가던 이때, 추가파병이 뭐가 문제인지 관심도 없던 국민들이 이제 막 남의 문제 같던 추가파병문제를 현실적인 두려움으로 인식하고 관심을 기울이려던 이때, 갑자기 전직 청와대경호원들이 만들었다는nkts라는 사설경호업체가 근거없는 낙관론을 퍼트리기 시작한다.

ytn과 김선일씨의 생존을 국내에 처음으로 알렸던 nkts사장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사장은 정부측과 아무런 연락도 취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정부는 왜 nkts사장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을까? 여기에서 nkts가 정부의 언론플레이를 위해 등장한 여론호도용 플레이어였음이 드러난다. 정부와 자신들이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려 하다 보니, 지금 현재 정부와 아무런 연락도 취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오버를 하게 된 것이다. 김선일씨의 무사소식을 국내에 처음으로 전한 nkts가 정부와 아무런 연락도 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nkts를 이용해 국민여론을 호도한 후, 정부는 김선일씨의 사후보상처리에만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낙관론을 퍼트려 국민들을 안심시킨 후 정부는 파병철회불가를 계속 주장하는데 이말은 우리는 협상 할 의사가 전혀없으니, 빨리 김선일씨를 죽이라는 노무현정부의 압력이었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김선일씨의 무사귀환을 바라던 그시각, 노무현 정부는 테러범들에게 김선일씨의 살인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선일씨가 살아서 돌아오게 되면, 그의 입을 통해서 정부와 테러범들은 어떠한 형식으로든 이미 채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날테고, 피랍기간동안 진행된 정부의 추가파병안 확정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게 되고 결국 국민적 저항을 부를 것은 명약관화였기 때문이다. 김선일씨는 미국을 위해서도 한국정부를 위해서도 살아 돌아와서는 안 될 사람이었고,그들이 원한 것은 김선일씨의 영원한 침묵이었다.

국가가 국민을 죽이는모습을 국민들에게 들키기 보다는, 차라리 테러범들에게 뒷통수를 맞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파병입장을 고수하고 정권을 보장하기엔 더 유리하기 때문에위에서 언급했던 노무현의 외교통상부 방문같은 쇼가 연출되었던 것이다.

4. 한국정부는 김선일씨를 살리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나?

아마도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정부는 몰라도 미국은 김선일씨의 죽음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이상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미국은 얼마전 포로 학대 사진의 인터넷 유통으로 인하여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받았고 부시지지도는 급락했다. 어쩌면 다음의 김선일씨의 이메일 내용과 관련있을 지도 모른다. 소름끼치는 미군의 만행을 담은 사진도 가지고 갈꺼다. 결코 나는 미국인 특히 부시와 럼즈펠드 미군의 만행을 잊지 못할 것 같다.....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미국인에 대한 인상은 좋은 편이었는데, 여기와서 다 허물어졌다.

미국은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에 있어서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나 테러리스트들이 전자메일이나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하여 지령을 내리기 때문에 이라크는 그 중에서 제일 정보 활동이 활발한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선일씨의 메일내용을 그들이 몰랐을 리 없다.

더군더나 미국은 동맹국의 국민이 테러범들에게 피랍되어 있는 상황에서 바로 그 테러범들의 본거지를 공습해 수십명이 죽거나 다쳤다. 일본인 3명이 피랍되었을 땐 테러범들을 자극할까봐 3일간의 휴전명령이 내려 졌었던 것과 비교해 볼때, 미국은 김선일씨가 살아서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이 나라 정부가 숭미정부인 이상, 미국이 원하면 김선일씨는 죽어야 한다. 이미 노무현씨는 자이툰부대 3000명중 500명이 죽더라도 파병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국민의 생명이란게 이런 것이다. 국가단위로 올라가면 사람은 생명이 아니라 통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인자에 불과하다. 하물며 1명의 목숨이란 것은 한 여름밤의 모기만도 못한 것이다. 우리들의 생명을 끝까지 지켜주려 했던 사람은 언제나 우리 스스로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