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최소자본주의  

 

거창하게 말하면, 자본주의로부터 새로운 사회(그것이 어떤 사회 가 될지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보다 나은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단서를 담고 있다. <최소자본주의>라는 표현 자체는 매우 멋지게 들린다. 그리고 최소자본주의는 최소생산과 최소소비로 이루어지는데, ‘최대한 적게 생산해서 최대한 적게 쓰자라는 단순한 의미라면 본 글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면이 많다.

 

(원래 이 글은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계획되었었는데 이렇게 어영부영 먼저 올리다 보니까 내용이 약간 꼬여버린 감이 있고 길어졌음. 용두사미 ..….. 시간을 내서 뭔가를 읽는다는 것과 뭔가를 쓴다는 것 자체가 정말로 어렵군요. 글재주가 없는 건지 …….)

 

 

1. 사회주의 비판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과 대안의 제시라는 측면에서 마르크스를 넘어서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접근하려고 목적을 갖고 있다면, 우선적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혹은 마르크스 경제학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이론적으로 구체화되고 구 소련과 동유럽을 중심으로 현실적이고 실험적인 경험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어떤 의미에서든 여전히 진지하게 탐구되고 논의되는 중요한 역사적 경험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자본의 순환과정은 [ M:화폐자본 --- > C:생산자본 (MP:생산수단, LP:노동력) --- P:생산과정 --- C’:상품자본 --- > M’:새로운 화폐자본 ]으로 표현되는데 이를 그림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정치경제학 원론, 김수행 참조)

 

 5-3a 자본순환.JPG

자본의 순환과정은 3단계로 구분하여 설명된다.

순환 1단계는 M:화폐자본 --- > C:생산자본 (MP, LP) 로 표현되는데 이는 화폐자본(투하자본)이 생산자본으로 전환되는 단계이다. 1단계에서 자본가는 생산요소로서 생산수단(생산설비와 원재료)과 노동력을 구입한다. 2단계는 C생산자본(MP, LP) --- P생산과정 --- C’상품자본 로 표현되는데 이는 생산자본이 생산과정을 거쳐서 상품자본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3단계는 C’상품자본 --- > M’새로운 화폐자본 로 표현되는데 이는 상품자본이 화폐자본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생산물(상품)은 생산자로부터 소비자로 이전되는 <교환거래>가 발생하며, 이러한 교환거래로부터 자본가는 최초의 화폐자본(투하자본)량보다 더 많은 화폐자본을 획득함으로써 이윤을 실현한다.

 

자본의 순환과정 중에서 세번째 단계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고유한 불확실성을 포함하는 단계이다. 세번째 단계는 생산자가 생산한 생산물이 소비자로 이전되는 <교환과정>을 포함하는데 자본가는 생산자로서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상품)이 소비자에게 팔릴 것인지, 팔리지 않을 것인지를 사전에 미리 알 수 없다(상품실현의 불확실성). 이는 개별자본의 입장에서는 통제가 불가능한 요소로, 어째든 이 벽을 넘어서야만 투하자본은 비로서 자신의 목적인 이윤을 실현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사적으로 생산되고 소유되는 생산물(상품) <교환과정>을 통해서 비로서 사회적으로 인정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품실현의 불확실성>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이고도 고유한 특성으로 마르크스는 이를 목숨을 건 도약으로 표현한 바 있다. (물론 상품이 팔리더라도 투하자본량 이하로 판매된다면, 이윤은 실현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이윤실현의 불확실성>이라는 표현이 보다 적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 생산의 사회화(공장제 대량생산) : 내가 생산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소비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 사회적 분업(사회적 관계) 속에서 상품을 생산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이에 따라 발생하는 생산물(상품)의 사적 소유로 인하여 상품실현의 불확실성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다시 말해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로 인하여 사회적 소비와는 괴리된 채로 개별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생산의 무정부성또는 사회적 생산의 무계획성이라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고유한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생산수단과 생산물의 사적 소유에서 기인하는 사회적 생산의 무정부성(무계획성)으로 인하여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공황국면에 직면하게 되고 이러한 공황기에는 대규모로 자원이 인위적으로 파괴되는 낭비가 발생한다. ‘생산의 무정부성(무계획성)’이라는 표현은, 마르크스 경제학의 입장에서는 이미 그 결과(처방)까지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상당히 그럴듯한 표현이다. ‘생산의 무정부성(무계획성)’의 반대말은 아마도 생산의 정부성(계획성)’ 쯤 될 것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에 따르면, 상품실현의 불확실성이 발생하는 이유는 생산물(상품)이 사적으로 전유되기 때문이고 생산물이 사적으로 전유되는 이유는 생산수단이 사적으로 소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일거에 전폐하고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비사적 소유, 국유화 등등)가 이루어지면, 자동적으로 생산물이 사회적 소유로 되므로 상품실현의 불확실성이 사라진다고 본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 해결되므로서 주기적 공황과 대규모의 낭비가 발생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비되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중요한 특성은 다음의 2가지이다.

재산권(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vs 사회적 소유(비사적 소유, 국유화 등등)

자원배분을 위한 시장경제 vs 계획경제,  (불확실성에 기반하는) 시장경제와 (확실성에 기반하는) 계획경제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개별적 생산과 이에 따르는 상품실현의 불확실성을 사후적으로 조정하는 시장경제에서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로의 전환에 따라 개별적 분산적 고립적 생산을 사회적(국가적) 계획에 따라 생산이 이루어지는 계획경제로의 전환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논리에 따라 구 소련등에서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실험이 있었고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러한 계획경제의 실험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실험으로 귀결되었다. 

 

단순하고 명쾌하며, 심지어 과학적이라고 주장되었던 마르크스 경제학의 분석 또는 처방에 어떤 허점이 있어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는가? 스탈린이 문제였는가? 레닌이 문제였는가? 아니면 마르크스 자체가 문제였는가?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생산수단의 국가 소유와 계획경제) 실험이 실패한 이유로 가장 설득력이 있는 주장은 아마도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경제에서는 자원배분의 효율성 또는 최적의 자원배분이 달성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주의 계산 논쟁 : 계산가능성, 동기부여, 발견-배움 과정)

 

 

[자원배분의 효율성(또는 최적의 자원배분)]

주류 경제학 교과서를 보면 자원배분의 효율성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그리고 나서 몇 가지 간단한 수식을 동원해서 완전경쟁시장에서는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자동적으로 달성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1. 생산의 효율성

최대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생산요소의 조합

생산요소(노동과 자본) 간의 한계기술대체율(RTS)가 같아야 한다.

2. 소비의 효율성(또는 교환의 효율성)

최대효용을 가능하게 하는 생산물의 조합

소비자들의 한계대체율(MRS)가 같아야 한다.

3. 생산과 소비의 종합적 효율성(또는 산출량 수준의 효율성)

최대생산 및 최대효용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생산물의 조합

생산물 사이의 한계생산변화율(MPT)과 소비자의 한계대체율(MRS)이 같아야 한다.

 

경제주체들 중에서 생산자로서 기업은 이윤극대화를 추구하고, 소비자는 효용극대화를 추구한다. 극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더 많은 이윤과 더 많은 만족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산자의 생산활동은 이윤극대화에 의해서 동기부여 되고, 소비자의 소비활동은 효용극대화에 의해서 동기부여 되며, 동기부여에 따른 실천행위의 결과를 반영해서 새로운 동기부여(새로운 욕망)를 가지게 된다. (동기부여 ---> 실천행위(생산활동, 소비활동) ---> 감정에너지 발생 ---> 욕망에너지 발생 : 새로운 동기부여 ---> 실천행위 ……. )   [욕망, 동기부여, 선호, 효용, 만족]

 

최대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생산요소 조합과 생산물 조합은 다시 말해서 생산자(기업)의 이윤극대화라는 욕망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생산요소 조합과 생산물 조합이며, 소비자의 최대효용을 가능하게 하는 생산물의 조합은 효용극대화라는 소비자의 욕망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생산물의 조합으로 이것을 동시에 만족하도록 결정되는 상태가 자원배분의 효율성 또는 최적의 자원배분이 달성된 상태가 된다.

 

이윤극대화의 욕망(동기부여)과 효용극대화의 욕망(동기부여)에 따른 생산자와 소비자의 생산과 소비라는 실천행위는 시장에서 충돌, 경합하고, 그러한 충돌과 경합의 결과로 최대생산과 최대소비가 가능하게 하는 생산요소 조합과 생산물(상품) 조합이 만들어진다. 생산자의 이윤극대화 욕망과 소비자의 효용극대화 욕망이 상품을 매개로 시장에서 충돌, 경합하고 이러한 충돌과 경합의 결과로 상품의 상대가격이 형성되고, 또 이러한 상품의 상대가격을 신호로 생산자는 이윤극대화 욕망을, 소비자는 효용극대화의 욕망을 실현한다. 그 결과로 주어진 조건하에서 생산자는 최대생산을, 소비자는 최대소비를 달성한다. (수많은 상품의 상대가격은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의 욕망하는 정도를 표시하고 제안하고, 수락하는 과정을 반영하면서 결과적으로 그 욕망하는 정도를 표시하고 측정하는 강력하고 강렬하면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현실 경제에서 누구나 다 이윤극대화와 효용극대화에 성공하는 것, 즉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하는 생산자도 있고 불만족을 느끼는 소비자도 있다. 다만, 자본주의 경제제도는 욕망을 실현한 생산자와 소비자, 특히 성공한 생산자(기업, 자본가)에게 이득(경제적인 부 + 알파-ex명성, 부러움 등등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이득)을 부여하고 실패한 생산자(기업, 자본가)에게는 불이익(경제적인 부의 손실 알파)을 부여하는 것(경제선택)으로 작용한다. 성공한 생산자(기업, 자본가)에게 이득을 부여하는 자본주의 경제제도로 인하여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만약에, 극단적으로, 이윤을 최대화하는 기업에게 불이익을 주고, 이윤을 최소화하는 기업에게 이득을 부여하는 경제제도라면, 그러한 경제체제가 통상의 성공한 자본주의 국가와 같은 정도로 <성장>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고율의 누진세율, 세전이익 10억원 이상인 경우 95%의 세율 적용하는 경제라면, 이러한 경제가 존속가능할 것인가? 존속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은 이러한 경제제도가 인간의 본성(?)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인가?)

 

 

위에서와 같이 상당한 정도로 극단적인 경제제도 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경제제도의 스펙트럼이 가능하다. 자본가의 욕망실현에 강조점 60%를 부여하는 것과 노동자의 욕망실현에 강조점(이득) 60%를 부여하는 것의 차이는 성장우선과 분배우선이라 말해진다. 이러한 스펙트럼은 결국 국가경제에 참여하는 경제주체들 중에서 <누구의 욕망을 우선시할 것인가>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특정한 경제제도의 경쟁력은 그러한 사회적으로 한정된 욕망의 배분이 구성원들에 대하여 얼마만큼 강력한 효과적인 동기부여로 작용하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변화, 그리고 경쟁

주어진 조건의 변화, 즉 소비대중의 욕망(또는 욕구, 또는 선호)의 변화와 생산기술의 변화는 이윤극대화와 효용극대화를 추구하는 생산자와 소비자로 하여금 다시금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한다. 기존의 것을 고수하는 생산자와 소비자, 특히 생산자(기업, 자본가)는 도태된다. 또한 역으로 이윤극대화를 위한 생산자의 도전과 효용극대화를 위한 소비자의 도전과 변화는 생산기술의 변화와 소비대중의 욕망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변화야 말로 미래를 예측 불가능하게 하는, 불확실성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언제 어떤 식으로 변화가 일어날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에 최대생산과 최대소비를 가능케 하던 상품가격과 상품조합은 이제 낡은 것이 되어버리고, 새로운 상품가격과 상품조합이 최대생산과 최대소비를 가능하게 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산기술과 대중의 욕망을 담아내면서 최대생산과 최대소비를 달성하고 있다. 적어도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경제체제들보다 더 우월한 최대생산과 최대소비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이러한 변화를 읽어내고 또 적극적으로 변화를 창출하는 것은 주로 생산자(기업, 자본가)들의 경쟁으보부터 유도된다. 선도적으로 또는 모험적으로 생산기술의 변화와 소비대중의 욕망(선호)의 변화를 읽어내고 포착함으로써 자산의 생산자(기업, 자본가)로서의 욕망(이윤극대화)를 실현하거나 혹은 실패한다. 새로운 상품이나 새로운 산업분야에 대한 생산자(기업, 자본가)의 투자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성인 상품(이윤)실현의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모험적이고 투기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성공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보상(이득)으로 인하여 기꺼이 그러한 모험을 감수할 자들을 만들어낸다. 아마도 이러한 모험적이고 투기적인 기업가정신이 장려(보상)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적어도 다른 경제체제들보다 우월한 자원배분의 효율성, 그리고 그 결과로서 비약적 성장이라는 업적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제도는 자본가에게 이윤이라는 주요한 경제적 이득을 제공함으로서, 혹은 경제적 이득으로 꼬득여서 이러한 불확실성을 부담하는 경제활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자원배분의 효율성(최적의 자원배분)이란 결국, 사람들이 이윤획득과 소비에 대한 욕망을 실현하도록 지속적으로 동기부여하는,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 , 사람들이 어쨌든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달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지속적으로 달성된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만족을 모르도록 욕망을 자극함으로서 지속적으로 활동적인 인간을 만들어냄(강요함)으로서 가능하다. 끊임없는 역동성이 강조된다.

 

 

구 소련에서 실시된 계획경제의 진행과정을 1단계(고속성장기), 2단계(정체기), 3단계(붕괴기)로 나누어 보자.

 

1단계(고속성장기)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에 따라, 온갖 어려움에 맞서면서 만인이 평등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대중적 욕망이 충만하다. 그리고 대규모의 광공업에 대한 투자(추월/추격 성장 전략)와 공산품의 생산, 그리고 이를 공평하게 소비하는 경험을 통해서 다시금 이러한 대중적 욕망을 자극한다. 소수대중(자본가)에 대한 억압은 있지만 다수 대중에 대한 공평성이 실현(평등)되어 사회적 통합성(다수대중의 욕망을 자극)이 강화되면서 엄청난 열정이 사회를 지배하고 사람들은 모두 기꺼이 열심히 일한다. 자동적으로 경제규모가 비약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제3세계의 성공한 개발독재 단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로 개발과 열정과 성장의 광풍의 시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새마을 운동)

 

2단계(정체기)에 들어서면, 어느 정도 생활에 필요한 공산품은 이제 충분한 정도로 쓰고 있으므로 더 이상 공산품의 소비로부터 새로운 자극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한, 사회주의 혁명은 이제 과거의 영웅담(세대교체)으로, 혁명에 대한 열정은 과거만큼 동기부여로 작용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거나, 열심히 땀 흘려 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욕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들이 생겨나지만, 그러한 생각이 모아지고 반영되는 구조가 없다. 계획당국은 지금까지 잘해 왔는데 무언가를 바꿀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바꿔서 잘못되면 그 책임을 누가 진단 말인가? 사람들의 욕망은 가라앉고 사회는 활력을 잃어버린다. 경제구조, 즉 공산품의 생산량 조합은 가라앉아 있어서 표현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소비욕구(욕망)을 담아내지 못한다.

 

서서히 인식되는 차이(불만족, 혹은 새로운 욕망)은 불건전한 것으로 여겨지고, 초기 소수대중(자본가)에 대한 통제의 연장선상에서 여전히 강력하게 통제된다. 아마도 관료권력에 의한, 기득권유지를 위한 구실-반혁명적 사고나 욕망에 대한 통제로 작용한 것 같다. 관료권력 내부에서는 경제제도의 진화를 위한 동력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다.

 

전반적으로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를 충족하기 위한 계획(추월전략)과 이러한 계획의 실현으로 달성되는 욕구충족(만족감, 그것도 상대적 박탈감이 없는 만족감)은 상당한 수준으로 대중에게 새로운 동기부여를 제공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상태를 지나고 나면 새로운 욕구(욕망)이 형성되는데 이러한 욕구(욕망)은 새로운 자원배분상태를 요구한다.(새로운 생산물 구성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러한 욕구(욕망, 동기부여, 실천의지)가 반영되지 못하거나(혹은 좌절되거나) 또는 오히려 억압당한다면, 그 사회는 활력을 잃고 정체상태에 빠져버리게 되고 좌절과 분노가 쌓이고 확산되며, 비교가능한 자본주의 물결이 이러한 분노와 좌절을 더욱 확장하면서 바이러스처럼 번지게 된다.

 

3단계에 들어서면,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쌓여온 구성원들의 불만과 정체라는 내부적 압력(통시적 압력), 그리고 경제적으로 더 발달한 자본주의 문물과의 비교열위라는 외부적인 압력(공시적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그 동안 잠재되어 있으면서 꾸준히 증폭된 구성원들의 욕망이 드러나지만, 이제 와서 계획당국이 이거를 담아내기에는 이미 불가능한 경제구조가 되어버렸고, 또 계획당국이 그거를 담아낼 수 있는 능력도 이미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구 소련은 물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되는 제방과 같이 무너졌다.

 

왜 계획당국은 변화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담아내지 못했는가?

사회주의 혁명에 따른 프롤레타리아 독재, 그리고 전위정당의 무오류성, 최고최후의 경제체제라는 자부심 등과 같은 요소들이 변화를 담아내기에는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적대적 모순이 제거되었다고 보므로 어떤 종류의 급격한 새로운 변화를 허용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생산수단의 사회화(국유화)를 통해서 상품실현의 불확실성을 확실히 제거하는데 성공했지만, 동시에 결과적으로 경제활동의 역동성까지도 제거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생산물로부터는 더 이상 어떠한 동기부여(욕망의 자극)이 생겨나지 않는 절대적으로 충분한 상태 인간은 혹은 인간사회는 이러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소비에트에 권력을!”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라는 구호가 구 소련에서 가능했다면, 소비에트가 관료권력(경제계획)에 충분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면, 구 소련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인가? 달라졌다면, 어떻게 달라졌을 것인가?

 

중국은 구 소련과는 확실히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도 중국인민들의 변화하는 욕망, 지역적으로 계급적으로 심한 편차를 보이는 욕망을 어떻게 알아내고 담아내면서 통합성과 공정성의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지 자못 궁금……..

 

<역설>

생산의 무계획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낭비를 제거하고자 계획경제를 도입했는데 결과적으로 자원배분이 효율적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낭비가 발생했다. 수요공급에 따라서 결정되는 가격을 신호로 어떤 것을 얼마만큼 생산하고 소비할 것인지가 무계획적으로 이루어지고 사후적으로 청산되어서 필연적으로 낭비가 발생하는 시장경제는 결과적으로 자원배분이 효율적이다.

 

모두가 다 똑같다면, 인식되는 차이가 없다면, 동기부여(욕망의 자극)은 일어나지 않는다. 차이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감정에너지, 욕망에너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인식된 차이에 따른 감정에너지가 없으면 욕망에너지도 없다. 무엇을 적극적으로 하려는 의지가 발생하지 않는다. (욕망이 없다. 내면화된다. 억압된다.)

 

획일적인 평등 획일적으로 차이를 제거해 버리는 것은 효율적 자원배분과 거리가 멀다. 비효율을 가져온다. 욕망은 멈추지를 않는다. 반복적으로 안정적으로 달성되는 목표는 더 이상 목표가 될 수 없다. 동기부여로 작용하지 못한다. 욕망을 자극하지 못한다. 이미 소유해서 상당기간이 지난 어떤 물건은 더 이상 자랑꺼리가 되지 못한다. 외부적 대상/외부적 차이로부터의 자극에 따르는 욕망(동기부여) 내부적 차이를 인식하고 이로부터 일어나는 자극(욕망, 동기부여)

 

인간의 통제되지 않는 욕망은 무한하게 확대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자원의 희소성에 기반한 인간의 욕망(선호, 만족)이 반영되지 않고서는 자원배분의 효율성이란 없다. 욕망이 중요한 이유는 실천행위의 동력, 진화의 동력으로 작용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또 이거를 반영해서 생산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