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교”라는 종교가 있다. 포도교에서는 “포도신”을 섬긴다. 그리고 “포도경”이라는 경전도 있다. 포도경 중 “포도복음”을 잠깐 살펴보자.

 

포도신과 인간의 관계를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예쁜 처녀 노예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포도원 주인은 처녀 노예와 섹스를 하려고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그는 아침 아홉 시쯤에 처녀 노예 순종”에게 “오늘 나하고 자자라고 말했다. 순종은 주인의 말에 순종했다. 그들은 열두 시에 같이 잤다. 주인은 크게 기뻐하며 순종에게 포도 열 두 송이를 주었다. 그 열 두 송에는 666개의 포도 알이 있었다. 순종이 포도를 먹어보니 그 맛이 천국 같았다.

포도원 주인은 오후 세 시쯤에 처녀 노예 “불손”에게 “오늘 나하고 자자”라고 말했다. 불손은 불손하게도 주인의 말에 따르지 않았다. 오후 다섯 시까지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주인은 불손을 강간했다.

그것을 본 처녀 노예 “참견”이 참견했다. “주인님은 아내도 있으면서 어찌 불손을 강간하십니까?” 그러자 크게 노한 포도원 주인은 “내 노예를 내 마음대로 강간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냐?”라고 호통쳤다. 그리고 참견도 강간한 후에 불손과 참견을 불에 태워 죽였다. 그 고통은 지옥불과 같았다.

이와 같이 순종하는 자는 상을 받을 것이고, 불손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포도신이 하시는 일에 감히 참견하는 자도 역시 똑같이 벌을 받을 것이다.

(포도복음 20:1~16, 번역개판)

 

 

 

이 구절을 본 이덕하는 「포도경 약 올리기: 003. 포도원 노예와 강간」이라는 글에서 궁시렁거린다.

 

비유를 해도 참 재수 없게 하네

포도교에서는 노예제를 옹호하기라도 하나?

어쨌든 노예제 옹호론자가 이 구절을 보면 참 좋아하겠군. 포도신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주인이 노예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떠들어대겠군.

포도교에서는 여자를 어떻게 보길래 하필이면 강간을 비유로 드나?

 

 

 

이덕하의 글을 본 독실한 포도교도(포도교를 믿는 교인) A가 발끈한다.

 

이덕하는 난독증인가?

“포도신과 인간의 관계를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라고 앞에 써 있지 않은가?

이것은 비유일 뿐이다. 비유에서는 비유의 속뜻 즉 “비유를 들어서 하고자 하는 말”이 중요하지 비유의 겉모습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포도신께서 내리는 명령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복종해야 한다. 복종하는 자는 천국에 갈 것이고 반항하는 자는 지옥에 갈 것이다”가 이 비유의 속뜻이다. 시비를 걸고 싶으면 속뜻에 시비를 걸어라. 겉모습에 시비를 거는 헛발질이나 하지 말고.

나도 노예제와 강간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이 구절은 노예제가 당연시되었으며 노예를 강간하고 죽여도 별로 신경 쓰지 않던 시대에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쓴 것일 뿐이다.

 

 

 

기독교도 B도 한 수 거든다.

 

포도복음의 이 구절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비유는 비유일 뿐이기 때문에 포도교도 A의 말대로 비유의 겉모습을 완전히 무시하고 속뜻만 따져야 한다. 포도교와 기독교가 같은 종교는 아니지만 이 구절의 속뜻만큼은 기독교와 똑같다.

기독교식으로 바꾸자면 “야훼께서 내리는 명령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복종해야 한다. 복종하는 자는 천국에 갈 것이고 반항하는 자는 지옥에 갈 것이다”가 되며 이것을 부정하는 기독교도는 없을 것이다. 창세기 22 2절을 보라.

우리 성경에 이렇게 멋지고 이해하기 쉬운 비유가 없다는 것이 아쉽다.

 

 

 

기독교도 C의 생각은 약간 다르다.

 

물론 비유의 속뜻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비유를 하더라도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포도복음의 이 구절이 재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비유라 해도 어떻게 여자를 강간하는 것에 비유하나?

이런 재수 없는 비유 때문에 “포도신께서 내리는 명령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복종해야 한다. 복종하는 자는 천국에 갈 것이고 반항하는 자는 지옥에 갈 것이다”라는 훌륭한 교리가 빛이 바래게 된다.

, 우리 성경에 이렇게 재수 없는 비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BC 사이에 치열한 신학 논쟁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이덕하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