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violence an act of aggression, generosity a sign of altruism? Ethnographers of Melanesia as well as psychoanalysts of America will readily testify that aggression is often satisfied by making large and unrequited gifts. For as the Eskimo also say, Gifts make slaves, as whips make dogs. On the other hand, a person may well hit another out of a true concern for the latters welfare. One mans altruism becomes some childs sore behind; and, Believe me, Im doing this for your own good. It hurts me more than it hurts you. There is, in human affairs, a motivational arbitrariness of the social sign that runs parallel to, in fact is due to, Saussures famous referential arbitrariness of the linguistic sign. Any given psychological disposition is able to take on an indefinite set of institutional realizations. We war on the playing fields of Ann Arbor, express sexuality by painting a picture, even indulge our aggressions and commit mayhem by writing books and giving lectures. Conversely, it is impossible to say in advance what needs may be realized by any given social activity. (The use and abuse of biology, 10)

 

Sahlins는 사회생물학자의 주장을 검토할 때에는 절대적 진리일 것을 요구한다. 단 하나의 예외라도 발견되면 사회생물학의 명제는 무가치하다. 오직 수학적 엄밀성을 만족시킬 때에만 사회생물학 명제에 가치가 있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이론일 때에는 결코 그런 엄밀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증거를 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완전한 임의성(arbitrariness)도 있고 절대적 관계도 있으며 그 중간에는 어느 정도의 상관 관계 즉 확률적 명제가 있다. 그런데 Sahlins가 사회생물학을 비판할 때에는 임의성과 절대성 둘 밖에 없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수학 분과를 제외하면 절대적 진리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것은 매우 이상한 태도다.

 

사자가 사냥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사자는 왜 사냥을 하는가? 진화 생물학자들은 두 가지 수준에서 답할 것이다. 첫째, 궁극 원인(ultimate cause)의 수준에서 볼 때, 사자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사냥한다. 둘째, 근접 기제(proximate mechanism, proximate cause)의 수준에서 볼 때, 사냥 관련 선천적 심리 기제들이 작동하여 사냥을 한다.

 

과연 이런 식의 설명에 대해 Sahlins가 뭐라고 할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Sahlins가 사회생물학을 비판하는 방식을 적용하여 위의 명제들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사자가 사냥을 하다가 도망가던 얼룩말의 뒷발에 맞아서 부상을 당할 수도 있고,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걸린 얼룩말을 잡아 먹은 후에 병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고, 사냥에 실패해서 에너지만 소모할 수도 있다. 사냥하다가 벼락에 맞아 죽는 특이한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사냥을 한다는 진화 생물학자의 설명을 틀렸다. 아마 이런 식이 될 것이다. 사자가 사냥을 할 때 모든 경우에 성공해서 모든 경우에 적절한 고기를 얻는다는 것이 관찰될 때에만 사자의 사냥이 에너지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는 것이 Sahlins의 사고 방식이다. 물론 진화 심리학자들은 충분히 높은 상관 관계만 발견되면 만족한다.

 

Saussure의 임의성은 특정한 단어와 특정한 의미 사이에서 발생한다. 반면 특정한 행동의 의미가 임의적이지는 않다. 이것은 사냥의 의미가 임의적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궁극 원인의 수준에서는 바이러스에 걸려 죽거나, 사냥에 실패해서 기진맥진하거나,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획득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것은 근접 기제의 수준에서는 자살 본능이 아니라 사냥을 위해 진화한 심리 기제의 발현이다.

 

사람을 때릴 때에도 사랑 때문일 때가 있다고? 물론 훈육을 위한 사랑의 매도 있다. 하지만 아구창을 힘차게 날렸다면 그것이 사랑의 매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없다라고 Sahlins가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생물학자나 진화 심리학자들은 절대적 확실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또한 사실상 모든 사회 과학자들이 절대적 확실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Sahlins 같은 사람들이 사회생물학이나 진화 심리학을 비판할 때에만 절대적 확실성을 요구한다.

 

어떤 행동을 보고 그 행동의 기반이 되는 욕구(또는 심리 기제)를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Sahlins의 생각과는 달리 그것은 가능하다. 물론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절대적으로 확실할 필요가 없다. 아구창을 날렸다면 그것은 식욕 기제나 성욕 기제의 발현일 가능성보다는 분노 기제의 발현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