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xt and longer section is concerned with kin selection, which is a particularly salient form of the idea that human social behavior is determined by a calculus of individual reproductive success; that is, that all kinds of sociability and associability can be explained by the evolutionary tendency of the genetic material to maximize itself over time. (The use and abuse of biology, xiv)

[원문에는 asociability라고 표기되었는데 associability의 오자임이 분명하다.]

 

all kinds of sociability and associability all에 주목하자. 이번에도 허수아비 공격에 여념이 없다.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사회생물학자나 진화 심리학자가 한 명도 없다.

 

 

 

It remains to note that I have written this essay with some sense of urgency, given the current significance of sociobiology, and the good possibility that it will soon disappear as science, only to be preserved in a renewed popular conviction of the naturalness of our cultural dispositions. (The use and abuse of biology, xv)

 

과학으로서 사회생물학이 곧 사라진다고? 요즘에는 사회생물학이라는 이름이 많이 쓰이지 않고 대신 진화 심리학이라는 이름표가 대세다. 하지만 기본적인 정신은 별로 변하지 않았으며 문화 인류학자들의 적개심도 거의 그대로다. 진화 심리학의 인기는 점점 커지고 있다. 한편으로 대중서가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고 많이 팔린다. 다른 한편으로 온갖 저명한 학술지를 진화 심리학 논문들이 점점 더 많이 채우고 있다.

 

 

 

Social organization is rather, and nothing more than, the behavioral outcome of the interaction of organisms having biologically fixed inclinations. There is nothing in society that was not first in the organisms. (The use and abuse of biology, 5)

 

진화 심리학자들은 생물학적으로 고정된 성향들(inclinations)보다는 선천적 심리 기제들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여기에서는 그런 차이는 잠시 무시하도록 하자.

 

어쨌든 첫 번째 문장에서 두 번째 문장이 유도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창발성(emergence)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허수아비 공격이다. 모든 것이 유기체 안에 즉 개인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컨대 양자역학이 수십만 년 전부터 개인 안에 또는 유전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회생물학자나 진화 심리학자는 한 명도 없다.

 

백지론적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도, 예컨대 문화 인류학자들도, 사회가 생물학적으로 고정된 성향들이 있는 유기체들의 상호 작용이라고 생각한다. 차이가 있다면 백지론적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진화 심리학자들에 비해 생물학적으로 고정된 성향들 또는 선천적 심리 기제들의 수가 훨씬 적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그들은 선천적 질투 기제 등을 인정하지 않으며 학습 기제, 추론 기제, 사회화 기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거의 모든 것을 다 한다고 주장한다. 기제의 수가 많다고 창발성(emergence)이 안 생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