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핵무기
아빠A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햇볕정책은 시작할때 북한에 핵이 없고, 개발 능력이 없다는 점을 전제하고 (이건 94년의 결과물임) 스타트 한 정책으로서, 북핵을 제어하는데 실패했으니 전제조건이 무너진 관계로 현재로서는 실패한 정책인 것이 사실이다. 이 점을 부정하면 사실 아무런 이야기가 진행이 되지 않는다. 햇볕 정책에는 다양하고도 소소한 성공 사례들이 있지만, (개성공단을 포함해서) 이 모든 사례들은 북핵 문제 앞에서는 모두 빛을 잃는다고 보는 것이 맞는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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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햇볕정책이 '북한에 핵이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인지 의문이다. 이 얘기는 북한에 핵이 있었다면 햇볕정책은 존재할 수 없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만일 북한이 1990년대 중반쯤에 지금 정도의 핵개발 능력을 갖고 있었다면 애초에 햇볕정책은 존재할 수 없었다는 얘기겠지.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햇볕정책 말고 무슨 정책을 펼 수 있었을까? 북한에 폭격을 하거나 전면전을 하는 것? 아니면 이명박처럼 무작정 기다리자?

북한에 핵이 없다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 어떻게 좋은 것일까? 또는 누구에게 어떻게 나쁜 것일까?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핵무기가 용인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핵무기는 위험하다. 당연하다. 하지만 집안의 식칼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위험해도 쓸모가 있기 때문에 집안에 두고 쓴다. 핵무기도 마찬가지 아닐까? 만일 핵무기가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반드시 없애야 한다면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프랑스 이스라엘 파키스탄 등등... 현재 핵무기 보유한 나라들까지 동일한 기준으로 문제 삼아야 하는 것 아닐까?

북한의 핵은 두 가지 성격을 갖는다. 첫째, 다른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 에너지 공급의 대안 둘째, 미국의 위협에 대한 자위책 등 두 가지이다. 두 가지 다 북한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미국을 중심으로 북한을 봉쇄 및 포위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정책이 북한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핵 말고 무엇이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 북한이 미국이나 일본 심지어 남한까지도 위협할만한 능력이 있나? 위협할 능력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미국이나 일본, 남한이 공조해서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방법이 북한을 포위해 말살하는 것 말고 없을까?

2. 지원 물자 어디에 쓰이나?
북한에 쌀을 주면 굶주리는 인민들에게 가지 않고 북한군 병사들이 먹는다는 얘기 많이 들었다. 심지어 유엔도 그런 식의 보고서를 냈다고 하고, 쌀 외에 다른 물자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나는 처음 얘기 들을 때부터 의문이었고, 지금도 그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남한이 북한에 준 쌀이 굶주리는 인민들에게만 간다고 치자. 그렇다면 북한군 병사들은 우리가 도와준 혜택을 전혀 입지 않는가? 아니다. 웃기는 얘기다. 북한 정권이 원래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에게 줘야 할 식량이 결국 북한군 병사들에게 돌아간다. 주머니돈이 쌈짓돈이라는 얘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닐 텐데...

쌀이니 뭐니 현실적으로 어떤 물자가 누구에게 갔는지 감시할 방법도 없다. 쌀에 일일이 전자태그 붙여서 감시할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봐야 의미도 없고.

결국 북한 인민이고 병사고 다 도와주기 싫고 내심은 그놈들 다 뒈지면 좋겠다는 건데, 도대체 저 어마어마한 증오심은 어디에서 저렇게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아나는 것인지 나는 그게 더 궁금하다. 박정희나 조중동 이것들이 참 지은 죄가 졸라 많기는 많다는 생각이다.

3. 대안이 있나?

아빠A님은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또한 이러한 이야기는, 미래에 이명박 정부가 혹시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성공하면 이야기 하기가 쉽다. 북핵이 제어되었다는 의미이므로.) 지금의 햇볕정책을 '그대로' 가지고 나갈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폐기하는게 정치적으로 부담이 된다면, 어떤식으로든 수정이 가해져야 하며, 햇볕정책은 그런 수정이 가해진 정책의 '하위 정책'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지 적절할 것이다. 요컨데, 북핵이 우리가 원하는 수준으로 제어되고, 식의 조건이 붙어야 아마도 다음 이야기를 진행할수 있을 것이며, 이때의 햇볕정책은 이런 거대한 조건을 결정하는 전략의 하위 실행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햇볕정책을 계속 주장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겠으나, 북핵을 제어하는데 실패했다는 점 자체를 무시하는건 타조가 모래밭에 머리를 박는거나 비슷한 이야기다. ]

하위 정책과 상위 정책의 위상을 어떻게 설정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전략과 전술의 기본 개념을 조금만 생각해봐도 햇볕정책의 상위 정책이 될 수 있는 정책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위 정책은 그 하위범주로 상세한 정책으로 세분화할 수 있는 정책이다. 하위 정책이란 같은 범주의 정책 몇 개를 묶어서 그보다 큰 범주의 정책으로 묶을 수 있는 정책들을 말한다. 그런데 햇볕정책과 함께 묶어서 그보다 큰 범주의 정책으로 만들 수 있는 정책으로 무엇이 있을까? 아마 햇볕정책과 적대정책(또는 압박정책)을 한 데 묶어서 '대북정책'이라는 말로 묶을 수 있을 텐데, 결국 아빠A님의 주장에 의하면 '대북정책'이라는 정책을 하나 정하고, 그 하위 정책으로 햇볕정책을 두자는 얘기가 될 것이다. 이게 얼마나 웃기는 얘기인지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임동원 전 장관이 인터뷰에서 "햇볕정책을 수정하는 다른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고 질문하자 "좋은 얘기이긴 한데, 그럼 직접 한번 만들어보라고 하세요" 했다던 답변이 떠오른다. 이 세상에는 왜 남자와 여자뿐이냐고 불만을 토하던 어떤 예술가의 발언도 떠오르는데, 불만이면 남성과 여성 말고 다른 성별을 만들어 보시등가... 햇볕정책에 대한 판단도 비슷하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햇볕정책 비난하는 목소리 가운데 무슨 정책이라고 할만한 대안을 내놓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대북정책에서 햇볕정책이냐, 대결이냐... 두 가지 선택은 다른 어떤 정책보다 상위 범주에 속한다. 저 선택부터 한 다음에 그 하위 범주를 선택하는 것이다. 햇볕정책을 하되, 세세한 방법론에 있어서는 각론이 있을 수 있다(가령 국민투표에 회부한달지). 가령 대결정책을 선택한 후 전면전을 할 것이냐 아니면 멀리서 포위한 채로 굶겨죽일 것이냐를 고르는 것처럼.

엄격히 말해 햇볕정책은 정책이라고 표현하기도 곤란하다. 하나의 원칙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기업 운영에서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자는 얘기를 '정책'이라고 할 수 없고 일종의 경영원칙이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햇볕정책의 정당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저런 경영원칙을 놓고 시비를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원칙이라는 것이 만고불변일 수는 없겠지만, 저걸 공격해서 무력화시키려면 뭔가 대안을 내놓고 얘기해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이렇게 생각하는 나 아니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저들 가운데 하나는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 다 정상인데 일부 생각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거나 하는 그런 논리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참 이 나라에 사는 것은 더럽게 피곤한 일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