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이런 것을 할 수 없다, 어린이는 이런 것을 할 수 없다는 온갖 믿음이 있었다. 그 중 일부는 과학자들의 연구로 깨졌다.

 

갓난 아기도 기초적인 물리 법칙과 숫자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예컨대, 마술 트릭을 사용해서 고체가 고체를 통과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보여주면 갓난 아기는 다른 경우보다 더 오래 쳐다본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동물의 능력을 과대평가는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과학계에서는 동물과 어린이의 능력을 아주 많은 경우에 과소평가해왔으며 여전히 그런 것 같다. 과학자들이 동물과 어린이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가 새로운 실험과 관찰을 통해 그것이 깨진 사례는 수도 없지만 그 반대 사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어떤 측면에서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보다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어떤 달리기 선수가 100m 10초 안에 뛸 수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려고 한다고 하자. 만약 그 선수가 사람들 앞에서 100m 10초 안에 주파한다면 그 사람의 능력이 입증된 것이다. 만약 그 선수가 사람들 앞에서 100m를 뛰었는데 10.13이 걸렸다면 어떤가? 이로써 그 선수가 100m 10초 안에 뛸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된 것인가? 아니다. 온갖 다른 가능성들이 있다. 당시에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일부러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운동화에 문제가 있어서 달리기에 지장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달리기를 하다가 예쁜 여자에 눈이 팔려서 속도가 약간 줄었는지도 모른다.

 

 

 

어디서 읽었는지도, 어떤 종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떤 원숭이에게 마음 이론 모듈(Theory of Mind Module, ToMM)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믿는 동물학자가 있었다. 그 학자에 따르면 자식인 어린 원숭이에게 위험이 닥치자 어미 원숭이가 자식에게 경고하기 위해 소리를 쳤다. 내 기억으로는 포식자가 어린 원숭이 앞에 나타났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어린 원숭이는 포식자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 학자에 따르면 그 어미 원숭이에게는 ToMM이 없다. 만약 ToMM이 있다면 어미 원숭이는 자식이 포식자 쪽을 보고 있으니까 자식도 포식자를 보고 있다는 것을 추론해낼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자식에게 굳이 경고를 위해 소리치지 않았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여러분의 어린 딸 앞에 사자가 나타났다고 하자. 그리고 여러분과 자식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어서 자식에게 달려갈 수 없다고 하자. 그 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그래, 내 딸이 사자 쪽을 향하고 있으니까 사자를 보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굳이 내가 소리를 쳐서 알릴 필요가 없지.라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있을 것인가? 아니면 사자다라고 외칠 것인가?

 

아마 모든 부모가 사자다는 아니더라도 뭐라고 큰 소리를 칠 것 같다. 그리고 진화론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인간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진화했을 것 같다. 동물이 어떤 쪽을 향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쪽에 있는 물체를 항상 즉시 알아보는 것은 아니다. 잠깐 눈을 감고 있을 때도 있고, 멍하니 방심한 상태일 때도 있다. 설사 그런 상태일 가능성이 1%도 안 된다 하더라도 사자다라고 소리를 치는 것이 적응적이다. 왜냐하면 사자다라고 소리 치는 데에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비용이 들지 않을 때에는 1%, 아니 0.1%라도 자식의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낫다.

 

그 원숭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설사 그 어미 원숭이가 자식도 포식자를 보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소리를 치는 것이 적응적이다. 따라서 그 관찰은 그 원숭이에게 ToMM이 없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이번에는 Walter Sinnott-Armstrong이 편집한 Moral Psychology 2권에 실린 Justin DArmsSentimental Rules and Moral Disagreement: Comment on Nichols」에 나오는 사례다.

 

But children use many terms before they can plausibly be credited with possession of the concepts those terms express. For instance, shortly after turning 3, my daughter Katrina started saying that something is “not fair” just because it involves her not getting what she wants. I don’t think she is insincere – it’s just that her understanding of fairness at this point is exhausted by the idea that to call something not fair is to register a complaint. I think it’s clear that she hasn’t got the concept of fairness yet. (281)

 

In his survey of the developmental literature, Larry Lucci(2001) notes that many young children use “fair” in just the way Katrina does, and he claims that “Young children’s morality ... is not yet structured by understandings of fairness as reciprocity”(p. 86). He cites Davidson, Turiel, and Black(1983) for the finding that in children up to age 7, moral judgment is primarily regulated by concerns for maintaining welfare and avoiding harm.(288, 5)

 

DArmsNucci의 말대로 어린이가 누군가의 방해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not fair(불공평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린이가 아직 공평함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된 것은 아니다. 어른들도 not fair를 그런 식으로 사용할 때가 종종 있다.

 

어른들이 공평함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어른들이 공평함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어린이에게도 적용된다. 서너 살 먹은 어린이가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으면 불공평하다고 이야기할 때 그 어린이가 아직 공평함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그런 개념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지만 어른처럼 이기적인 방향으로 뭔가를 왜곡해서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이가 not fair라는 말을 하는 모든 경우를 다 따져보아야 한다. 만약 그 중 상당수가 공평성에 부합하는 말이라면 설사 왜곡되게 그런 말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하더라도 어린이가 공평함이라는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려야 한다.

 

어린이가 not fair라는 말을 항상 왜곡된 의미로 사용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어린이가 공평함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된다. 어린이가 이미 공평함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있지만 그것을 fair라는 단어와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린이가 이미 공평함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있지만 항상 이기적인 방향으로 왜곡해서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신병질자(psychopath)는 공평함이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늘 이기적으로 행동하며 그들이 쓰는 도덕적 언어는 일반인과 상당히 다르다.

 

 

 

2010-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