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에나 <상수>와 <하수>는 있기 마련이다. 김치를 칼로 자르는 간단한 일에도 경험 많은 고수가 있다. 어린 시절 왜 어머니는 귀찮게 김치를 칼로 자르지 않고, 세로로 죽죽, 지저분하게 손으로 찢을까 하는 불만을 가졌는데, 어른이 되어 살아보니 그 사연의 깊이를 알 수가 있었다. 필자가 전공하는 분야에도 고수가 있어서 그런 사람들과 몇 마디만 섞어보아도 내공이 느껴진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뭔가 배울 것이 항상 존재한다. 더구나 그 상수가 겸손하고 인품까지 갖춘 사람이라면 기를 쓰고 가까이 다가가 뭔가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상수가 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하는 것이다.
   


상수와 하수가 가장 확실하게 구분이 되는 분야는 바둑이 아닌가 한다. 보통 말하는 입단자의 실력에 대하여 바둑을 둬보지 못한 사람은 무슨 동네 태권도 도장의 검은 띠 하나 딴 것 정도로 생각할지 모르나, 그 입단자들의 공력은 동네 Local 아마추어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동네 아마추어 1,2단인 사람들이 프로 입단자를 이길 가능성은 <로또 1뜽>보다도 훨씬 낮다. 이 말은 아마 바둑을 조금 두실 줄 하는 분은 이해하실 것이다. 이 때문에 하수는 상수의 기보에 대하여 뭐라 궁시렁 거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5급 짜리가 “음...이창호는 말이야, 그 행마에 뭔가 기백이 없어. 속도감이나 비장함이 없단 말이야. 그런 기풍은 우리나라 바둑계의 해악이 되지” 요따위 말을 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모르겠다. 막 바둑에 들어가서 한 5-6급 두는 사람 중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수가 상수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그 차이가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이어린 사람이라도 상수는 확실히 대접을 받는 것이 바둑이 아닐까 한다. 중학생 상수에게 바둑을 청하는 하수 어른이라도 시작하기 전에 진심으로 인사를 한다. “그러면 한 수 잘 지도 부탁합니다.” 내가 바둑을 잘 두지는 못하지만(물 3급?) 이런 정신이 너무 좋아서 바둑과 그 문화를 좋아한다.  물론 하수가 상수의 모든 바둑을 좋아하지는 않겠지. 어떤 사람은 이창호의 두루 뭉실함보다는 최철한의 표독함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지만, 피 터지는 싸움 바둑만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이 하수임을 천하에 공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설사 상수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하거나 떠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상수에 대한 습관적, 관성적 존중 또한 바람직하지는 않다.  일본 바둑에서는 그 상수에 대한 존경이 너무 관성적이고 지나친 게 아닌가 싶다. ^^ 예를 들어 “에... 사까다 선생께서 이 경우에는 왼쪽으로 젖히는 것이 정수라고 하셨다” “후지사와 선생께 말씀하시길 그것은 악수 중의 악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식이다. 다르게 말하면 좀 틀에 박힌 형식미 중요시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초창기 한국기사와 바둑을 둔 일본기사들의 이야기는 “이런 깡패 바둑에 세상에 또 어디에 있나...?” 라고 했다니 전혀 상상 밖의 수를 들고 나오는 한국식 전투에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승패가 분명한 바둑과는 다소 다르겠지만, 고클래식 http://www.goclassic.co.kr/ 에 가보면  항상 느끼는 것은 관전자로서의 아마추어들이 보이는 의식은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실제 음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본 예의, 또는 고수에 대한 존경심을 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항상 아쉽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아주 꼼꼼히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사이먼 래틀에 대한 논쟁이나 말러 논쟁이 그런 예로 들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사이먼 래틀(베를린필 지휘자)은 바둑으로 치자면 국제대회에서 몇 번의 우승을 한 정도의 고수중의 고수라고 느껴지는데, 그에 대한 거의 막무가내식 혐오나 비난은 좀 어이가 없다. 실제 음악 전공자들의 필자와 같이 말이 많은 아마추어들과 말을 좀처럼 섞지 않으려고 한다. 필자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온갖 지휘자와 디스코그래피를 줄줄 꿰면서, 심지어는 리히터가 언제 어디서 녹음한 것은 쉬타인웨이가 아니고 붸젠도르프라서.. 어쩌고저쩌고.... 그때 막무가내로 어설픈 개인적 평가를 참고 들어준 음악전공자들에게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부끄럽고 미안한 감정뿐이다. 그 중 한 사람은 이후에 예종과 줄리어드를 졸업한 연주자인데, 나의 황당한 변설을 한 시간쯤 듣고 나서 한마디 말이 했는데 그게 아직 가슴에 남아있다.그 말은 이런 것이다. “..깔깔...정말 많이 아시네요. 재미있고요. 음... 오빠 그런데 혹시 조 옮김 할 줄 알아요 ? ” “(급당황) 흠..흠..그거야... 하나씩 하면 되지”. 그 말의 의미를 대략 눈치 챈 나는 무척 당황했다. 그 양반은 내가 알고 있는 연주자들의 1/10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냥 매일 악보만 본다고 했다. 그리고 누구의 연주가 어쩌지 저쩌니 이런 것에 별로 관심도 없었고 다른 사람의 연주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것 자체를 무척 어려워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것이 고수의 한 면이 아닌가 한다.
    


물론 연주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가 있긴 하지만, 그것을 입 밖에 쉽게 내뱉고, 남들에게 단정적으로 강권하는 것은 고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것은 스스로 하수임을 자처하는 좋은 증표이기도 하다. 내가 바하의 무반주 첼로를 들은 것은 한 30년 전쯤인데, 대만계 연주가 요요마의 음반으로 처음 들었다. 가난한 형편에 오디오를 장만할 수는 없어서 LP만 사서는,  오디오가 있는 친구 집에 가서 그것을 테이프에 담아 와서 카세트 플레이어에 듣는 식으로 음악생활을 이어갔다. 좋은 곡이라고해도, 이 연주자 저 연주자 판을 살 수 없는 형편이라 요요마 판만 수백 번을 들었다. 첼로 곡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고 요요마의 연주는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다른 일로 음반 가게에 가서 주인과 이야기하든 중에 그 유명 클래식 전문가라고 은근치 자처하는 아저씨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ㅎㅎㅎ 요요마 첼로가 좋아 ? 그것 순 깡통 소리야, 바하를 모독하는 소리지...OOO 연주를 들어봐,*&^%*&()* )$%#% ”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그 주인의 다음 말도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그렇게도 아끼는 요요마의 연주를 “깡통”소리로 매도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나를 ‘하수 중의 하수“라고 비웃은 그 양반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양반 요즘 뭐하시는지 모르겠다. 구입한 음반을 바꾸는 문제로 약간의 시비가 붙으면서 그에 대한 혐오는 더 깊어졌다. 그 와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아저씨는 영어도 순 엉터리고 독일어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사실은 그를 미워하는 나의 편견을 더 완고하게 만들었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전 LP 가게의 풍경이 그리워지네.  빼곡히 꼽힌  LP 음반에 세로로 써진 깨알 같은 레이블을 읽기 위해서 목을 90도로 젖혀서 한참이나 참아내면 읽어내야 했든 그 시절이 좀 그립다. 융털딱기로 LP판을 조심조심 닦을 때의 그 기분이란. 서울 여동생집에 쌓여 있는 LP판 잘 있나 모르겠네..
   

   

연주자에 대한 강한 편견은 그 연주가에게도 예의가 아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세월이 흘러 나도 조금씩 철이 들면서 연주가나 지휘자에 대한 평은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실제 내가 전공하는 분야에서 학위도 받고 살아보니 깨우치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은 처음 들은 곡이 이후에도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바하 무반주 첼로도 그러하지만 필자의 경우, 특히 그것이 심한 예는 브람스 교향곡인데, 교향곡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내가 처음 들은 곡은 Ars Vivendi(스펠이 맞나 모르겠다.)에서 나온 쿠르트 마주어 판이었다. ( 이상하게도 나는 동독출신 연주가나 지휘가가 썩 좋게 들린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이후 여유가 생겨 다른 판을 들었지만 그때 받은 각인을 좀처럼 지울 수 없었다. 성악이나 기악도 마찬가지. 그러나 다른 브람스 교향곡이 형편없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상수 중의 상수들이 연주한 곡에 대하여, 내가 이해를 잘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들의 주장에는 “지휘자 OOO는 4악장을 너무 날림으로 대충대충 하는 것 같다. ” 이런 식의 표현이 있는데 정말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그런 수 많은 연주자들이 지켜보는 중에서 그 세계적 고수들이 날림, 때우기 식으로 연주하고 그것을 녹음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건 녹음이나 연습과정을 전혀 모르는 전형적인 하수들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동네 바둑 5급도 채 안 되는 자가 “흠... 이번 이세돌은 끝내기에서 대충대충 하다 판을 말아먹었지...껄껄 ” 이런 소리와 비슷하다. 아마추어들은 고수들의 끝내기의 1/10000 도 이해하지 못한다. 옆에서 해설하는 사람의 소리를 듣고 마치 그것으로 자신의 생각으로 착각을 하는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의 경우가 많다. 해설자의 소리, 다른 아마추어 평가자의 주장은 무시하고 자신의 귀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다.  바둑해설로 유명한 윤기현 9단의 명언이 있다. “에...조훈현 9단이 이곳에 둔 것은 ... 입니다. 이건 조 9단의 생각이 아니고 뭐... 제 생각입니다. 제가 조9단의 생각을 알 수 있다면 여기서 왜 해설을 하고 있겠습니까? 국수전 결승에 나갔겠죠. 흐흐흐” 그 분 말씀이 백번 맞다.

    

하수 중에서 가장 대응하기 힘든 부류는 막무가내형이다. 예를 들어 천안함 사태에 대한 토론이 있는 BRIC에 가보면 거의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아마추어 과학,안보전문가들이 있다. 내가 보기에 초심자를 겨우 면한 듯이 보이는 사람이 전공자에게 무차별의 공격을 퍼 붓는다. 더 황당한 것은 그런 마구잡이 엉켜붙기 공격에 스스로의 일관성조차 없다는 것인데, 이런 공격에는 어떤 답도 무용지물이다. 간혹 진화론 관련 논쟁을 해보면 생물학과 무관한 박사들이 권위를 이용해서 막 던지는 하수적 주장, 거의 인해전술식 주장을 하는데 이쯤 되면 토론 자체가 불가능하여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물론 그들은 우리의 퇴각에 득의양양하여 승리를 주장하겠지만. 이런 하수들은 토론을  수천 번 해도 제자리 뛰기만 할 뿐이다. 고수들에게 뭔가 하나라도 주워들어 배울 자세가 안 되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진화론이란 원숭이도 100만년만 지나면 사람이 된다는 이론이라고 믿는 개신교 신자들, 현대생물학의 ‘생’자도 모르는 하수와의  토론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런 하수들의 특징은 자신의 주장을 확신하는 과정으로 토론을 이용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먹이를 던져줘서는 안 된다. 국내외 학회에 참가해보면 어떤 연사의 발표가 끝난 뒤, 미친 듯이 질문을 퍼붓는 사람이 있는데 대부분 막 학위를 마친 신선한 박사(fresh Ph.D ^^)이거나 그 즈음에 이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자신의 지식 과시용으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음... 공개적인 질문은 모르는 것을 배울 때 사용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 특히 우리사회에는 고수에 대한 존경이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공인을 주축으로 성립된 일본은 하급 기술자라도 사장에게 기술의 문제에서는 대들면서까지 토론을 하고 그것이 용인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적인 실력이 없이 형식적인 대물림으로 위계가 이어진(예를 들면 양반) 우리 문화에서 고수에 대한 존중은 애초부터 싹이 잘려진 상태가아닐까 한다. 

냉장고 고치러 온 아저씨도 그 분야 고수로서 존중을 해드려야 한다. 실제수리기사로 와서 뭔가를  고칠 때 옆에서 보면 보고 배울 게 많아서 나는 꼭 지켜본다. 그 분은 좀 불편하겠지만 ㅋㅋ. 우리집 아이들은 아파트 들어올 때 수위아저씨들에게 인사를 꼭 하게 하는데, 내가 말하길 그분들은 아파트 지키기의 달인이고 도둑들과의 싸움에서도 아빠보다 훨씬 잘하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존경해야한다고 우긴다. 아들의 질문.. 아빠 그 머리 하얀 할아버지도 쌈 잘해 ?  쩝,,, 당연하지. 이 놈아.. 그 할아버지 주먹 안봤어 ? 전문가야 그 할아버지.....   

하다못해 당구장에서도 마찬가지다. 100 "다마"가 300"다마"하고 시합을 할 때는 300"다마"에 대하여 뭔가를 지도받는 듯한 약간의 존경심을 가지고 시합에 임해야 한다, 그래야만 빠른시간에 100을 벗어나 야무진 150"다마"가 될 수 있다. 300에 대한 존경심하나 없이 300이 칠때마다 구시렁거리며 "너는 오늘 따라 운이 좋네, 나는 하필 오늘 컨디션이 안좋네." , "야 내 길은 내가 볼 줄아니까 조용히 해!" 이렇게 구시렁거리는 분들은 평생 100"다마"를 벗어나지 못한다. 
   
    

국제적 수준의 음악 고수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주위 알고 있는 음악 전공자들이 좀 있어 그들의 아픔이나 고통을 오랫동안 보아왔다. 한번은 성악(테너)하는 친구 연습실에서 만나기로 해서 가보니 이놈이 연습실에서 하라는 연습은 안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 아닌가. 사연인즉 소리가 원하는 대로 잘, 안 나오고, 저번에 한번 올라갔든 높은 음이 다시는 안 올라가서, 너무 답답해 눈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다 큰 놈이.... 또 한번은 Herman Prey 연주회를 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아마추어인 우리는 “야 독일 사람인데 한국말 딕션 죽이는데 ...그런데 소리에 우리의 한 같은 이런 감정이 서린 노래는 아닌 것 같아. 그 가사 뜻을 알까 ” 요따위 말도 안 되는 평을 하고 있는데 같이 간 성악 전공자는 풀이 죽어서 인상이 완전 찌그러져 있었다. 그의 말! “아...나는 한국 가곡은 다신 못 부를 것 같아. 어떻게 인간이 그렇게 노래를 잘 할 수 있을까. 성악가라는 것이 너무 쪽팔린 저녁이었어... ” . 이게 전공자, 음악적 상수의 절절한 표현이다. 예술은 정말 힘들고 그 과정이 지난하다.  성악하는 사람들이 기침하는 적 본적이 있는데 우리같이 그냥 막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성대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음,,,음..”소리를 내서 그것을 5분간 조금씩 삭혀내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건 정말 도 닦는 일과 같은 것이다. 바이올린 스케일이 잘 안되어 엉엉 우는 여학생도 본 적이 있다. 나도 이공학을 전공한지 한 30년이 되었지만 뭐가 잘 안되서, 예를 들어 무슨 모델 방정식이 안 풀려서 울어 본 적은 없다. 그게 안 되면 또 다른 주제를 잡아서 하면 되기 때문에 언제든지 뺀질뺀질 도망갈 구멍이 무궁무진하지만, 바이올린에 활 하나를 들고 있는 연주자들은 도망갈 구멍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시원찮은 연주라고 그 안에는 고통과 눈물과 한숨이 축적되어 있어 우리와 같은 하수가 “색채감”이 어떠니, “인류애적 보편적 정신”이 어떠니 “풀어진 후반부”가 어떠니 요딴 말을 쉽게 해서는 안 된다. 물론 듣는 사람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자유지만 그런 말에는 적어도 기본적인 존중과 책임이 동반 되어야 할 것이다.

   

상수를 대접하지 못하는 하수는 평생 하수로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시인 김광규의 시에는 이런 말이 있다 ( 정확하지는 않다. 기억에 의존해서리..내가 돈 주고 산 3번째 시집.) 

  

“욕 듣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은 대개 욕을 하는 자들보다 한 수  위다”

  

나는 음악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노력을 항상 감사히 생각한다. 그들은 쌩 아마추어 하수 중인 하수인 나로부터 존중을 받을 권리가 있다.  나는 어떤 수준의 연주든, 지휘든, 그들을 음악의 상수로 대접하고 싶다.  그래서 CD를 넣고 음악을 들을 때면 이런 소리를 맘속으로 해본다. 
  

“..그러면 한 수 지도 부탁드립니다”



 

왜냐하면 나도 빨리 상수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