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전쟁-전쟁이라고 쓰고, 학살이라고 읽는다-은 그 씨앗이 2차세계대전 당시의 연합국 지도자들에게 있습니다. 평화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강제로 내쫓고 거기에 이스라엘을 건국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말입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계속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겁니다. 한 번 잘못 꿴 단추는 두고두고 분쟁을 일으키는 겁니다.

1953년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 해상경계선에 관한 조항은 들어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에 북한의 해군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바다쪽은 어떻게 해 볼 엄두도 못 냈고, 그래서 NLL이 마치 해상경계선처럼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여기에 서로 인식의 불일치가 발생했는데, 북한은 해양법이라는 국제법에 따라 자신의 영해라고 생각했고, 남한은 실효지배 관습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영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이 해상경계선에 관해서 협상을 했더라면, 아마도 휴전협상이 완료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저는 짐작합니다. 목숨을 걸고 빼앗은 서해5도를 고스란히 내놓을 수도 없거니와 서해5도를 내놓으면 당장 인천과 서울이 쉽게 공격당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도 서울의 안위를 위해서는 서해5도를 도저히 양보할 수 없었을 테니, 결국 휴전협상 자체가 무위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 말하지 않음으로써 휴전협상을 끝낸 것이 아닌가 하고 짐작합니다. 그러나 그 행위가 오늘날 일어나는 연평해전, 연평도포격사건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잘못 꿰어진 단추였던 것입니다. 

물뚝심송 님의 글에 의하면, 1971년부터 북한은 NLL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했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이 문제에 대한 협상 조항을 넣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제가 짐작하기로 이것은 북한이 남한에 뭔가를 요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카드인 것 같습니다. NLL을 해상분계선으로 인정하는 대신 각종 지원을 해마다 요구할 수 있는 것이었죠. 그러나 그 뒤로 남북간의 관계가 핵문제 등으로 냉각되고, 김영삼정부에서는 NLL에 대한 양보를 할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었을 겁니다. 그리하여 협상은 조금도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다시 20년이 지나게 됩니다.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연평해전이 일어났고, 며칠 전에는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다시 NLL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한반도의 지도를 대충 그린 다음에 휴전선을 그어 놓고, 해상경계선을 그어 보라고 그러면 어떤 답이 나올까요? 동해쪽은 반반으로 나오겠지만, 서해쪽은 북한의 황해도에 바짝 붙어 나올까요? 아니면 동해쪽과 마찬가지로 반반으로 나와야 할까요? 이 문제를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답은 뻔합니다. 해상경계선에 관한 것은 북한의 주장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NLL은 우리의 목숨줄이나 다름 없습니다. 인천과 서울을 방위하기 위해서는 이 해역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니 협상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안 그러면 분쟁이 계속 될 것이고, 자칫하면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