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학교 친구들은 존경하는 어른들이 치아 요정과 산타클로스가 정말로 있다고 근엄하게 하는 말을 믿는다. 남들이 들려주는 말은 무엇이든 믿는 나이니까. 마녀가 왕자를 개구리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딸은 당신의 말을 믿을 것이다. ...

인간의 아이는 진화를 거침으로써, 자기 민족의 문화를 흠뻑 받아들이도록 설정되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딸이 몇 달 만에 자기 언어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배운다는 사실이다. 말을 할 때 쓸 두꺼운 단어 사전, 정보 백과사전, 말하기의 순서를 정하는 복잡한 문장론적 및 의미론적 규칙들이 모두 딸이 어른 몸집의 절반도 되기 전에 오래된 두뇌들을 통해 딸의 두뇌로 전달된다. 당신이 유용한 정보를 빠른 속도로 흡수하도록 미리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면, 정보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해롭거나 피해를 끼치는 정보를 차단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내려 받을 정신 바이트들은 너무 많고, 복제될 정신 코돈(...)들이 너무 많으므로, 아이의 뇌가 거의 모든 주장들을 받아들이고, 파괴에 취약하며, 통일교도와 사이언톨로지스트와 수녀의 밥이 되기 쉬운, 잘 속아 넘어가는 것이라 해도 놀랄 필요는 없다. 면역 결핍증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어른들이라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 떨쳐낼 정신적인 감염에 아주 취약하다. (「정신 바이러스」, 『악마의 사도』,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240~241)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정보와 관련하여 어린이의 뇌가 풀어야 할 적응적 문제(adaptive problem)많은 정보를 빠르게 흡수하는 것 하나 밖에 없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물론 사냥-채집 사회에서 잘 번식하기 위해 어린이는 자기 문화권의 언어를 배워야 하며 자기가 사는 지역의 동식물과 지형에 대해 많은 것들을 빠르게 배워야 한다.

 

하지만 정보와 관련하여 어린이가 풀어야 할 적응적 문제들이 더 있다. 주변 사람들이 전해 주는 정보 중에는 잘못된 것들도 있다. 주변 사람이 뭔가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는 경우도 있고, 어린이를 이용해 먹기 위해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잘못된 정보를 믿어서 번식에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인간 사회가 이해관계로 갈갈이 찢겨 있다는 점과 인간 사회에서 온갖 잘못된 정보들이 나돌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어린이가 남들이 하는 말을 무조건 모두 믿도록 설계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만약 그런 식으로 설계되었다면 어린이는 주변에 있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 쉬울 것이다. 또한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다를 때에 그런 식으로 설계된 어린이는 하루는 이것을 믿었다가 다음 날에는 다른 것을 믿게 될 것이다.

 

 

 

어린이가 믿는 정도 또는 의심하는 정도 역시 자연 선택에 의해 섬세하게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나는 이런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연구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몇 가지 정도는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 어린이는 분야에 따라 남들의 말을 쉽게 믿기도 하고 심하게 의심하기도 하도록 설계되었을 것 같다. 단어 학습의 경우에는 거의 의심하지 않는 것이 적응적이다. 왜냐하면 인간 사회에서 어린이에게 단어를 엉뚱하게 가르쳐주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음식의 행방에 대해서는 설사 부모라 하더라도 자식에게 거짓말을 할 때가 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그리고 형제자매 사이에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음식이 풍족하지 않았던 사냥-채집 사회에서) 형의 입장에서 볼 때 동생보다 자신이 조금 더 배부르게 먹는 것이 적응적이다. 따라서 형이 동생에게 음식을 숨길 가능성이 있다. 물론 동생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형보다 자신이 조금 더 배부르게 먹는 것이 적응적이다. 그리고 부모의 입장은 또 다르다. 실제로 어린이는 단어를 학습할 때에는 거의 의심을 하지 않는 반면 음식의 행방에 대한 남들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의심한다.

 

둘째, 어린이는 말을 하는 사람과 자신 사이의 근친도(degree of relatedness)에 따라 의심의 정도를 조절하도록 설계되었을 것 같다. 인간은 자신과 더 가까운 친족일수록 덜 착취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가까운 친족의 말을 더 신뢰하는 것이 적응적이다. 이것은 어린이에게도 해당된다.

 

셋째, 어린이는 말을 하는 사람의 권위에 따라 의심의 정도를 조절하도록 설계되었을 것 같다. 대체로 어린이보다 어른의 말이 옳다. 따라서 어린이는 어린이의 말보다는 어른의 말을 더 신뢰하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어린이가 어른의 지위까지 평가해서 지위가 더 높은 어른의 말을 더 신뢰하도록 설계되었을지도 모른다.

 

넷째, 한 사람이 하는 말보다 여러 사람이 한 입으로 하는 말이 정보로서 더 가치가 있다. 따라서 어린이는 어떤 말을 몇 명이 했는지 따져보고 그 숫자에 말한 사람들의 권위를 곱한 값에 따라 믿음의 정도를 조절하도록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다섯째, 진리가 항상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자기 기만 또는 사고 왜곡 기제들이 진화한 것 같다. 이것은 어린이에게도 적용된다. 예컨대 남들이 모두 A를 믿을 때 단지 진리라는 이유로 B를 믿어서 왕따를 당하는 것보다 오히려 거짓인 A를 믿어서 사회에 융합되는 것이 더 적응적일 때가 있다.

 

 

 

어린이는 이미 많은 정보를 흡수한 어른보다는 의심을 덜 하는 것이 적응적일 것 같기는 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어른에 비해 어린이가 남들의 말을 더 쉽게 믿도록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며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쉽게 믿는다어린이는 뭐든지 쉽게 믿는다는 엄연히 서로 다른 명제다.

 

어린이가 어떤 식으로 종교와 미신을 믿게 되는지를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서는 어린이의 믿음 형성과 관련된 기제들의 특성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

 

 

 

2010-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