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도킨스(Richard Dawkins)악마의 사도: 도킨스가 들려주는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 이야기(A Devil's Chaplain: Reflections on Hope, Lies, Science, and Love)』를 읽은 적이 있다. 오랜만에 그 책에 실린 정신 바이러스(Viruses of the Mind, 1991)」를 다시 읽어 보았다. 그러면서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종교가 마음 마이러스(mind virus)라면 진화 생물학도 마음 바이러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킨스는 그 글에서 과학은 마음 바이러스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과학은 바이러스인가?

 

아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모두 바이러스가 아닌 한 그렇지 않다. 유용한 프로그램들은 사람들이 그것에 좋은 평가를 내리고 권하고 전달하기 때문에 퍼진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오로지 나를 퍼뜨려라라는 부호화한 명령문을 담고 있기 때문에 퍼진다. 모든 밈이 그렇듯이 과학 개념들도 일종의 자연선택을 거치며, 따라서 언뜻 보면 바이러스와 흡사할지 모른다. 하지만 과학 개념들을 샅샅이 훑는 선택 압력들은 임의적인 것도 변덕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혹독하고 잘 벼려진 규칙들이며 무의미한 이기적인 행동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표준 방법론 교과서에 실려 있는 모든 가치들, 즉 검증 가능성, 증거의 뒷받침, 정밀성, 정량화 가능성, 일관성, 상호 주관성, 재현 가능성, 보편성, 점진성, 문화적 배경에 대한 독립성 등을 선호한다. 신앙은 그런 가치들을 단 하나도 지니고 있지 않으면서도 널리 퍼진다. 과학 개념들이 확산될 때 전염학의 요소들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주로 서술적인 전염학에 해당될 것이다. 과학 공동체 내에 좋은 개념이 급속히 퍼지는 양상은 홍역의 유행을 서술해놓은 것과 흡사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본 이유들을 살펴보면 그것들이 과학적 방법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시키는 타당한 이유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이 퍼진 역사를 살펴보면 전염학, 그것도 인과적 전염학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A라는 사람은 그것을 믿고 B라는 사람은 저것을 믿는 이유는 단지 그리고 오로지 A는 이 대륙에서 태어났고 B는 저 대륙에서 태어났다는 것 때문이다. 검증 가능성, 증거의 뒷받침 같은 것들은 아예 고려 대상도 아니다. 과학적 신념을 이야기할 때, 전염학은 단지 사후에 등장해서 과학적 신념이 받아들여진 역사를 서술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종교적 신념을 이야기할 때, 전염학은 근본 원인이다. (정신 바이러스, 악마의 사도,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270~271)

 

 

 

인용한 글의 번역에 대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세 가지만 지적하겠다.

 

첫째, scientific ideas과학 개념들이라고 번역했다. 개념concept의 번역어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나라면 idea를 그냥 아이디어라고 표기하거나 다른 단어로 번역하겠다.

 

둘째, intersubjectivity상호 주관성이라고 번역했다. 번역어만 보아서는 무슨 뜻인지 짐작하기가 힘들다. 적어도 원어를 병기해 주어야 한다.

http://en.wikipedia.org/wiki/Intersubjectivity

 

셋째, 원문에서는 ... 널리 퍼진다. 다음에 문단이 바뀌었는데 번역문에서는 그냥 한 문단으로 쭉 이어진다.

 

 

 

하지만 과학 개념들을 샅샅이 훑는 선택 압력들은 임의적인 것도 변덕스러운 것도 아니다 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종교와 관련된 선택 압력들은 임의적이고 변덕스러운가? 도킨스 자신이 다른 곳에서 보편적 인간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런 보편적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종교 밈이 더 잘 살아남는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종교 밈을 선택할 때에도 어떤 기준에 따라 그렇게 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양자 역학 같은 과학 밈은 머리 나쁜 사람들보다는 머리 좋은 사람들에게 더 잘 퍼진다. 반면, 기독교 같은 종교 밈은 머리 좋은 사람들보다는 머리 나쁜 사람들에게 더 잘 퍼진다. 도킨스가 위에서 나열한 여러 과학적 기준에 부합하는 과학 밈이 더 잘 퍼진다. 반면, 도킨스에 따르면 내세에 대한 믿음처럼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종교 밈이 더 잘 퍼진다(나는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 가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서는 이것이 논점이 아니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어떤 컴퓨터 바이러스 A는 리눅스(Linux) 운영 체제보다 윈도우즈(Microsoft Windows) 운영 체제에서 더 잘 퍼질 것이다. 어떤 컴퓨터 바이러스 B는 그 반대일 것이다. 이 때 B는 바이러스가 아니고 A만 바이러스인가?

 

 

 

A라는 사람은 그것을 믿고 B라는 사람은 저것을 믿는 이유는 단지 그리고 오로지 A는 이 대륙에서 태어났고 B는 저 대륙에서 태어났다는 것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도킨스 자신의 말과도 모순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도킨스는 모든 종교 밈이 똑 같이 잘 퍼지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종교 밈이 더 잘 퍼진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실제로 종교는 진화하며 흥하기도 하며 망하기도 한다. 종교를 버리는 사람도 있고 다른 종교로 갈아 타는 사람도 있다.

 

종교가 오직 전염학적 요인들에 의해서만 퍼진다고? 도킨스는 전염학 자체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DNA 바이러스(예컨대,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다고 아무나 그 바이러스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특정 바이러스에 걸릴 확률이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그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이 생겨서 안 걸리고, 어떤 사람은 손을 잘 씻어서 덜 걸린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 바이러스에 더 잘 걸리는 체질이다.

 

바이러스는 숙주와 상호작용한다. 어떤 숙주는 특정 바이러스에 취약하고 어떤 숙주는 그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다. 바이러스 A에 잘 걸리지 않는 숙주가 바이러스 B에는 잘 걸리는 경우가 있다. 다른 숙주는 바이러스 B에 잘 걸리지만 바이러스 A에는 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은 종교 바이러스(종교 밈)에 더 잘 걸리고 어떤 사람들은 과학 바이러스(과학 밈)에 더 잘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도킨스는 마치 과학 밈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전달되기라도 하는 듯이 암시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과학 밈의 전달 경로와 종교 밈의 전달 경로 사이에 근본적이 차이는 없다. 부모가 가르치느냐 교사가 가르치느냐가 다를 뿐이다. 학생들은 지금까지 나왔던 온갖 과학 밈들 중에서 교과서에 있는 것들만 주로 접한다. 이것은 아이들이 지금까지 나왔던 온갖 종교 밈들 중에서 자기 주변에 퍼진 종교 밈들만 주로 접하는 것과 비슷하다.

 

 

 

도킨스는 종교를 마음 바이러스라고 부름으로써 조롱하는 것이 목적인가? 아니면 마음 바이러스 개념을 밈과 관련된 것들을 과학적으로 해명하기 위해 사용한 것인가? 정신 바이러스」는 조롱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과학적 시도로는 별로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2010-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