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나 눈에 보이는 현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배경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도 이를 잘 보여줍니다. 물 위에 떠있는 빙산은 전체의 10%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90%가 보이지 않게 물속에 잠겨 있죠. 다른 말로 바꾸자면, 물속에 잠겨있는 90% 때문에 나머지 10%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아쉽지만, 북한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 것 같습니다. 이번 포격은 남북 충돌의 시발점이 아니라, 그동안 이어져온 일련의 남북 힘겨루기의 결말이라는 성격이 짙다고 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이번 포격 사건이 터지고 나서 이명박과 청와대의 대응을 한번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24/2010112400133.html?Dep1=news&Dep2=top&Dep3=top

이명박이 확전되지 않도록 잘 관리하라고 했다는둥, 그건 실무진이 잘못 전달한 말이라는둥 떠들어대지만 객관적인 팩트는 명백합니다. 북한이 포격을 퍼부을 때 한참 얻어맞고 있다가 14분인가 지나서 대응 포격을 했다는 것입니다. 원래 대응 매뉴얼대로 하자면 3분 안에 대응포격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얻어맞으면서도 미적미적, 어~ 어~ 이거 왜 이래? 이러면서 시간 보내고 있었다는 겁니다.

대응 매뉴얼이 중요한 것은, 그게 실은 분쟁의 확산이 아니라 분쟁을 가장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번의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만일 북한의 포격이 있은 지 3~4분 안에 대응 포격을 퍼부었다면 그걸로 상호간의 주고받기는 끝납니다. 물론 그렇게 치고받다 보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확대되어 전면전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죠. 하지만 복잡한 국제적 역학관계가 얽혀있는 현대전이 그렇게 우발적으로 전면전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은 좀 나이브합니다. 굉장히 다양한 통제력이 작용한다고 봐야 합니다.

결국 북한의 포격 당시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이제 와서 다시 "보복 공격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하는 선택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북한의 포격 당시 매뉴얼대로 즉각 대응하는 것에 비하면 이것은 훨씬 정치 외교 군사적으로 부담이 큰 선택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전면전을 선포하는 것과 비슷한 비중을 갖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어제 포격은 우발적인 사건으로 판단할 여지가 있지만, 지금 한국 정부가 북한에 보복 공격을 한다는 것은 차원이 완전히 다른 행동이 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국제 외교에서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라고 해석됩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요? 대응 매뉴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응 매뉴얼을 실행할만한 리소스(병력, 장비, 인프라 등)가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결국 핵심 원인은 그 매뉴얼과 리소스를 실제 적용할 최고 수뇌부의 방침과 의지가 전혀 없었다는 것에서 찾아야 합니다. 즉, 이명박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아무런 철학과 원칙, 의지도 갖고 있지 못했다는 것에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철학과 원칙, 의지가 있을 때 매뉴얼도 비로소 실제적인 지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대전제가 없으면 매뉴얼은 한갖 종이쪼가리에 불과합니다.

이명박의 철학과 원칙, 의지를 객관적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있습니다. 사건 터지고 나서 이명박이 했다는 발언들을 한번 해부해보죠.

처음에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는 얘기는 생략합니다. 부랴부랴 그 발언을 쓸어담은 다음에 공식화된 발언들만 봐도 뭐,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이명박은 당시 '상황에 따라 북한 미사일 기지를 타격하라'는 지시도 했고, 북한이 쏜 포의 수를 보고받고 '그 몇 배로 응징하라'는 지시도 내렸다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 이건 뭐, 니들 알아서 하라는 얘기 아닙니까? 군사 문제에서 저런 지시도 있습니까? 상황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지휘관의 판단능력을 존중해서 저런 지침을 줄 수도 있지만, 이미 상황이 발생해서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상황에 따라' 알아서 해라? 이건 이명박이 북한과의 분쟁 문제에서 아무런 판단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몇 배로 응징하라, 막대한 응징을 하라... 이런 지시도 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황이 종료된 뒤 즉, 저녁 6시~9시 30분 사이에 한 발언들입니다. 아무 실효성 없는 코멘트일 뿐입니다. 저런 발언들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즉각 북한 군대에 대한 포격이 시작되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상황 종료된 뒤 이명박 정부가 실제로 한 일은 미국 중국 일본 등에 부지런히 "우리 또 얻어맞았어 엉엉" 이렇게 하소연하는 행동에 국한되고 있습니다.

몇 배, 막대한 응징... 이런 표현들도 참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더군요. 질적 기준이 아니라 양적 기준이고, 상대적 비교 개념입니다. 장사꾼 출신이라서 그런지 거래 상대방이 내민 것에 몇 푼 더 얹어먹으면 된다는 개념이 읽혀지더군요. 국제관계에서 그런 거래 개념은 물론 중요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그런 식의 기준은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레토릭일 뿐입니다. 나, 이번 일로 끝까지 가지는 않을 거야... 이런 내심을 실은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명박은 그동안 강경한 대북정책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져왔지만 이번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강경 자세가 아니라 실은 무원칙 무소신 무철학을 감추고 포장하기 위한 외피일 뿐이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그런 사실을 이제 북한이 명백하게 확인했고, 미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공개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명박이 대북관계에서 쓸 수 있는 무기가 모조리 무력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북한은 이번 포격으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우선 NLL 문제에 대해서 자신들의 발언권을 굉장히 강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군이 연례적으로 수행하던 군사 훈련에도 어마어마한 부담을 안겨주었습니다. 한국군은 내년부터 똑같은 훈련을 할 경우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마다 하던 훈련을 안할 경우 그것은 북한에 완전히 백기를 든 것이나 마찬가지고... 아니 그러합니까?

가장 큰 수확은 북한의 이런 도발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와 미국, 일본, 중국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충분한 도상훈련과 테스트를 해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건 북한의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정보이자, 행동의 여유를 확보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심하게 말해 앞으로 북한은 한국 정부와 미국 일본 등을 데리고 놀 수 있는 입지를 선점했어요. 미국 일본이야 좀 다를지 모르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 입장에서 정말 만만한 호구처럼 느껴질 겁니다.

미국도 실은 큰 부담을 안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6자 회담과 관련해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간 셈이에요. 미국은 그동안 이 문제를 놓고 시간을 끌면서 북한으로부터 좀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 했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코너에 몰리게 됐습니다. 미국이 쓸 수 있는 무기는 딱 두 개로 줄어들었습니다. 판을 깨느냐, 아니면 6자 회담을 서둘러 재개하느냐 두 가지가 그것입니다. 어느 경우에나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줄어든다는 것은 입지 약화를 의미합니다. 북한 문제에 식견이 없는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에게 휘둘리며 북한과 좋은 조건에서 협상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친 값을 치르게 된 것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자업자득이라고 봐야죠.

그렇다면 미국이 과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북한에 대해 강경책을 펼칠 수 있을 것인가?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오바마는 취임 이후 클린턴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강경파의 입장을 중심으로 북한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어떤 정책이나 그 수명이 있고, 라이프사이클이 있습니다. 오바마 대북 정책의 귀결이 이번 사태이고, 어떤 정책 라이프사이클의 마무리 단계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지금 와서 기존의 정책 기조를 깨트리고 새로운 정책 구도를 잡아간다? 그럴 시간적, 정책적 여유가 없습니다.

북한은 꽃놀이 패를 쥐었습니다. 우라늄 원심분리기 공개에 이어 이번 사태로 북한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에서 아직도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전세계에 각인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아직도 불안정한 상태인 김정은 후계체제도 이번 일로 안정화될 가능성이 그 반대로 작용할 가능성보다는 훨씬 큰 것 같습니다.

물론 변수는 남아있습니다. 당장, 이명박 정부가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해나갈지 좀더 지켜봐야죠. 하지만 제일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저는 이번 사태가 남북 충돌이나 대결구도의 시발점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표면화됐던 대북 강경노선의 현실적인 귀결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판은 다 드러났고, 뭔가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가능성은 적은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