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는 힌두교에서 나온 개념이다.

사람이 죽어 화장을 하면 가루가 하늘로 올라가고 그것이 구름을 만나 비가 되고 땅에 내려 곡식에 들어가고 그 곡식은 다시 남자의 입으로 들어가 정자가 되어 새로운 생을 살게 된다는 아주 소박한 순환의 관념인데 이것이 불교와 결합하면서 하나의 중요한 교리가 되었다.

그런데 초기 불교의 교리를 중심으로 보자면 윤회는 사실상 방편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오온이 헤체되어 몸도 마음도 사라지고 업만 남는다고 말 한다.

그런데 오온이 다시 생길때 ( 오온이 생긴다는 것은 사람이든 축생이든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을 말한다)

이 업은 오온과 결합하여 새로운 생애를 살게 된다.


그러면 불교에서 실존하는 것은 업이지 개인의 인격은 아니다.

죽음으로 오온은 사라지고 마음역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간존재의 본질은 무엇일까?

불교식대로 하자면 업만이 존재할 뿐이고 업이 그 사람이다.

그런데 그업은 매번 윤회할 때마다 바뀌어 진다.

그리고 그 업은 과연 실존하는 것인가?

업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나 짐승이 생존했을 때 행한 모든 업보인데 이게 인격체가 아닌 것은 분명하고 유형으로 존재하는 실체도 아니고 쉽게 이야기하자면 인생의 발자국 같은 것인데 이것이 다음생에도 유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죽고 나의 업만 남는데 나의 업이 우리집 개나 고양이가 태어날 때 업이 결합하게 된다.

그래서 그 고양이나 개는 바로 내가 된다.


이게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기독교에서는 믿을 수 있느냐 아니냐이지만 이건 말이 되냐 안되냐인 것이다.


그러면 불교적 윤회관에서 생기는 문제를 살펴보자


먼저 나를 기준으로 인간으로 태어난 나는 그 전에 돼지였을 수도 있고 어느집 하인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인간이고 다음번 생에는 고양이로 탄생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윤회하는 주체는 무엇이고 누구인가?

윤회하는 건 업이지 육체나 마음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면 업이 인격체라는 말인가?

아니지 업은 그 사람의 행위나 말의 결과일 뿐이다.


 돼지였던 나 인간인 나 고양이 인 나의 동질성을 어떻게 확인하고 누가 보증하는가?

돼지나 나 고양이가 알 수 있는가 ? 자신의 윤회와 전생을

뭐 민간 신자들중 자기집에서 기르는 개가 전생에 어머니여서 제주도까지 구경을 시켰다는 팜플릿을 본적도 있다.


축생은 선의 개념을 알고 있을까?

선을 행할 능력이 있을까?

그리고 사람 역시도 성격이 타고나는 부분이 많은데 이건 어떻게 해야하나

인간으로 태어나려면 10억의 부처를 섬겨야 한다는데 그런 인간이 있을지 모르겠고 만일 뱀이나 소가 인간으로 태어나려면 어떻게 10억의 부처를 섬길 수가 있을까?

그리고 소나 돼지나 뱀은 자신이 선을 행해야 다음생에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이건 동물에게도 불성이 있냐 없냐 논쟁으로 넘어가지만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곤충 짐승중 웬만한 대다수는 자기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고 본능대로 사는 존재인데 어떻게 부처가 되며 어떻게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업을 쌓을 수 있을까?


불교의 윤회 개념으로 하자면 인간의 본질적 존재는 업이다.

그런데 그 업은 인격도 없고 실체도 없는 과거의 흔적 기억 발자욱일 뿐이다

불교는 생각할 수록 머리가 아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