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커뮤니티의 물을 흐립니다. 여기에 대한 대응은 아래와 같이 나타납니다.

먼저, A의 논리에 대한 반박이 줄을 잇습니다. 그렇지만 이 정도에 굴할 A가 아니죠. 대개 A의 재반박은 자기 중심적 언술로 이뤄집니다. 골수 기독교인과의 논쟁을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러면 열받은 사람들 손가락에서 막말이 튀어 나옵니다. 반말은 물론이거니와 운영진에게 조치를 요구하거나 제명, 탈퇴 운운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이 정도에서 굴할 A는 거의 없습니다. 대개의 A는 타인들이 이해못할 진리를 자신이 알고 있다는 우월감이나 순교를 각오한 소명의식의 소유자이기에 오히려 타인들이 흥분하고 비난할 수록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더 부여하게 되죠.

예외적으로 '니들하곤 수준이 안맞아서 못놀겠다. 더러워서 나 간다'고 선언하는 A도 있지만 그 예외도 10이면 9은 못나갑니다. 왜냐면 앞에서 설명했듯 그는 남들로부터 비난이나 욕을 먹어야 스스로에게 자부심과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유형이기 때문이죠.

이제 사람들은 벽창호같은 A의 모습에 지칩니다. 그러면 그냥 A를 두고 보느냐.

아니죠. 이제 사람들은 A를 커뮤니티 내부의 독특한 무엇으로 인식합니다. 싫어도 같이 지내야할 현실에선 '따'로 나타나지만 언제나 진퇴입이 자유로운 넷의 양상은 조금 다르죠. 어떻게 대응하는가?

독특한 유희가 등장합니다. 워낙 다른 논리와 세계관, 심지어 언어를 갖고 있기에 그 차이를 활용한 조롱이나 놀림 등의 언어유희가 나타나죠.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에게 HI에 상응하는 한국어를 '상감마마'라고 가르쳐 주는 장난과 비슷하달까요? 물론 전자엔 악의가 깔려잇는 반면 후자는 단순한 장난이라는 차이는 있습니다만 이런 과정을 거치며 커뮤니티는 A의 등장으로 야기된 긴장이나 갈등을 해소하게 됩니다. 

자, 선의의 A라면 이런 통과의례를 거쳐 커뮤니티의 멤버로 받아들여지겠지요. 그렇지만 타인에게 자신이 악의인줄도 모르는 악의의 A는 어떻게 될까요?  

요즘 제가 아크로에서 주목해서 보는 풍경이랍니다. 어찌될까나, 어찌될까나. 더러워서 간다는 그 분이 떠나지 않음은 더러움을 좋아하셔서 그런 것일까, 혹은 더러움을 꼭 청소하고야 말겠다는 소명의식에 투철하셔서 그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