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로 용병(傭兵)이라고 하면 이는 그냥 ‘돈받고 싸워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여기에는 별다른 가치판단이 내포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까 프로야구나 축구경기에서 외국인 출신 선수를 용병 운운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어로 mercenary라 하면 뉘앙스가 전혀 달라진다. 아마 상대방에게 이런 말을 썼다가는 싸움을 각오해야 될 것이다. 이 단어에는 ‘돈만 주면 무슨 짓이건 하는’ 혹은 ‘욕심이 아주 많은’ 등의 의미가 추가되어 상당히 derogative(경멸적인) 단어가 되기 때문이다.

용병논리라는 게 논리학에 나오는 용어는 당연히 아니고 그냥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어느 책에서 봤는데 옛날 중국에 글 잘쓰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온 동네 사람들이 무슨 일로 관가에 소송하기 위해 글 써달라는 부탁은 거의 그에게만 했다고 한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소를 끌고 남의 밭을 밟고 지나간 사건 때문에 재판이 벌어졌는데 공교롭게 양측에서 다 이 사람에게 부탁을 했더랜다. 그는 서슴치 않고 두 소송장을 다 썼는데 한쪽에는 “밭을 짓밟으면 자라는 싹이 그대로 죽고 만다.”고 하고 한쪽에는 “밭은 가끔씩 밟아줘야 흙이 굳어져서 곡식이 더 잘 자란다.”고 했다는군...

물론 이는 동양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대학 시절 창조론 vs. 진화론이란 주제를 가지고 어떤 법대생과 토론을 벌였는데 그 법대생이 어찌나 철저하게 자료를 준비해서 진화론의 허점을 정확하게 공격하던지 도킨스가 결코 이런 식의 논쟁에 약한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상당히 몰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일은 그 법대생이 기독교도이기는 커녕 태어나서 단 한번도 교회에 나가본 적이 없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는 것이다. 결국 토론회가 끝난 후 무엇 때문에 스스로 믿지도 않는 창조론을 그렇게 열심히 변호했느냐고 묻자 그는 '자기 의견과 다른 입장을 변호하는 것이 변론술의 연습에 큰 도움이 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도킨스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고 씁쓸하게 이야기를 맺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용병논리란 이런 거다. 우선 자신의 정치적 혹은 기타 입장을 따져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논란에서 어느 편을 들어야겠다는 것부터 결정한다. 그 다음에 자기 포지션에 유리한 논리와 증거를 최대한 수집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끔씩 아름답고 정의로운 말도 써가며 최대한 자신의 논지에 설득력을 높인다. 하지만 사실 수학이나 자연과학도 아니고 세상사에 완전히 옳고 그른 문제가 어디 있는가? 분명히 자기에게 불리한 논점도 있을 것이다. 거기 대해 어떻게 대처하느냐? 일체 무시하는 거다. 자신의 논리전개에 불리한 화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오직 대답하고 싶은 주제가 나올 때에만 이에 답변을 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길어지면 저쪽에서 뭔가 말꼬투리 잡힐만한 실수가 나올 것이다. 그때를 놓치면 안된다. 전체 논지는 일체 무시하고 오직 그 말꼬투리만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이런게 왜 싫은가? 사실 살다보면 이런 일도 필요할 것이다. 특히 재판같은 것을 받을 때 이런 거 잘하는 사람이 우리 편에 있다면 든든한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데 어쨌든 나는 싫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한쪽에서 이 용병논리를 펼치는 순간 진정한 의미에서의 토론은 글자 그대로 끝장이 나 버리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토론의 흉내를 내는 말싸움만 있을 뿐이다. 사실 칼 포퍼처럼 토론의 의미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처음부터 자기 입장 홍보하는 것밖에 바라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애를 써서 이야기를 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해서 설득을 당하는 사람은 미리 설득되기로 마음먹은 사람밖에는 없을 테니까... 때로는 우익에서 잘 하는 것처럼 말싸움은 포기하고 그냥 물리력으로 대처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흔히 하는 말대로 "좋은 주먹 놔두고 왜 말로 싸우는 것인가?"

적어도 제대로 된 토론이라면 자신이 옹호하는 담론의 장점과 단점을 솔직하게 보이고 필요한 조건이 만족될 경우 언제든지 자신이 설득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이면서 해야 한다고 말하면 내가 너무 이상적인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