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 : 최초의 모던 보이

좌옹 윤치호... 2000년대 용어로 엣지남이라고 해야 될까, 간지남이라고 해야 될까. 그의 경력을 살펴보면 다양하고 특별한 행적들이 종종 눈에 띈다. 다 살펴보기에는 시간도 짧고 하니 몇가지 하이라이트마나 간추려 본다라고 한다면...

몰락 양반가였지만 무려 100칸의 대저택을 가진 대지주 가문의 장손으로 태어나...

신채호와 함께 성균관의 2대 천재라고 불렸고, 18세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가는 외교관의 수행원으로 일본 방문...

서자의 후손이라서 기술교육이나 가르치게 될 운명이었지만 아버지가 힘을 써서 당대의 양반 고위관료들과 학교에 다니며 인문 지리학을 수학. 최초로 영어를 배움...

영어를 배운 최초(는 아니지만 최초에 가까운)의 조선인 으로도 부족해서, 자신이 미국 현지에서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갑신정변 실패로 잘하면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님. 망명객의 신분으로 빵빵한 집안,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감리교회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하고싶은 공부는 다 할수 있었음.


그리고, 10대 후반에 첫부인과 결혼했으나 21세에 첫부인 사망... 그러나 20대의 나이에 첩을 두 명이나 거느리고 살았고,

29세에 재혼, 40살에 두번째 부인이 죽자 셋째 부인과 중매결혼... 당시 윤치호는 40세, 셋째 부인 백매려는 19세...

유교적 성리학적 가치관에 따라 중매결혼을 하던 시대에 19세기에 연애결혼까지... 물론 재혼이다라고 한다지만, 재혼 조차도 중매나 대충 안면있는 사람들끼리 한다 라는 것을 감안한다면야... 윤치호, 경력이 대단하지 않던가?

윤치호... 호불호와 사상이나 정치적 궤적을 떠나, 남자로서 남부럽지 않은 삶은 산 것만큼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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