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달리는 공공의 버스에서 라디오 방송(주로 음악)을 틀어 놓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동안 돌아다닌 외국나라가 꽤 되지만 버스에서 공중파 노래를 빵빵 틀고 달리는 버스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할 것이다. 어떤 분이 중국에서도 그러하다는데, 대도시인 상하이에는 그러지 않았든 것 같다. 이탈리아는 기억이 아스라하다. 하긴 이딸리안들이 워낙 시끄러우니까, 버스에 음악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쁘론또!”로 시작되는 이딸리안들의 전화 목소리는 정말 시끄럽다. 전화로 깔깔거리고 싸우고.. 하는 이딸리안들은 우리네 삶과 꽤 닮아있다. 반도국가라서 그런가 ? 그게 반도의 지정학적 특성과 시끄러운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최악의 전화는 KTX타고 OO에서 OO로 갈 때. 어떤 중년의 여인이 약 자신의 딸과 1시간 동안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떠든 이야기. “그래 냉장고 열어 바라. 머 김치찌개 통이 안 보인다고, 머 그 칸 말고, 그 아래.. 아니. 제일 밑에 칸 열어바라. 아이고 이 답답한 년아... ” “이년아, 내가 어제 그곳에 두라고 했잖아 ? ” “아부지는 대구 삼촌 집에 가실 때 옷 머 입고 가시더노 ? ” “그래... 너거 아부지 미친 거 아니가 ? 내가 그렇게 그것 입지 말라고 했는데 ” “그건 그렇고 김치찌개에 물 다 부았나 ? 머라꼬, 아까 내가 고추장 조금 넣고 물 부아라고 했는데, 이년아 너는 내 이야기를 멀로 듣노, 니는 보면 볼수록 갑갑하다. 그래서 내가 집을 못 비운다 못 비워 니나 너거 아부지나 똑같다.” “그래 그래 가스불 쎄게해서 팍 끼리가꼬 냉장고 넣어야 된다. 저번처럼 김치 냉장고 넣으면 안된다.”
  
 
집에 오는 버스에는 거의 90% 방송을 틀어 놓고 있다. 버스에 올라가가 말자 나는 이야기한다. “아저씨 죄송하지만 음악 좀 많이 낮추어 주시면 안될까요 ? ” 반응은 3가지이다. 금방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낮추어 주는 사람. 약간 째려보며 “난 별로 안 시끄러운데..” 이런 황당한 변명을 하는 운전사도 있는데 기분 같으면 한 대 패주고 싶다. 도대체 서비스 정신이라는 것이 있는지. 아니 내가 지 자가용에 프리 라이딩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당당하게 돈을 내고 타는데. 이런 대응을 하는 운전사가 제일 힘들다. “아 그래요... 그런데 음악을 끄면요 다른 승객들이 머라고 해요. 어떡하죠 ? ” 한번은 시끄러운데도 불구하고 이런 변명을 하기에, 버스 안을 돌면서 모든 승객들에게 음악을 꺼도 되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냥 웃는 사람 20%, “아이고 아저씨 제발 좀 끄도록 해주세요” 이런 분이 60% 정도. 이어폰을 끼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약 20%정도 돼서 이 분들은 자동 pass. 운전사 말대로 시내버스에서 음악을 끈다고 해서 뭐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은 삐져서 거의 가지 않지만 한 때 야구를 보러 다닐 때. 나는 관중이 없는 3루석 위에 잘 앉아 본다. 야구도 재미있지만 일희일비하는 관중을 지켜보는 것도 그만큼 재미있다. 야구가 시작되기 30분 쯤 되었을 것이다. 3루석 스피커에서, 얼마나 큰 소리의 음악이 나는지. 내려가서 10분 만에 구단 관계자를 찾았다. 관중석에 앉아 있을 수 없으니 음악을 낮추던지 끄든지 좀 해 달라 했더니 그 관계자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아저씨, 음악 끄면 안 돼요. 그러면 야구장에 온 관중들이 너무 괴로워해요. 소리가 시끄러우면 외야석으로 가서 보세요” 하하... 음악이 없으면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식구들이랑 OO리조트가 있는 경주에 놀러갔다. 음식을 만들려고 1층 마트에 내려갔는데 음악소리, 그것도 내가 가장 증오하는 고성의 댄스음악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나      > 아가씨 너무 소리가 시끄럽지 않나요. ? 좀 낮추면 좋겠는데
아가씨> 호호호... 음악소리를 끄면 손님들이 너무 조용하다고 막 그래요.
나       > 아니, 아가씨, 음악 듣고 싶으면 지 집에 들어앉아 들을 일이지 왜 이 천년고도의 
             경주에 와서, 그것도 리조트 가게에 와서 내가 그것을 들어야 되요 ?
아가씨> 하여간 음악을 낮추면 안 돼요. 손님들 때문에. 
             음악 없으면 손님들이 머라고 해요 그리고 점장님이 꼭 음악을 틀어 놓으래요..

가게에 온 손님들이 그런 음악을 틀어달라고 한 것은 젊은 아가씨의 거짓말일 것이다. 하루 몇 시간 카운터에서 일을 해야 하는 점원으로서는 음악이 다소 위로가 될지도 모르지만, 자세히 보면 음악을 듣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음악을 깔고 앉아 있다고 해야 하나 ? 이런 식의 음악 감상은 사실 의학적으로 매우 위험하다. 의식하지 않는 배경소음을 몸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을 발생시켜 심장의 박동을 올린다. 코티졸이라는 물질을 만들어 내서 혈압을 올리고 박동을 자신도 모르게 빠르게 하다. 기분은 차분해질지 모르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소음에 노출된 사람들이 심장병으로 사망할 가능성의 훨씬 높은 것은 이미 다양한 의학저널에서 증명되고 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소음에 대한 규제가 매우 엄격하다. 내가 보기에 가장 불쌍한(?) 직업 중 하나는 나이트클럽 종업원이 아닌가 싶다. 평생 그런 무도장에 4번 정도 가본 것 같은데 20대에 2번, 30대에 두 번. 그 어머 어마한 소리에 기절을 할 뻔하였다. 친구들의 감시 때문에 탈출을 하지는 못해서나 그 속에서 사는 일로 밥벌이를 해야 하는 또래 젊은이들이 매우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즐겨듣는 젊은이들의 청력은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영화관에 가보면 일반인들로는 귀마개를 하지 않으면 거의 토할 지경의 큰 소리가 나온다. 어떤 경우는 전철에서 젊은이들이 끼고 있는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가 옆 사람에게 소음으로 느껴질 정도니, 실제 듣는 소리는 얼마나 클지 보기에도 걱정스러울 정도다.
   
 
우리나라 가게에서 밖으로 틀어 젖히는 음악소리는 거의 테러에 가까운 수준이다. 암암리에 개인적으로 조사한 바로로 음반가게, 옷가게가 제일 시끄럽다. 그것도 3만원도 되지 않은 싸구려 풀레인지 스피커로 틀어 제끼는 댄스음악은 정말 최악이다. 내가 생각하는 지옥은 하루 종일 고성의 여자가수가 부르는 댄스음악을 24시간 들어야만 하는 고문이 아닐까 한다. 요즘은 음반가게와 옷가게의 음악을 능가하는 새로운 가게다 등장했으니 그것은 폰(phone)가게다. 다소 무질서하게 보이는 홍콩도 이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곳은 서로 경쟁적으로 소리를 울려대니, 근처를 지나다닐 때 손님간, 손님과 주인간 대화가 힘들 정도이다. 이러한 소음에도 그들이 대화하는 것을 보노라면 무협지의 <천리전음술>이 생각난다. 한번은 하도 시끄럽게 외부 스피커를 틀어둔 음반가게가 있어서 내가 분기를 참지 못하여 들어가서 강력하게 따졌다. 주인 왈, “근데 아저씨는 우리 가게 옆에 사세요 ? ” “아니요, 나는 이 앞을 지나가든 사람이요!” “흠... 그러면 그냥 지나가세요”. 
화도 나지만 이 개그같은 상황이 우스워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나고 .. 그냥 지나 가세요...ㅋㅋㅋ 
      
외국 식당, 특히 유럽, 그렇게 고급이 아니라도 가보면 그 숟가락 젓가락이 달그락 달그락 하는 소리가 참 좋다. 음악이 거의 없으니 야야기고 조근조근... 우리네 식당에 들어가면 내가 하는 말은 거의 정해져있다. “저 죄송한데요, 음악 좀 낮추거나 꺼 줄 수 없나요 ? ” 이런 요구에 웃기는 사건도 많은데 , 어떤 가게는 나의 요청에 음악을 줄인 다음에 눈치를 봐가면서 살살 볼륨을 올리는 가게도 있고, 역시 아까의 논리로 “다른 손님 때문에 음악을 끌 수 없다”는 식의 핑계를 대는 가게도 있다. 한번은 회식을 하러 들어간 가게에 우리 밖에 없어 음악을 좀 꺼달라 했더니 안 된다고 했다. 나도 화가 나서 옥신각신했는데 그 사연인즉 안에 음악을 끄면 밖의 스피커에서 소리가 안 나와서 다른 손님들에게 음악을 들려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하.. 그 발상이 하도 한심해서 한번 싸우고 나왔다. 아니라 다를 까 그 가게는 6개월 뒤에 문을 닫았다. 내가 본 가장 멍청한 주인이 아닐까 한다.
   
대형마트, 특히 근처 Home OOOO에 가면 거의 공연장 수준의 음악을 틀어둔다. 아마 그 음악을 다루는 조정실의 사람이 젊은 사람인 듯. 밑도 끝도 없는 댄스음악이 쏟아지는데 이건 뭘 사러왔는지 종이에 써가지 않으면 잊어버릴 수준이다. 한번은 그 입점해있는 9군데의 주인들에게 모두 물어보았다. 음악이 시끄럽지 않냐고 했듯이 한결같이 자신들도 시끄러워 죽을 지경이라는 것이었다. 왜 이야기를 안 하냐고 했더니, 매장 책임자 눈치를 봐야하는 입점가게들이라 뭐라 말을 못한다는 것이니 날더러 꼭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 얼마나 코미디 같은 이야기인가? 

그리고 요즘 개인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음악 걸어두신 젊은 분들 그것 좀 곰곰이 생각해보시라고 권한다. 다른 사람의 PC에 그 홈페이지나 그 블로그만 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블로그 들어갈 때 마다 자동으로 나오는 음악은 끄게 된다. 내가 만일 입사면접관이라면 이런 친구들을 모두 낙방시키겠다.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며 상황인식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인가. 특히 어떤 경우는 깜짝 놀랄 정도의 음악을 자동으로 걸어둔 사람도 보이는데, 놀람을 지나 짜증이 밀려든다. 인터넷에서의 음악의 남용은 한 둘이 아니다.  내가 좋다고 남들이 모두 좋아할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의 PC에 그냥 음악을 뿌리면 큰 실례가 아닐 수 없다.
     
음악이든 사랑이든 과하면 없는 것만 못하다. 가요나 클래식이나 음악을 귀하게 들어야 음악을 본질을 잘 알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국악이 천대를 받는 것은 그것이 남용에 있다. 어릴 때 조무래기들이 역할극을 하면서 하는 말 중에 꼭 이런 것이 있다. “여봐라, 오늘 풍악을 울려라” “예이.. 딩까 딩까...” 당시 사극에는 대부분 국악을 배경으로 사용한다. 여인이 슬피 울 때는 단선율의 아쟁, 포악한 사또의 잔칫상에는 합주와 창, 노비가 도망갈 때는 가야금의 빠른 중중모리... 달이 떠오르면 단소나 대금의 선율, 안 봐도 뻔하다... 국악은 우리들에게 제대로 계승되기 전에 이미 매스컴에서 만신창이를 만들어 버렸다. 다행히 김용우와 같은 재주있는 젊은이들이 분투하고 있지만 이렇게 국악이 남용되어서는 곤란하다. 클래식도 별 다르지 않은데 모던한 도시 남녀가 스테이크를 먹으면 꼭 현악중주가 나온다. 음악은 어떤 음악이든 그것은 귀하게 연주되어야 하고 귀하게 들려져야만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음악은 그야말로 너무 많아서 모든 것이 이제는 아무것이 아닌 세상이 되어버렸다. 차가 후진하면 나오는 “엘리제를 위하여”는 항상 서글프다. 왜 베토벤인지 ? Muss Es Sein ?  
 

이 뿐만 아니다. 동네 유치원 운동회에서 틀어 놓은 대형 스피커의 소리(도대체 그 음악을 고를 원장님, 또는 이벤트 사장의 철학은 지금도 궁금하다.), 수영장에 틀어 놓은 고성의 음악, 엘리베이터의 음악.  남용과 오용의 음악.. 이제는 공격의 무기로 쓰이는 음악
허접하게 막 던지는 썰렁한 <막개그>보다 <막 음악>이 나는 훨씬 무섭다...
      
주위에 널린 음악이 너무 많으니까 스스로 음악을 만드는 재주는 점점 퇴색하고 입과 귀만 카라얀인 사람들만 넘쳐나는 것이다. 오보와 잉글리시 혼 소리로 구분할 수 없는 사람이 누구의 음악은 색채감이 없으니, OOO의 브람스는 완전히 깡통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솔직히 많이 우습다. 이전 음악방송이 없을 시절에는 음악을 즐기려면 악기를 배우든지 음악의 생산에 직접 참가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럴 가능성을 점점 줄여주고 있다. 유럽인들 특히 독일 사람들을 보면 전공자 외에도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이 꽤 많은데, 그것은 음악이 생산적인 문화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전자공학 박사분(베를린대학 연구원)이 파견 나온 도시의 대학 오케스트라에서 1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것을 보고 기절할 뻔하였다. 언제 배웠냐하니까 어릴 때 동네에서 축제할 때 단원이 필요해서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배웠다(배워야만)는 것이다. 우리는 어떨까. 요즘은 여기 일하는데 직원들이랑 놀러 가면 들고 오는 것은 “노래방 기기” (오! 한국의 IT산업을 정말 놀라울 정도다) 다행이 20년 전과 같이 내가 기타를 매고 마구 부르는 가수의 key를 찾아내서 반주를 하느라 고생할 필요는 없어 좋지만,

우리집 아이(초등4)들이 음악(클래식이든 가요든 팝송이든)을 들으려면 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일단 거실에 있는 물건을 다 치우고 정리정돈을 해야 한다. 입에 뭔가 우물우물 먹으며 음악을 듣는 모습이 보이면 얻어맞는다. 그 놈들에게 항상 이야길 한다. “음악은 그렇게 뭘 처먹으면서 듣는 것이 아니다. 만일 뭘 먹으면서 들으려고 한다면 지금 연주하는 사람들만큼 너희가 연주를 할 수 있다면 허락을 해주지” 감상은 하루에 최대 30분, 딱 한 곡이다. 이게 효과가 있었는지, 큰 놈이 내 방 라디오에서 나오는 쇼팽의 발라드 3번을 듣고 “아빠 이것 저번에 들은 곡 같은데요.” ㅎㅎㅎ 기특해서 좀 기뻤다.
 

클라라 하스킬의 음악수업은 독특했다고 한다. 그녀의 모친이 그렇게 좋아하는 피아노를 함부로 칠 수 없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피아노를 치고 싶어 죽으려 하는 하스킬은 상상 속에서 음악 만들고 소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딱 2시간 연습을 하게하니 그 얼마나 집중을 했겠는가. 물론 그녀는 천재중의 천재니까 가능하기도 했지만. 우리사회에서 음악, 특히 소비성 대중가요는 남용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온난화에 가까운 심각한 공해의 문제다. 오후 4시 10명의 사람도 없는 전철역을 쩡쩡 울리는 댄스음악... 그것을 틀어놓는 역 관리자는 무슨 심뽀일까 ?
  
이렇게 음악이 남용되는 이유를 나름 생각해보면 우리는 침묵이나 고요함을 너무 무서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두 사람을 방에 넣고 아무 말 없이 있어보라고 한다면 누군가 말을 꺼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린다. 음악이 있으면 그 음악을 서로 듣는 척하며 어색함을 피할 수 있다. 본질을 회피하는 면피의 수단으로 수많은 음악이 전 사회를 도배하고 있다. 생각 없이 트는 음악, 생각 없이 흘려듣고, 생각 없이 생산하고. 고요함이나 심심함을 이겨내는 것이 대한 훈련이 거의 안 된 우리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쉽게 기댈 수 있는 것으로 음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주위에 보면 한 시간 조차도 스스로 생각하면 보낼 수 없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음악을 듣거나 웹을 보거나 전화를 하거나, 1달 지난 신문쪼가리를 보거나. Nothing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현대인의 불안감은 도처에서 관찰된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허한 정신을 채워주는 메꾸미로 전락한 음악이 지금의 모든 세상의 음악이 아닐까 한다. 
  
리스트가 러시아 황제 짜르의 살롱에서 연주할 때라고 한다. 연주가 시작되고 좀 있다가 짜르가 옆 부인에게 귓속말로 뭔가를 이야기 했다고 한다. 리스트는 연주를 멈추고 조용히 피아노 뚜껑을 닫고 나왔다고 한다. “지엄하신 짜르께서 말씀을 하시면 음악의 신은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인지 부풀려진 소문인지를 모르지만 리스트 정도 되면 일을 법한 에피소드 일 것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지혜는 고요함에서 생겨난다”- 이 말이다. 어제 오늘 FM듣는 G20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거의 음악하나 끝날 때 마다. 듣는 나도 괴로운데 멘트를 해야만 하는 사람은 얼마나 괴로울까. <고요한 아침의 나라> 라는 말은 지금의 우리상황에서는 너무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나는 4대강보다 우리 사회에 음악소리를 규제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음악이 없는 세상에 살 권리가 나에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