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사람들 : 이승만 & 김구
 
1
김구 : 이승만과 노선 일치를 주장하다.
 
1947년 11월 김구는 이승만의 노선에 협조하는 대신 김구의 국민의회 중심으로 우익이 단결하는 데 이승만의 동의를 얻어내었다.
서중석, 《한국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 2006) 57쪽
 
1947년 11월 24일 남한 단독선거는 국토 양분의 비극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김구는 11월 30일 이화장의 이승만을 방문하여 한시간을 회동, 자신과 이승만의 근본의사의 차이를 보지 못하였다고 성명을 번복하여 발표하였다.성명서 발표후  이승만과 함께 서북청년회 창립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훈화를 하였다.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2권〉(인물과사상사, 2004) 65쪽.
서중석,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해방후 민족국가 건설운동과 통일전선》(역사비평사, 1991) 545쪽
도진순, 《한국 민족주의와 남북관계:이승만˙김구시대의 정치사》(서울대학교 출판부, 1997) 158쪽.
 
1947년 12월 1일 김구는 소련의 방해가 제거되기까지 북한의 의석을 남겨놓고 선거를 하는 조건이라면, 이승만 박사의 단독 정부론과 내 의견은 같은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철승·박갑동 건국 50년! 대한민국 이렇게 세웠다. (이철승, 박갑동 공저, 계명사, 1998) 360페이지
 
 
그러던 김구가 이승만과 본격적으로 갈라서는 것(을 넘어 40년 우정을 청산하게 된건 장덕수 암살사건이 원인으로 작용...)
 
2
장덕수 암살 사건의 경과
 
1947년 12월 2일 장덕수가 자택에서 피살되자 김구는 그 배후로 지목되었다. 장덕수는 1947년 12월 2일 저녁 6시15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자택에서 현직 경찰이던 박광옥(朴光玉)과 초등학교 교사였던 배희범 등 5명이 쏜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12월 4일 미군정 경찰은 박광옥과 배희범을 체포하였다. 용의자 6명은 장덕수를 암살할 목적으로 1947년 8월 창단된 대한혁명단을 조직하였는데 이들은 임정을 절대지지하는 대한학생총연맹의 간부 또는 맹원들이기도 했다. 대한학생총연맹은 47년 6월 운현궁에서 발족되었는데  김구를 총재, 조소앙과 엄항섭을 명예위원장으로 추대하였다.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2권〉(인물과사상사, 2004) 66쪽.
 
박광옥은 종로경찰서의 경사로 근무하는 경찰관이었고, 배희범은 초등학교 교사로 모두 한독당 당원이었다.
 
미군정청 경찰은 김구가 이끄는 국민회의 간부 10여명을 연행하는 등 김구를 배후로 지목하였다. 우파정당 통합에서 한민당은 빠졌는데 그 중 한국독립당과의 통합을 가장 반대하던 사람이 장덕수였다. 이 점이 김구를 배후로 지목하는 시각에 무게를 더해주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한민당의 김성수는 한독당과의 통합을 찬성하였으나 장덕수는 한독당과의 통합은 당을 임정 요인들에게 헌납하는 것이라며 주장하였다. 미소공위 참여에 대해서도 공위참가에 반대하던 김구와 찬성하던 장덕수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2권〉(인물과사상사, 2004) 66쪽.
박태균, 《현대사를 베고 쓰러진 거인들: 해방정국과 4인의 요인 암살, 배경과 진상》(지성사, 1994) 123~124쪽.
 
용의자들은 재판에서 장덕수가 정권을 잡기 위해서 신탁을 시인하는 미소공위에 참가할것과 해방전 공산당은 민족주의자들로 조직되었는데 장덕수는 그때 공산당의 이론가였다는 것, 일본헌병대의 촉탁인 국민총연맹의 고문으로 학생들을 격려하여 학병을 장려하는 등 친일적 행동을 한 것이 암살 동기라고 주장하였다.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2권〉(인물과사상사, 2004) 67쪽.
박태균, 《현대사를 베고 쓰러진 거인들: 해방정국과 4인의 요인 암살, 배경과 진상》(지성사, 1994) 126쪽.
 
2001년 9월에 발굴되 공개된 미군 정보장교인 소령 조지 실리의 보고서는 장덕수의 암살범들이 백의사 단원으로 알려져 있다고 기록했다. 1946년 하반기부터 김구는 신익희와 멀어지면서 신익희의 조직인 백의사와도 멀어졌지만 김구가 한때 백의사와 인연을 맺었던 건 사실이므로 김구는 미군정에 의해 이래저래 장덕수 암살의 배후로 몰리게 됐다.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2권〉(인물과사상사, 2004) 67쪽
 
장덕수의 암살로 김구와 이승만·한민당의 단결은 무산되고 말았다.
서중석, 《한국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 2006) 57쪽
 
김구는 자신이 법정에 서지 않게 해달라고 이승만의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승만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이승만은 응답을 회피했고, 이승만이 장덕수 암살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국민회의를 방관하면서 따로 한민당과 연대하며 독자적으로 '한국민족대표단'을 구성하자 김구는 크게 분노하였다.
 
1947년 12월 22일 김구는 단독정부 절대반대와 '한국민족대표단'의 해산을 주장하였다. 이승만과 김구의 연대에 비판적이던 한민당은 이 사건을 정치적인 호재로 이용하고자 하였다. 김구의 항의로 한국민족대표자회와의 합동작업이 재개되었지만 한민당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장덕수가 암살되었을 때 이승만은 김구를 배후로 지목했고 그후 김구는 검찰에 연행되어 수모를 당한 후로 이승만과의 결별을 결심했다.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2권〉(인물과사상사, 2004) 67~68쪽.
 

이승만 입장에서는 김구가 의심스럽거나 두려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40년 친구 라고 해도, 자신들과 반대되는 사람을 제거했다는 의혹을 받는데, 그리고 김구가 어떻게 일제와 싸웠는가를 보고 들었는데, 이러다가 나도 제거할수 있는거 아닌가... 이박사도 사람이고 죽는게 싫은데, 당연히 이런 의심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박사도 사람인데...
 
 
3
김구와 이승만의 서로에 대한 생각:1948년 4월 남북협상 이후
 
북행길에 다녀오고 나니 김구를 지지하던 우익청년들은 전부 이승만에게 가버립니다. 화가 난 김구는 당원들에게도 5.10 총선거에 출마할 거면 한독당을 탈당해라 이래 버립니다. 그러자 그래도 한독당에 남아있던 당원들도 뭐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여기 있느냐며 나가버림...
 
김구 : 남북협상에 다녀와서 나 없는 동안에 총선거니 뭐니 해서 거기 입후보한 사람은 다 탈당해라. 그러자 김선 등 총선거에 출마한 당원들은 '할 수 없이 탈당'하였다. 김선 등은 '그래도 다 같이 애국운동 하던 사람인데 이젠 나라 세운다니까 여기서 일하자.' '말이 당수지 나가랄때 나가자 우리가 아쉬울 것이 있냐' 하며 한독당을 탈당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민족문화연구소, 《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 (선인, 2001) 48페이지
 
 
 
김구의 말...
 
우리가 중국서 뻣뻣한 빵 한 조각으로 며칠씩 끼니 할 때 이승만이 반역자 자금 걷으러 미국 간다 하고선 돈커녕 미국 여자 하나 얻어서 침대서 잠자고 이제 와서 지가 애국자라고 나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민족문화연구소, 《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 (선인, 2001) 48페이지
 
 
김구의 얘기를 들은 이승만의 반응...
 
김구는 혁명가는 될수 있어도 정치가는 못 되고, 그저 곡괭이 들고 나가서 부수라면 하겠지만 정치 다독거리는 건 못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민족문화연구소, 《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 (선인, 2001) 48페이지
 
 
아이고... 이거는 뭐... 눈물이 앞을 가린다능...
  
십분 이해한다. 김구도 이승만도 모두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었으니 그럴수 밖에... 그들은 신이 아니었으니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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