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대학도 들어가기 전이니까 장길산을 책으로 읽은지도 꽤 오래되었는데… 당시 이걸 재미있게  보면서도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얼마 전 SBS에서 장길산을 드라마로 방송한 적이 있었는데 참 기가 막힐 정도로 재미없게 만들어서 원작을 이렇게 바꿔놓는 것도 재주는 재주다 싶었다. 결국 짜증을 견디다 못해 도대체 이 드라마가 원작을 어떤 식으로 훼손했는지  확인하고자  오랜만에 소설을 다시 훑어보았다. 그때 당시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좀 후에 설명하고 우선 사소한 불만부터 말하겠다. 장길산이 강해도 너무 강하다. 그 밑에 있는 두령들 가운데 제일 말단을 차지하는 자라 해도 관군 백여명 정도 포위망 헤치고 나가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주인공과 그 직속부하들의 무예 수준의 묘사는 거의 무협지를 연상시킨다. 소설에선 입버릇처럼 민중들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운운하지만 만약에 장길산이 무슨 일로 홰까닥 돌아가지고 민중들과 맞서서 싸운다고 치자. 검술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백성들이 어떻게 만명이 모인다 한들 이자를 잡기는 턱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소설상의 묘사에 따르면 말이다.

내가 나중에 알아보기로 이러한 주인공들 힘과 검술에 대한 묘사가 인플레된 이유는 분명 그 이전에 나온 홍명희의 임꺽정과 관련이 있다. 이 작품이 한동안 우리나라에선 발행이 금지되었지만 황석영 쯤 되는 인물이 장길산을 쓰기 전 이를 접하지 못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는 이 작품을 쓰며 스스로 의식하건 안했건 홍명희의 임꺽정을 강력하게 염두에 두었다. 그래서 주인공들의 실력을 묘사하면서 고의로 임꺽정에서 나온 힘자랑, 검술자랑보다 한 수 위로 묘사했다. (예를 들어 임꺽정에선 길막봉이 몽둥이를 무릎에 대고 꺾어버리는데 장길산의 강선흥은 ‘무릎에 대지도 않고’ 꺾어버린다) 좀 유치하다고 생각되지만 이 정도 유치한 짓은 신분과 가방끈의 고하를 막론하고 하는 법이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자.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작품에서 종종 명시적으로 또는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작가의 그 인명경시 사상이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사람 죽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거야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삼국지같은  전쟁소설에서 사람이 죽는다고 인명경시 어쩌고 할 얼간이는 없을 게다. 소설상에서 장길산이 하려는 것은 분명 무장혁명이고 이는 전쟁에 준하는 상황이다. 당연히 수없이 많은 죽음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살인과 아주 당당하게 하는 아무 죄책감 없이 벌이는 살인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본다.

소설 한 장면에서… 김기가 장길산에게 묻는다. “두령은 인명이 중하다고 생각하시오?” 길산의  대답 “중하지요. 하지만 죽일 수밖에 없을 때도 있소. 그들을 죽여야 할 때 우리는 우리편  아이들의 굶어죽어가는 눈망울을 생각해야 할 것이오. 죽이지 않고 무엇이  얻어지겠소?” 전부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다. 처음 한 대답은 그냥 립서비스에 불과하고 결국 이루려는 목적에 비해 인명은  중하지 않단 말이다. 무언가 얻기 위해선 해칠 수밖에 없단 말이다. 내가  알기로 이렇게까지 대담하게 인명이 중하지 않다고 확실하게 언명하는 표현은 다른 작품에서는 유래를 찾을 수  없다.

분명 말하지만 나는 천하에서 인명이 가장 소중하다느니 한명의 목숨이나  만명의 목숨이나 무게가 같다느니 하는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상당히 역겹게 생각하는 편이다. 한사람의 목숨까지 전부 살려야 한다는 소리는 일종의 종교 근본주의자들과 통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사형폐지론자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유이다) 사실 이런 원리주의적인  통치자와 전체로서의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인명조차도 그를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공리주의적인 통치자(타인의 생명을 자신의  이득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자는 당연히 여기서는 언급의 대상조차 아니다) 가운데  한가지만 선택해야 한다면 나로서는 공리주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건 정말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어서’ 하는 선택이지 결코 그걸 좋아할 수는 없다. 

그런데... 장길산의 경우는 어떤가?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정당화는  거의 전무하다. 즉 민중들이 양반들의 편을 들면 어떤 이득과 손실이 있고 자기들 활빈도(?)편을 들면 어떤 이득이 있으므로 너희들은 우리편을 드는 것이 낫다는 식의 설득을 하는 장면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민중들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며 그렇지 않은 자들에겐 가혹한 보복만이 존재할 뿐이다. 

동료를 팔아 번 돈으로 양반행세까지 한 배신자 고달근이를 응징하면서  장길산이 말한다. “네가 만약 목숨만 부지하여 참회하며 은거했다면 우리는  다시 너를 찾지 않았으리라” 글쎄... 맘씨 좋은 장길산이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밑에 있는 다른 아이들도 그럴까? 소설 중반에 살주계원들이 배신자를  찾아내어 죽이는 장면이 분명히 나온다. 그 ‘배신자’는 분명 목숨만 살아남은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더구나 계원이 그를 죽이고 돌아가자 동료들은 가족까지  죽이지 않았다고 투덜댄다. 살주계를 부정적으로 그리기 위한 장면일까?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나중에 재야총회(?)가 열렸을 때 살주계가 실패한 이유를  이러저러하게 설명하면서도 인명경시 운운하는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없었으니까...

거기까진 또 넘어가자.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구절이 있다. 

소설 종반을 앞두고 결국 날짜를 잡고 봉기를 하기로 했는데 누군가가 예정보다 좀 빠르게  일을 벌였다. 다른 곳에 있던 동료들이 의논 끝에 이건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호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야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일을 알리러 온 사람들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며 자기들은 달아나겠다고 하자 장길산과 그의 동료들은 그럴 수는 없다고 한다. 당신들이 달아나면 관군의 추격에 우리까지 위험해지니 돌아가서 하던 일을 계속하라고  한다. 즉 가.서. 죽.으.라.는. 말.이.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분명 인명절대론자가  아니다. 필요할 경우 적이나 배신자를 죽여야 할 경우는 분명히 있다. 신념에  따라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도 때에 따라 값있는 일이다. 그러나 남에게  이런 희생을 강요한다? 이건 좀 정도가 지나치다.

이와 관련… 장길산이 어떤 광산에서 강제노역을 하는 사람들을 풀어주러 갔다. 사람들이 다 쇠사슬에 묶여 있었는데 그 쇠사슬을 풀다가 한쪽 귀퉁이에 있는 사람의 발목을 아예 아작을 냈다. 마침 옆에 있던 사람이 “고향 갈 때 내가 업고 갈 테니까 걱정마라”란 말을 꼬투리 잡아서 그를 완전히 떠맡기는데 그가 그 말을 안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은 이렇게밖에 내릴 수 없다. 큰 일을 치르려면 한두명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

황석영이 쓴 다른 작품 가운데 ‘객지’라는 단편이 있다. 거기에 “투쟁은 노동 조건의 개선을 위해서 해야지 원수 갚는 식으로 하면 안된다”는 말이 나온다. 이쪽 활동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맞는 말인 것 같다. 장길산에서도 이 말이 자주 나온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대의를 위해 복수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를 꽤 많이 묘사한다. 자. 그렇다면 장길산 역시 대의를 위해 자신의 복수는 희생하는 식으로 나와야 설득력이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 정작 복수를 포기하는 (또는 사적 복수에 매달려 병신인증하는  자들은) 전부 힘없는 민초들 뿐이다. 장길산이나 그밖에 주인공급 인물들은 다 악착같이 복수를 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상황은 개인적인 복수가 대의에 어긋나지 않게 만들어 명분과 실리를 다 차지하게 한다. 이것도 주인공 신공인가?

조선시대에는 가끔씩 빈민들을 위해서 관청에 죽솥을 걸어놓고 무료로 죽 배급을 하는 관행이 있었던 모양이다. 장길산에선 이를 - 좀 지나치다고 생각될 정도로 - 강력하게 매도한다. 뭐 민중을 거지로 만든다나 뭐라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사람들이 굶어죽는데 뭘 어쩌라는 말인가? 장길산이 관가나 부잣집을 공격하면 우선 곳간부터 털어서 백성에게 나누어준다. 그건 좋은데 그 방법이 좀 희한하다. 말 꼬리에 쌀가마니를 매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뿌려놓으면 백성들이 밤 사이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쓸어간다. 그러면 아침에 그들은 ‘돌이 많이 섞였을 망정 오랜만에 밥을 배부르게 먹게 된다’ 여기서 질문… 도대체 관가에서 나누어주는 멀건 죽하고 장길산이 나누어주는 흙이 많이 섞인 밥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

뭐 생각해 봐야 답이 나올 일도 아니겠지. 다만 나로서는 황석영의 문학적  재능을 매우 좋아하면서도 그가 정치를 하지 않은 것. 그것도 성공적인  집권당의 일원이 되어 활동을 하지 않은 것( 뭐 이문열이랑 떡이 되게 술을 마시면서 바라는 세상이 와도 서로의 목숨만은 살려주기로 맹약을 맺은 적도 있다지?) 에 대해서는 매우 다행으로 생각하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