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글 바로쓰기 1, 이오덕 지음, 한길사, 개정판 제38, 2009.

1장 중국글자말에서 풀려나기

1. 우리 글자로 썼을 때 그 뜻을 알 수 없거나 알기 힘드는 중국글자말 (19~30)

 

 

 

나는 번역을 하거나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그리고 되도록 쉬운 말을 쓰고, 번역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글쓴이의 주장에도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여러 가지로 글쓴이와 생각이 다르다. 이 글에서는 그런 이견 중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특수한 경우(예컨대, 라틴어 계열의 영어 단어를 번역할 때)가 아니라면 어려운 한자어(중국글자말)를 되도록 우리말로 바꾸어 쓰자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의미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미 제전 18일 개막.(『한겨레』 88.8.10 제목)

* 미 제전 → 아름다움 잔치

 

---> 제전과 잔치는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잔치는 기쁜 일이 있을 때에 음식을 차려 놓고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기는 일(http://krdic.daum.net)을 뜻하며 제전은 문화, 예술, 체육 따위와 관련하여 성대히 열리는 사회적인 행사를 뜻한다. 생일 잔치를 생일 제전이라고 하면 이상하다. 마찬가지로 미 제전을 아름다움 잔치라고 말하면 이상해 보인다.

 

 

 

누드의 미.(『미술세계』 88.8 글 제목)

* 누드의 미 → 맨몸의 아름다움

 

---> 맨몸보다는 알몸이 더 나아 보인다. 맨몸에 알몸이라는 뜻이 있긴 하지만 맨손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맨몸으로 사자를 때려 잡다알몸으로 사자를 때려 잡다는 의미가 다르다.

 

 

 

◊ 네덜란드 측은 선수촌 입촌 직후 선수촌내에 자국의 하이네켄 맥주 시음장을 차리는 등(『중앙』 88.9.20)

  * 선수촌 입촌 직후 → 선수촌에 들어가자 곧

  * 내에 → 안에

  * 자국 → 자기 나라

  * 시음장 → 마시는 자리

 

---> 입촌은 그냥 들어가는 것과는 다르다. 예컨대 어떤 기자가 선수촌에 들어가는 것은 입촌이 아니다.

시음은 그냥 마시는 것과 다르다.

 

 

 

소아의 안 외상은 중대한 보건 문제에 속한다.(어느 잡지)

  * 소아의 안 외상 → 어린이의 눈 상처

    문제에 속한다문제가 된다로 쓰는 것이 좋다.

 

---> 외상은 영어 trauma의 번역어다. 이런 전문 용어를 함부로 바꾸어 써서는 안 된다. 아예 trauma를 상처로 번역해서 쓰겠다고 선언한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그냥 중대한 보건 문제다라고 더 짧게 써는 것이 좋아 보인다.

 

 

 

고서 매매.(어느 간판)

  * → 헌책 사고 팝니다.

 

---> 고서는 헌책 즉 이미 써서 그 가치가 떨어진 책을 뜻하기도 하지만, 오래되어서 골동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책을 뜻하기도 한다. 이것을 함부로 헌책으로 바꾸면 안 된다.

 

 

 

대지는 인간에게 시련 마당이자 구원사의 중심.(『주간기독교』 88.9.18 제목)

  * 대지 → 넓은 땅. .

  * 시련 → 단련. 닦임.

  * 구원사 → 구원의 역사. 구원받는 역사.

 

---> 대지와 넓은 땅은 의미가 다르다. 대지는 그냥 땅이 넓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땅 전체 또는 자연 전체를 일컫는다.

시련과 단련은 다르다. 단련에는 굳세게 한다는 뜻만 있지만 시련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굳세게 된다는 뜻이다.

 

 

 

미소의 금메달리스트.(어느 글 제목)

  * 미소 → 웃음

    미소의 → 웃고 있는

 

---> 미소와 웃음은 의미가 다르다. 웃음은 미소와 폭소를 모두 뜻할 수 있다. 따라서 미소 짓는으로 바꾸어야 한다. 웃음으로 바꾸려면 웃고 있는이 아니라 미소의 뜻을 분명히 하는 웃음 짓는으로 바꾸어야 한다.

 

 

 

◊ 운전사 등 3燒死(『중앙』 89.1.30 제목)

  * 燒死 → 타 죽어

    燒死란 중국글자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 글자로 소사라고 쓰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타 죽어 이렇게 알기 쉬운 우리 말을 쓰지 않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 노인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말할 때에는 늙은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다른 사람이 노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욕설이 아니라면 늙은이가 아니라 노인(높이려고 할 때에는 어르신)이라고 말한다. 우리말이 낮춤말이 되고 한자어가 높임말이 된 것은 슬픈 일이지만 지금 와서는 어찌할 수가 없어 보인다.

타 죽어는 자칫하면 낮춤말로 보일 수 있다. 따라서 타서 사망해로 한자어를 써 주어야 할 것 같다.

 

 

 

拉北 어선 操業 위치 허위 보고.(『중앙』 89.1.30 제목)

  * → 북으로 잡혀 간 고기잡이 배, 일하던 자리 거짓 보고.

 

---> 북으로 잡혀 간납북은 의미가 다르다. 납치 당하는 것도 잡혀 가는 것이지만 체포 당하는 것도 잡혀 가는 것이다. 중앙일보에서는 북에서 잡아간 것이 부당한 납치라는 의미도 포함해서 납북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좀 더 쉽게 쓰려면 북으로 납치된으로 바꿔야 한다.

 

 

 

◊ 나지불라 사임도 불사.(『한겨레』 89.3.4 제목)

  * 불사 → 사양 안해

    이 기사의 내용으로 보아 사임도 불사사임할 수도로 써도 좋을 것이다.

 

---> 불사는 결연한 의지를 함축한다. 사양 안해~할 수도라는 식으로 바꾸면 그런 의미가 사라진다.

 

 

 

◊ 유럽 유명(有名) 실내악단 대거 來韓.(『한국』 89.3.4)

  * 대거 來韓 → 한목 오다. 왕창 오다.

 

---> 왕창은 천박함을 함축하는 단어다. 유럽의 유명한 실내악단이라면 고상한 이미지가 있는데 왕창과는 안 어울린다.

내한을 그냥 오다라고 바꾸면 안 된다. 한국에 오다라고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한다.

 

 

 

◊ 지방자치제 연계 시사 ... 타격 우려도.(『한겨레』 89.1.31 제목)

  * 연계 시사 → 함께 할 듯 비춰 [‘의 오자인 듯 이덕하]

    우려걱정으로 쓰면 될 것.

 

---> 연계는 둘을 연관 지어 협상하자는 뜻을 함축한다. 예컨대 한 사안에 대해서 양보하는 대신 다른 사안에서 뭔가를 얻어내는 식이다. 함께 할 뜻 비춰에서는 그런 의미가 사라진다. 따라서 연계할 뜻 비춰로 바꾸어야 한다.

 

 

 

2010-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