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연주회의 추억


이때쯤이면 음대가 있는 대학에서는 대부분 졸업연주회를 한다. 나는 어떤 연주회보다 졸업연주회를 좋아한다. 졸업 연주회 프로그램은 근처 대학 음대 기악과나 성악과 게시판에 가면 대부분 잘 정리되어 있다. Web으로 들어가 보면 시퍼렇게 잘 볼 수 있다. 석사는 피아노의 경우 한 시간 정도의 프로그램을 하고 성악은 30분 정도 ? 현악도 비슷하다. 작곡은 자신의 동료가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곤 한다.


졸업 연주회를 좋아하는 것은 실황을 아무런 부담 없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공짜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졸업연주회장 안에 심사교수, 지도교수, 그리고 연주자의 부모 친지 약간, 그리고 연주자가 레슨을 할 경우 꼬맹이 수강생들 몇이 들어온다. 그리고 그들도 자기편의 연주가 끝나면 대부분 홀을 나가기 때문에, 대략 200-300석 졸업연주회 홀에는 많아야 30명 정도만 있다. 그러니 울림이 아주 좋다. 피아노의 경우는 너무 울려서 소리가 쩍쩍 붙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현악이나 성악은 최고의 효과가 난다.


졸업연주회에 나오는 학생은 대부분, 공개석상에서의 연주는 거의 마지막인 학생들이다. 음대 졸업해서, 서울대를 졸업해도 마찬가지. 전문 연주가로 밥을 벌어먹을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아마도 연주복을 입고하는 졸업연주회는 대부분의 음대생에서 이별파티인 셈이다. 레슨 선생이 지 돈으로 연주회를 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간혹 교수가 되기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하여 자작극의 연주회를 하지만, 연주회장 앞에 떨어진 초대장과 가격 12000원이 찍힌 입장권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는 것은 안쓰럽기 그지없다. 친척동생이 10여장을 들이밀 때 참으로 서로가 미안해지며, 표를 팔아준 후 연주회에 직접 가지 못할 경우에는 더 미안해진다.


그렇게 무섭게 다그치든 교수가 앉아있는 홀에서 연주를 한다는 것은 정말 떨리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졸업연주곡이 이미 정해져 있어서 악보를 까먹는 천인공로의 만행을 저지르는 학생은 거의 본적이 없다. 그들의 마지막 졸업연주를 보노라면 가슴이 무척 아프다. 그렇게 돈을 쏟아 부어 고생 고생한 마지막 공개 연주라는 생각이 드는데 연주자의 마음이야 오죽하랴. 연주회 끝나고 우는 학생은 근 30년 동안 한 2명 정도 본 것 같다. 어떤 졸업연주회 후, 꽃다발을 전해주는, 촌빨이 풀풀 날리는 스타일의 엄마의  그 거친 손을 보면, 나라도  그 동안 고생에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아마 촌에서 찐쌀 팔아 겨우 겨우 학업을 지속한 매우 가난한 음대생이였거라는 생각이 드는 학생이 기억난다. )


올해에도 어김없이 근처 대학의 졸업 연주회를 찾아갔다. 피아노를 좋아하기 때문에 피아노 전공은 거의 빠짐없이 보는데, 이전에 비해서 학생들이 떨거나 쪼려하는 모습을 잘 볼 수가 없어, 좀 신기했다. 당당하게 걸어 나와서 무슨 숙제하듯이 후다닥 치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면 뭔가가 좀 아쉽다. 이게 세태인가.. 그렇다면 할 수 없고.  이번에 기억나는 곡은 슈만의 환상곡 op17인가였는데, 아르게리히의 명연으로 잘 기억된 곡이다. 무거운 체중을 날려가며 아주 잘 친 여학생이 있었다. 그 덕에 다시 집에 들어와 그 곡만 줄창듣고 있다.  이전에 비해서 홀도 좋아졌고,음향시설은 훨씬 좋아졌는데 전반적으로 수준을 그만큼 늘지 않을 것 같다. 요즘 명석한 학생을  음대가서 전공하라고 꼬드키기에는 힘든 세상이라 그런가 보다.

  

간혹 아마추어 평론가들이 누구의 연주는 어떠하니 저떠하니 하는데 솔직히 나는 그런 모습이 매우 못마땅하다. 그래서 악기를 배워보라고 권하기도 하고.. 하는데. 이번에 졸업연주에서 어떤 학생이 베토벤의 소나타를 쳤는데, 그게 그냥 음반으로 흥얼거리며 들을 때하고 옆에서 실제 손가락이 돌아가는 모습을 5m 안에서 지켜보노라니 전율이 돌았다. 그것은 일종의 초능력이며 마술과 같은 동작이 아니라고 할 수 업었다. 곡이 감정이 어떠고 저떠고 할 계제가 없이 정말 전광석화같이 날아다니는 손가락에... 마지막 악장에서는 연주가의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중간에 페달링이나 손가락  삑사리가 있었지만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UFC 격투기 하듯이 몰아치는 그 운동력 자체로만 너무나 큰 감동이 몰려왔다. 정말 그 정도 치기에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건 인간의 최대 한계가 아닌가 한다. 집에 돌아와 오후에 들은 곡을 모두 꺼내서 들으니 정말 새로운 감동이 밀려왔다. 이전 맹숭맹숭한 연주라고 네 맘대로 욕한 NAXOS의 000의 연주에도 얼마나 큰 감동이 있는지. 정말 모든 피아니스트에 존경과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베토밴 소나타는 경우에는 어떤 연주도 그것은 충분히 칭송을 받을 자격이 있다. 

  

가장 기억나는 졸업연주회는 80년 초 대학생 시절인데. 어떤 테너, 아마 학부졸업 연주회라고 기억이 되는데. 정말 테너의 소리라고 인정해주기 힘든 소리였다. 약간 쉰 듯 한 소리에 두성이나 울림이 잘 느껴지지 않으며 호흡도 매우 불안정하게보이는 테너였다. 그가 부른 곡은 매우 쉬운 곡으로 느껴지는 슈베르트의“밤과 꿈”이였다.  보통 기타 이중주로 시그널 음악에 오랫동안 사용된 이 곡은 악보에 의하면 아주 느리게 부르는 곳이다. 그 쉰 목소리의 테너의 소리는 정말 엉망이었지만 그 노래에 지그시 눈을 감고 우리를 밤의 적막에 담아서 꿈을 나라로 보내는 듯 한 몽환적인 감정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그 뭐라고 할까... 노래와 가사와 가수의 완연한 일치....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정말 지금까지 본 가수 중에서 가장 열심히 부른 사람이 아니였을까 한다. 나중에 안 이야기기만 그 테너는 그 당시 운동권으로 거의 연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런 목소리 밖에 나올 수는 없었겠지만 그가 해석한 밤과 꿈은 지금까지 들어온 어떤 곡보다도 아름다웠다. 그 양반,,, 나보다 나이가 많았을 거니까..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아마 음악 쪽은 일은 안 할 듯. 다른 학생들은 자신의 소리를 자랑하기 위해서 높은 키의 아리아를 벌건 얼굴로 불렀는데, 그 "밤과 꿈"은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자랑도 아니고...그가 살아온 고단한 운동권 삶에서 가느다랗다 보이는 어떤 꿈과 같은 세상에 대한 동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음악은 그 뜻을 알아야 잘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의 자격을 보니 박칼린 선생이 무슨 지도를 하면서 가사 이야기를 하는데... 노래의 뜻, 의미를 모르면 가요방 기계음과 다를바가 없을 것이다. 그양반 어딘가 살아있다면 한번 꼭 보고 싶네.  촌티나는 검은 얼굴에, 이용 스타일의 뽀글이 파마를 한 테너...  

 

또 하나 기억하는 사람은 바이올린주자인데, 이 양반은 현악중주 중에 잠시 쉬는 틈을 타서 손으로 눈 주위를 벅벅 긁는 것이 아닌가. 보통의 연주자들은 긴장에 긴장을 해서 몇 초 쉬는 사이에 뚫어지게 악보나 다른 파트의 박자에 귀를 기울이는 ,이 양반은 마치 놀러온 사람같이.. 긴장이라고 찾아볼 수 없이 그냥 무심하게 연주를 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 양반은 지금 KBS 교향악단에서 악장(제 1 바이올린)을 하는 사람인 것 같다. 어제는 장영주의 UN공연에서 그가 또 보였는데 정말 열정적으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 정도 자신이 있었다면 어디 좋은 데 가서 잘 배우고 왔을 것 같다.  역시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뭔가 달라도 어릴 때 부터 다르구하는 하는 생각이 든다.

  

교향악단을 하는 친구이야기에 의하면 요즘은 음악을 배우려는 사람보다 가르치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하니...참 세상이 바뀌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 여자가 피아노 잘치고 음악을 하면 시집 잘 간다고 했지만 (나도 피아노 잘 치는 여자면 누구나 너무 예쁘게 보인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진실을 다 알아버렸다. 이전에 “이년아, 피아노를 잘 치면 남자들이 줄을 서..줄을 선다고” 이런 식으로 뻥카를 날리던 사람들은 다 퇴장을 해버렸고 이제는 그렇게 부모의 간계에 속아(?) 피아노를 배운 사람들이 다시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에게 음악을 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 한국에서는 정말 어리석은 취업전략인 것이다. 그렇다고 슈스케(수퍼스타K)를 시키는 것도 아니다. 슈스케 같은 것은 정말 사기에 가깝다. 나는 젊은이들이 그런 가능성 낮은 게임에 젊음을 저당 잡힐까 무척 걱정스럽다. 나이지리아 빈민촌 아이들이 축구공에 올인하며 미래를 꿈꾸는 것만큼이나 기댓값이 낮은 게임이다. 그 대회가 10000:1이 넘는다니... 떨어진 9999명은 뭘 해야할까. 재미로 하는 예술이 아니라 오기로 한다면 그것의 말로는 최악이 될 것이다. 


여하간 졸업 연주회는 항상 즐겁고 싱싱해서 좋다. 덜덜 떨면서 무대에 오르는 학생들의 신선함이 좋다. 보상 없는 그들의 마지막 연주는 언제나 감동스럽고 눈물겹다. 비록 부분적으로 틀리고 일급 연주가의 매끄러움에는 못 미칠지라도, 그런 거칠고 둔탁하고 풋풋함이 농익은 상업적 연주보다는 100배나 감동스럽다. 음악을 듣는 목적이 인생을 이해하고, 세상을 탐구하는 것이라면 졸업연주회만한 공간도 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졸업연주회 연주자들의 모든 고생에 작게나마 헌사를 보내고 싶다. 특히 졸업곡으로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그들 모두에게 큰 복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