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3대 세습 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 김정은의 3대 세습을 둘러싸고 경향신문과 민노당간의 지상전이 치열해지고 진보진영내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3대 세습을 보는 필자의 생각부터 먼저 밝히겠다.

경향이 옳았으며, 민노당의 말들은 궤변이며 솔직하지 못하고, 심지어 비겁하기까지 하다.

과연 민노당의 입장이 올바른지, 그들의 논리가 합당한지 민노당과 그 주변의 발언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1. 민노당의 “전략적인 침묵”이 정당한가


먼저 이정희 대표가 블로그에 3대 세습에 관해 언급한 주요 내용부터 들여다 보자.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노당의 판단이며 선택”이라고 주장하며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한 찬반을 밝히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진보는 진보임을 인정받으려는 생각으로 시류에 맞춰 말을 보태기보다 자신의 행동의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진보”라고 말했다. 끝으로 “국가보안법 법정 안의 논리가 일부 변형되어 진보 언론 안에도 스며들어온 것이 안타깝다.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당의 선택이며 판단이다. 이것 때문에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받을 것이다. 지금은 진보임을 인정 받기 위해 북의 권력승계를 비난하다가, 뒤에 그 후계자와 대화의 상대로 마주 앉게 되면 ‘능력있는 사람’이라며 이전의 비난을 거둬들일 치사를 만들어내야 하는 궁박한 입장에 스스로 빠져들어갈 생각이 나에게는 전혀 없다”

필자는 위 이정희 대표의 글을 읽고 심한 충격에 빠졌다. 천안함 특위에서 촌철살인의 질문과 논리정연한 공격으로 합조단과 국방부를 쩔쩔매게 했던 그 이정희 대표가 이런 해괴망측한 모순에 가득한 글로 북한의 3대 세습에 소극적(암묵적) 동의를 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차세대 여성 정치인으로 주목하고 있던 터에 이런 글을 접한 필자로서는 충격을 넘어 약간의 배신감마저 들었다.

차근차근 이정희 대표가 얼마나 궤변을 늘어놓았는지 따져보자.


1) 민노당은 이미 3대 세습에 입장을 밝혔다.

이정희 대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노당의 판단이며 입장”이라고 했지만, 이 대표가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전인 북한의 9.28 당대표자회가 끝난 다음날, 우위영 민노당 대변인은 “북한 후계 구도와 관련해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더라도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고 보는 것이 남북관계를 위해서라도 바람직하다”고 발표해 이미 민노당의 입장을 밝혔다. 우 대변인의 말은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며, 민노당의 곤혹스런 입장을 백번 반영하여 해석하더라도 남북관계를 위해 전략적으로 침묵할 수 밖에 없다는 소극적, 암묵적 동의로 읽을 수밖에 없다.


2) 민노당의 행동의 일관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대표는 “시류에 맞춰 말을 보태기보다 자신의 행동의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진보“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변명하고 있지만, 정작 행동의 일관성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3대 세습과 관련한 행동의 일관성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북한과의 유대? 주체사상의 인정? 남북관계의 개선? 북한 무비판? 도대체 그 일관성이라는 것이 무엇에 대한 일관성이란 말인가?


3) 경향신문의 비판이 국가보안법의 논리의 변형인가?

가장 어이가 없는 대목은 경향신문과 진보진영의 북한 세습에 대한 민노당 입장 표명 요구를 마치 사상검증을 하는 국가보안법의 논리의 변형이라며 비난하는 것이다. 민노당은 공당이며, 이정희는 민노당의 대표로 일반 자연인이 아니다. 공당과 그 공당의 대표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특히 자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정치적, 이념적 문제에 있어서는 자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도리이다. 언론이나 시민단체, 타당이 그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 요구에 응하는 것이 공당의 의무이다. 지금 경향신문이 일 개인의 정치, 이념적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는가? 여기에 국가보안법의 논리를 갖다대는 황당함이라니? 민노당과 이정희 대표는 이런 어설픈, 이치에 맞지도 않는 논리로 경향신문을 매도하지 마라.

역설적으로 국가보안법의 최대의 수혜자가 민노당 내의 주사파들이 아니었던가?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형법상으로도 위법, 탈법을 했더라도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고 있다고 항변하거나 국가보안법의 반인권적 내용을 강조하면서 자기들의 과격성과 조직 경직성의 불가피성을 강변하지 않았나? 어떤 때는 이들이 국가보안법의 존치를 내심 바라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게 할 때도 있다. 국가보안법은 그 자체로 존치의 이유가 없지만, 민노당 주사파들의 그늘막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도록 국가보안법은 꼭 철폐되어야 한다.


4) 부시는 왜 비난했고, 한나라당은 왜 비난하는가

이정희 대표의 마지막 멘트는 궤변의 절정이다.

향후 민노당이 집권하고, 김정은과 마주 앉았을 때를 대비하여 지금의 3대 세습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단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이 정도라면 들어주기가 민망하다. 이런 정당을 집권하게 해 줄 국민들도 없겠지만, 설사 집권했다 하더라도 지금 3대 세습을 비판한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3대 세습이 사회주의 원칙에서, 보편적 상식에서, 민주주의 원리에서 잘못된 것이라면 당연히 비판하면 되는 것이다. 집권해서 국정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그 때 가서 신중하게 남북관계를 고려하면 되는 것이지, 비판하지 못하는 이유를 향후 집권 가능성에 두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이정희 대표의 논리라면은 미국과 부시의 정책은 왜 그렇게 비판했는지 의문이 든다. 민노당이 집권하면 대미관계가 중요할 터, 그 때를 대비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민노당이 집권당이 되면 제1 야당으로 한나라당이 유력한데, 그 때 대야관계를 위해서 지금 한나라당의 비판을 자제해야 할 것이 아닌가?

더욱 웃기는 것은 민노당 지도부가 경향은 왜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는 것은 문제 삼지 않고 민노당에게만 입장 표명을 요구하느냐고 경향신문을 비난하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지금 청와대가 이 문제만큼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을 평가해줄만 하다고 본다.) 민노당 지도부여! 제발 생각 좀 하고 발언 좀 합시다.



2. 민노당의 3대 세습에 대한 비일관적 입장


민노당이 3대 세습에 대해 지금 엉뚱한 소리를 해대고 있지만, 민노당은 북한 3대 세습을 지금과 같이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이 아니었다. 불과 한달 전만 하더라도 상당히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다.

민노당의 부설연구소인 새세상연구소의 논평/칼럼 중, 9/28 노세극이 쓴 글(북한 과연 세습제로 가나)을 한번 보자.  이 글은 당대표자회가 있기 전, 보수 언론과 해외 언론이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되어 3대 세습을 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에 대해 북한이 하지도 않을 3대 세습을 북한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려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사화한다고 비난하는 글이다. 전문은 링크한 것을 보시고 중요한 부분만 아래에 발췌한다.


“북한은 봉건제 국가가 아니다. 자신들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선진적인 사상인 주체사상을 창시하고 이를 발전시켜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세습제 국가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수령의 후계를 핏줄로 선택하는 것은 자신들의 논리와도 어긋나는 것이다.“


위의 글을 보면, 민노당은 세습이 주체사상과도 배치된다며 김정은으로의 세습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으며,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권력을 세습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랬던 민노당이 북한이 당대표자회의에서 김정은의 3대 세습을 공식화하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돌변해 버린 것이다. 이것은 민노당의 종북적 모습의 한 단면이다. 스스로 종북적 태도를 보이면서 이런 모습을 비판하는 경향을 거꾸로 비난하다니 할 말이 없다.



3. 3대 세습은 주체사상의 원리에도 어긋난다.


북한이 3대 세습을 공식화하는 날, 주체사상을 이론화했던 황장엽이 세상을 떠났다. 황장엽이 60대 정립했던 오리지널 주체사상은 과연 지금의 3대 세습을 용인할 수 있을까?

먼저 밝혀 둘 것은 필자는 反主思派로 철학적, 이념적으로 주체사상에 동의하지 않으며, 특히 (인간)수령론에 대해서는 논쟁의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3대 세습의 근거는 주체사상의 수령론이다. 주체사상은 마르크스의 계급, 혁명이론을 수용하면서도 계급 대신 사람이란 개념을 도입했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 사람이 운명 개척의 주인이다. 다만, 운명 개척의 온전한 주인이 되려면 수령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수령론”이다. 그렇다면 이 “수령‘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올바를까? 방인혁 서강대 교수의 수령론에 의하면 수령이란 헤겔의 절대정신과 비슷한 개념으로 개인이나 직책이 아니라 시대를 이끄는 비전과 리더쉽이다. 주체사상의 수령론을 그나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방 교수는 마련해 주었다. 황장엽이 주체사상을 정립했을 때도 이런 개념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비전과 능력을 드러내 입증하지 못한 리더는 절대정신의 지위에 올라서는 안된다. 그것도 민주적 절차를 보장하지 않은 아버지의 절대권력을 등에 엎고 그 지위에 오른다면 더욱 안될 일이다.

이미 초기의 건강함마저 잃어버린 주체사상과 개인의 독재와 권력의 세습에 도구화된 수령론으로 김정은의 등극을 정당화하는 것은 용납되어서는 곤란하다. 김정은의 세습은 초기의 건강한 주체사상에서 보더라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4. 3대 세습 비판은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가


민노당은 3대 세습의 비판은 10.4 남북합의와 6.15 선언의 정신을 위반하여 남북관계를 악화시킨다고 한다. 이것은 10.4와 6.15에 나온 내정간섭 금지 조문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 경직된 사고에서 나온 결과이다. 아니 민노당이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을 구실을 이 조문에서 찾아왔을 뿐이다. 이런 민노당의 모습을 보면 한국의 일부 문자주의적 보수 기독교계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지구의 역사는 6천년이라고 주장하는 꼴을 보는 것 같다.

10.4와 6.15의 정신을 3대 세습을 비판하면 위반하는 것인가? 그것도 남쪽의 집권당도 아니고 집권하지도 않은 민노당이 비판하는데 말이다. 좌파라고 자처하는 민노당이 자기 정체성을 현저히 훼손하는 권력 세습에 대해 비판하는 것인데. 내정간섭이라는 이유로 비판하지 못한다면 북한의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말인가?

유신시절과 전두환 군부독재 시기에 DJ는 어떻게 구명되었는가? 외국의 정부와 시민단체의 비판과 압력이 없었더라면 DJ는 목숨을 건사할 수 있었겠는가? 이 때의 외국의 정부와 시민단체의 비판과 압력도 내정간섭인가? 이러한 외부의 비판과 압력이 없었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어떻게 되었을 것이며, 진보/민주진영은 어떤 희망과 비전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이슬람권(이슬람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문화의 소산임으로 정확히 이야기하면 아랍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온당하다)의 여성에 대한 명예살인도 그 지역의 관습과 문화의 한 형태인데 왜 비판하는가? 엠네스티가 인권보고서를 발간하는 것도 내정 간섭이 되는가?

민주와 진보, 사회주의의 원칙, 인류의 보편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이유에서도 옹호해서는 안된다.


민주당, 진보신당, 참여연대 등 남한의 진보진영이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했다고 지금 남북관계가 악화되었거나 될 징후가 보이는가? 민노당은 무슨 근거로 3대 세습 비판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북한에 우호적이고 종북적 주사파 세력이 잔존하는 민노당마저 북한을 비판하면 북한이 삐칠 것을 우려하는가? 민노당은 자신의 존재를 너무 과대 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이번 기회에 스스로 자기의 위치를 확인해 보기 바란다.




5. 북한의 3대 세습과 남한의 유신체제의 종식 - 남북 현대사로 본 3대 세습의 부당성


남한과 북한은 적대하면서도 서로 유사한 정치형태를 보여 왔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북한의 정치형태를 남한이 벤치마킹하듯 10년의 시차를 두고 따라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전쟁의 폐허에서 건설을 시작하고  60년대의 중-소 분쟁과정에서 자주노선을 지키면서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룬다. 이 때의 천리마 운동 성과를 이념으로 만든 것이 주체사상이다. 천리마운동은 생산력증대를 노동자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실현하려 했고, 걸림돌이던 관료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현지 지도를 통한 노동자의 직접적인 대화를 하는 등 이때의 주체사상은 건강함을 유지했다. 하지만 실천에 교범이 되는 원칙 마련에 만족하지 않고, 종교와 다름없는 교조적 원칙으로 내걸고 사회(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주체사상을 형성하는 순간부터 북한의 건강성은 훼손되고 비틀어진 사회주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북한은 도그마로 작용하는 주체사상을 극복할 비판 세력도 없었고, 김일성도 이를 용인하지 않으면서 김정일로 세습되고 이젠 김정은까지 세습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그 결과는 주체사상의 중심인 인민은 창의성과 자발성을 잃었고, 생산력은 급격히 하락하면서 인민의 삶의 질은 피폐할대로 피폐해져 버렸다.


다음은 남한의 현대사를 살펴보자. 박정희는 국가재건을 모토로 새마을운동을 전개하고 국민교육헌장을 제정하여 국민들의 정신개조를 시도한다. 그 과정의 민주성을 떠나 표면적으로 나타난 그 결과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정도의 경제성장을 구가한다. 북한이 60년대 천리마 운동과 주체사상을 사회 이념화하는 과정을 10년의 시차를 두고 흡사하게 따라한 듯하다. (필자가 보기에는 박정희는 북한의 60년대를 연구하여 많이 참고한 듯하다)

남한도 이 시기까지는 개발독재의 조건적 필요성을 인정할만 했고, 그 성과도 부정하지 못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북한이 주체사상이 도그마에 빠져 수령론이 1인 독재, 권력 세습의 길로 접어들었듯이 남한의 박정희도 70년대 이후 유신체제로 정권의 영구 연장을 꿈꾼다. 유신이념이 사회의 도그마로 입성하는 순간에 오일쇼크 등 내외부의 악재를 만나고, 무엇보다도 개발독재에 따른 후유증이 심화되면서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이것 또한 북한이 주체사상이 사회의 교조적 원칙으로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사회 내부의 자발성과 창의성이 떨어지고 급격히 생산성이 하락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과 유사하다.


이 다음부터의 사회 시스템의 변화과정이 남한과 북한의 운명을 확연히 바꾸고 오늘의 남북한의 격차를 낳게 한다.

남한의 박정희와 유신체제는 내부의 비판세력의 저항에 부딪히고 외부의 압력을 받으면서 결국은 10.26의 비극을 맞게 되고 그 체제를 마감한다. 박정희 일가로서는 불행한 일이지만 국가와 국민들에게 다행한 일이었다. (필자는 박정희의 경제성장 성과에 긍정적 평가를 하는 편이고 개발독재의 조건적 불가피성도 일정 부분 인정한다) 개발독재가 정치적, 경제적 수준이 열악한 사회에서 효율적 수단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개발독재로 성장한 경제와 정치 지형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치, 경제 시스템이 필요했다. 이를 박정희가 스스로 수용했더라면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권력의 속성상 기대하기 힘들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남한은 시대를 수용하지 못하는 체제를 무너뜨렸다. (물론 그 이후 전두환의 군부독재라는 역사의 질곡의 시간이 있었지만, 이것 또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변화의 한 과정으로 북한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북한은 어떠했는지 비교해 보자.

북한은 사회의 탄력이 떨어지는 순간, 그 시대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을 모색해야 하는데, 오히려 구체제(시스템)을 고집하고 공고히 하는 쪽으로 나아가 버렸다. 이것이 북한의 비극의 시작이다. 중국이 개혁, 개방의 길로 나가고, 소련이 페레스트로이카로 변화를 수용하지만, 북한은 김정일로의 세습을 통한 주체사상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유지되고 변화의 기회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오늘의 북한이다.

만약 북한이 김일성 이후 테크노크라트를 중심으로 집단지도체제 형태의 권력구조를 만들고 개방과 개혁의 물꼬를 텄더라면 지금의 북한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고 남북관계도 개선되고 통일도 많은 진척을 보였을 것으로 본다.


이처럼 권력의 변화가 남북의 운명을 갈라 놓았다. 이러한 최근의 남북한 현대사를 보더라도 북한은 낡은 주체사상과 수령론을 폐기하고 구시스템과의 단절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북한에는 권력(구조)의 변화가 필요하고, 이를 계기로 개혁, 개방의 기회를 잡아야 북한의 회생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배반하고 3대 세습을 공식화 함으로써 변화의 기회를 스스로 거부했다.


혹자는 북한의 주체사상과 대를 이은 충성(3대 세습)은 미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불가피성으로 변호하기도 한다. 우리 솔직히 이야기 해보자. 지금 북한이 저 지경이 된 것이 오로지 미국을 비롯한 외부세계의 봉쇄와 압력 때문인가? 미국이 가만 내버려두면 북한은 생산성이 오르고, 정치적 자유가 확대되는 체제가 될 수 있는가? 미국 등의 외압이 지금의 북한을 만든 요인의 한 부분일지 몰라도 주요 요인은 아니다. 북한의 내재적 문제가 지금의 북한을 만든 것이다. 주체농법은 온통 민둥산을 만들면서 수확량은 감소시키고, 김정일의 말 한마디에 뉴질랜드의 광활한 초지를 이용한 목축법을 북한에 억지로 적용해 농경지를 초지로 만들어 양들을 키우는 웃지 못할 일들도 미국의 탓인가? 북한 내부시스템의 문제가 지금의 북한을 만든 것이지, 외압을 주 원인이라 우기면 북한에도, 민노당에도 희망은 없다. 



6. 민노당의 침묵 혹은 소극적 방조가 남한 사회의 진보와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이유


민노당은 인과관계가 확실치도 않는 3대 세습 비판의 남북한 관계 악화설을 주장하지만, 정작 민노당의 이런 행동이 우리 사회의 진보와 개혁에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보수진영에게 진보의 어젠다를 선점하게 하고, 그들에게 좋은 먹이감을 제공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중간지대의 국민들이 진보진영에 거리를 두게 됨으로써 진보의 외연 확대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북한 사회의 전체 (정치, 사회, 경제)권력을 세습하는 것을 묵인하면서 우리 사회의 자본 세습(삼성 이재용, 상속세), 교회의 세습(금란 교회 등), 현대판 음서제도(유명환 전 장관 딸의 외교부 채용)를 어떻게 비판할 수 있겠는가? 이외에 사회, 경제적 민주화를 위한 과제에서 진보진영의 목소리가 국민들에게 얼마나 호소력이 있겠는가?



민노당은 진보와 민주를 입에 담지 말라

경향신문을 절독한다고? 아마 민노당은 그 수십배의 사람들로부터 절연을 당할 것이다.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지 마라. 진보와 민주의 이름을 더럽히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