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른 나라에서 종종 봐오던,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심히 일어날 법 직했던 일이,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것도 꽤 센세이셔널한 방식으로.
 
 서른 다섯에, 아이를 둘 둔 창창한 나이의 기혼 여교사가, 열 다섯살의 학생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섹스를 하였고, 서로 '좋았다'는 문자를
 보냈고, 그리고 그것을 학부모가 발견해서 신고하고, 그리고 그것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 사건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이 사건이 주는 사회적인 파장은,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불륜'이라는 범주 하에서 허용되는 사회적인 비난을 범위를 넘어서서 극히 선정적으로 확대되었다. 여교사의 실명, 미니홈피, 근무학교의 주소를 넘어서 남편의 직장까지 까발려졌다고 한다. 여교사가 해임 당하리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예측되고 있고, 앞으로 이 교사가 이 사회에서 불특정 다수에 의해 어떤 식으로 낙인이 찍히게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 교사가 회개 이후라도 우리나라에서 정상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해보인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가정을 지키지 못한 잘못이야 본인 스스로 지고 가야할 몫이지만, 윤리적으로 어긋한 행동에 대해 사회적인 비난을 할 때에도 어느 정도의 형평성은 지켜져야 한다고 볼 때, 그 여 교사가 일반적인 의미의 불륜녀, 불륜남들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더 과중한 불륜, 현격한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답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본다. 불륜을 정신적인 불륜과 육체적인 불륜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볼 때, 즉 '정말로 사랑해서 몸을 섞는 행위'와, '단지 몸의 욕정을 만족시키기 위한 행위'를 구분한다고 볼 때, 여교사의 동기가 전자인지 후자인지는 불분명하며 (사건의 정황을 봐서는 전자에 가깝다), 그런 상태에서 동기를 구분하지 않고 여교사를 싸잡아 비난하는 행위가 과연 정당한지 역시 의문점으로 남아 있다. 서른 다섯의 남자가 열 여섯의 꽃 같은 여학생들의 풋풋함에 끌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듯이, 서른 다섯의 여자가 열 여섯의 남학생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울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일반적인 불륜의 한 경우에 불과한 이 사건이 이처럼 큰 대중의 도덕적인 감수성을 건드리는 이유는 순전히 그 여자의 직업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

 특정한 직업이 주는 윤리적, 사회적인 구속과 압박감이란, 그 직업을 갖지 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갖 대학을 졸업하고 스물 서넛 밖에 안된 젊은 처녀, 총각들이 단지 직업이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학교 현장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조신하고 보수적인 처신을 강요당한다. 문제는 이러한 특정 직업에 부과되는 윤리적인 잣대가 일관적이거나 형평성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성접대를 받은 검사들을 대하는 시선과 그에 대응하는 윤리적인 비난이다. 성접대 사건이 까발려졌지만, 네티즌들은, 적어도 이 사건과 비교해 봤을 때 매우 조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리스트에 명백한 혐의점을 가지고 올랐던 검사들 누구누구의 실명과 직업, 미니홈피, 그리고 직장 주소가 까발려진적도 없고 당장 검사직에서 물러나라는 비난이 쏟아지지도 않았다. 검사들이 받은 성접대는 이번 여교사 사건 같이 단순한 도덕적인 비난의 사안보다 훨씬 무거운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자 형법상 처벌대상인 성매매- 그것도 그 일을 단속해야 될 당사자들이 저지른 범죄이니 그 죄는 더욱 가중 된다고 하겠다- 의 일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 교사의 경우처럼 한 사람을 완전히 생매장시킬 정도의 가혹하고 가차 없는 사회적인 비난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 사회를 감싸고 있는 도덕적인 감수성이 그만큼 이중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징표가 아닐런지. 개인적인 도덕성과 공적인 도덕성의 두 가치 차원에서 이 두 사안을 비교해 보자. 

우선, 개인적인 도덕성의 차원에서. 

 불륜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서로 진정 마음이 맞고 '사랑해서 한 행위'와, 마찬가지로 불륜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서 한 '도구적인 성행위'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비난 받아야 하는가? 비난의 경중을 고르라고 하면 나는 후자가 마땅히 더 비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일반적인 여론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공적인 도덕성의 차원에서.

 '교사'의 불륜 행위와 '검사'의 성접대는 어떤 것이 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가? 교사의 불륜 행위를 통해 나타나는 사회적인 해악은 그 불륜이 폭로되었을 때에만 한한다. 은폐된 불륜- 금지된 사랑- 은 당사자들에게 존재하는 죄의식을 고려해  본다고 해도, 적어도 정신적인 애착이 불타오르는 그 순간에는 서로에게 여전히 비루하고 피곤한 일상의 삶을 지탱하는 삶의 청량제가 될 수도 있다. 엄밀히 말해 그 불륜이 폭로되지 않는다면 그 불륜행위로 인해 해악을 받을 당사자들은..없다. 

 반면 검사의 성접대의 경우. 검사의 성접대들이 폭로되지 않고 지속된다고 가정할 경우, 이러한 검사의 부패/불륜 행위들이 사회에 지속적으로 끼칠 해악은 너무나도 광범위한 것이다. 성브로커의 사주를 받은 검사가 건축주의 비리나 비자금을 눈감아 줄 경우, 그 피해는 일반인의 정신적인 불쾌함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막대한 물질적인 손해를 불러 일으킨다. 성접대를  받은 부패한 법집행인을 둠으로서 그 사회가 치러야 하는 유무형의 댓가는 얼핏 보기에도 가늠할 수 없이 큰 것이다. 여기에서 그 성접대가 '댓가성'이 있느니 없느니만을 따지는 실정법적인 잣대는 사안의 본질을 왜곡시킨다. 법집행인들이 성접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에게서 공정한 법적용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그런 만큼 사회는 이미 잠재적인 위험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 사회의 도덕의 기능이 그 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제거하고 사회 전체의 복리를 증진시키는데 있다고 본다면, 우리가 마땅히 한 사람의 인생을 매장시킬 정도로 비난을 퍼부어야 할 부류의 사람들은 제자와 위험한 사랑에  빠진 여 교사로 대표되는 교사들이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게 성접대를 받고 영감님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느끼지도 못하는 검사들의 부류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적 비난의 사회 심리학이 작동하는 방식은, 이처럼 왜곡되고 직업 집단간의 힘의 관계에 의해 흉하게 어그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