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영화를 보기위해서가 아니라 관객을 보기위해 영화관에 갑니다. 이런 저런 장면들에 관객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기위해 영화관에 가는 거죠.  다분히 관음증적인 쾌락이긴 하지만, 영화 자체를 넘어서 영화와 소통하는 관객들을 보는 재미는 쏠쏠합니다. 누군가 웃기 시작하면 따라 웃는 그들을 보는 재미, 모두 슬퍼해야 할것같은 장면에선 숙연해지는 그들을 보는 재미 말이죠... 그렇다고, 시니컬하게 억지로 안 슬픈 척한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영화에 빠져드는 만큼이나 관객들에게 빠져드는 것이죠... 물론 거짓말에 속는 관객들을 보는 재미는 더욱 쏠솔합니다.

예전에 <<춤추는 대수사선>>이라는 일본영화가 히트를 쳤었죠. 이 영화를 보면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풋내기 형사가 어떤 주부로부터 칼을 맞고, 혼절을 하죠. 그리고 병원으로 가는 선배형사의 차 안에서, 장엄하게 최후를 맞이합니다. 제가 틀렸다구요? 그는 죽지 않았다구요? 유쾌한 바보 관객들은 코를 고는 소리를 듣고 서야 그가 죽지 않았다고 안심해하며, 유쾌하게 웃지 않았냐구요?

저는, 그 형사가 칼 맞은 장면서부터, 웃음이 새어나와 참지를 못했습니다. 상당히 키가 큰 그 풋내기 형사를 키가 160도 안되는 아줌마가, 그 아줌마의 가슴 높이로 칼을 쥔 손으로 쓸어지듯, 안기듯 칼질을 합니다. 그 칼이 형사의 어느 부위에 찔리겠습니까? 바로, 엉덩이 부분이죠. 엉덩이가 신체의 어떤 부위인줄 아시죠? 살 뿐이 없는 부분입니다. 이곳은 아무리 찔러봐야 죽지 않습니다. 출혈과다로 죽을 수는 있겠네요. 우리는 <친구>라는 영화에서 어떻게 찔러야 사람이 죽는지 잘 들었죠. 혹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라는 영화를 통해서도 말이죠. 그렇게 엉덩이를 찔린 그 풋내기 형사를 선배형사가 들쳐 없고 계단을 내려갑니다. 근데, 그 풋내기 형사의 손을 잘 보면, 배, 심장, 가슴 이런 신체부위를 감싸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엉덩이를 감싸안고 있습니다. 역시 그는 풋내기 형사였습니다. 칼질을 수십 차례 당하고도, 맨 정신으로 "많이 묵었다 아이가, 고마해라"라고 말하는 장동건과는 비교도 안되는 풋내기 입니다. 그러니, 엉덩이를 찔리고도 놀라서 혼절을 하죠.

이제, 영화는 마지막을 향해 치닫습니다. 자신의 차에 태운 선배 형사는 풋내기 형사를 애타게 부릅니다. 제발 죽지 말라고, 잠들지 말라고? 다리베개를 해준 여자 동료 형사는 애타게 흐느낍니다. 풋내기 형사는 도저히 못 참겠다고 그렇게 말하나요? 암튼, 칼 맞은 형사는 손에 힘이 서서히 빠지고, 눈이 스르르 감깁니다. 줄곧 차 안을 비추던 카메라는 이제 멈춰버린 차를 비춥니다. 아마 신호를 받아서 그런건가요? 암튼 장엄하게 흐르던 배경음악은 볼륨이 서서히 작아지더니, 음악마저 멈춰버립니다.

그때, 바로 그때, 코고는 소리가 들립니다. 얼마나 졸리웠겠습니까? 3일 동안 잠 한 숨 못 잔 그 형사가 말이예요. 게다가 사건도 해결이 되었으니, 긴장도 턱하니 풀렸겠죠. 그는 그렇게 여자 동료 형사의 다리를 베고 곤히 잠이 듭니다.

같이 영화보러간 어떤 분은, 이렇게 심각한 장면에서, 영화는 안보고, 잠에 빠진 관객 중의 한 사람이 코를 고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답니다.

아 물론, 저도 뒷부분에서 그 분위기에 사로잡혀 깜빡 속았었답니다. 그 장면이 관객을 속이는 것임을 뻔히 알고 있는 저마저도 속은 거죠. 속아야 한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한 건지도 모르구요. 그렇게 칼질을 당한 그 장면부터 웃음을 참느라 키득키득 웃어대던 웃음이 장엄한 죽음을 맞이하는 관객들에 묻혀 사라진 거죠.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긴 서론 덕택에 다른 페이지로 클릭하실 분들은 이미 하셨겠죠?

작년 촛불 집회에서의 경험입니다. 명박산성을 앞에두고, 그 최초의 긴장의 순간에 스티로폼이 대거 들어왔었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죠. 물론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스티로폼을 들고온 사람들이 명박산성 앞에 그것을 쌓기 시작했죠. 그러다, 피켓을 든 몇몇 사람들이 그들을 제지하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저는 그들과 논쟁을 하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논쟁을 시작합니다. "산성을 넘기 위해 스티로폴을 쌓는 행동은 명박산성이라는 공권력의 물리적, 상징적 폭력에 대한 하나의 상징적 퍼포먼스일 뿐이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실질적으로 '컨테이너'를 넘어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공권력이 넘어서지 말라고 하는 그 '경계'를 밟고 올라서는 상징적인 퍼포먼스로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기만 할 것이다. 그래서, '안전사고'가 걱정되서, 명박산성에 손도 못 건드리게 하는 것이라면, 너희들의 통제하에, 기수들 몇 명만 올라가게 하자" 등등등...  

물론, 논쟁을 벌리는 바로 그 순간에는 그들을 설복시킬 요양이었지만, 논쟁 중에 설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저렇게 주장을 펼쳤었죠. 왜? 저는 그 당시 나의 주장은 논쟁 당사자를 향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논쟁을 구경하는 "관객"을 향했던 것이었기 때문이었죠. 저는 그 관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기 때문이었죠. 저 재미있는 명박산성에 한 번 올라서 보는 건 어떨까하는... 말이 안 통하는 그들을 피해, 그 자리를 피했다가 몇 시간 뒤에 왔더니 단상이 쌓여져 있더군요. 잠시 후에, 단상을 계단으로 만들지의 여부를 묻는 논쟁이 오가는 자리에서, 저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 그 자리를 즐겼었네요.

새로 생긴 이 공론장에 이래 저래 할 말이 참 많습니다. 제 자신이 말도 안되는 몇몇 논쟁의 와중에 끼어 있기도 했었네요. 그래도 "관객"을 의식하는 저로서는, 그 글들의 조회수 만으로도 만족하기는 합니다...

한 마디는 해야겠네요. 관객 무서운줄 모르는 영화는 망하기 마련이고, 눈팅족 (누구는 똥파리라고 부르는 그들) 무서운줄 모르는 사이트는 망하기 마련입니다. 서민 무서운줄 모르는 권력이 망하기 마련이듯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논쟁 (아니 분쟁?) 당사자들의 옳고 그름은 그 논쟁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 속에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그렇게 된다면, 이곳에서의 논쟁은 상존하는 법에 대한 호소에 앞서, 관객들, 즉 눈팅족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호소가 더욱 중요해질 터이구요...  그래서, 바람계곡님의 문제를 둘러싼 결정에 대해, 윤리위의 판단은 너무나도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